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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너와 너
작가 : 52
작품등록일 : 2016.8.22

내가 아닐 너와 너의 시시한 일상 이야기, 또는 비일상. (주 2-3회 연재합니다:▷!!)

 
02. 투명, 투명
작성일 : 16-08-24 23:18     조회 : 323     추천 : 3     분량 : 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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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투명, 투명

 

 

 

 

 -

 

 

 

 

  얇고 검은 다리가 두 개 달린 센베이가 달렸다. 나무 블록처럼 네모난 모양으로 각진 구름 위를 들판에서 뛰놀듯 빠르게. 단단한 구름 바닥면의 위로 살랑살랑 넘실거리는 얕은 물이 맑다. 나는 구석에 위치한 침대 위에서 졸고 있는 하얀 고양이를 쓰담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신나게 뛰어놀던 센베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분명 얼굴 없는 전병에 불과했는데, 새빨간 구두까지 신고서 또각또각 걸어와 오렌지색 립스틱이 발린 입술을 들이밀곤 내게 소리쳤다.

 

 

 "오ㅡ빠아!"

 

 

  이건, 틀림없는 꿈이네.

 

  눈이 확 뜨였다. 명랑한 하이톤. 귀에 대고서 소리 질렀는지 귓가가 멍하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천장을 한번, 나의 여동생을 한번, 그리고 이어 벽 구석을 바라보았다.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네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모양으로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지각이네'라고. 분명 거짓말이겠지.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은 6시 30분. 이것 봐, 역시 지각 아니잖아. 벽 구석에서 피식 웃는 너를 바라보곤 허탈하게 웃었다.

 

 

 "히비키. 좋은 아침."

 

 

  여동생은 나를 깨우자마자 방에서 뛰쳐나갔으니 네가 하는 인사는 분명 나를 향한 것이다.

 

 

 "어, 응. 끔찍한 아침이지."

 

 

 이제 당장 학교에 가야 하는데 좋은 아침은 무슨. 뻗친 머리를 문질러 누르며 발걸음을 욕실로 옮겼다. 바로 칫솔을 잡기엔 부엌에서 서서히 흘러들어오는 프렌치토스트의 향을 내치기 힘들다. 우리 가족은 수요일 아침엔 언제나 프렌치토스트를 구워 먹는다. 예외 없이 오늘도 마찬가지. 대충 물을 묻혀 세수를 한다는 게 눈 주변만 북북 씻어냈다. 누군가의 취향인 건지, 차분하게, 모든 것이 대개 하얗게 둘러싸인 이 화장실에서 유일하게 눈에 확 들어오는 핫한 핑크색의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캔 옥수수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물기에 젖은 수건이 축축해졌다.

 

 

 "좋은 아침, 히비키ㅡ. 빨리 와."

 

 

  토스트가 식잖니,라는 말을 덧붙인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오빠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눈이 새벽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그에 반하게 반쯤 감긴 나의 눈은 피로를 한가득 담고 있었다. 요즘의 초등학생들은 이렇게나 일찍 일어나는 걸까. 여동생인 히요리는 여덟 살. 창창한 햇병아리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아직 이렇게나 어린데 나보다도 일찍 일어나다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좋은 아치임ㅡ. 하암······." 

 

 

  어머니께 손을 흔들며 걸어 나와 하품을 쩍. 둥그런 접시 위에 있는 갓 구워진 프렌치토스트를 집어 들고서 정수기의 얼음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토스트 위에 눈처럼 뿌려진 설탕이 접시 위로 후두두 내리는 동시에 심플한 무늬가 찍힌 머그컵에 규칙적인 원기둥 모양 얼음이 짤랑이며 떨어졌다. 투명하게 일자로 떨어지는 얼음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우박이 내리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독한 더위가 전신을 붙들고 따라다니는 한여름이다.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가 담긴 페트병을 꺼내 그 컵에 쫄쫄 부었다. 서늘한 냉기가 온몸을 타고 흘렀다.

 

  입에 물린 토스트를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프렌치토스트는 특별한 것 같다. 한입을 씹을 때마다 귓가를 울리는 바삭바삭한 소리. 달걀푼물에 촉촉하게 식빵을 적셔 구워낸 식빵에선 버터의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딱히 무언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담백함이 듬뿍 느껴진다. 어머니의 사랑이 이런 맛일까.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캔 옥수수를 갈아 만든 콘 수프에 찍어 입안에 튕겨 넣었다.

