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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눈 먼 나르시스트를 위하여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5.8
눈 먼 나르시스트를 위하여 더보기

에브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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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삼일 앞두고 도망 친 남자. 나르시스트 오권혁(27세)
그런 남자에게 화가 나 있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여자. 평범녀 안나경(29세)

 
3.
작성일 : 16-05-08 16:25     조회 : 428     추천 : 0     분량 : 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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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인 같았다. 아니, 폐인이었다. 겨우 겨우 자취집에서 피신을 하고 나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애써 봤지만, 시골집에서 술주정뱅이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 병든 삼촌보다 더 파리한 안색 덕분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는 처지였었다.

 말로는 삼촌을 돌보기 위하여 시골 행을 택했다고 했지만 시골집의 친척들 중, 그 누구도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들은 없었다.

 얼마나 내가 폐인의 가도를 달렸느냐면 단적인 예로 주정뱅이 경력 40년의 삼촌에게조차도 폐인 취급을 받으며 걱정을 한 몸에 샀던 것이었다.

 하루가 멀쩡하면 삼일이 고통스러웠다.

 

 정신을 차렸는가 싶으면 또 어느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삼촌의 술을 빼앗아 마시고 통곡하는 일이 잦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면 이불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 속을 헤맸다.

 애써 보지만 하루를 사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눈을 감으면 이미 삭제 해 버린 그의 무성의한 문자가 보였고, 눈을 뜨면 앞으로 날 아는 사람들과 어떻게 부대끼며 살아갈까. 덜컥 겁이 날 뿐이었다.

 

 두고두고 나를 기억할 사람들. 기억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찍어 놨던 나의 사진을 파일에 모셔두고 저주로 일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팬들을 대면할 수밖에 없을 미래가 너무나 두려웠다.

 날짜를 세면서 그가 빨리 돌아와서 어그러진 모든 것들을 되돌려주길 바랐다가도, 영영 그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게도 했다.

 하루에도 열 번 씩 변덕스러운 심정이 되었고, 차라리 이렇게 힘들 바에는 당장이라도 각혈을 쏟아내고 영영 숨을 놓아버리길 기원했다.

 

 난 어째서 삶이 이렇게 힘든 거냐고. 차라리 이렇게 운도 없이 폐인으로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자살할 의지라도 강했으면 좋았을 텐데. 진심으로 그리 생각 해 왔다.

 그렇게 나는 그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삶의 의지도, 의미도 없는 뻥, 뚫린 인생뿐이라고 믿었다.

 남자 하나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당해보지도 않고 하는 가벼운 농담일 뿐이다.

 

 우연찮게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 마음을 나 역시 가볍게 받아들이며 질질 끌려왔다는 이유만으로 만인의 적이 되어버린 상황이지 않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폐인으로 넋을 완전히 빼놓고 지내는 동안에도 시간은 착실히 흘러갔다.

 

 나는 반 년 만에 삼촌보다 더 지독한 폐인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폐인이 삼촌으로도 모자라 나까지 더해지니, 마을의 친척들도 슬슬 나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가끔 삼촌의 생존 여부를 들여다보는 삼촌의 전부인은 아예 노골적으로 내게 눈치를 주기도 했다.

 

 ‘너까지 간병 할 겨를 없으니 어서 꺼져!’

 

 눈으로 보내는 악의가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지만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 꼴은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형편없는 꼴이라, 길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민폐 끼치지 말고 사라지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막상 길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친척이 사는 이 마을은 전라도 시골 중에서도 가장 오지에 가까운 곳이었기에 비교적 마음 편하게 퍼질 수 있었는데, 이곳이 아닌 곳으로 간다면 보다 현실적이고 처절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욕을 먹더라도 혈연이 주는 상처는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틸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날 돌봐줄 사람들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날 지키고 돌봐줄 이들이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 누구에게 이 몸을 의탁하나…….’

 

 절망이 독처럼 퍼져 나갔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어려움에 처해도 정작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인지, 내게도 볕이 내리쬐는 날이 도래했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중학생 때 나를 벌레 보듯 하던 모범생 짝꿍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지만.

 기어이 쫓겨나다시피 전라도를 떠나서 서울 역에 다다랐을 땐, 어디 인적이 드문 산비탈에 들어가 수면제라도 먹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지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동창이 나를 알아보며 손을 잡아끈 덕에 죽음의 유혹으로부터는 안전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엔 그렇게 껄끄럽고 데면데면한 짝꿍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니 사람도 변했던 건지, 유난스럽게 친한 척 엉겨 붙는 동창에 의해 어영부영 그녀의 집으로까지 들어가고야 말았다.

