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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울지말아요, 그대.
작가 : 백설기공주
작품등록일 : 2017.7.23

오늘따라 달빛이 유난히도 고와 세상에 빛을 뿌릴 때, 영롱하게 빛나는 달빛의 정기로 가득 찬 여인의 주변. 고운 달빛을 병풍 삼아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들이 적막함을 달래준다.

“됐어요…….”

광활히 펼쳐진 아름다운 은빛바다와 다르게 몹시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집하나. 그런 그곳에 비단같이 매끄럽고 칠흑(漆黑)을 품은 머리칼을 가진 여인.

구름자락을 뚫고 내려온 달빛이 그런 여인의 뺨을 타고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비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번뜩이는 눈으로, 쏘아보는 수많은 눈빛들이 애석하기만 하다.

“입고 갈게요… 아버지….”

악문 입술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온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애야….”

밤과 더불어 창호지에 스며든 은은한 달빛에 비치는 수많은 횃불이 오늘의 슬픈 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14.
작성일 : 17-07-31 23:58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7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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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화영님을 모르세요……?”

 

 내가 정말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 아니면 나를 떠보기 위해 놀란 척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정말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한 것인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예. 오늘 처음 들어보는 분이예요. 아무도 설명도 언급도 안하니 모를 수밖에요.”

 “아…….”

 “중요한 손님이세요? 아니면 려원님의 손님?”

 

 나는 볼 수 있었다. 말을 뜸들이며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려원의 표정을. 그러한 모습은 어쩔 때 나오는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리도 려원에게 난처하게 한 그녀는 누구란 말이지.

 

 “려원 말해 봐요. 누구예요?”

 “서빈님의 약혼자요.”

 

 나는 순간 놀라 입을 쩌억, 하고 벌렸다. 려원이 금방 한 말이 약…… 약혼자? 숨을 급히 들이켰다. 그니까 약혼자라면 약혼한 상대편의 남자나 여자를 지칭하는데, 결혼을 전제로 하는…… 혼인 전에 약속을 맹세하는? 요점을 요약하면 약혼자가 지금 찾아왔다는 말일 텐데. 근데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벌써 서빈의 궁에 머문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누구도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지금에서야 약혼자가 등장한 사실에 당황스럽다. 하기사 그 누구도 나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지.

 

 “그런데 그게 이렇게 달려와서 알려줄 사실이에요?”

 

 서빈의 약혼자가 화영이라고 치자. 그렇기에 그의 궁에 찾아온 것은 당연하다. 약혼자라니까 오는게 당연한 거겠지.

 

 근데 그게 이렇게 땀이 날 정도로 나에게 알려줄 사실인 걸까. 애석하게도 려원은 나의 의문을 풀어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야기하면 길어요.”

 “…….”

 “여기서 조금만 계세요.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절대 방 밖으로 나오지 마시고요.”

 

 얼마나 방에서 혼자였는지 모른다. 그냥, 서빈이 약혼한 사실에 놀라 멍해진 것도 있지만, 려원이 하도 신신당부하며 나가니 밖에 사정이 궁금해 나가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사람이라면 원래 하지 말라면 더욱더 하고 싶은 심리. 하지만 워낙 신신당부하니 려원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홀로 계속 있을 때였다.

 

 멀리서 희미하지만 여럿 발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문을 통해 들려왔다.

 

 “여기, 그 여자가 있는데 맞아 려원?! 맞냐고!”

 “아…… 아니. 화영님. 정말 잠시 여기에 묵고 있는 사람이에요. 우선 화를 가라 앉히셔요.”

 “어떻게! 나한테 아무도 말을 안 해준 거야! 그 누구도. 말해줄 방법은 많았잖아.”

 “그러니까…… 그게…….”

 “그리고 잠시 머무르는 게 맞아?”

 “…….”

 “두 달째라면서! 그게 말이 돼? 그래.. 내가 한보 양보해서, 아니 백보 양보해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내가 모르는 게 말이 되냐고!”

 

 문밖에서 들려오는 화영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경양되어 있었다. 언뜻 들어도, 내뱉어지는 말의 억양만 봐도 앞날이 충분히 짐작 되었다.

 

 그녀는…… 그녀는 내가 여기. 서빈의 궁에 머무는 것에 격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어떤 사람이라도! 세상의 머저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랬다.

