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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울지말아요, 그대.
작가 : 백설기공주
작품등록일 : 2017.7.23

오늘따라 달빛이 유난히도 고와 세상에 빛을 뿌릴 때, 영롱하게 빛나는 달빛의 정기로 가득 찬 여인의 주변. 고운 달빛을 병풍 삼아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들이 적막함을 달래준다.

“됐어요…….”

광활히 펼쳐진 아름다운 은빛바다와 다르게 몹시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집하나. 그런 그곳에 비단같이 매끄럽고 칠흑(漆黑)을 품은 머리칼을 가진 여인.

구름자락을 뚫고 내려온 달빛이 그런 여인의 뺨을 타고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비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번뜩이는 눈으로, 쏘아보는 수많은 눈빛들이 애석하기만 하다.

“입고 갈게요… 아버지….”

악문 입술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온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애야….”

밤과 더불어 창호지에 스며든 은은한 달빛에 비치는 수많은 횃불이 오늘의 슬픈 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10.
작성일 : 17-07-31 23:55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7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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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좀 더 풍족하고, 좀 더 오래 산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오.”

 “…….”

 “아…… 뭐라도 드시겠소? 나름 이 거리에서도 맛있는 게 많으니.”

 

 요깃거리는 고사하고 무언가 먹고 싶은 맘은 추어도 없었다. 하지만 도란의 거부 못할 권유에 려원에게 이끌리다시피 장거리를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다. 마침 장거리에서 물건과 먹거리를 사 먹던 이무기들은 도란의 모습을 보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워낙 수많은 자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시선이 집중되었다. 수많은 눈빛들. 일제히 쏟아지는 시선에 난 난처하며 불편했다. 그렇지만 정작 도란은 자연스러운 듯 별 개의치 않아하며 손인사로 대신했다.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도란이 용천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결코 낮지 않음을 말이다. 이리 보는 자마다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니.

 

 “도란님! 또 이러실 겝니까?!”

 

 도란의 그림자에서 검은 무언가가 나와 사람의 형상을 띄었다. 그런 형상은 결국 한 사람의 형체를 띄며, 나오자마자 도란에게 따지는 어투로 앞을 가로 막아섰다. 근데 어떻게 그림자에서 사내가 튀어나오지? 보고도 상황 파악이 안되어 힐끗힐끗 그자의 용모를 쳐다봤다.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나오는 게냐? 덕춘.”

 “근신이 풀린 지 얼마 되셨다고 벌써 또 이러십니까.”

 “무엇이 말이더냐?”

 “도란님!!!”

 “또 허튼 소리 할 것이면 삼가라.”

 “도란을 모시는 자로써 옳은 길을 가도록 이끄는 게 제 역할이자 소임입니다. 정말 이…….”

 

 덕춘이라는 사내가 도란의 행동에 강경하게 막아섰다. 덕춘의 진심이 묻어 나오는 말에도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흔든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덕춘은 잘 알기에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말들을 삼켰다. 도란과 덕춘이라는 사내에 잠깐의 시간 동안 정적이 맴돌았다. 이윽고 그 사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도란의 그림자로 들어갔다.

 

 “제 밑에 있는 덕춘이라는 장수라 하오.”

 “장군이요?”

 “뭐, 뭔가 오해가 있어 불쑥 나타난 듯하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래도…….”

 

 무언가 표정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는데. 도란이 그와 관련된 말을 꺼려하는 것만 같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다 왔소. 여기가 맛있는 전을 먹을 수 있는 곳이오.”

 “어! 도란님 안녕하세요.”

 

 나이 지긋이 먹은 할머니 같은 사람이 도란을 보자 역시 다른 자들과 같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왔다.

 

 “오랜만이다.”

 “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전 좀 주겠나?”

 “네, 당연히 드려야지요.”

 

 도란이 전을 달라 하자 지금 막 부쳐진 노릇노릇 맛있어 보이는 전 한 접시를 그의 앞에 내어 놓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입과 코를 건드렸다.

 

 “여월 낭자, 드시오.”

 

 활짝 웃으며 젓가락으로 전을 먹기 좋은 크기로 덜어내기 시작하는 도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전을 넌지시 앞으로 내어준다. 고개를 가로 한번 저었다.

