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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어둠속에 주저앉아 쏟아낸 눈물
작성일 : 17-08-03 18:18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7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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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아카드는 미친 듯이 산을 내려왔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구르면서도 멈추지 않고 속도를 내어 옛 카라스성에 도착했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몸을 돌려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런 자신을 다그쳐 이곳에 오기 위해 속력을 낼 수밖에. 성벽을 짚고 숨을 골랐다.

 

 대기 중이던 야쿠와 발락이 저만치서 걱정스레 지켜보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아카드를 부축하려 달려들자, 뿌리치고 내부로 들어가 지하로 내려갔다.

 

 발락이 아카드에게 말을 걸려하자, 야쿠가 고개를 저었다.

 

 둘은 횃불을 들고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계단을 헛딛고 넘어지려는 것을 재빨리 잡아 세워주는 발락.

 

 이렇게까지 위태위태한 영주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참을 내려가 빛 한 점 들지 않는 바닥에 도착했다.

 

 발락과 야쿠가 횃불을 벽에 걸어두고, 바닥에 박혀 있는 무거운 철문을 들어 올렸다. 끝이 보이지 않은 구덩이가 드러났다.

 

 아카드가 구덩이 안의 어둠을 들여다보며,

 

 

 “마부들은 확실히 믿을 만해?”

 

 “네, 주군.”

 

 “근처 지형을 꿰뚫고 있는 자들이겠지?”

 

 

 두 번 째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자,

 

 

 “주군, 세라양의 탈출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주군께 알리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잖습니까.”

 

 

 야쿠가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금방라도 눈물을 쏟아낼 얼굴이었다.

 

 

 “주군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명령 지키겠다고 맹세한 걸 벌써 잊으신 건 아니겠죠.”

 

 

 아카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발락이 일각에 있던 밧줄을 가져다 구멍 속으로 늘어트렸다.

 

 

 

 그는……어둠속에 주저앉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오래도록.

 

 

 

 *

 

 

 

 “영주님, 저 왔어요. 괜찮으세요?”

 

 

 브르노가 철문이 덮인 구덩이 속에 대고 소리쳤다. 소리가 구덩이 속에서 크게 진동했다.

 

 대답이 없자 인상 좋은 얼굴이 구겨졌다. 다시 한 번 소리치려는 찰라,

 

 

 “고막 터지겠어, 작게 말해도 다 들려.”

 

 

 얼마나 질러댔으면……잔뜩 쉬고 갈라진 소리가 올라왔다.

 

 브르노는 그제야 긴장한 어깨를 풀고, 바닥에 철퍼덕 자리를 잡고 앉았다.

 

 쇳물을 녹여 두텁게 바른 구덩이 표면을 손으로 만져 보고 두드려 보았다.

 

 홈을 파서 발을 딛고 오를 수도, 점프해서 올라 올수도 없는 깊고 단단한 구덩이였다.

 

 

 

 “앞으로 3일이면 약 중단한지 10일이 되는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

 

 “폭주의 위험이…….”

 

 “그거 막으라고 자네 부른 거니까 알아서 해.”

 

 

 브르노는 씁쓸히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더 강한 약을 만들어라……폭주를 막아라……자꾸 부담주시기입니까?”

 

 

 거의 삼십년 만에 다시 찾은 영주의 사랑이 또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마는 것 같아 그의 속도 쓰렸다.

 

 아무 대꾸가 없으니 브르노는 주절주절 그간 성에서 일어난 소소한 사건들을 읊어댔다.

 

 혼자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것 보다 말상대라도 있으면 그나마 위안이 될까 싶었다.

 

 

 “미안하네, 부르노. 이런 꼴을 보여서. 야쿠와 발락에게도 전해 줘.”

 

 

 상할대로 상한 지친 울림이 브르노의 말을 잘랐다.

 

 가슴이 먹먹했다. 수년간 영주를 모시면서 그에게 이런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늘 냉철하고 완벽한 영주의 모습을 보이던 그가 세라 파갈의 등장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뭘 전해줘요, 직접 하세요.”

 

 

 감정을 숨기기 위해 퉁명스레 말을 던졌다.

 

 

 “직접 들으니까 좋네요.”

 

 

 한참 혼자 떠들던 브르노는 시장기를 느끼고, 들고 온 자루에서 빵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먹다가 갑자기 생각나, 빵을 잘라 툭, 개한테 주듯 구멍 속으로 던져 줬다.

 

 이럴 때 해보지 언제 해 보겠어.

 

 

 “뭐야, 내가 개야?”

 

 

 그 소리에 브르노가 히죽 웃으며,

 

 

 “미친개죠.”

 

 “브르노, 나 여기서 나가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지?”

