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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너……나, 알지?
작성일 : 17-08-03 18:19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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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땅. 뚱땅. 뚱땅.

 

 세라는 눈을 떴다.

 

 간단한 세간살이와 침대가 전부인 낡은 흙집 내부였다.

 

 코트를 입은 채로 누워 있었다. 한 생각이 들자, 정신없이 장갑을 벗고 검지 손가락을 살폈다. 반지가 그대로 있었다.

 

 안도의 숨을 쉬고 난 뒤, 휘청 휘청 일어나 문을 열었다.

 

 강렬한 정오 햇살에 눈이 아팠다.

 

 하얀 눈은 없지만 차가운 기온과 바람에 섞여 든 먼지와 흙이 밀고 들어왔다.

 

 시체처럼 느껴지는 몸은 움츠리지도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뚱땅. 뚱땅. 뚱땅.

 

 쇠를 두드리는 소리에 이끌려 대장간으로 향했다.

 

 소리의 발원지를 찾았다. 어제 본 모습 그대로 머리와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채, 붉은 쇳덩이를 두드리는 남자가 보였다.

 

 담금질을 하려고 몸을 비틀다가 입구에 서 있는 세라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하던 일을 마저 할 뿐이었다.

 

 한참 후, 화로에 불을 끈 그가 손을 씻고, 옷에 쓰윽 닦으며 여전히 그대로 서 있는 세라를 바라보았다.

 

 구석에서 빵 덩이와 스프를 담은 그릇 두 개를 들고 그녀 옆을 스쳐지나 나무 테이블에 놓았다. 말려 올라간 천막을 내려 입구로 모래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막았다.

 

 

  “이리와.”

 

 

 의자에 앉았다. 못 알아 들을까봐 손짓도 함께.

 

 세라가 다가가 그 앞에 섰다.

 

 

 “어디 사람인지만 알아도 좋겠구만. 똑같은 말 반복하기 귀찮…….”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은 아스란제국어였다.

 

 

 “아스란에서 왔어요.”

 

 

 그의 파란 눈이 커졌다.

 

 

 “아……그랬군.”

 

 “여기는 어디입니까?”

 

 “아스란 동쪽 국경에서 열흘거리, 도적떼가 들끓는 곳이지. 어제는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좀 괜찮나?”

 

 “제 마차는 어디 있습니까?”

 

 

 걱정을 담은 자신의 질문엔 답할 생각도 않고 마차 행방을 묻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뒤쪽에 옮겨 놨어. 도적놈들이 탐낼만한 건 치워 두는 게 상책…….”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아카드가 준 비단주머니에서 미리 꺼내 둔 밤톨만한 다이아몬드 하나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비단 주머니에는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성을 여러 채 살 수 있는 가치지만, 세라는 최대한 아카드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그것들을 남김없이 사용할 것이다.

 

 그는 다이아몬드를 집어넣을 생각도 하지 않고, 세라를 응시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앉아. 그리고 먹어.”

 

 

 그는 음식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를 대륙국까지 데려다 주시면 더 드리겠습니다.”

 

 

 대륙국. 중앙 대륙에 있는 수 십 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의 통칭이었다. 마차로 석 달 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대륙국의 경계에 다다른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나는 배고파. 먹어야겠어.”

 

 

 칭칭 감긴 두건을 머리 뒤로 넘겼다.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녀는 발길을 돌렸다. 그도 잡지 않았다.

 

 서너 걸음 옮긴 발이 멈췄고.

 

 생기를 잃은 홍안이 잠시 흔들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목 아래에 걸쳐진 두건은 더 이상 그의 얼굴과 머리를 가리지 않고 있었다.

 

 돌처럼 굳은 세라가 떠나지 못하고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은 거대한 존재가 그녀의 몸을 움켜쥐고 있는 듯 꼼짝하지 못했다.

 

 그릇을 빠르게 비운 그가 고개를 들고,

 

 

 “내가 이래서 여자들한테 얼굴 공개 안 하는데, 배가 너무 고팠어.”