 

 여기 용천에 얹혀 살고 있는 비천한 신분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는 것쯤은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는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 그녀에게 뭐라 말을 해야지?

 

 “화영님…….”

 “려원! 저리 비켜. 내가 한번 봐야겠어. 어서!”

 “아…… 화영님 제발요…….”

 

 드르륵!

 

 찰랑거리는 오렌지색의 단발머리에 백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단아한 복장. 피부는 무슨 음식을 먹은 건지 희고 고왔다. 어깨를 잘게 떨었다. 말 그대로 여자인 내가 보아도 예쁘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주었다.

 

 용족은 정말 다 예쁜가 보다. 남자인대도 불구하고 여자보다 예쁜 도란, 연오, 서빈만 봐도 알 수 있었지만 화영이라는 그녀도 자괴감을 들게 하는 외모였다. 역시 서빈도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

 

 “흥!”

 

 이미 문 밖에서 려원과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던 터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어오는 그녀를 보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바라보고는 ‘여태껏 서빈님 집에 얹혀 사는 거머리가 너였냐?’라는 눈빛을 매섭게 쏘아댔다. 하, 하지만 그게…… 뭐! 나도 여기 있고 싶어서 있던 것은 아닌데.

 

 “안…… 안녕하세요?”

 “인사하자고 온 것도 아니고, 인사 하는 사이는 더더욱 아니지 않나요?”

 

 설마 이정도로 첨부터 강하게 말할 거라는 조금, 정말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맘에 안 드는 것쯤은 알겠는데…… 인사한 내가 무안할 정도로 받아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려원도 뒤에서 입술만 질끈 깨문 채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오는 말이 고아야 가는 말이 곱듯이, 인사하러 온 것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시끄럽게 찾아 온 거야? 내쫒으려고? 아니면 그냥 확인 차 온 것일까. 여간 난처한 상황에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 좀 보러 왔는데. 그게 당연한게 아닌가? 약혼자인 서빈님 궁에 다른 여자가, 그것도 용족이 아닌 사람이 있으니 궁금한건 당연하지요.”

 

 말끝에 날이 서있다. 피부에서조차 찬바람이 심히 느껴질 정도로 매우 날카롭게 선 목소리였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이걸 어쩐지…….

 

 내가 여기 머무르고 있는 것이 여간 맘에 안 드는 티가 역력했다. 표정이면 표정. 목소리면 목소리. 몸짓이면 몸짓! 어느 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부감을 풀풀 뿜어내고 있었다.

 

 “…….”

 

 어떻게든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도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려원은 들어오는 문 앞에서 그 모습 그대로 굳어있어 자신의 치맛자락만 움켜잡고 안절부절 했다. 워낙 심성이 착해 곧이곧대로 겉으로 드러나니 어떤 생각을 품는지 짐작이 됐다.

 

 “왜 하필 서빈님 궁인 거죠?”

 

 음. 그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미간을 찌푸리며 따지며 말하는데 굳이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눈을 떠보니 여기였고, 듣기로는 여길 못나간다는 말뿐.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건 아니지만 심술부리는 대상이 너무나 잘못됐다.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화영님! 그건 제가 조금 후에 말씀드릴게요. 우선 여길 나가서 서빈님을 먼저 뵈어요.”

 

 려원이 당장이라도 그녀를 데리고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애원하는 모양새로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려원의 말을 듣는 체 마는 체 여전히 시선은 나에게로 향했다. 가시방석처럼 불편했다.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보니 정말로 왜 서빈의 궁이었을까? 서빈의 모진 말을 들을 때마다 원망하듯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물어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니…… 나도 참.

 

 “서빈님의 궁에 머무르게 된 자초지정은 저도 잘 모르는 이야기에요.”

 

 진심이었다.

 

 일어나보니 용천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미 와 있었던 것이었다.

 

 “모른다?”

 

 그녀는 입 꼬리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올리며 웃으며 말했다. 필시 저 웃음은 내 말에 기가 차다는 반응일 것이다. 정말인데…… 믿어주지 않는 거야? 그러면 왜 물어 본거야. 진실임에 불구하고 믿지 않을 거면서.

 

 “화영님. 어서 서빈님을 뵈러가요.”

 “네가 그리 재촉 안 해도 가려 했으니 보채지 마.”

 “…….”

 “서빈님 있는 곳으로 앞장서.”