 

 “허허허허. 그 뒷감당 보다 밤새 듣고 있어야 할 미친개 발악하는 소리가 훨씬 무섭습니다.”

 

 

 구덩이 속이 조용해졌다.

 

 

 

 **

 

 

 

 결국, 브르노는 견딜 수 없어서 지상으로 올라와 경계를 서고 있는 야쿠와 발락에게 갔다.

 

 밤이 깊어 있었다.

 

 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악!

 

 희미하게 아카드의 절규가 들렸다.

 

 길게 심호흡을 하는 브르노를 보고 발락이,

 

 

 “남은 이틀 동안도 계속 저러시는 겁니까?”

 

 “점점 심해지지.”

 

 “저러다 잘 못 되시기라도 할까봐 걱정입니다.”

 

 “브르노, 그냥 약을 드리고 구덩이에서 꺼내드리지 않으면 안 될까?”

 

 

 야쿠가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잠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주군께서 약을 주지 말라고 명하셨잖습니까.”

 

 “발락, 그거야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세라양이 멀리 갈 시간만 벌어주면 되는 거잖아.”

 

 

 브르노는 좀 더 생각 중이었다.

 

 

 “약을 먹어도 구덩이는 못 빠져 나올 거 아냐, 안 그래 브르노?”

 

 

 잠시 침묵하던 브루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야쿠, 냉철하고 차가워진 영주님이 우리를 조련하는 방법이 뭔지 아나?”

 

 “……?”

 

 “우리에게 선택을 떠넘기는 거지.”

 

 “그게 무슨?”

 

 “세라양을 우리가 찾아오든지, 영주님이 찾아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겠지. 우리는 영주님이 나가 계시면 말코족 때문에 불안하니, 우리가 찾겠다고 하겠고. 근데 우리는 못 찾아. 때를 기다리고 있던 영주님은 우리의 실패를 빌미로 결국 자신이 나서지.”

 

 “……?”

 

 “우리가 군소리 못하도록, 실패할 걸 알면서도 기회를 주는 거야. 약을 지금 주던 나중에 주던, 영주님은 결국, 세라양을 찾으러 국경을 나가게 되겠지.”

 

 “그건 강 건너 불 보듯 뻔 하죠.”

 

 “지금처럼 황제랑 긴장상태에 황제 허가 없이 국경을 넘으면 반역으로 몰고 갈 수 있어. 그러면 카라스 눈치만 살피던 기회주의 세력들이 우후죽순 황제 쪽으로 갈아탈 거야.”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약을 지금 주던 나중에 주던, 영주님이 국경을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

 

 

 

 세라가 탄 마차는 쉴 새 없이 질주했다.

 

 야쿠와 발락은 카라스의 검은 기사단 중에 평소 따뜻한 외국으로 가고 싶어 하던 자 둘을 은밀히 불러내 임무를 설명했다. 두 번 다시 카라스로 돌아올 수 없는 임무였다.

 

 최대한 멀리 세라의 안전이 보장 되는 곳, 그들이 가고 싶어 노래를 불렀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세라의 정착을 도와야 했다.

 

 카라스의 남쪽은 아스란 본토, 서쪽은 파얀마, 북쪽은 말코족. 그들은 동쪽의 대륙을 향해 달렸다.

 

 동쪽 국경지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수부족들이 몰려들어 노략질을 하며 살고 있어 여행로나 무역로가 사실상 폐쇄 된 상태였다.

 

 폐쇄 된 상태지만 도로가 있기에 빠르게 국경을 넘어 여러 국가가 혼재한 대륙으로 숨어드는 것이 조속히 임무를 달성하는 방법이었다.

 

 달리던 마차가 서고,

 

 

 “전방에 안전을 확인한 후 출발하겠습니다.”

 

 

 마부석에서 기사가 말했다. 기사 하나가 마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빠르게 뛰어가는 소리가 났다.

 

 세라는 아카드가 끼워 준 반지를 손끝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론이 만들어 준 팔찌는 황군들에 의해 몸수색 당할 때 머리카락 속에 숨겨 둔 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때 어찌나 서럽던지 아론을 두 번 잃은 것처럼 울었다.

 

 이 반지만큼은 잘 간직하고 싶었다. 누가 보고 탐내지나 않을까 해서 세라는 서둘러 장갑을 다시 끼었다.

 

 그 때, 갑작스럽게 출발한 마차는 달리기 시작하며 방향을 틀었다. 세라의 몸이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다 한쪽으로 쏠렸다.

