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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와 나의 세상
작가 : 은아린
작품등록일 : 2017.7.19

이제는 없는 그 아이를 찾아야해.


인간의 노예화를 추진 중인 뱀파이어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뱀파이어 사이에 서게 되었다.




어느새 내 지척에 다가온 라무엘이 한 손은 쇼파를 짚고 한 손으로는 내 턱을 잡아 자신에게로 돌렸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까만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큰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겉보기와 다르게 눈물 많고 여리다는거."

라무엘의 기다란 손가락이 내 눈매를 매만졌다. 차가운 손끝이 피부로 느껴졌다.

"뭔 개소리야."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신지. 손을 탁 쳐내자 라무엘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를 흘겨보며 술병을 들어 안의 내용물을 입 안에 쏟아부었다.

 
너와 나의 모습3
작성일 : 17-07-31 23:33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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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너와 나의 모습(3)

 

 

 

 황급히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잭이 사무를 보던 책상이 반으로 갈라졌고 그 앞에는 검은 치파오 차림의 여자가 담배연기를 훅 뿜어내고 있었다.

 

 "조심해. 다음번엔 이 책상이 아니라 네놈 대가리가 날라갈테니까."

 

 짙은 보라색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입술이 비뚜름이 올라가며 나른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의자에 앉아 있는 잭을 등진 여자가 나와 라무엘을 훑어보며 손끝에 걸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우리를 보고 있는 여자의 눈은 몽롱해 보이기도, 권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흐응."

 

 고개만 뒤로 돌려 잭을 본 여자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이러면 재미없어, ……. 잭, 이라고 불러줄까?"

 

 여자의 말 끝에는 장난기가 섞여있었다. 잭이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단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린, 이만 가주시죠. 제가 조만간 들르겠습니다."

 "그래, 꼭 그래야할거야."

 

 여전히 몽롱하고 나른한 투였지만 말 속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메이린은 제 할말이 끝났는지 우리에게 다시 눈길도 안주고 나가버렸다.

 

 "잭, 무슨 일이에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제이씨가 오기전에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험한 꼴만 보였네요. 여기서는 신경쓰여서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질 못할테니 다른 곳으로 옮기죠."

 

 곤란한 듯 은빛 가면 밑의 입매를 만지작거린 잭이 방금 메이린이 나간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앞에 메이린의 뒷모습이 보였다.

 

 "메이린, 이만 가달라고……."

 "어? 파파!"

 

 잭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메이린의 허리춤에서 동글동글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랑랑?"

 "파파?"

 

 잭과 내가 동시에 말하며 둘의 눈이 마주쳤다. 잭이 드물게 당황한 눈빛이었다.

 

 "랑랑, 사람들 있는데서 그렇게 부르면 파파가 곤란하다고 했잖니."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검은 힐의 앞코로 툭툭 끄던 메이린이 나른한 투로 말했다.

 

 "아코, 깜빡했다."

 

 자신의 머리를 콩 때린 랑랑이 쪼르르 달려와 잭의 앞에 섰다. 빨간색 케이프 밑에서 작고 하얀 손이 불쑥 나와 잭의 손을 움켜쥐었다. 잭은 당황하긴 했지만 아이를 뿌리칠 생각은 없어보였다.

 

 "랑랑, 여긴 어떻게 온거야."

 "잭, 이 언니랑 오빠는 누구야?"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으로 나와 라무엘을 번갈아보는 랑랑의 귀에는 잭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싶었다.

 

 "참고로 내가 데려온거 아니야."

 

 피곤한 얼굴로 복도의 벽에 툭 기댄 메이린이 말했다.

 

 "어어. 내가 마마 몰래 따라온거야."

 

 건성으로 긍정한 랑랑이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라무엘을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랑랑, 이만 메이린과 함께 돌아가."

 

 잭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랑랑은 잭의 손을 잡은채로 라무엘에게 바짝 다가섰다.

 

 "우와, 오빠 진짜 예쁘게 생겼다."

 

 라무엘을 올려다보며 감탄하는 랑랑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랑랑에게 이끌려 우리 근처에 서게 된 잭과 마주하게 됐다.