 “예! 앞장서겠습니다.”

 

 화영이 나간다고 하자 려원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려원이 문을 바로 열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으로 추정되는 네 명이 고개를 조아렸다.

 

 하인들까지 거느리고 다니는 구나. 그 모습에 대충 여기서 지위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됐다. 소위 말하는 양반집 가문의 여식이라도 되겠지?

 

 “여월님. 조금 후에 올게요.”

 

 작게 속삭이며 그들과 함께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 이게 뭐야.”

 

 거센 후폭풍이 몰아친 뒤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하루하루가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딱 이런 상황인걸까. 역시 난 용천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 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꿈에 생각지도 못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예전의 삶은 지금에 비해 구질구질할 정도로 지금의 삶은 너무나 풍족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맛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시중드는 려원까지. 인간세계에서 누군가가 내게 있어 시중을 들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력이 있는 집안도 아니었고, 신분도 미천하였기에 꿈을 꾼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기에도 값비싼 색색의 옷들도 널려있다. 이미…… 이 생활에 적응하다 못해 자연스러워 진거야? 마음 한 편에서 끊임없이 괴롭히는 불안감은 더 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

 

 아버지, 저 정말로 어떡합니까?

 

 *

 

 려원이 저녁이 다 돼서야 내방에 찾아왔다. 들어 올 때부터 한숨을 후우, 크게 내쉬더니 그녀한테 많이 시달렸을까. 알 방도가 없었지만 고개를 연신 흔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보아 순탄한 하루는 아니었음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낮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게 려원이었다. 그리 화를 내는 그녀 곁을 따라다니며 힘들었을 테지.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하루 종일 시달린 몸을 이끌고 용케도 약속을 지키러 온 려원이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녁에 들린다고 오전에 말한 것을 손수 지키러 온 모양이다. 안와도 되는데. 그냥 쉬러 자신의 방으로 가지…… 이야기는 내일이나 모레나 언제든지 가능하잖아.

 

 “려원. 그냥 방에 가서 쉬어요. 오늘은 그냥 가세요.”

 “그래도…….”

 “아니에요. 많이 지쳐 보여요. 화영님의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도 상관없어요. 그러니 저는 제가 알아서 보낼 테니 쉬세요.”

 “여월님…… 그럼 오늘은 먼저 들어갈게요. 내일 뵐게요.”

 

 미안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려원에게 방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가. 려원이 고작 그런 걸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또 방안엔 나 혼자가 되었다.

 

 방안에 혼자 있기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상념이 떠오르게…… 고개를 돌려 며칠이 지났어도 여전히 생기를 머금고 빛깔을 간직한 몽초를 바라보았다. 침대머리 맡에서 두어 의도치 않게 방 중앙에 위치한 몽초.

 

 여전히! 천년초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하지만 서빈의 말처럼 몽초가 내방에 있는 그날 이후로부터 더 이상의 악몽은 꾸지 않았다. 이렇게 궁금할 바에는 서빈에게 직접 물어볼까 그랬나?

 

 마땅한 기회도 없고. 아니다.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다만 같이 있을 때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함정. 기억력이 붕어 인건지. 그러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변함없는 어둠. 창문을 타고 들어온 달빛의 정기. 잠들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간이다. 용천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숨죽이며 바람을 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몰래 방을 나가려다 그에게 걸린 일.

 

 의도치 않게 오해를 받고 실수로…… 같이 잔 그날의 기억. 웃음이 나왔다.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난 일인거야? 시간이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

 

 붙잡고 매달려도 일정한 흐름 속에, 나만 정체되어 그 시간에 적응 못한 채로 흘러간다. 이제는 처음처럼 죽을 만큼 아프지도 않다니. 하아. 하루하루 그냥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구나.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곧장 방을 나서기로 한다.

 

 드르륵!

 

 역시나 조용한 궁내부의 모습. 변함없이 한결같다고 할까나. 처음 봤던 느낌 그대로. 그렇다고 예전처럼 조심히, 혹여 누가 깰까봐 마음을 졸이며 걷지 않았다.

 

 내 방 근처에 그 누구도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한 발짝씩 걸음을 떼어 밖으로 나갔다. 은은히 전각을 비추는 달빛을 조명삼아 마당 한가운데 서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원한 바람과 상쾌한 공기가 내 몸속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아…… 좋다.”