 

 먹고 싶지 않은 의사표현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물어주는 도란. 한사코 거부하는 내게 먹기를 권유했다. 결국, 손수 건네주는 성의에 젓가락을 들어 입안에 넣었다. 마지못해 넣었지만…… 입 안에서 느껴지는 식감.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겉보기에는 일반전인 전과 별 차이를 못 느꼈지만, 들어가는 순간부터 살살 녹아 사라졌다. 역시 오늘도…… 슬퍼도 뚫린 목구멍이라고 잘만 들어가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전을 먹고 도란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사뿐사뿐 걸어 먼발치서 따라가는 나를, 도란은 먼저 앞서가 길을 봐주며 몸을 뒤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며 한참을 하여 걸었을까. 도란이 나의 걸음 속도에 맞춰 나무가 우거진 언덕을 같이 올라갔다.

 

 싱그러운 바람과 청량한 공기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눈앞에 광활히 펼쳐져 있는 들판. 수많은 꽃송이들과 지금이라도 구름에 닿을 듯 하늘로 높게 뻗은 나무가 펼쳐져 있다.

 

 그 광경에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고, 눈이 절로 커지는 게 느껴졌다. 이런 곳이 있구나. 자연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 나를 억지로 밖으로 데려온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되는 풍경이었다.

 

 저 편과는 또 다른 세상. 게다가 어느덧 아침이 지나 저녁이라는 ‘손님’이 조용히 찾아왔다. 당연한 거겠지, 불변의 진리니까. 아침이 지나 밤, 밤이 지나면 다시 아침 일상이 반복하니까.

 

 저 멀리 부랴부랴 떠나려는 태양의 짙은 석양빛 숨결이 아련히 느껴진다. 보고 있으니, 보고 있자니 까치발 들고 금방이라도 고이 품어 안아 아버지께…… 보내드리고 싶다. 사뿐히 걸으면 어느 순간 아버지께 다가가 뵙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마지막 모습이 아른거린다. 얼굴과 몸이 흙으로 범벅되어 나를 슬픈 눈으로 울부짖던 그 목소리와 시뻘겋게 충혈된 눈빛. 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눈앞에 선한 듯 생생했다.

 

 어디선가 홀로 슬픔에 젖어 계시는 건 아닌지. 밥을 잘 챙겨 드시지 못 하는 건 또 아닌지. 어머니의 잃은 슬픔에 나까지 더해지니 망연자실하고 계신 것 같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아…… 너무나 큰 슬픔이란 썰물이 마음을 휘젓는 것도 모자라 난도질을 쳐 놓는다. 그 마음을 이 들판에 피어있는 꽃이 알까. 아니면 이 나무가 알아줄까?

 

 꽃향기가 그윽한 이곳. 나 혼자만 좋은 향기를 맡으니 죄송스럽다…….

 

 “너희들은 좋겠다. 이리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

 

 아버지도 너희들처럼 주변에 슬픔을 달래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건만…… 제발 그랬으면 좋으려만!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려온다. 그것을 누가 해주겠니? 네가 해줄래? 아니면 너? 제발…… 제발! 내 소식을 전해주렴.

 

 “여월 낭자.”

 “정말인데요. 만약인데요.”

 “…….”

 “제가 없었으면 아버지께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요?”

 “이런 일은 왜 저한테 일어나야 해요! 정말 저 때문일까요?”

 “…….”

 “막상 살고 보니, 바라는 게 너무 많은가 봐요. 제가 욕심이 과하지요?”

 “여월 낭자…….

 “아! 너무 좋아요. 이렇게 편안한 곳에 혼자 이렇게 생활하고 있으니, 전 축복받았나 봐요. 좋아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정도로…….”

 “미안하오.”

 

 도란은 내가 울음을 터트리면 어김없이 미안한 감추지 못한다. 또 그에게 못쓸 짓을 한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려 눈물을 참아보려 애썼다. 애쓰는데, 참아지질 않는다. 정말 참고 싶은데! 도란을 봐서라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눈물이 뭐 길래 나를 이리 힘들게 살며시 찾아올까.

 

 여길 데려온 그를 위해서는 이래선 안 되는데. 분명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걸 알면서도 또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보이니 나란 여자는 정말 나쁜 여자였다.

 

 굳이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아도 되는데. 괜한 투정과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을까? 이렇게 하면…… 맘이 편해져? 아닌데, 아니! 똑같은데. 그가 무슨 죄라고. 나를 구한 게 죄가 아닌데.

 

 “흑…… 감사해요.”

 

 고개를 돌려 울음을 멈추려는 나를 향해 불쑥 손을 뻗은 그. 바로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듯 손에는 흰색의 손수건이 올려져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닦으라고 손을 내민 도란이었다.

