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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퓨리어스 (FURIOU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1

아무런 연고도 없이 모이게 된 우리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 중 한 명은 이 게임에 대해 뭔갈 알고 있는 듯 하다.

서바이벌 로맨스.

 
퓨리어스(FURIOUS) 3
작성일 : 17-07-31 23:38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9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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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에반의 시점〕

 

  그녀의 고양이 같은 눈매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객관적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예상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오는 야생고양이의 심술궂은 얼굴에도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떨쳐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게 된다. 그녀가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에리얼은 나의 시선을 잡아 쥐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유독 그녀에게서만 느껴지는 애틋한 사랑스러움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솔직히 마샤만큼이나 눈에 띄게 예쁘지도 않았지만 에리얼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느낌이 새로웠다.

 “잠깐 자리를 옮길까?”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나의 제안에도 순순히 따르지 않을 작정인가 보다. 그녀는 말을 아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마샤가 어째서 ‘높은’ 나무에 비유했는지 아주 절실하게 느껴졌다. 마지막까지도 방어태세를 늦추지 않은 그녀는 어떤 시련이든 나의 도움 따위 없어도 스스로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가녀린 두 어깨로는 모든 것을 감당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의지가 되어 주고자 한다.

 “본의 아니게 엿 들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너도 고작 얇은 나무판자 조가리가 완벽하게 방음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리고 언젠가 알게 될 사실일 테고. 그런 종류의 비밀이라면 언젠가 들통이 나게 되었어. 차라리 나한테 들키는 것이 낫지, 보르나 마샤에게 걸렸다면 더 골치 아파질 걸?”

 “오히려 둘러대기 편했겠지.”

  그러자 그녀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나를 부르는 듯이 깜빡였고 그러다 다시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에리얼의 얼굴에서 불쾌함이 사라진 것을 알아 챌 수 있었다. 흰 살갗, 그리고 두드러지게 대조되는 흑단 머리카락이 실크 결같이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플로라 향의 샴푸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가 나의 코끝을 간질였다. 나도 모르게 시간이 멈춰버린 듯 고동소리만 요란했다.

 “이러지 말고 앉아서 하지. 그리 중요한 얘기는 아닐 테니까 말이야.”

  그녀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턱을 괴고 앉았다. 에리얼은 넌지시 미소를 던지며 내가 하고자 하는 대화의 주제 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에게서 초조함을 읽을 수 있었다. 문을 닫으려던 참이었다.

 “문은 닫지 마.” 에리얼이 말했다.

 “누가 듣지 않나 감시라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게다가 우리는 언성을 높일 필요도 없잖아, 안 그래?”

  뒤끝이 상당히 세구나.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멋쩍게 웃으며 그녀의 마주 편에 앉았다. 에리얼의 입 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간 것이 얼마나 귀엽던지! 나는 짓궂게도 공연히 툴툴거리는 그녀를 성가시게 만들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그녀가 투덜거릴까? 그녀는 복도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초상화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움직이는 인형처럼.

 “그래서, 굳이 자리를 피하면서까지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뭐야?”

  에리얼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에리얼에서 위험한 매력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알듯 모를 듯 귀엽게 삐져있는 그녀라서 더욱 끌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뭐랄까, 그녀에 대한 거창한 이유는 없다. 어째서인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순간부터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도진과 너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생각 해 보았어. 그 게임이라는 게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야. 맞지? 네가 만약 훌륭한 배우가 아니라는 전재 아래에.” 나는 장난스럽게 슬쩍 에리얼을 떠보았다.

 “나는 여기에 아르바이트로 지원을 했는데, 너와 그는 아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전개네. 아주, 아주 흥미로워.”

 “이런 식으로 운을 띄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에리얼이 살짝 긴장하는 것 같았다. 연기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분위기로 보아 괜히 지어낸 거짓말이 아닌 것이 또 한 번 확증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꼭 진지한 대화를 고집하여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는 산뜻하고 가볍게, 잠시 동안만이라도 긴장으로 빳빳하게 움츠려든 에리얼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이러다간 그녀 스스로가 지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앞으로 얼마 동안은 눈 마주치고 살 사람 아닌가?

 “내가 무엇 때문에 네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거지?”

 “너에 대해 관심이 있으니까?”