 

 너무 맑은 공기. 두 손을 조심히 가슴에 모아 숨을 내쉴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한동안 눈을 감고 숨을 내쉬고 마시기를 뒤로하고 서서히 움직였다.

 

 간만에 몸을 움직이고 싶었던 것일까? 그 자리를 맴도는 내 자신도 알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보다 그냥 몸이 가는대로 움직였다. 서서히 움직이던 걸음은 점차 빨라져 하나의 동작이 되고 아름다운 손짓에 하나의 춤사위로 되었다. 오늘은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오른 탓이다.

 

 사아아아-

 

 주위에 명창이 있는 것도, 풍악을 연주하는 자도 없었지만 그냥 저절로 달빛에 취해 몸을 맡길 뿐이었다. 정해진 것 없이 추는 춤사위. 사실 남 몰래 춤을 배우긴 했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기생이었던 세연.

 

 그 세연으로부터 춤과 노래를 어려서부터 조금이나 배웠다. 다만, 세연을 제외한 그 누구 앞에서도 춤사위를 펼쳐 보이지 않았다.

 

 남사스럽다니. 천박하다 할까봐. 몰래 배우며 즐거워했다. 나의 또 다른 가족이자 벗이며 부모님 다음으로 내게 큰 힘이 되 주었던 하나밖에 존재였다.

 

 어려서부터 세연은 모란 같은 얼굴에 기생답지 않게 현명했고 단아하였다. 어린 내가 봐도 춤과 노래가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세연은 장안의 최고 기생이라 떠받들어진 것은 당연한 지사였다.

 

 일화로 남정네들에게 한번만 보고 웃어보여도 다시 돌아보기를 청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조금보태면 당대에 소문난 명기였을 정도였다.

 

 다만! 세연은 항상 나를 부러워하는 말을 하곤 했지만 노래와 춤사위를 보여 줄때마다 나는 세연이 부러웠다. 여자가 봐도 매혹적인 자태로 하여금 넋 놓고 본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을 본 나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배워 나름 춤사위라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틀이 갖춰줬을 때 훗날 세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기생이 되었다면 당대 최고의 명기는 자신이 아니라 내가 됐을 거라는 칭찬.

 

 그땐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 과장된 칭찬이었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얼마나 칭찬했는지 민망하면서도 좋아했는지 모른다.

 

 뭐, 그것도 세연에 비하면 한참이나 멀었지. 함께 달빛이 비추는 언덕 밑에서 추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기억에 고개를 저으며 몸을 맡겼다. 지금은 세연이 곁에 없지만 몸이 자연스럽게 달빛을 머금고 춤사위를 펼쳤다. 손끝과 발끝에서 전해오는 선율과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달과 물아일체가 되어 홀린 듯 춤을 쳤다.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말이다.

 

 “의외구려. 춤 칠 줄도 알았소?”

 

 눈가가 잘게 떨려왔다. 누군가 있는지도 모르고 추었던 거야?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이 시간에 누구일까,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남이 내 춤을 봐서 부끄러운건 둘째치더라도 잘 못 추는 춤을 다른 이가 봤다는 사실에 창피했다. 그 자리에 석상처럼 단단히 굳어,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천천히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굴까? 물끄러미 바라본 그곳에는…….

 

 “도란……?”

 

 먼발치서부터 느긋이 달빛을 등지고 걸어오는 그는 도란이었다. 모든 것을 매혹시킬 것만 같은 검은색 도포에 싱그러운 웃음을 머금고 걸어오는 그였다.

 

 첫 만남 때도 검은색 옷이었는데, 정말 보면 볼수록 검은색 옷이랑 잘 어울린다. 근데…… 설마 처음부터 본거야? 그것도 찰나 갑작스런 도란의 등장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버지도 안본 춤을, 드넓은 서빈의 전각을 무대삼아 귀신에 홀린 것처럼 추었으니, 아니 춤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혼자만의 몸부림을 지켜본 것이다. 괜히 부끄러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었다.

 

 아휴…… 민망해.

 

 “어, 언제부터 와 계신 거예요?”

 

 시선을 힘겹게 마주치며 어렵게 물었다. 아. 주위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왔으면 인기척이라도 해줬으면 이렇게 정신 팔려 춤을 추지 않았을 텐데. 민망과 부끄러움이 뒤섞이자 내 자신을 자책하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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