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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N의 밤
작가 : MrNerd
작품등록일 : 2016.8.22

격리된 구역, 생존자, 그리고 좀비

 
<1부 : 낙조> - 2장:미지와의 조우
작성일 : 16-08-24 17:48     조회 : 542     추천 : 3     분량 : 7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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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한참 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그는 그렇게 탄성을 내질렀다. 솔직히 그거 말고는 별달리 생각나는 단어조차 없었다.

 

 “와.”

 

 한 번 더 탄성을 지르자 충격이 줄어들었다.

 

 “놀랍네. B구역에서 정상인은 죄다 떠난 줄 알았는데.”

 

 “뭐, 뭔 소리에요? 아저씨 군인이에요?”

 

 청년이 칼과 목소리를 동시에 떨며 그를 노려봤다. 처음에는 덩치 때문에 몰랐는데 이제보니 청년은 아직 성인도 안 되어 보였다. 연한 수염 밑으로 가냘프게 튀어나온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아니, 그냥 사냥꾼이야.”

 

 “뭘 사냥하는데요?”

 

 “그냥 이것저것. 근데 좀 들어가면 안 되겠냐? 이 건물엔 시체가 얼마나 남아있는 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 있는 건 양쪽 다 좋을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고요?”

 

 청년이 건호의 도끼 쪽에 턱짓을 해보였다. 건호는 한숨을 내쉬고 도끼를 신발장에 던졌다. 도끼가 넘어오자 청년은 맨발로 도끼를 뒤로 넘겼다. 저격총과 권총, 배낭도 그런 식으로 넘겨졌다.

 

 “자, 이제 됐냐?”

 

 그가 양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청년은 눈알을 굴리며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이가 두렵지만 동시에 반가웠던 것이리라.

 

 “좋아, 그럼 들어간다.”

 

 혹시라도 청년을 자극하게 될까봐 조심하며,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거 어떻게 잠그는 거냐?”

 

 “제가 할 테니까 나와요.”

 

 그는 잠자코 전투화를 벗어 청년 옆으로 슬쩍 걸어갔다. 겁에 질린 고양이처럼 칼날 끝이 그를 쫓아왔다. 청년은 서둘러 자물쇠를 채우고는 눈에 힘을 주어 그를 노려봤다.

 

 “그러다 누구 잡아먹겠네.”

 

 그가 진저리를 내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칼 좀 내려놔. 이제 빈손이니까.”

 

 “저, 정말 군인 아니에요?”

 

 청년이 신발장에 놓인 전투화를 가리키며 물었다. 번지수를 잘 못 찾은 불청객처럼 그의 전투화만 좁다란 신발장에서 혼자 이질적인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아니라고 했잖아, 저건-”

 

 그의 발가락에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그는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표지에 구렁이와, 까치, 그리고 나그네가 그려진 동화책이 있었다. ‘은혜 갚은 까치’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저건 뭐요?”

 

 “내 꺼 아니라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시체한테서 뺏은 거야. 원래는 미군이었는데 시체가 돼서 돌아다녀서 머리 좀 으깨서 몇 가지 뺏었어. 미군께 좀 쓸 만하더라고. 참고로 저 총도 미군 꺼야.”

 

 그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저격총을 가리켰다.

 

 “그럼 아저씬 대체 뭐에요?”

 

 “말했잖아, 사냥꾼이라고. 그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지나가던 나그네라고 하자.”

 

 “그래도 못 믿겠어요.”

 

 “대체 왜? 시체도 아니고 떡 하니 살아있는 사람이잖아. 아니면 바깥에 시체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도 몰라?”

 

 “아니요, 그건 알아요.”

 

 “그럼 왜?”

 

 답답하다는 듯 그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말했어요. 시체보다도 사람 조심하라고.”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는데?”

 

 “그건 알 필요 없죠. 아무튼 밖에 시체 말고도 위험한 인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시체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가차 없이 죽이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요.”

 

 들었다. 본 게 아니라 들었다. 역시 그 날 이후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 걸까.

 

 “세상은 원래부터 그런 놈들 천지였어. 그리고-”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하세요?”

 

 “어?”

 

 그가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왜 계속 반말하시냐구요?”

 

 “그야 나보다 어려보이니까 그렇지.”

 

 “저 22살이에요.”

 

 “거짓말. 오빠 열아홉이잖아.”

 

 앙증맞은 목소리가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는 듯 청년의 말을 끊었다. 청년은 따로 뭐라하는 대신 소녀 쪽을 말없이 노려봤다. 골치 아픈 동생, 화가 나는 오빠. 오랜만에 보는 평범한 남매의 모습에 그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거짓말하면 못 쓰지. 그렇죠, 아가씨?”