 

 이럇, 이럇,

 

 기사의 다급한 재촉이 말들의 속력을 높였다. 아직 정찰나간 기사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창문을 살짝 열어 보자마자, 슈슉! 옆으로 화살이 여러 개 지나가고,

 

 톡, 토도독, 마차에 맞고 튕기는 소리가 점차 요란해졌다. 그제야 세라는 마차가 강철로 된 것을 인지했다.

 

 그 후부터 뒤엉킨 말발굽 소리가 난무하고 괴성들이 가까워졌다.

 

 노략질을 일삼는 부족들을 만난 걸까?

 

 기사 혼자 당해낼 수 있을지…….

 

 세라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웅크렸다.

 

 두려움, 불안함, 안전을 보장 받고 싶은 욕망 등 수 십 가지의 감정들로 혼란스러워야 정상일 텐데,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듯,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만 들었다.

 

 이렇게 금방 죽더라도 당신 모르게 저 세상으로 가는 게 좋은 거겠지…….

 

 세라는 장갑을 다시 벗었다. 반지만을 응시하며 아카드를 떠올렸다.

 

 상상 속에서 쓴 향기가 코끝에 느껴진 순간,

 

 말발굽 소리도, 괴성들도, 마차소리도, 화살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도 점점 사라져갔다.

 

 파갈성 앞마당에서, 덩치 큰 흑마, 시갈을 타고 독향을 풍기며 들어서던 그 모습.

 

 후드 그늘 속에 숨긴 검은 눈이 그녀를 응시할 때의 강렬함.

 

 그녀의 어깨 위에 노예인장이 찍힐 찰나, 억누르지 못하고 표출한 분노.

 

 약병을 분실하고 환각과 고통 중에도 추격자들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치뤘던 치열한 싸움들.

 

 그녀를 위해 하인들의 일에 처음으로 참견하고 판결을 번복하던 뻔뻔스런 당당함.

 

 식사를 준비하고 그녀를 기다리던 나른한 표정.

 

 잠에서 깨어나는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검은 눈동자.

 

 교수형대에서 올가미를 풀어주며 고통을 삼키고, 그녀의 목을 어루만지던 떨리는 손길.

 

 함정인 줄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안심시키던 눈.

 

 낭떠러지로 함께 추락하는 순간에도 그녀에게만 고정된 시선.

 

 쾅쾅쾅!!!!

 

 아직도 그에 대해 떠올릴 장면들이 많이 남았는데, 마차 문을 누군가 두드려댔다.

 

 싸움이 끝난 건가?

 

 안쪽에서 잠긴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나 보았다.

 

 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던 자가 뭐라 뭐라 외국어를 뱉었다.

 

 7개국어를 순서대로 늘어놓는데 세라는 그중 두 가지 언어를 알아들었다.

 

 저렇게 똑똑한 자가 노략질이나 하며 살다니.

 

 

 “이봐! 문 열어, 당신 마부들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크게 다쳐 정신을 잃었어. 도적떼들은 내가 다 처리했으니까, 잠깐 나와 봐. 내말 알아들어?”

 

 

 드디어 아스란어로 똑같은 내용을 반복했다. 8개 국어.

 

 문을 열게 만들려는 계략인지 뭔지 그녀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아카드를 떠올리는 동안 모든 것이 지나가 버렸으면 싶었다.

 

 아카드에 대한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유영하고 가슴은 그것들 때문에 아파왔다.

 

 다른 생각들도, 의지들도 사라져 갔다.

 

 아론이 죽은 후 그녀에게 있었던 증상이었다. 이렇게 의욕을 잃은 후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도 약해져 갈 것이다. 회복하려면 아주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들을 다시 해내야 한다니.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쾅쾅쾅!!!!

 

 또 다른 외국어가 들렸다. 9개국어.

 

 

 “이봐, 이게 내가 아는 마지막 외국어야.”

 

 

 세라가 아는 덴웨스국 말이었다. 그는 똑같은 내용을 내뱉었다.

 

 말을 끝낸 그는 한 숨을 쉬었다.

 

 쿵! 마차 위에서 소리가 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라는 다시 반지를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애원하던 눈.

 

 부부로 살자며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던 간절함.

 

 하늘의 신비를 보여주려는 기대에 찬 얼굴.

 

 아내라는 표현을 쓰며 떨리던 입술.

 

 그의 검은 눈동자를 덮은 눈물.

 

 사라지는 뒷모습.

 

 울지 않는데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철커덩! 마차 문이 열렸다.

 

 마차가 멈춰 선지도 달궈진 쇠가 문을 뚫고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머리와 얼굴에 낡은 두건을 칭칭 감은 푸른 눈동자가 눈물 범벅이가 된 세라를 쳐다봤다.

 

 

 “뭐야, 이렇게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었으면 문을 열어줬어야 할 거 아냐?”