 

 

 "그러다 지각하시겠어, 여유롭네. 히비키."

 "오빠. 나도 얼음ㅡ.“

 

 

  히요리와 네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거실에 걸린 고풍스러운 느낌의 벽시계를 힐끔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여유로운 시간이다. 싱크대 찬장에서 불투명한 연두색의 플라스틱 컵을 꺼내 얼음을 한가득 뽑아주었다. 맞부딪혀 깨진 얼음의 파편이 바닥에 튀더니 순식간에 녹아 작은 물방울로 변해버렸다. 하아, 얼마나 더운 거야.

 

 “자, 여기.”

 

 

  다시 시계로 눈을 돌렸을 땐 기다란 바늘이 반의 반 바퀴를 회전한 뒤였다. 시간은 달린다. 기다려주지 않는다. 꿈에서의 다리 달린 센베이보다 빠르게 빛의 속도로. 티슈를 뽑아 미끌거리는 손을 닦고서 방바닥을 구르는 책가방을 끌어올려 어깨에 메었다. 휴지통이 있는 부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피로한 나의 몸이 말했다. 티슈를 힘껏 주먹 쥐어 뭉개 가방의 작은 앞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달콤한 프렌치토스트의 냄새가 배어도, 그렇게 기분 나쁠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괜찮아.

 

 

 "다녀오겠습니다ㅡ."

 

 

  짧은 인사. 현관문을 닫았다. 그 뒤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잘 다녀와, 하고. 무기력한 얼굴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얼굴에 옅은 미소가 그윽하게 퍼졌다. 변함없는 일상의 시작이나 오늘만은 프렌치토스트, 투명한 설탕 빛의 하루가 되길 기원해본다.

 

 

 

 

  *

 

 

 

 

 “찬, 수학숙제 다 했어?”

 

 “당연하지. 새벽에 간신히 끝냈어. 넌?”

 

 “다 했지. 내가 너냐?”

 

 “허어ㅡ.”

 

 

  이 나라에서 나의 이름은 강 찬으로 되어있다. 아버지의 성씨가 따라오는 건 아무래도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찬이라는 글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까지 히비키라고 불리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것이라고.

 

  학교에 도착해 3층까지 뛰어 다다른 교실의 끝. 맨 뒷자리에 나란히 붙은 창가 쪽 책상 두 개. 헉헉거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각은 면했구나. 인사보단 숙제를 했는가에 대한 여부를 먼저 물어오는 반 친구는 바람에 뻗친 나의 머리를 바라보며 킥킥 웃었다.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누런색의 블라인드 커튼을 만지작거리는 네가 창가에 올라앉아 심드렁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엔 그다지 표정이 드러나있진 않지만 히요리와 동시에 내뱉었던 아까의 네 말을 받아쳐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삐져있진 않을 테다. 이때까지 늘 그래왔고, 여기는 학교니까.

 

  고개를 휙 돌려 옆자리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장난스럽게 킥킥대던 친구. 지금은 영어책을 펼치고 수능 문제 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긴장감 넘쳐서 결국 보고 있던 나도 매고 있던 책가방을 풀어 책을 펼치게끔 만들었다. 내가 조용한 반의 분위기를 타며 책상 위에 훤히 펼쳐버린 책은 3학년 생물 II 교과서이다. 나는 분명 문과인데도.

 

 

  아침의 이른 자습시간. 반의 분위기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그 고요함에 모두들 더욱이 긴장했고, 머릿속의 목표를 따라 무작정 달렸다. 볼펜의 딸깍거림과 샤프의 사각거림만이 귓전에서 흘러갔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물론 어디에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교실 앞쪽 구석에 몰려 앉아 자신만의 무리를 지어 잡담을 늘어놓던 몇 명의 학생들이 입에서 의외의 단어를 뱉어냈다. 모두에게 들릴법한, 제법 큰 목소리로. 찬, 의미 모를 나의 이름.

 

 

 “찬 쟤는 항상 누구랑 이야기 하는 거래?”

 

 “글쎄. 피곤해서 헛 걸 보는 게 아닌가 몰라ㅡ.”