 

 그가 소녀에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쑥스러운지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노파의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어쨌건 내가 뭐까지 얘기했지?”

 

 “몰라요.”

 

 청년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뭐였더라…, 그래 네가 말하는 부류가 뭔지는 알겠어.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거든. 난 그런 놈들이랑은 달라. 뭣보다 뺏으러 왔었다면 네가 문을 연 시점에서 그냥 총을 쏘면 그만이잖아? 게다가 놈들도 털 거면 식당이나 편의점 같은 델 털지 이런 곳까지 일일이 찾아오진 않아.”

 

 청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럼 대체 왜 온 거에요?”

 

 “말했잖아, 나그네라고. 잘 곳이 필요하던 참에 네 동생이 보여서 온 거야. 아이가 살 정도라면 안전하다 생각하니까.”

 

 사실 마지막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적당히 그렇게 붙였다.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할 지 한참 망설이다가, 마침내 칼을 내렸다.

 

 “일단 알았어요. 빈 방이 있으니까 거기서 주무세요.”

 

 “믿어줘서 고맙다, 이름이 뭐야?”

 

 “승재요. 아저씨는요?”

 

 “난 됐어.”

 

 가면을 쓴 웃음. 그 속에 가득 숨긴 두려움.

 

 “어차피 지나가던 나그네니까.”

 

 ***

 

 저녁은 거실에 있는 널찍한 4인용 식탁에서 이뤄졌다. 음식은 모두 통조림 요리 뿐(노인의 것만 죽 비슷한 음식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무튼 먹고 싶진 않았다)이었지만 식탁 한가운데 켜놓은 촛불의 은은함 덕에 고급 음식점에 나올 법한 요리 같은 느낌을 줬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앉아 먹는 터라 맛도 좋게 느껴졌다.

 

 그는 노릇하게 구워진 햄을 우적거리며 주벽에 앉은 사람들을 살폈다. 자신의 오른편에 앉은 소녀를 시작해서 반시계방향으로 승재와 노파가 각각 앉아 있었다. 아직 젓가락질이 서툰 소녀의 이름은 민아로 이제 7살이 되었다고 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지 소녀는 식사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파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알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난리통이 된 길거리에 홀로 쓰러져 있던 분을 아이들의 아버지가 데려왔더란다. 하지만 그런 것치곤 노파의 행동은 제법 건강해 보였다. 연신 중얼거리는 게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있잖아요, 아저씨."

 

 승재가 포크로 참치를 들어 올리다말고 그를 불렀다. 승재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인지 내색하려하진 않았지만, 척 보기에도 어른인 그가 있다는 데에 안심한 눈치였다. 역시 아직은 어린 아이다.

 

 "왜?"

 

 "아까 그 - B구역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랬지."

 

 그는 입에 문 햄을 마저 씹고 대답했다.

 

 "누가 먼저 쓰기 시작한 건진 모르겠는데 여기 있던 군인들이나 연구원들이 그렇게 부르더구나."

 

 "왜 그렇게 부르는 거에요?"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 근데 아마 영어 때문인 것 같아."

 

 "영어요?"

 

 승재의 물음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로 Zone-B라고 하면 약간 좀비랑 비슷하지 않아? 그래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럼 그냥 말장난이네요."

 

 "글쎄… 또 그렇게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단 말야. 정상인 곳은 A구역이라고 따로 부르니까."

 

 "정상인 곳이 있어요?"

 

 "이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의 말이 비아냥으로 들린 건지 승재는 금세 시무룩해져 아무말 없이 수저를 놀렸다. 불청객인 주제에 무례하게 군 것 같아 그는 사과했다.

 

 "딱히 뭐라고 한 건 아니야. 그냥 -"

 

 듣는 둥 마는 둥 식탁에 얼굴을 박은 채 승재는 가만히 있었다. 사내 녀석이 뭘 그리 소심하냐고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자기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참기로 했다.

 

 "좋아, 이렇게 하자. 너희들에 대해선 나도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서로 하나씩 질문하기로 하는 거야, 공평하게. 어때?"

 

 승재는 포크로 참치를 더 쑤시더니 마지못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쪼잔하긴.

 

 "그럼 네가 하나 했으니까, 내 차례지? 아버지 어머니는 대체 지금 어디 있는 거냐? 저 할머니도 너희 아버지가 데려왔다면서 정작 본인은 왜 보이질 않는 거냐?"

 

 그가 노파를 가리켰다. 노파는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더니 기분 나쁘다는 듯 뭐라고 중얼거렸다.

