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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3-3화. 싫다잖아요
작성일 : 17-08-05 15:19     조회 : 373     추천 : 0     분량 : 4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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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나는 계획적으로 탄생했다. 교통의 안전을 책임지는 한 순경이 휴머노이드 공학자를 만난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이 둘은 진부하게 말하자면 뜨겁게 사랑했으나, 의도치 않게 열매를 맺지 않았다. 냉정한 바람이 커지는 불씨를 후후 불며 조절했다. 나는 그 둘의 흔들림 없는 둥근 교집합에 서서, 그 둘이 원하는 시기에 나타났다.

 따뜻한 어둠을 벗어나 차가운 빛이 나를 덮쳤다. 누구나 태어난다면 겪게 되는 흔한 일. 나 또한 빛이 찢어지도록 울었다. 갈라진 빛 사이로 다시 어둠이 새어 나와 나를 채워주길 바랐다. 그들은 내 뜻도 모르면서, 환하게 웃었다. 이들로 인해 더는 울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 '나'라는 존재를 숫자로 표현되었다.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성격, 신체적 능력, 발달 가능성이 전부 숫자로 표시됐다. 내 숫자는 빛과 같았다. 그 둘은 숫자의 뜻에 환하게 웃었다. 결단력, 리더, 사회, 정치, 기타 등등.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숫자로 바뀌어 나를 증명했다. 의사는 평범하게 키워도 한 집단의 강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집단이 선인지 악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생후 3일이 지난 아기의 이야기다.

 

 나는 보모 휴머노이드에게 자라났다. 그는 아빠 회사에서 직원 복지로 대여받은 휴머노이드였다. 시중에서 상당히 비싼 값에 팔리는 그는 아기의 모든 행동, 울음을 즉각적으로 인식했다. 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환한 미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아쁘아'라고 말했다. 물론 나만의 가설이다. 엄마는 내 옹알이를 듣고 가슴으로 얕은 지진을 느꼈다. 인위적인 육아가 자연의 진동을 일으킨 것뿐이다. 그리고 그 여파로 몇 차례 부부싸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인간'도, '아빠'도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어느 새벽, 나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그는 논리적으로 기저귀부터 몸 상태 여기저기를 확인했지만, 내가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고약한 내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크게 울었다. 물론 그의 잘못이 아니다. 휴머노이드가 '꿈' 그러니까 '악몽'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으니, 나를 프로그래밍으로 알 수 없었다. 뒤늦게 엄마가 다가와 나를 토닥이자, 나는 그제야 울음을 멎었다. 6번째 감각이라는 게 정말 실존하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허물어진 목으로 열심히 불렀다. '어므아', '어므아'. 생후 3달이 지난 아기의 이야기다.

 그 외에도 찬란하고 보석의 조각 같은 순간이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알고자 했던 것과 거리가 멀다. 아, 하나를 더하자면 나 동물을 좋아했다. 그중 펭귄을 가장 좋아했고, 동물원에 놀러 갔을 때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닭벼슬이 달린 펭귄 친구도 그때 생겼다. 그리고 만 4세가 되던 날, 자연스레 펭귄 친구는 상상의 재가 되었다.

 

 뚜각또각뚜각또각, 그는 볼 일을 마쳤는지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손끝에 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을 것처럼 섬세히 문질렀다. 그리고 흡족했는지 자신의 손을 좌우로 뒤집어 보고, 코에 가까이 댔다. 그리고 먹기 아까운 음식의 향을 맡은 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라벤더 향이야. 마음을 진정시켜주지. 더더욱 슬퍼지네." 그는 말을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쇠와 피가 라벤더를 시들게 하겠지. 정말 죽음이란 흉측하기 짝이 없군." 그는 독백을 멈추더니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잠시 멈춰 서서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쳐다봤다. 그러더니 썩은 동태눈깔에서 서서히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봐요, 할아버지! 어서 이거 풀어줘요! 도대체 저희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아라는 그사이에 정신을 차렸는지 대뜸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노인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이질적인 발소리로 성큼성큼 아라에게 다가가 총구를 이마에 붙였다.