 

 “제가 괜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괜찮소.”

 “정말 좋은 구경했어요.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아요. 이리 꽃들에 둘러싸인 곳도 와보고요.”

 “내가 가끔씩 여기로 데려다주겠소.”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자주는 아니더라도 여길 오면 한결 마음의 편할 것이오.”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당연한 것을…….”

 “네?”

 “아니외다. 그럼 이만 이제 돌아가는 게 어떻소? 곧 날이 어두워질 듯하니.”

 

 다시 돌아가기를 권유했다. 하늘을 보니 곧 어둠의 장막이 내려칠 것만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름다운 이곳을 뒤로 한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찰나!

 

 “여! 여월 낭자! 잠시만 멈추시오! 내가 보여드릴게 있소.”

 

 터벅터벅 힘없이 걷고 있던 나를 불러 세운 그. ‘왜요?’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올 뻔했다. 주위에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색색의 꽃들로 이뤄진 들판. 그 한복판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날 불러 세웠지만 연유를 몰랐다.

 

 도란을 바라보니 무언가에 시선을 뺏겨 그 자리에 살포시 앉은 그. 조심스럽고 발견한 게 다칠세라 신중한 손길이, 꽃들 사이를 비집고 한꽃의 꽃잎을 건드리고 나를 향해 웃어 보인다.

 

 그리곤 나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손짓. 무엇을 보여 주려고 그러는지. 저리 조심스러워 보이니 나의 발걸음도 덩달아 조심스러웠다. 다가가 그의 손길에 따라 시선을 향한 곳엔 여러 색깔의 빛깔을 머금은 한 송이가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진귀해 보이는 꽃. 시선이 절로 가는 그 꽃은 타원 모양 바소꼴에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이었다. 유독 돋보이는 꽃이지만 나의 슬픔까지 달래주지는 못했다.

 

 지금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면서도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게 바로 우리 용천에 몇 송이 없는 꽃이오. 천년의 정기를 품고 꽃을 피운다 해서 지어진 천년초라는 꽃이외다.

 

 이 꽃이 천년초……?

 

 “귀하고 귀하디뿐만 아니라 워낙 보기 힘든지라 오늘 참으로 운이 좋소. 비록 다 만개가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와서 보시구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천년이란 정기를 품고 지금에야 결실을 맺은 꽃. 그 말은 나보다 살아도 더 많이 살았다는 뜻. 잎들마다 무지개 색깔처럼 달라 오묘하면서 아름다운 꽃이었다.

 

 나를 바라보며 이것 좀 보소. 예쁘지 않소, 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눈빛. 본디 슬픔이란 것이 은밀하게 찾아온다. 살며시 다가와 속을 휘젓고 갈기갈기 찢어놔 소리 없이 사라진다.

 

 열흘간 내게 끊임없이 마음의 문을 두르려 허락 없이 왔다 갔다 한 손님이다. 뭐가 그리 부족했는지,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 모자랐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막상 다가오면 슬픔에 젖어 그리워하다 지쳐, 울다 지쳐, 소리 지르다 지쳐 목이 쉰 목소리로 애꿎은 창밖을 원망하다가 아침에 쓰러지듯 자기만 했으니 말이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삶의 끈을…….

 

 지켜보던 려원이 걱정과 염려가 뒤섞이다 못해 보살핌과 관심에서 지내온 나이다. 려원과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나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 기분을 풀어주고, 달래주는 것과 더불어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염려하는 것인지.

 

 아마도 려원에게 나의 생활을 들은 것 같았다.

 

 슬픔에서 헤어 나오도록, 방에서만 틀어박혀 멍하니 있는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 나온 것일 테니까. 물론 그가 나를 위해서, 라고 말은 한 적은 없지만.

 

 그러한 말이 없어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조차도 내 행동과 표정, 심지어 눈빛까지 신경 쓰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슬퍼도 신경 써서 데리고 나와 준 그를 봐서라도!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웃어 줘야 했다.

 

 “너무나 예뻐요. 이리 아름다운 꽃은 처음 봐요.”

 

 비록 도란을 위해 웃어 보일지언정 말까지 거짓은 아니다. 도란은 내가 웃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약간의 배시시 한 웃음으로 보답한다. 꽃만큼이나 미소가 아름답다.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보다도 더 말이다.