  이런, 방금 전 대사는 내가 생각해봐도 아니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그녀도 뜻밖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런 부류의 칭찬에 약한지 토끼처럼 살짝 눈이 동그래졌다. 동글동글하게 귀여운 그 표정도 곧 너털웃음과 사근사근하게 번졌다. 봐, 웃으니 얼마나 예쁜걸. 하지만 언제까지나 한순간의 내 착각일 뿐, 그녀는 반색을 하며 나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턱을 괴고 있었던 에리얼이 손을 내리며 두 팔을 가지런히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일정한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까닥였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재밌는 여자가 아닐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네가 이런 시시한 이유로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려줘.”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애초에 다른 애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방금 전에 확실히 깨달았어. 지금 우리들이 어떠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해 있고, 너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 말이야.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그냥 조용히 묵인할 생각은 없어. 왜냐하면 엄연히 나도 너의 일원이거든. 그렇지 않아도 한 팀 내에서 생존자 수가 세 명 이하면 자동 탈락이잖아?”

 “일원이랍시고 짐이 되느니 차라리 사라져버리는 게 나아.”

 “그래서 위니를 보내는 거야?”

  일순간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정곡을 찌른 건가. 그녀가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 짙고 깊은 갈색 눈동자에 어느새 매료되었음을. 심지어 이 어색한 침묵 속에서도 그녀와 단 둘이 마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저려 왔다. 하지만 그녀는 정 반대겠지. 어떻게 하면 신뢰가 그녀에게 전해질지, 또한 내가 그녀에 대해 내 생각을 들키지 않을 수 있는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내 판단이 틀렸나봐. 시끄럽게 날뛰는 원숭이보다 더 먼저 해결할 것이 눈앞에 있는데 말이야. 그렇지, 에반 플로렌스? 어설프게 아는 건 네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어.”

 “그래서, 후회해?”

 “글쎄.”

  그녀의 답변은 애매모호했다. 그러는 동시에 나는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단순히 ‘위험’ 할지도 모르는 지상 사전 답사를 위니가 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지하 아래 속에서 숨어 있다가는 적들에게 카운트다운의 희생양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다 같이 나가 위험에 처할 수는 없는 법. 가능한 많은 인원을 확보해야 하는 것을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저 지상 위로 아무나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라져버려도 상관없을, 아니, 오히려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이득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고민을 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반기를 품고 또 괜한 소란을 일으킬 지도 모르는 위니와 필요 이상으로 ‘무언가’를 아는 나 사이에서.

 “그러다가 위니가 다칠 수 있는 경우가 충분해. 그래도 상관없어, 에리얼?”

 “내 생각에는 이런 규모의 기지들이 붙어 있어 쉽게 잡힐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그녀가 입 꼬리 하나를 삐딱하게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아지트가 총 네 군데, 지리적으로 상당히 넓은 필드 위에 있겠지. 게다가 저 위가 황량한 사막이던, 울창한 숲이던 간에 저들도 함부로 공격하지 않을 거야. 어쩌면 미리부터 나와 있는 팀도 있겠지만 일단 안심해야 할 것은 여기가 지하잖아? 찾기 어려울 테지. 만약 ‘적’이라고 부르는 다른 팀 어느 누구에게 노출 되어도 사로잡거나 뭐 그런 것으로 끝나겠지만”

 “하지만 언제까지나 네 예측일 뿐이잖아.”

  에리얼이 답답한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하지만 나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위니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 할 거야. 차라리 우리 측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나아. 애초부터 아무것도 모를수록, 더 과감해지는 법이거든.” 그녀가 싱긋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가 너무도 온화해서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부상자는 생길 수 있겠지만.”

 “부상자라니?”

  나는 한심하게도 앵무새처럼 물음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럼, 넌 진심으로 이 게임이 장난감 페인트 총으로 뭐,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에리얼은 비웃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너는 다른 애들과 다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지하 3층 창고로 가봐. 무언가가 너를 반겨줄 거야. 아주 흥미로운 것이”

 “어쨌듯 만약, 정말 위니가 배신해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거야?”

 “그의 자존심을 믿어. 게다가 자주 짖는 개는 거의 물지 않는 법이거든.”

  그녀는 내가 어떻게 화제를 바꾸어도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아 나를 당혹스럽게 하였다. 대화는 중간 중간에 끊겨서 잇기가 무척 난감했다. 어쩌면 그녀가 원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난 그리 호락호락하게 뒷전에 물러나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이든 혼자서 처리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무책임하게 떠맡겨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를 위하는, 그리고 나를 위한 방법.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뭐라도 알아야 적어도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발목이라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무모하고도 위험한 도박을 하기 원하지 않아.”

 “벌써부터 두려운 거야? 행여 내가 모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라도 할까봐?”

 “에리얼!”

 “걱정하지 마.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난 어느 그 누구보다도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망국의 여왕 따윈 되고 싶지 않아. 어떤 더러운 짓을 하더라도 살아남아 목적을 달성할 거니까 내 앞의 걸림돌이 될 작정이라면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거야.”