 

 “예, 알았어요. 할머니.”

 

 승재가 노파에게 웃어보였다.

 

 “뭐라고 했는지 알아들은 거야?”

 

 그가 새심 놀라 물었다.

 

 “아니요, 저도 몰라요. 그냥 알았다고 해야 조용해 지시니까요.”

 

 “그, 그러냐. 어쨌건 아까 그 질문은…….”

 

 승재는 포크를 내려놓고 거북하다는 듯 무겁게 한숨을 토했다. 침묵이 흘렀다. 불빛에 잠시 물러난 어둠이 다시 기어 나오는, 그런 침묵이었다. 새삼 미안해졌다. 바깥 정세랑 사적인 문제는 무게가 전혀 다르단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질문을 취소하기도 전에 승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도 잘은 몰라요.”

 

 승재는 천천히 머리를 넘겼다.

 

 "밖을 돌아보고 오겠다고 나가시곤 그길로 영영 오지 않으셨어요."

 

 "뭐 먹을 걸 구하러 가셨던 건가?"

 

 "그건 아니에요. 먹을 거라면 넘쳤거든요. 아버지가 유통 쪽에서 일하셔서 사건이 터진 날 차에 가지고 있던 걸 모조리 집안에 때려 박았어요. 대부분 통조림 음식에 양도 많아서 몇 년 동안 버텨도 남아날 지경이었죠. 거기다가 처음 몇 달 동안은 물이랑 전기도 안 끊기고 계속 나왔잖아요."

 

 사태가 한참 진행된 뒤에도 B구역에서 한동안은 물과 전기가 계속 들어왔다. 혹시 남아있을 생존자를 고려한 행위였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런 도덕적 가식을 국민들이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치인들은 생존자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유권자도 되지 못하는데 굳이 관심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다만 대중들이 그걸 지지했고 인기투표에서 이기기 위해선 그렇게 하는 게 나았을 뿐이다. 지옥에서 벗어나, 사건이 진정되고 위험 구역을 격리할 수 있게 되자 세계 전국에서 휴머니즘 열풍이 불었다. 눈앞에 위험이 사라지니까 그제야 인간인 척 좀 해보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쑥 마늘 좀 먹고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건 교과서에나 실려 있는 내용이다. B구역보다는 A구역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당연 대다수의 시민들은 B구역의 비극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눈에는 B구역에 대한 지원이, 있는 지 없는지도 모를 생존자들에게 수많은 돈을 날리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지옥에서 탈출한 시민들 역시 과거를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B구역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지만 사실 언제까지고 그럴 수 없다는 건 그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몸소 죽음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옆자리에 없는 사람이 지금쯤 어떤 형태가 됐든 걸어 다니고는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숨 쉬지 않은 채, 천천히. 물론 그들 중 아직까지 헛된 망상을 쫓는 이들이 남아 있기에 그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건 B구역에 범죄자들이 모여들며 자기들 멋대로 일종의 아지트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옥에 있어 본 적이 없던 사람에게는 진정 자기 세금을 범죄자들에게 바치는 꼴이 되었고 지옥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사람에게는 고인에 대한 능욕으로 여겨졌다. 결국 1년도 못 돼 B구역은 암흑가가 되었다.

 

 알고는 있지만 굳이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악마는 지옥에 없다. 언제나 지옥 밖에서 죄인들의 불쌍한 영혼을 보며 기뻐한다.

 

 “어쨌든 그러다보니까 괜히 좀이 쑤시기 시작한 거에요. 하루하루 안전하고 지루하니까. 1년 정도 지나니까 갑자기 나가시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사태가 어떤지 확인해봐야겠다고. 첫 날은 괜찮았어요. 먹을 것도 더 구해오고 다른 생필품도 챙겨오셨죠. 할머니도 그 때 데려온 거에요. 그렇게 다음날이 되니 이번엔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까지 물으시더라구요. 공연히 쓸데없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기대감 같은 것도 있고. 그래서 그렇게 나가시더니…… 영영 돌아오질 않으시네요. 너무 재밌어서 우린 까먹으신 건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 장난 식으로 농담을 했지만 소년의 혀끝에는 이미 진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멋쩍은 듯 건호는 음식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깡통은 이미 비어있었다. 버티기 힘든 분위기에 그만 일어나고 싶어도 침묵이 그의 다리를 바싹 잡아당겼다. 하릴없이 젓가락으로 접시를 쳐보아도 마찬가지. 침묵은 소리 사이사이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그런 얘길 꺼내게 해서.”

 

 “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

 

 승재는 빙긋 웃으며 참치를 마저 먹었다. 어른이 되기 싫지만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녀석의 모습이, 촛불 사이로 잠깐 보인 것 같았다.