 

 “…….”

 

 “미리 말하겠는데, 나한테 반할 생각도 작업 걸 생각도 하지 마. 유부남이니까.”

 

 “…….”

 

 “그리고 대륙국에서 이리로 온지 얼마 안 돼서 다시 가고 싶은 생각도 없어. 네 다친 마부가 꽤 싸움도 잘하고 쓸만하던데 회복되길 기다렸다가 가든지. 여기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 치료소에 데려다 놨어.”

 

 

 직시하며 말하는 파란 눈동자를 세라도 뚫어지게 응시했다.

 

 세라는 둘 사이에 마치 전류가 흐르는 충격으로 심장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가 아예 멈추게도 하는 번개 같은 충격.

 

 잠시 후 세라가 다시 테이블 쪽으로 휘청거리며 다가가 천천히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충격을 담은 눈으로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꺼져가는 불꽃같던 눈망울이 활활 살아나는 것을 보고 남자는 지겹다는 듯,

 

 

 “이봐, 말했잖아. 나 유부남이라고.”

 

 “…….”

 

 “마을에 데려다 줄 테니, 어서 식사나 해.”

 

 

 그가 빈 접시를 들고 여자의 시선을 피해 대장간 안으로 멀어졌다.

 

 세라는 접시를 치우고 연장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앉아서 한시도 떼지 않고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세라의 집요한 시선.

 

 못마땅해서 그의 미간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결국 손질하던 연장을 내려놓았다.

 

 

 “이봐, 안 먹을 거면 마차에 타.”

 

 

 그는 입구를 나가면서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접시를 힐끗 보았다.

 

 세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앉아 그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

 

 한참 후, 흙먼지를 피하기 위해 두건을 두른 채 들어선 그는,

 

 

 “뭐야, 안 가?”

 

 

 넋을 놓고 있던 주홍색 눈동자가 남자의 파란 눈동자와 마주치자 다시 흔들렸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세를 음식 쪽으로 고쳐 앉았다. 오른 손 장갑만 벗어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 아가씨 정말……먹으라고 기다려 줄 땐 안 먹고.”

 

 

 어이없어 하는 남자는 입구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라를 내려 보았다.

 

 그녀는 서너 숟갈 스프를 뜨고 접시를 응시한 채,

 

 

 “오늘 하루만 더 여기서 묵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뭐? 왜, 좀 전엔 바로 떠나려더니.”

 

 

 퉁명스러웠다.

 

 

 “그러고 싶어졌어요.”

 

 “하, 미치겠군.”

 

 “…….”

 

 “이봐, 생긴 건 엄청 도도하게 생겨가지고 행동은 싼 티 나게 굴지?”

 

 

 그녀는 아랑곳 않고 스프를 계속 떠 넣었다.

 

 

 “내 얼굴 보고 여자들 확 달라지는 거 나 짜증나거든.”

 

 “맛있네요.”

 

 “뭐?”

 

 

 딴소리하며 꿋꿋하게 스프를 먹는 세라가 기가 찼다.

 

 별별 여자 다 봤지만, 이런 타입의 여자는 또 처음이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설움을 쏟아내는 것도,

 

 눈은 다급한데 그가 일을 끝낼 때까지 입구에 서서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그의 얼굴을 보고 눈에 보이는 뻔 한 수작이나 호들갑이 아닌 독특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랬다.

 

 처음은 대부분이 그러하듯 충격과 놀람으로 시작하는 것은 흡사했다.

 

 그러나 그 다음은 확연히 달랐다.

 

 집요함 속에 끊임없이 달라붙는 질문들이 느껴졌다. 잘난 외모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깊은 질문들이 그녀의 눈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인생의 큰 비밀 하나를 풀기라도 한 듯, 느긋함이 있었다.

 

 

 “다시 말하는데 난 유부남이고 너한테 관심 없어.”

 

 “저도 유부녀이고 남편 외엔 다른 남자에게 관심 없습니다.”

