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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내가 나를 죽였다
작가 : 휘닛
작품등록일 : 2017.7.9

 
20.여배우
작성일 : 17-08-01 00:19     조회 : 351     추천 : 0     분량 : 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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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은아가 깬 것은 겨우 몇 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그 몇분 사이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바뀌어 있었다.

 

  “아... 으...”

 

  은아는 짧은 신음을 내며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분명 머리를 세게 부딪친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을 지언데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올라가지 않는 팔을 억지로 끌어 올려 머리를 움켜쥐자 분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혹이 솟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취라도 한 듯 어떠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이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기는 하였다.

 

  혼수상태에서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간신히 실눈만 뜬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 이제 깼어? 정신이 좀 들어?”

 

  은아는 얇게 떠진 눈을 통해 간신히 실루엣만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도 자신의 눈앞에서 말하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판단 할 수 있었다.

 

  “언니 기분은 좀 어때?”

 

  “헤에... 킥 헉 키킥”

 

  은아는 몽롱한 정신상태 속에서 무방비로 자신을 놓았다.

 

  팔다리는 이미 축 늘어져 있었고 얼굴역시 말할 것 없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눈동자는 풀려져서 초점을 맞추기도 어려웠고 입은 크게 벌어져 분비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니 아직도 많이 아파?"

 

  다혜는 스마트 폰을 은아의 앞에 갖다 대고는 렌즈를 통해 물었다.

 

  은아는 혼신의 힘을 다해 팔을 휘둘렀다.

 

  관절에 힘은 원하는 대로 들어가 주지 않았지만 몸을 돌려 생긴 반동으로 돌아간 팔로 목표물을 떨어뜨리는 데는 성공했다.

 

  “아 뭐하는 거야! 다시 찍어야 하잖아!”

 

  은아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다혜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싶었지만 목구멍에서 아무런 공기도 뱉어낼 수 없었다.

 

  “나랑 차원이 다른 대 배우라며 응? 근데 이깟 3류 드라마 하나 연기 못해서 체면이 서겠어? 힘을 내보라고”

 

  다혜가 흥분해서 쏘아붙였지만 은아는 듣고있지 않았다.

 

  흐리멍덩하고 자꾸만 정신이 어디론가 떠나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몸은 자꾸만 옆으로 기울어졌다.

 

  다혜는 은아의 팔을 잡아 상체를 끌어올려 앉혔다.

 

  “왜? 몸이 몸 같지 않아? 머리가 아파? 어쩌지 우리언니 너무 불쌍해... 그래도 금방 괜찮을 거야. 내가 언니 아프지 말라고 약 넣어줬거든.”

 

  은아는 도통 다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하반신을 들썩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약은 어때? 기분이 좀 좋아지는 것 같아? 막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뿅 가는 그런 기분이 들어? 대답 좀 해봐. 말을 해보라고!”

 

  다혜는 무서운 표정으로 은아를 다그쳤다.

 

  은아는 간신히 신음이 아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었다.

 

  “아...파 아...ㅍ”

 

  “NG. 대체 왜 대사를 그렇게 못 치는 거야? 까마득한 후배한테 자리 다 내주고 추하게 은퇴할거야? 은퇴하기 전에 역작을 찍어야 세월이 흘러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대배우가 되지 않겠냐고! 내가 열심히 찍어주잖아. 위대한 배우는 스태프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고생시키면 안 되지. 좀더 내면을 끄집어내봐. 내가 기막히게 편집해서 작품 하나 만들어 유포해줄게.”

 

  은아는 발에 힘을 주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은아의 발끝에 내용물 빠진 빈 주사기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은아는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대사를 시작했다.

 

  “죽...어... 주...겨... 씩...너...죽일...”

 

  은아가 제 몸 가누지 못하며 비틀거리자 다혜는 반색하며 촬영에 열중했다.

 

  “좋아. 더 몰입해서. 이 카메라를 씹어 먹을 듯이... 좋아.”

 

  다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 꼬리를 올렸다.

 

  “지금 언니 꼴 완전 대박이야. 평소 약 먹고 놀던 것처럼 해보라고... 그렇지 더 다가와”

 

  다혜는 깨질 듯 하는 두통과 싸우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 와중에 발가락에 감각이 돌아옴이 느껴지자 다혜를 향해 한 발 내딛었다.

 

  “오케이 카트 쉬었다 가겠습니다. 우리 배우님은 무리하면 안 되니까”

 

  다혜는 힘겹게 일어선 은아를 그대로 발로 차 밀어버렸다.

 

  은아는 거실까지 어렵게 발을 딛었으나 다시 부엌 바닥에 고꾸라졌다.

 

  “언니는 역시 연기파배우야 인정할게. 나 같은 년은 백날해도 언니 엉덩이만 바라볼 수 밖에 없겠어. 이야 이거 샘난다. 내가 앞으로 우리나라 최고가 되더라도 내 마음속의 일등은 언니야... 그런 언니의 은퇴작을 내 손으로 찍게 돼서 참 감개무량하네. 창밖으로 커다란 달도 떴어. 이런 것도 기념이니까 전부 넣어서 잘 편집해줄게”

 

  다혜는 싱글벙글 웃으며 렌즈를 통한 세상을 예찬하였다.

 

  은아는 살며시 웃었다.

 

  눈 앞은 여전히 어둑어둑했지만 붉은 빛이 감도는 세상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은아는 계속해서 히죽였다.

 

  손가락이 하나 둘씩 접히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킥... 키킥... 킥... 키키킥 킥 키키키키킥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뭐야? 미친 거야? 아님 이제야 약발이 도는 거야? 응?”

 

  다혜가 다가오며 물었다.

 

  은아는 여전히 널 부러져 마구 웃어댔다.

 

  그러더니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네가 훔쳤던 거야?”

 

  다혜는 알게 모르게 서늘하게 바뀐 공기를 느꼈다.

 

  “뭘?... 이제 가져갈 거야”

 

  “아니라는데”

 

  “누가? 아직 인기든 명예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어. 이제 시작할거지”

 

  은아는 어느새 일어서서 다혜를 노려보았다.

 

  “그딴 것 말고... 내 루비 네가 쥐고 있잖아”

 

  “뭔 소리야! 누가 그래?!”

 

  다혜는 뒷걸음질 치며 비명을 질렀다.

 

  “네 뒤에 스태프가”

 

  은아는 손가락을 다혜의 뒤로 가리켰다.

 

  다혜는 본능적으로 손가락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원위치 시키려는 순간 어둠속에서 시퍼런 날붙이가 반짝이는 것을 보고는 뒤로 피하려다 넘어졌다.

 

  은아가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새파랗게 날이 선 쇠붙이는 허공을 갈랐다.

 

  그 끝에 무언가가 잘려져 창틀 아래로 날아갔다.

 

  다혜는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다혜는 다섯 손가락을 펼쳐 은아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가운데 손가락인 중지의 두 마디가 날카롭게 잘려나가 있었다.

 

  다혜는 눈으로 보고서야 아픔이 느껴졌다.

 

  “꺄아압!...”

 

  다혜는 크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목이 막혀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은아가 그 위에 올라타 다혜의 목을 강하게 두 손으로 억눌렀기 때문이었다.

 

  아가미에 발톱이 들어오자 다혜는 숨이 막혀 발버둥을 쳐댔지만 뭍 위로 올라온 생선의 대가리에 맹수는 놓아주지 않았다.

 

  억겹 같은 시간이 흐르자 점차 파닥이던 생선은 힘없이 늘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붉은 눈을 띤 야수가 앞대가리를 잃은 선 위에 올라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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