 

 

 그가 달궈진 쇠꼬챙이를 멀찍이 던져버렸다.

 

 그의 뒤로 허름한 대장간이 보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세라를 훑어보더니,

 

 

 “많이 겁 먹었나보군. 안심해. 난 도적떼가 아니라 널 살려준 사람이니까. 알아들었어?”

 

 

 그는 세라의 무반응을 보고 한 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외국어를 다시 순서대로 읊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외국어를 시작하려다가,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야.”

 

 

 그가 돌아서서 성큼성큼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연장들을 발로 손으로 한쪽으로 밀어 두고 달궈진 쇠를 꺼내 메질과 담금질을 반복했다.

 

 이따금 세라를 쳐다봤지만 말을 걸지도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날이 저물어 가도록 세라는 마차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마차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카드…….

 

 

 

 *

 

 

 

 “계실만 합니까?”

 

 “…….”

 

 “영주님도 결국 이곳에 자기발로 들어가셨네요.”

 

 

 비밀장소에 보관 된 기록을 찾은 아카드는 기록의 일부를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브르노에게 보여주었다.

 

 기록에 따르면, 역대 카라스 영주들 대부분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구덩이에 들어가 봐야 진짜 카라스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사랑하는 여자를 얻었다 해서 황권과 일족을 잃은 초대 카라스 영주가 행복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후회와 통렬한 고통이 그를 괴롭히고 미치게 만들었겠지.

 

 그런 카라스 옆에서 아스란의 딸이 위안을 주고 힘이 되어 주기는 커녕 미쳐가는 그를 멀리했다.

 

 급기야 카라스를 닮은 은발의 푸른 눈의 아들한테까지 진저리를 쳤던 그녀는 아들마저 두고 황제가 된 아버지에게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남자든 여자든 배우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는 법이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카라스는 정신착란 증상이 시작되었고, 불안한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아들이 온전하게 클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대물림 된 고통은 반려를 만나 치유를 받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아스란의 딸처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적의 손에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족과 주변을 지키기 위해, 카라스들은 극심한 발작이 일기 전에 스스로 이곳에 들어와야 했다.

 

 

 “선대 영주님들과 조우 중이십니까? 조용하시네요.”

 

 

 초대 카라스 영주는 부인을 찾으러 가려는 충동이 극심해질 때마다 스스로를 가둬둘 곳이 필요했고 웬만한 곳으로는 그를 가둘 수도 없었기에 이곳을 만들었다.

 

 

 “떠난 부인 붙잡지 않는 비법 전수 중입니까?”

 

 

 초대 카라스 영주는 주어진 모든 형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형벌을 받는다 해서, 속죄 받고 있다는 일말의 평온도 느낄 수 없는 불쌍한 영혼이었다.

 

 아휴~ 그 불쌍한 영혼이 저 아래 하나 더 있으니…….

 

 브르노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지금이라도 붙잡으러 가실 생각은?”

 

 

 흐흑.

 

 

 “브르노, 나 좀 ……살려 줘.”

 

 

 고통에 일그러진 소리가 공명을 타고 올라왔다.

 

 

 “명령하신 사흘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반나절 남았네요.”

 

 “……죽을 것 같아.”

 

 “선조들의 기운 덕인지 폭주의 기미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만.”

 

 

 으윽흑.

 

 

 “약을 드릴까요?”

 

 “……그래.”

 

 

 망설임이 느껴졌다.

 

 약은 고통과 함께 세라에 대한 감정마저 지웠다.

 

 최대한 오래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견뎌내고 싶었지만, 지금의 고통은 그녀 없이 마음만으로는 벼텨낼 수가 없었다.

 

 

 “이 약을 드시기 전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무거운 마음이 브르노의 목젖을 짓눌렀다. 호주머니에서 검은 약병을 꺼내들었다.

 

 

 “이 약은 영주님의 명을 받고 바로 만들었지만, 보고를 미뤘던 이유는, 진정제 성분이 기존보다 다량 포함되어 이전보다 더 감정이 사라지게 될 것 같습니다.”

 

 “…….”

 

 “즉, 세라양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것이 영주님께서 진심으로 바라시는 것인지 어쩐지 저도 확신이 서지 않아 말씀드립니다. 영주님께서 선택하시지요.”

 

 

 구덩이 속에서 아카드의 대답이 바로 나오지 못했다.

 

 언제가 됐든 자신이 세라를 찾아 나서리라는 사실이 숨겨 둔 작은 희망과 같은 것이리라.

 

 그 마저도 지워버리라니.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인 것이다.

 

 

 “약, 던져.”

 

 

 한 참 후, 그가 선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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