 

 

  순식간에 조용했던 교실의 분위기가 낙엽 바스러지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웅성거림, 그 속의 나. 그리고 그 몰아치는 한파 속에서도 묵묵하게 8번 영어 본문의 해석을 노란 줄 노트에 끄적이고 있는 옆자리의 친구. 나를 바라보던 너는 어느새 수증기처럼 블라인드 커튼에 스며들어 사라진지 꽤 오래이다. 지금은 옆에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어쩌면 아마 잠시 집에라도 다녀올 모양이다. 혹시 아침에 먹다 남은 프렌치토스트가 있을까, 하고. 네 몫을 남겨주지 못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혼자가 아닌데. 그것만은 명확한 진실이며 증명 가능한 명제이다.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나의 손을 책상 밑으로 끌어 꼬옥 잡아준 네 손엔 온기가 있었다. 네 존재를 알리기엔 그 따스함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

 

 

 

 

  이 친구, 이 정민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와 같은 열아홉 살의 남학생. 전교 10등 안에서 놀 정도로 공부는 최상이다. 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정민이와 나는 같은 2반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는 친구들과 모여앉아 앞으로의 고교 생활에 대해 잡담하는 아이들의 눈에 혼자 있는 나와 정민이는 어떻게 비쳤을까.

 

  같은 아시아권의 인간인데도 다른 나라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 따윈 없었다. 각자의 무리에게서 보내오는 시선은 따가운 관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납으로 만들어진 나의 푸르스름한 마음엔 금이 갔다.

 

 

 ‘괜찮아. 이제까지 잘 해왔잖아.’

 

 

  나는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괜찮아.' 도대체 무엇이 괜찮아. 이제까지는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을 집어 말하는 건데. 그 어느 면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의 내게 붙어 다녔던 '너'는 그 당시에 보지 못했었으니까.

 

 

  시끌벅적한 교실의 가운데서 여러모로 나의 멘탈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던 내게 말을 걸어준 것. '너' 아닌 너였다. 나의 친구, 이 정민.

 

 

 “저기, 혹시 샤프심 있다면 좀 빌릴 수 있을까.”

 

 

 “어, 음. 물론?”

 

 

  아무런 표정도 없는 아이. 깔끔하게 다려진 새 교복이 그토록 새내기 학생답게 보일 수 있었던 건 이 교복을 누구도 아닌 네가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수군거리던 한 무리의 여학생들은 노란색의 의미 모를 단어들이 털로 찍혀있는 시뻘건 후드티를 교복 조끼 위에 입고서 껌을 쩍쩍 씹고 있었다. 꼰 다리 사이로 보이는 팬티의 색엔 조금의 관심조차 가지 않는다. 길이를 줄인 교복 치마라니. 게다가 허연 피부와 걸친 후드만큼이나 새빨간 입술은 정말이지 부자연스러웠다. 너의 깔끔함은 그 깔쌈함과는 분명 다른 느낌.

 

  나는 그런 너와 친구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너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지만 질로 따진다면 극과 극이었다. 무관심은 두렵다. 그러나 그것보다 최악인 것은 없다고 감히 누가 말했었던가, 저렇게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는데. 다들 놓인 처지는 틀림없이 같은 지점일 나와 너를 다르게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신뢰하는 방향만을 걸어가는 모습이 나와는 다르게 강해 보였다.

 

  너도 나만큼이나 다른 아이들과 동떨어져 있었다. 떠올려보면 정민이와 친구가 되는 것은 의외로 정말 쉬웠다. 어색한 대화로부터 시작된 인연은 점차 깊어졌다. 쌍방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는 분명 아니지만, 마음속에 통하는 무언가는 있을 거라고. 혼자서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엔 그저 무뚝뚝하게 일상적이지 못한 대화만을 주고받았던 우리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웃고 떠들고.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질 때마다 그것이 기뻐 웃음 지었다.

 

  그런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정신없는 세월에 취해 유라유라(ゆらゆら* 비교적 가벼운 것이 천천히 흔들리는 모양. 흔들흔들, 한들한들.) 걸어왔던 나와 정민이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3학년이 되어있었다. 아니, 정정하자. 지나가는 세월을 물 흐르듯 보내버린 건 어쩌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말하는 우등생. 허울 좋은 명칭 따위가 오히려 나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정민이는 투명인간이다. 투명하다. 적란운이 웅장하게 떠있는 여름 하늘의 그 아름다운 투명함이 아닌 정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되어버린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러했다면. 그저 눈치 없는 내가 느끼지 못한 것뿐이라면?’