 “너를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내가 사뭇 진지한 어투로 말했지만 그녀의 의심의 그늘은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단지, 단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책임자로서의 네 계획을 들어 보려는 것뿐이야. 나와 너는, 물론 위니를 포함해 우리 모두도 입장이 같아. 이겨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있어. 지금까지의 네 말이 진실이라면. 이 게임에서 이기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잖아. 그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그걸 기억하길 바랄게.”

 “하지만 나만큼은 아니겠지.”

  그녀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옅게 드리워진 눈 밑의 그림자는 그녀가 지금 얼마나 지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난날에 얼마나 많이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했는지도 짐작하게 하였다. 그런 그녀라서 내가 더더욱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쓸데없는 참견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나의 길이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감히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단순하게, 내 앞의 그녀라서, 가만 둘 수 없는 그녀라서 내가 여기에 있다.

 “신경 써 주어서 고맙지만 내 일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 원치도 않았지만 이렇게 주어진 나의 특권. 재미없게 흘려보낼 순 없거든. 장담하건데, 앞으로 아주 흥미로워 질 거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의 할 얘기도, 하고 싶은 얘기도 없다는 뜻이었다. 반쯤 내리 깔아 놓은 눈꺼풀은 거만하게도 나를 흘겼으며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비로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그리고 입 속에서만 맴 돌았던 말을 내뱉기 바로 전에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나의 진심이 그녀에게 닿길 바라며. 이 주체 할 수 없게 뛰는 심장소리를 부디 들어주기를 바라며.

 “나를 네 가장 가까운 곁에 두어줘.”

  그녀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묻는 듯 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언젠가 너는 나를 필요로 하는 날이 올 거야. 그 때에 내가 너의 곁의 비숍이 되어 줄게.”

 “네가 나에게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어. 그것이 ‘폰’의 할 일이야.”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눈의 여왕처럼 쌀쌀맞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잡았던 내 손을 뿌리치며 내가 미처 따라 일어서기도 전에 에리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이번에 굳이 그녀의 뒤를 쫓지 않았다. 에리얼의 의사는 정확하게 받아 들였지만 그녀가 온전한 나의 뜻을 알아챘을 거라고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텅 빈 공간에 나 홀로 이렇게 앉아서. 에리얼은 자신만만한 여왕님이 아니다. 콧대가 드높아 절대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오만하고도 도도한 여자가 아니었다. 결국은,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무서워 가시 뒤편으로 숨어 버린 그런 아이란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모니터에 깜빡이는 시계를 보았다. 다시 모일 때까지는 아직 20분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차분히 두 손을 머리에 감싸고 생각해 보았다. 어째서 나는 그녀에게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작은 키에 하얀 피부 위오 늘어뜨린 까만색 머리카락은 내 뇌리에 잔인하게도 박혀 들었다. 살짝 올라간 입 꼬리, 가느다란 곡선을 만들어내며 이어진 목선에 언제나 사납게 치떤 눈매와 눈물기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빤히 들여다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뭔가가 나를 그 자리에 잡아 세워 두는 듯하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은 그녀인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에리얼을 어떻게 홀로 둘 수 있겠는가. 단순한 동정심 따위가 아니다. 멋대로 만들어낸 환상 따위도 아니다. 이유 없이, 강렬하게 흡입될 것 같은 그녀를, 어느새 나는 좋아하고 있었다.

 

  지하 1층에 올라가보니 젖은 타월을 목에 두른 환이와 도진이가 복도를 가로질러오고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지만 도진이는 다른 의미로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에리얼은 그렇다고 쳐도 하루 만에, 그것도 단 한 순간 만에 적을 두 명씩이나 만들어내니 난감했다.

 “안녕, 이안? 좋은 아침이야.”

  환이가 아이처럼 해바라기 같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에반’과 ‘이안’이란 이름을 헷갈릴 수 있는지.

 “안녕, 환아? 그리고 내 이름은 ‘에반’이야. 이안이 아니고. 아침 먹으러 가는 거야? 마샤가 아주 맛있는 거 만들어 놓는다고 했는데, 지금 한 시간 지났나?”

 “그래, 정말? 마샤가 요리도 해? 하지만 아래 AP 장소에서 대기해야 하지 않아?”

  환아, 우리 함께 있었잖니.

 “아니, 식사 실로 모이자고 했어. 아침 말이야. 환이는 배고프지 않나봐?”

  그러자 환이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도진이 한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얼굴을 푹 숙였다.

 “나는 빵을 빨리 먹는 편이야.”

  뭔가가 미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것 같았다.