 "하여튼 이 망할 세대는 날이 갈수록 예의가 땅으로 깊숙이 녹아 사라지지. 노인도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나?" 그는 겨눈 총구를 그대로 쭉 밀어 아라를 넘어뜨렸다. 뒤로 고꾸라진 아라는 그물에 걸린 생선처럼 아등바등했다.

 "내가 죽으면, 너희를 책임질 어른이 없겠구나. 우선 너희를 책임지고, 나도 블랍님의 뜻에 이어..." 노인은 한쪽 눈을 찡그리더니 사격 자세를 취했다.

 "나도 따라가마."

 "책임은 무슨 얼어 죽을 책임이야! 당신 같은 늙은이 때문에 우리도 당신 나이 먹으면 그 꼴 나는 거잖아!"

 "안돼요, 지금 씨! 더 흥분하게 만들면 안 돼요!"

 노인은 곧바로 내 이마에 총구를 붙였다. 쇠의 접촉이 흐르는 땀과 맞닿아 지독한 죽음의 향을 내뿜었다.

 "그래, 차라리 죽여! 대신 날 죽이고 아라는 살려줘! 본보기로 보여주고, 예절 머리가 그나마 있는 저 녀석은 살려!"

 노인은 한쪽 귀에 걸린 웃음을 점차 내리더니 총구를 겨눈 채 뒤로 세 발자국 걸었다. 그리고 깊게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말라 비틀어진 노인의 숨결이 탄환처럼 깊숙이 들어왔다.

 "피가 내 옷에 묻는 건 싫으니까... 가라, 꼬마야."

 말이 끝나자마자 노인은 주름진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부엌을 정리하니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이 들려준 나의 이야기는 쓸모없었다. 어떤 괴한이 나타나 연약한 나의 몸, 나의 머리, 나의 뇌에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 특별한 희귀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지도 않았다. 무의식을 산산조각낼, 기억 저편으로 넘어간 충격적인 사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그저, 누군가에게 특별할, '평범', 그 자체였다. 쓸모 있지만, 지금 내게 쓸모없는 과거의 잔상에 불과하다. 감춰야 하는 실망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맞아, 지금아. 이번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정 있어?" 엄마는 냉장고 안을 훑어보더니 캔맥주 하나를 꺼내 그 자리에서 땄다.

 "어? 없는데, 왜?"

 "이번 여름 휴가로 제주도에 갈 생각이라서. 실적 포상으로 제주관광청에서 내게 가족여행권 풀 패키지를 줬어. 선약이 있다면 그이랑 단둘이 오붓하게 가려 했지. 그런데 그렇기에 2명이나 더 같이 갈 기회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엄마는 곧바로 맥주를 들이켰다. 목 넘김이 묵직한지 꼴깍거리는 소리가 메트로놈처럼 일정했다.

 "그냥 둘이 가도 딱히 상관없어."

 엄마는 감탄사와 함께 캔을 찌그러트렸다. 청량감이 터지는 표정이 곧장 꺼지더니 냉정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네 애인, 북에 있는 아라 씨 데려와."

 엄마의 말에 마시지도 않은 맥주가 목에 걸린 것만 같았다. 가상의 탄산이 콧속에 스며들어 오만상을 찌푸리게 했다.

 "아라? 김아라? 걔를 왜?"

 "한번 제대로 만나보고 싶어서. 도대체 어떤 매력이 우리 딸의 마음을 훔쳐갔는지 너무 궁금해."

 매력은 개뿔! 지하 구석에서 책상에 앉은 채 모니터 보면서 밥 먹는 남자가 뭐가 좋아! 속마음이 각혈하듯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첫째, 아라의 일정을 모른다. 둘째, 아라에게 동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모님이랑 같이 여행 갈 마음이 없다."