 

 

  손에 닿았던 그 따스한 온기가 거짓말로 이루어진 무기물의 속삭임이라면, 나는. 나는.

 

 

 

 

 

  *

 

 

 

 

 

 "야야, 일어나. 히비키, 어이."

 

 "으.. 음. 하아ㅡ."

 

 

  네 목소리에 눈을 떴다. 무거움에 자꾸만 감기고 마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고개를 들어 옆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블라인드 커튼의 갈라진 틈 사이사이에 어둠이 지나쳤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콧잔등을 쓸고 지나갔다.

 

 

 "잘 잤어?"

 

 

  네가 아니었다. 너였지.

 

  눈을 비비니 잠시 흐릿했다가 다시 시선이 명확해졌다. 아아, 내가 잠들었구나. 역시 5교시의 국어 수업은 버틸래야 버틸 수 없는 시간이다. 그렇대도 저렇게나 별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시간까지 잠들어버리고 말 줄이야. 책상 오른쪽 한구석에 고이 밀어놓았던 안경을 썼다. 세상이 더욱 선명해졌다. 살풋 웃고 있는 너의 얼굴도, 칠판에 크게 쓰인 야간자율학습 참여 인원 수의 글씨도.

 

 

 "아.. 하하. 잠들었네. 이 시간까지 자는 게 가능한 거냐."

 

 "그러게, 풉.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괜찮아. 감독들도 못 보고 지나치던데.“

 

 

  맨 앞의 목차 부분이 펼쳐져 있는 국어책을 재빨리 덮고서 가방의 지퍼를 지익 열었다. 프렌치토스트의 냄새가 화악 퍼졌다. 아침 자습시간에 꺼내놓았던 생물 책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인사했다. 안녕, 좋은 밤이지.

 

  그 순간 배에서 꼬르륵, 얄밉게도 부끄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인지 모르게 오늘따라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서 잠에 푹 빠져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급식조차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 또한 하루를 잠으로 탕진했다는 말이 된다.

 

 “이건 말도 안 돼. 아니, 어라.”

 

  배를 움켜잡기도 전에 가방 맨 밑구석에서 필통 두 배 크기의 투명한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내용물은, 오 세상에.

 

 

 “센베이ㅡ!”

 

 

 “뭐야 뭐야, 먹을 거 가져왔어? 간식?”

 

 “나도! 우와, 찬. 하나만 먹어도 돼?”

 

  나의 짧은 외침 한마디에 반에 남아있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1학년 때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성장했고 바뀌었다. 친구도 정민이 한명만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잠에서 보았던 기억의 파편들은 금세 잊혀졌다. 옆자리, 네 책상 위에 센베이 봉지를 뜯어 펼쳐놓았다. 투명한 너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 센베이를 하나씩, 또는 두어 개씩을 집어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금 조잘대기 시작했다. 남은 센베이를 내려다보았다. 4조각.

 

 “인기 많네, 이거. 전병 아냐? 어디서 났대.”

 

 “엄마가 싸주신 것 같은데. 아침에 몰래 넣어두셨나 봐.”

 

 

  너와 내가 마주 보았다. 아무도 남지 않은 창가의 책상의자. 앉아있는 투명인간과 내가 웃었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배에서 다시 한 번 부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센베이로 곧장 손을 뻗었다. 너도, 센베이를 집어 와그작 씹었다. 사이좋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수가 아니었더라도 너와 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씹을 때마다 입안을 감도는 바삭하고 고소한 맛. 꿈조차 꾸지 못 했던 암흑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왔던 오늘. 바랬던 설탕의 달콤한 하루는 보낼 수 없었지만 투명한 설탕 빛의 너와 함께 먹는 이 센베이는 최고의 맛이리라. 집에서 남아있는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있을 네게도 그것이 최고의 맛으로 느껴지기를.

 

 

  밤이 깊어간다. 야간자율학습의 2교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모여앉아 놀던 모두가 일제히 제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의자 끄는 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생물 책을 꺼내 펼쳤다. 두 줄로 꼬인 DNA의 그림이 보인다.

 

 

 ‘내일은 꿀 발린 꽈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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