 

 "잭이 결혼한지 몰랐네요. 아니, 알려줬는데 내가 기억을 못한거였나. 아, 그럼 아까 그건 부부싸움……."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단호한 잭의 말과 나른한 메이린의 말이 동시에 들려왔다.

 

 "어, 그럼, 결혼 예정?"

 "그것도 아닙니다."

 

 강하게 부정하는 잭의 뒤에서 메이린이 잭의 어깨에 턱을 얹고 날 봤다.

 

 "이봐, 아가씨. 나름의 사정이 있는거야. 잭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안할게.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아."

 

 내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잭이 몸을 비틀어 메이린을 떨쳐냈다.

 

 "메이린, 그렇게 말하면 제이씨가 오해하지 않습니까."

 "오해하는건 그쪽 사정이고."

 

 어깨를 으쓱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메이린이 랑랑의 곁으로 다가섰다.

 

 "랑랑, 이만 가자. 이 오빠가 어쩔줄 몰라하잖아. 파파도 곤란한것 같고. 후훗."

 

 전혀 어쩔줄 몰라하는게 아닌, 그저 아이를 관찰하고 있던 라무엘에게서 랑랑을 떼어낸 메이린이 마지막 말을 할 땐 잭과 나를 번갈아가며 보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어, 벌써?"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라무엘과 잭을 차례로 보던 랑랑이 갑자기 환한 얼굴이 되어 메이린의 손을 잡았다.

 

 "예쁜 오빠, 나중에 우리 집에 놀러와. 맛있는 쿠키 만들어놓고 기다릴게. 잭, 예쁜 오빠랑 꼭 같이 와야해."

 "그래, 랑랑."

 

 메이린의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어가면서 뒤돌아 본 랑랑에게 잭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메이린과 랑랑이 복도 끝으로 사라져서야 잭과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제이씨가 오해할까봐 말하는건데 전 랑랑의 보호자 비슷한 존재일 뿐입니다. 메이린과는 전혀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네, 알겠어요."

 

 알았다는 내 대답을 듣고도 잭은 여전히 곤란한 기색이었다. FIL대표의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간 잭이 그와 다르지 않게 단정한 내부로 우리를 안내했다.

 

 "일단 여기서 기다리세요. 차를 가져오죠."

 

 라무엘과 나를 남겨둔 잭이 밖으로 사라졌다. 차는 괜찮다고 붙잡을 새도 없었다. 어지간히 당황하긴 했나보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던 대표님이 황급히 사라진걸 보면 말이다. 어느새 자리에 앉은 라무엘이 다리를 꼬고 날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왜. 뭘봐."

 

 아침의 일이 생각나 말투가 곱지 않았다. 라무엘의 맞은편에 털썩 앉으며 한쪽 눈썹을 위로 휙 올렸다.

 

 "인간에게 아이는 어떤 느낌이야?"

 

 이건 무슨 뜬금없는 말이지. 웃음기를 쏙 뺀 라무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어 짜증스럽게 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몰라. 나 애 안좋아해."

 "아, 잊었어. 너는 인간의 상식이 부족하다는걸."

 

 뭔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감탄하는 라무엘이 너무 얄미워보였다.

 

 "인간이 아닌 당신보다는 인간의 상식이 풍부할걸."

 "그렇게 생각해서 위안이 된다면 계속 그렇게 생각하던지."

 

 비꼬는 나의 말에 라무엘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순간 속에서 열이 확 오르는게 느껴졌다. 발끈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마침 문이 열리며 잭과 한수가 들어왔다.

 

 "여~ 제이랑 라무엘, 오랜만이네."

 

 싱글싱글 웃는 한수가 약지와 소지가 사라진 오른손을 흔들어보였다. 몇달 전 거대 변이 늑대에게 손가락 두개를 잃어버린 한수는 의외로 전보다 더 웃음이 많이 졌다. 이런일 하면서 죽는 일이 태반인데 자신은 손가락 두개와 목숨을 바꿔서 살아난 운좋은 놈이라면서.