  환이와 도진, 그리고 내가 식사 실 문을 열자 어느새 황량하기 그지없었던 식탁 위에 뭔가가 한 가득씩 차려져 있었다. 한 가득이라기보다는 몇 가지의 종류를 집중 적으로 차려 놓은 간단하고도 양 많은 아침식사였다.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에리얼이었다. 아까처럼 환한 웃음을 터뜨리며 마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단둘이 있었을 때와 다르게, 장난도 치며 너무도 상냥하게 웃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졸지에 밋밋한 베이지색깔과 카키색 줄무늬 앞치마를 두른 올리버가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게 말하기엔 미안하지만 그 앞치마가 너무 잘 어울렸고 -물론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지만- 보르는 그런 올리버의 옆에서 은근슬쩍 비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올리버, 너무 잘 어울린다!”

 “시끄러워.”

  투덜거리면서도 올리버는 꿋꿋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를 확인하는 데 정신없었다. 까탈만 부릴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니. 사람이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그러나 항상 북쪽만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나도 모르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마샤와 나란히 앉아서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 에리얼은 정말 진심으로 웃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독 나에게만 차갑게 냉대하는 것일까.

 “플로렌스, 나 좀 도와줄래? 졸지에 집사 노릇을 하고 있어.”

 “올리비아, 나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해.”

  나는 씩 웃으며 그의 옆으로 다가와 무려 여덟 그릇이나 되는 접시를 찻장에서 꺼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릇은 파스톤 색깔로 겉면과 안의 색깔이 달라 신선했다. 물론 모든 접시나 그릇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로 색깔 있는 접시들을 골라 꺼내었다. 이왕 먹는 거면 담는 접시도 보기 좋아야 맛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유리 부딪치는 소리를 죽여 가며 접시를 차곡차곡 세워두었다. 올리버는 쌓아 놓은 접시를 하나씩 빼내어 그 위에 살짝 식힌 크림 스프를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인스턴트라도 구했는지- 부었다. 그러면 보르가 받아 탁자로 건네는 식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여덟 개의 접시가 식탁 위를 마지막으로 장식했다. 스프 외에도 식빵 덩어리와 마멀레이드, 딸기잼, 마실 음료 등이 올려 놓여 있었다.

 “너희들은 받아먹기만 하냐?”

  올리버가 눈썹 한 꼬리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할 줄 아는 요리라곤 고작 빵을 꺼내 잼 바르는 것 밖에는 모르는 걸? 지금껏 누군가 대신 해 주었거든.”

  에리얼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올리버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치, 환이야? 우리 동양인은 쌀 낟알을 주식으로 해서 먹지?”

 “에리얼, 식탁 위에는 쌀이 없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에리얼이 손가락을 튕기며 묻는 말에 당치도 않은 환이의 대답에도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옆에서 마샤는 까르르 웃기만 하였다.

 “나는 정말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줄 게 없잖아.”

 “아, 그러면 나중에 설거지는 너에게 맡기면......”

 “도진아, 들었지? 네가 먼저 모범을 보일 차례야! 특별히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마!”

  가만히 식빵 덩어리를 자르고 있던 도진이가 멈칫 하며 그녀를 재빨리 돌아보았다.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게도 대충 얼버무리며 밀크로프에 마멀레이드 잼을 바르며 먹었다. 그녀의 입가에 잼이 살짝 묻었다.

 “그런데, 위니는 어디에 있어?” 환이가 어느새 스프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도진에게 물었다.

 “위니는 아침 원래 안 먹어?”

 “누가 아침 차려놨다고 전해 주지 않았니?”

  마샤가 잼 나이프의 끝을 허공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배고프면 알아서 기어들어오겠지, 뭐!” 에리얼이 유쾌하게 넘어갔다.

 “식량도 한정 되었겠다, 아침 굶는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빠진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일까. 그녀가 무엇을 하고 어떤 말을 하던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던. 그 사소한 하나하나가 나를 벅차오르게 한다. 털털한 그녀의 행동도, 천진난만한 그녀의 얼굴도, 저 깊은 내면의 차가운 얼음 같은 에리얼도 모두가 그녀의 일부분일 뿐. 나는 결코 이 갑작스럽게 타오르는 감정을 부인하거나 숨기지 않을 생각이다. 일찍이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가 내 눈 앞에 비춰지는 이상 견딜 수 없게 두근거리는 이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영문 모를 미소만이 피어오르고 잠시라도 이성의 끈을 놓치게 되어 버릴 때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는 나 자신을 경계하며 또 타이른다. 아직은 안 돼. 때가 아니야.

  나는 식사 내내 사랑스러운 그녀를 바라보느라 아침식사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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