 정말 몰랐던 것인지, 모르는 척 해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그 친구에게서 인생 최대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 아무나 쉽게 경험 할 수 없는 행운이라는 걸. 그리 오래지 않아 인정하고 말았다.

 모두가 나를 적대시하던 그 순간,

 그 친구는 귀찮을 정도로 내게 다가와 내게 말도 안 되는 일 하나를 던져주고 갔기 때문이다.

 

 “너, 보아하니. 서울 역에서 노숙하기 딱 알맞은 몰골이던데……. 나 대신에 에세이 하나 안 쓸래? 쓰는 만큼 돈은 줄게. 잠이랑 이 집에서 지내는 조건에, 60대 40으로. 어때?”

 “60대 40?”

 “왜, 부족해?”

 “아니…….네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겠어서.”

 “이런 둔팅이. 옛날에도 그러더니 너, 여전히 꺼벙하구나?”

 

 꺼벙하다.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10대 때 이후론 그 누구도 내게 꺼벙하다고 하지 않았지만. 한 때는 그런 날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게 언제 적인데.”

 “기분 나쁘니?”

 “아니, 아냐. 그런데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일을 시켜도 되겠어?”

 “별 볼일 없다니. 나 바쁠 땐 네가 쓴 글로 백일장까지 패스 했었는데. 그 실력이 여전하다면, 나대신 대필 작가로 활동해도 무방할 거라 믿어. 그런데 설마, 내 제안을 거절 할 건 아니지?”

 

 그녀는 내가 거절 할 수도 있다는 가정은 전혀 하지 않는 듯 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녀가 원하면 나 역시 따를 거라고 자신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만만하고 자기 주도적이었던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예전이었더라면 아주 밥맛없다고 싫어했을 단점임에도, 그를 겪은 뒤의 내게 그녀는 더 이상 밥맛없고 껄끄러운 동창이 아니었다.

 

 “고마워.”

 “별 말씀을. 이럴 때 상부상조 하는 거지.”

 “상부상조?”

 “그래. 네 얼굴이 마침 마감을 코앞에 둔 좀비 같은 나 같아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난 널 주워 오지도 않았을 거야.”

 “날...주워 왔다고?”

 “기분 나쁘니?”

 “아니, 아냐.”

 “그래.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잘 해 보자. 지금 내 꼴 보이지? 마감 때문에 딱 죽겠거든.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라. 출간 하고 반응 좋으면 그때부턴 중견 작가 취급도 좀 해 줄게. 알았지?”

 “응.”

 “아까도 말 했지만…….이름은 내 필명으로 나갈 거야. 처음 한 번을 빼고는 네게 일정량의 일감을 몰아줄 거고. 좋아?”

 “응. 좋아.”

 

 세상과 단절 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 시기적절하게 최적의 조건인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필명 그까짓 거,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떨까. 누군가에겐 이름 없는 유령작가인 게 고통일지 몰라도 세상을 등지고 싶은 이에겐 가장 좋은 대안일 수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 10대 시절의 반절을 함께 해 왔던 동창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 것만 해도 헛웃음이 나오는 일일 텐데, 그 친구가 예상치도 못한 도움까지 주려고 하니 바닥을 치던 마음에 한줄기 햇볕이 내리쬐는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 썩은 동아줄이라도 틀어쥐어야 살 수 있는 나에게 60대 40은 그리 가혹한 조건이 아니었다.

 아니…….오히려 지금 내 처지에는 과분한 대우임에 틀림없었다.

 이 친구는 어릴 때 유명한 아이돌 가수의 팬으로 활동하면서 팬픽을 쓰다가, 공교롭게도 이십대 무렵의 인터넷 소설 열풍을 타고 인기 작가가 되었던 친구였다.

 남들이 인터넷 소설의 거품 때문에 잊혀져가는 소설가가 될 때에도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결국엔 필명을 바꿔 가며 일 년에 열네 권에 달하는 소설과 시집. 에세이 등을 골고루 출간하는 이른바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했다.

 

 인터넷 소설 작가로서의 명은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출판계에서 그녀의 입지는 독보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끔 그녀를 따라서 일기 정도만을 끼적거린 것이 전부였었던 내게 일거리를 던져 주었다.

 당연히 나는 이 친구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 일을 계기로 그 어디에서도 발붙이고 살지 못할 것 같던 나에겐 살아갈 희망이 생긴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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