 

 

 수프를 다 먹은 세라가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파란 눈이 가늘어졌다.

 

 왠지 모르게 눈앞의 여자를 빨리 치워 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의 침대에서 재우고 음식을 챙겨주고 조금이라도 먹기를 기다려줬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족족 반해 버리는 여자들이 성가셔서, 도적떼로부터 구해준 여자들을 바로바로 마을에 데려다 놓았던 그였다.

 

 

 “너도 이미 봤겠지만, 방은 하나야.”

 

 

 그의 목소리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녀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우리 사이에 그것이 문제 될 거라 생각 되세요?”

 

 “우리 사이……?”

 

 “네. 우리 사이.”

 

 

 남자도 세라의 시선을 맞받아 응시했다.

 

 저 눈.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저 눈.

 

 둘 사이엔 아무것도 없는데, 왜 ‘우리 사이’라는 말이 거슬리지 않을까?

 

 이유는 잘은 모르겠는데……그냥 여자의 요구대로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에겐 이례적인 일이었다.

 

 생각은 아직 망설이고 있는데 손이 먼저 올라가 두건을 벗었다.

 

 

 “그래, 그러자고.”

 

 

 대답해 놓고 스스로도 놀라워 들고 있는 두건을 괜스레 손에 감고 풀기를 반복하며 세라를 응시했다.

 

 

 

 **

 

 

 

 “흠…….”

 

 

 황좌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카라스를 떠난 세라에 대한 보고는 감감 무소식인데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코족은 기어이 일을 내고 말 것 같았다.

 

 파얀마와 말코족이 동맹을 맺고 함께 아스란으로 쳐들어오는 그림은 그가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점점 말코족은 집요하게 아스란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아스란의 황제, 라시스의 물음에 발더스공작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카라스를 다시 품으셔야 합니다.”

 

 

 별다른 설명이나 미사여구는 없었다.

 

 언제나 짧고 직설적인 그의 대화법은 매사에 깔끔하고 정확한 성품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겠지.”

 

 

 크고 작은 내전으로 여전히 아스란은 병들어 있었다. 파갈이라는 큰 벽을 허물고 권력의 정점을 쥐었지만 백성은 헐벗고 병 들었고 대지에 뿌려진 피들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라시스는 아스란제국이라는 울타리가 백성의 자부심이 되길 바랬다.

 

 황궁의 창고를 털어 백성을 위한 빵을 만들고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다.

 

 평민들의 세금 감면과 노예 증가를 억제하는데 힘썼다.

 

 무분별한 황권과 귀족의 힘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공화정을 시행했다.

 

 

 '황제와 귀족이 아닌 백성 스스로가 아스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백성은 아스란의 주인이 되질 못했다.

 

 굳건한 터를 다지기에 턱 없이 부족한 시간.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외교와 협상이 아닌, 또다시 검으로 제국을 지켜야 했다.

 

 아스란을 위해 사랑도 버렸다.

 

 이젠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 하지만 언젠가 역사는 그를 알아주리라.

 

 

 “아카드 카라스에게 전달해, 다시 제국의 검이 되어 달라고…….”

 

 

 말을 마친 라시스 황제는 황좌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발더스공작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 십 명의 대신관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요함과 엄숙함이 대전을 감쌌다.

 

 

 

 **

 

 

 

 

 세라는 아카드가 준 반지를 빼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남자가 일을 하는 동안 흙집을 간단히 청소를 하고, 있는 재료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말린 고기와 감자를 잘게 썰어 스튜를 끓이고 말린 허브로 차를 우려 두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두 번째 요리.

 

 처음은 아카드를 위해,

 

 지금은 이 남자를 위해.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식탁을 차리는 중에 들어 온 남자.

 

 자신만의 공간에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살짝 설레였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라 그로서도 뭐라 설명할지 몰랐다.

 

 그의 삭막한 공간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고,

 

 게다가 요리까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가슴에 퍼져가는 따스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여자였다면 짜증났을 일인데…….