 

 “혹시 더 질문하고 싶은 거 있어?”

 

 “글쎄요. 많았던 거 같은데 까먹었어요. 진짜 꼭 이러지 않아요? 뭐 물어보려고 했는데 정작 그 때 되면 생각이 안 나는 거.”

 

 “맞아, 자주 있지.”

 

 그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잘 먹었다. 이거 어디두면 되지?”

 

 그가 깡통을 들어올렸다.

 

 “아저씨 바로 뒤에 싱크대요. 포크랑 같이 두세요.”

 

 그는 윤이 나는 싱크대 위에 살포시 포크와 깡통을 내려놓았다. 이런 세상인데 싱크대 상태가 제법 좋다는 게 약간 신기했다.

 

 “설거지 해둘까?”

 

 “어떻게 하시려구요?”

 

 승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조금 부끄러워져 건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렇구나. 이런 식사는 나도 오랜만이라서 잠시 착각했다.”

 

 “제가 할 테니까 그냥 들어가세요. 어차피 수건으로 포크만 대충 닦으면 그만이니까요. 아, 아저씨는 저기서 주무시면 되요.”

 

 승재가 소파 뒤에 있는 방문을 가리켰다. 굳게 닫혀 있는 꼴이 어째 쓸쓸해보였다.

 

 “부모님이 쓰시던 안방이긴 한데 어차피 지금은 아무도 안 쓰니까 그냥 쓰세요. 저는 제 방 있고 민아도 할머니랑 같이 한 방에서 자니까.”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방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손님이 반가운 것처럼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아, 혹시라도 더 물어볼 게 있으면-”

 

 그가 문지방에 선 채 뒤돌아보았다.

 

 “그냥 들어와서 물어봐. 언제라도 괜찮아. 내일 아침까지는 여기 있을 거니까.”

 

 “왜요?”

 

 녀석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응? 뭐가?”

 

 “왜 내일 아침까지냐고요?”

 

 “왜냐니? 오늘 하룻밤만 묵었다 갈 거야. 너도 내가 빨리 나가는 쪽이 좋잖아, 아니야?”

 

 “예? 아…….”

 

 승재가 말을 흐렸다. 안절부절하는 게 뒤늦게서야 답안에 실수를 발견한 수험생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순수함이다.

 

 “관둬. 내가 나쁜 놈이 아닌 건 맞지만 착한 놈도 아니야. 살고 싶으면 아무나 믿지 마.”

 

 “알고 있어요. 저는 그냥…….”

 

 승재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소년의 목소리는 어느새 볼멘소리에 가까워져 있었다.

 

 “내가 여기 있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음식만 빨리 동날 뿐이야. 성인 한 명이 먹는 양이 생각보다 만만하진 않아.”

 

 승재는 그의 다그침에 가만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아 초조하면서도 분한 모양이다. 입술에서 혹여나 피가 나올까 걱정하던 차에 소년이 입술을 뗐다.

 

 “그러면… 저희도 데려가주시면 안 돼요?”

 

 승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눈을 보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울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소년의 눈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큰 각오. 작은 잔이 그 양을 감당 못하고 흘러넘치는 물처럼, 그 각오는 녀석의 눈자위 주위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물론 원래 계약대로라면 승재의 말대로 해야 한다. 그게 그가 해야 할 일이고 그러기 위해 돈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그냥 다른 장의사 녀석들이 한다는 것처럼 시체가 된 사진을 가족에게 보여줘서 적당히 보수를 받을 생각이었다. 생존자를 찾아 구하는 게 ‘장의사’들의 일이었지만, 사실 생존자를 찾아 본 적도, 구해 본 적도 없는 게 장의사들의 현실이었다.

 

 생존자를 데리고 이 도시에서 살아서 나간다. 과연 가능할까?

 

 “미안하다만 안 된다.”

 

 “대체 왜요?”

 

 “다 죽을 게 뻔하니까.”

 

 “해보지도 않았잖아요?”

 

 승재가 악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해요?”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웃었다. 승재의 귀에 그런 결말은 분명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약간의 시간과 그 동안의 약간의 더러운 일들을 겪으면 쓸 수 있는 단어는 한정되기 마련이다. 그러고 나면 어떤 결말도 쉽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게 어른이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잘 자라.”

 

 승재가 무어라 더 중얼댔지만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그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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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ime 16-08-29 11:31
 
감염자들에 댓글다신거 보고 타고들어왔어요~^^ 작가님 좀비물은 설정이나 시점이 독특한거같아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MrNerd 16-08-29 15:39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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