 

 그런데 그의 미소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는 서빈의 실없는 미소가 겹쳐 보인다. 어? 왜 그의 미소가 떠오르는 걸까. 지난날 그리 매몰차게 말하고선 한동안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는데, 아니! 내가 왜 도란의 미소에서 그의 미소가 떠오른 거지…….

 

 “여월 낭자.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소? 뭘 그리 넋 놓고 보시오?”

 

 아, 아니에요.

 

 너무 몰두해서 도란을 쳐다보았나 보다.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그의 미소를 넋 놓고 바라본 나 자신이 부끄러워져 어쩔 줄 몰랐다. 갑자기 서빈의 미소가 생각날게 뭐람. 혀를 찔끔 내밀고 천년초만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딴 생각을 했나 봐요.”

 

 하염없이 천년초를 구경하며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시선을 못 떼던 나를, 늦은 시간이 돼서야 도란이 데려다주었다.

 

 *

 

 고요한 밤,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한밤에 풀벌레 소리가 궁안에 메아리친다.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로 삼고 별들을 병풍 삼아 밤하늘을 이불로 잠에 취하고 싶지만, 그 악몽 이후 밤에 자기를 거부했다.

 

 물론, 서빈의 도움으로 인해 같이 잔 적이 한번 있긴 했지만! 그건 온전히 실수였다. 그래, 의도치 않은 실수였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한 점 부끄럼 없었다.

 

 상념에 잠기다 보니 내방이 있는 별동(別棟)<<딴채, 별채>>에 다다랐다. 나를 먼발치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뒤따라오던 도란의 발소리가 끊겼다. 고개를 돌려 도란에게 향하자 그는 그 이상 발을 움직이기를 그만하고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리곤 별빛처럼 빛나는 눈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헤어짐의 인사다. 바래다주고 이만 가기를 청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나의 인사를 받고는 안심되는 기색으로 하늘 높이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몸을 맡긴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란이 사라지니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새로운 경험이 이런 걸까. 색다른 경험이었다. 절로 입가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말이다. 마음에 막힌 무언가가 뻥 뚫린 듯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방으로 향했다.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적막하구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왠지 내 걸음도 조심스럽게 사뿐히 가야 한다는 압박감. 이런 일을 얼마 전 경험해 본 적이 있던 것 같다.

 

 아아, 생각해보니 있었다. 용천에서 보내는 첫날밤. 바람을 쐬러 나갈 때 이런 느낌으로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악몽의 계기로 기억하기 부끄럽고 잊어줬으면 했던 민망한 실수가 일어난 그날이.

 

 “후. 려원은 자려나? 아침까지 무엇으로 새벽을 지새야 할지…….”

 

 혼잣말로 작게 말하며 주위를 살피며 길을 따라 이동했다. 내심 서빈의 궁 밖으로 나간 게 맘이라도 걸렸던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 아니야. 당당히 방을 향해 가야 돼. 이러면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밖에 되지 않잖아. 혼자 궁 밖으로 나간 것도 아니고! 도란이 데리고 나갔으니 평소처럼 걸으면 돼, 라고는 했지만 몸은 여전히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생각 따로 몸 따로 언행불일치니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우습다.

 

 두리번거리며 느리지만 내방을 향해 천천히 걸었을까. 나의 기우와는 다르게 서빈을 마주치지 않으며 내방에 다다랐다. 오는 내내 마음을 졸이며 왔던지 아니면 꼴에 이제는 내 방이라고 마음이 놓였는지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웬 한숨이야? 고민의 한숨인가 아니면 안심의 한숨인가?”

 

 아! 깜짝이야. 어둠에서 한줄기의 섬광처럼 나에게 쏘아지는 목소리. 불쑥 내게 향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열흘 동안 얼굴도 비추지 않고 있던 그의 목소리, 서빈이다.

 

 정말 딱 열흘 만이었다. 그전까지 자주는 아니었어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좋으나 싫으나 마주쳤었다. 하지만 용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내뱉었던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방 앞에서 보니 당황스러웠다. 지나가다 나를 발견한 것도 아닐 테고, 나 때문에 여기서 기다린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황이라는 걸 지금 난 느끼고 있는 거다.

 

 하기야 그전에 궁 밖으로 못 나간다고 매몰차게 말하던 모습이 떠오르니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난 나약한 인간에 가진 게 하나도 없었으므로…….

 

 근데 왜 방 앞에 있는 거야? 갑자기 볼일이 있어서? 아니면 내가 전각 밖으로 나간 것을 눈치채고 언제 들어오나 기다렸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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