 "첫째, 지금 전화를 한다. 둘째...도 역시 마찬가지. 셋째, 12살 아이를 집에 홀로 3일이나 놔둘 수 없다." 엄마는 식탁에 'V'자 모양으로 손짓하여 이엔(EN)을 불렀다. 이번에는 훤칠한 남자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지구의 소식을 정확히 전달하는 이엔입니다."

 "이엔, 내 전화기록부에 있는 김아라에게 전화해줘."

 이엔은 엄마의 말을 듣자 연락처 프로필 사진을 추출하여 자신의 얼굴을 아라로 바꿨다. 양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걸까. 현실 속 아라보다 살짝 더 잘생겨서 이상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아, 아라 씨. 안녕하세요, 저 지금이 엄마입니다."

 홀로그램으로 비춰진 아라는 잠시 입을 멈추다가 뒤늦게 대답했다.

 "네! 형사님! 아니, 어머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셨어요?"

 "본론만 말할게요. 이번 주 금부터 일요일까지 시간 있어요?"

 없다고 해. 없어야 해. 있어도 없다고 해. 아니, 저 잉여는 남는 게 시간이지. 그래도 3일인데 친구라도 만나지 않을까? 아니지, 아니야. 저 몰골에 무슨 친구야. 하씨 저 녀석을 데리고 왜 여행을 가는 거야. 제발 없다고 해. 시간 없어서 바쁜 사람이라고 거짓말해!

 "예, 남는 게 시간이죠! 무슨 일이죠?" 너무나 밝고 솔직한 아라의 말에 머리가 띵했다.

 "좋아요! 그때 우리 가족이랑 제주도 2박 3일 여행! 경비 부담 제로! 어때요?"

 안 간다고 해. 못 간다는 말은 글러 먹었잖아. 거절해. 과감히 거부해! 의미 없는 여행이야. 스트레스만 쌓일 거라고. 집에서 수염이랑 머리카락이나 화초처럼 덥수룩하게 키우면서 지내라고! 안 간다고 해! 예의는 밥 말아 먹어도 좋으니 시원하게 거절해!

 "아, 좋죠! 예, 뭐. 초대해주신다면 기꺼이.. 예! 가죠! 제주도!"

 누가 시원하게 대답하래, 멍청아!

 "약속했습니다! 사비를 빼고 특별히 경비가 들지 않을 거예요. 제가 따낸 풀 패키지 여행권이라서요. 제주공항까지 혼자 오실 수 있죠?"

 "그럼요! 이야, 이런 선물을 다 받을 줄 몰랐어요! 고마워요!"

 "네! 그럼 제주도에서 만나요. 자세한 일정은 메일로 보낼게요."

 전화가 끊어지자 이엔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만약 실제 아라였다면 전치 2주 병원 패키지를 보내줄 것이다. 엄마는 찌그러진 맥주캔을 경쾌하게 쓰레기 함에 넣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빈 깡통 소리가 너무나 귀에 거슬렸다. 다시 캔을 꺼내 엄마든 아라든 얼굴에 던지고 싶다.

 "자, 그럼 이제 지금이를 어떻게 설득하지? 정읍에 있는 친척 집에 머무르는 것을 택한다면 데려가지 않을게. 나랑 그이랑 함께 아라 씨를 콕콕 찔러야지." 엄마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오리처럼 약오르게 입술을 삐죽 세웠다. 친척 집은 더 끔찍하다. 고모는 심심하면 내게 지루한 옛이야기만 늘어놓고 밑에 아이들은 아직 어려 '발광' 그 자체다. 얌전한 부뚜막 고양이를 비글 정원에 집어 던지는 것이다. 게다가 저 멍청한 아라가 내 정체를 밝히기라도 하면... 세상 모든 게 원망스럽다.

 "아, 갈게! 간다고! 가면 되잖아!"

 

 라고, 하지 말아야 했다. 앞에서 말한 비극의 출발은 괘씸한 엄마의 강압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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