 

 세라가 의자에 먼저 앉아 그를 기다렸다.

 

 식사하는 내내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식사하는 모양새, 접시를 치우고 차를 다소곳이 따르는 모습, 차 향기를 음미하기 위해 감은 눈꺼풀, 투박한 컵에 닿은 얌전한 입술.

 

 

 “이름이 뭐야?”

 

 

 자기가 물어 놓고 놀라 그는 당황했다. 여자한테 이름을 묻다니.

 

 

 “뭐, 내일이면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것도 인연인데.”

 

 

 어색한 변명이 나왔다. 두 손으로 감싼 컵만 내려 볼 뿐 대답하지 않는 세라를 힐끗 봤다.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왜 대륙국으로 가려는지 물어도 될까?”

 

 

 왜 이리 이 여자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일까?

 

 역시 대답이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말라? 알았어. 그럼 네가 물어봐.”

 

 

 점점 안 하던 짓들이 튀어 나왔다. 자신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던 그가 이런 요구를 하다니.

 

 그가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고뇌와 슬픔이 서린 홍안이 잠시 그를 응시하고는 또다시 아래를 향할 뿐이었다.

 

 대답도 없고, 질문도 없는 세라. 파란 눈이 가늘어지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녀를 읽어내려는 수고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하루 동안 여자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무시할 수 없었다.

 

 평생에 이런 일이 두 번 있다니.

 

 여자한테선 그를 유혹하려는 어떤 낌새도 찾을 수가 없었다. 철저히 본색을 숨기며 접근하는 여자들을 얼마나 비웃었던가.

 

 하지만 지금은 저 여자가 엉큼한 속내가 있다한들 모른 척 봐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니……그것이 문제다.

 

 자신의 심리적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빠른 파악이 필요했다.

 

 

 “네가 말한 우리 사이란……같이 자도 되는 사이인가?”

 

 

 그 말에 세라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지 확인이 필요했을 뿐, 무욕의 삶을 사는 그에게 실망감 같은 것은 없었다.

 

 

 

 *

 

 

 

 남자은 침대 옆에 천막을 걸고 내부 공간을 둘로 나눴다.

 

 어제는 정신을 잃은 그녀를 배려할 필요가 없었지만, 오늘은 최소한의 예의라도 차려주고 싶었다.

 

 천막 너머 여자가 잠자리에 드는 소리가 들리고 정적이 흙집 안에 내려앉았다.

 

 바닥에 대충 자리를 펴고 누운 그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대답도 없고 질문도 없는 여자. 그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을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것이 분명한데 저렇게 또 무관심할 수 있는지.

 

 게다가 밤새 전해지는 소리 없는 흐느낌.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여자였다.

 

 새벽이 오고 여자가 침대를 빠져나가는 소리는 조용했지만,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는 겨우 잠이 든 눈을 곧바로 떴다.

 

 코트를 입는 소리. 부츠를 신는 소리. 장갑을 끼는 소리. 문 쪽으로 소리 죽여 가는 소리.

 

 떠나려는 것이다.

 

 하루 더 있겠다고 해도 또 승낙했을 터였다.

 

 잠시 멈춘 발걸음이 아마도 그에게 무언의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겠지.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다시 닫히고……발자국이 멀어져 갔다.

 

 

 

 *

 

 

 

 세라는 대장간 뒤쪽에 있는 마차의 마부석에 올라탔다.

 

 새벽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고삐를 당겨 말을 출발시키려는 찰라, 그녀의 손목을 잡는 손아귀에 놀라, 옆을 바라봤다.

 

 다시 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육체와 정신을 요동치게 하는 얼굴이었다.

 

 

 “이봐,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남자가 외투도 걸치지 않은 얇은 낡은 셔츠 차림 그대로 서 있었다.

 

 

 “밤새 한 숨도 못 자고 생각했어. 이대로 못 보내.”

 

 

 세라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남자를 보며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나, 알지?”

 

 

 어깨까지 닿는 은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묻고 있는 눈이 파랗게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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