 

 "뭐야, 둘이 사랑싸움한거야?"

 

 내 속을 긁는건 여전했지만. 라무엘 옆에 앉아 어깨 동무를 한 한수가 능글맞게 웃었다.

 

 "그 입 좀 다물 수 없어?"

 

 날카롭게 반응한 나에게 기죽지 않은 한수가 잭이 각자의 앞에 놓아준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한수씨, 차는 그렇게 마시는게 아닙니다."

 "우리 대표님, 내 취향 아시면서 일부러 차로 내오신거 아닙니까?"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잭을 향해 씩 웃어보인 한수가 테이블 위로 빈찻잔을 탕 내려놓았다. 한수는 손가락 두개와 함께 배 밖으로 나온 간도 잃어버린 것 같다. 간이 배 밖에 나왔을 때보다 개김이 더 강해졌어. 잭이 한수를 향한 한심하다는 눈빛을 지우지 않고 우아한 몸짓으로 찻잔을 들어올렸다.

 

 "일단 숨 좀 돌리죠. 아까 일 때문에 모두 놀라셨을테니."

 

 당황하던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평상시처럼 여유롭고 차분한 잭의 말에 한수가 앞에 있던 자신의 찻잔을 툭툭 건드렸다.

 

 "아까? 무슨 일?"

 

 잭이 아무말도 하지 않자 그에게서 눈을 돌린 한수가 말해달라는 듯이 나를 봤다.

 

 "귀찮아. 나한테 말걸지마."

 

 한수를 딱 잘라내고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노려봤다. 잭이 차분한 척 하고 있다는걸 알겠다. 뜨거운 것을 못먹는 내 앞에 펄펄 끓인 차를 그대로 내놓다니. 라무엘은 잭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단정한 손길로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했다. 애초에 차향보다는 라무엘에서 나는 향기가 더 좋은데. 무릎 위로 팔을 세우고 그 손바닥에 턱을 괴며 차를 마시는 라무엘을 봤다. 차를 한모금 입에 머금고 찻잔을 내리던 라무엘과 눈이 마주쳤다.

 

 "차는 그에 맞는 적당한 온도가 있는 법이야. 너처럼 식혀 먹으면 그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없어."

 

 라무엘이 나에게 설명했지만 빈정이 상한 나의 대꾸보다 잭이 빨랐다.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한수씨와 찻잔이 바뀐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차를 내오죠."

 "아니, 괜찮아요. 좀 식거든 먹죠."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가는 잭을 말렸다.

 

 "라무엘의 말처럼 온도는 차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제이씨가 드시던 차로 다시 가져오죠."

 "잭, 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차 맛같은거 잘 모르니까. 그보다 오늘 왜 부른지 그게 더 궁금해서 못참겠어요."

 

 내 말에 잭이 몸을 돌려 자리에 앉았다.

 

 "아, 그 일 말인데요."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쉽게 말을 꺼내 놓지 못하는 잭을 향해 한수가 어서 말하라는 듯이 손짓으로 재촉했다. 그래도 잭이 말하지 않자 답답했던지 한수가 빈정거렸다.

 

 "그 뭐 어려운 말이라고. 애들을 너무 오냐오냐 해주면 안된다니까. 강하게 키워야지.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난리부르스를 추는 간부들 죄다 넉다운 시켜서 제일 쉬운걸로 배정한 주제에."

 

 한수의 말에 잭이 잡아먹을 듯이 그를 노려봤다.

 

 "그 간부들을 난리부르스 추게 만든 장본인이 한수씨잖습니까."

 

 언제나 차분하던 잭을 흥분하게 만들다니. 한수도 발전이란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군. 근데 저러다가 언젠가 소리소문없이 잭에 의해서 땅에 묻힐 것같은데. 괜찮은건가.

 

 "글쎄, 난 기억이 안나서."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인 한수가 더이상 아무말도 하기 싫다는 듯이 깍지낀 손으로 뒷머리를 받치고 쇼파 뒤로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을 보던 잭이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천장을 한번 보고 고개를 내렸다. 라무엘은 잭과 한수의 실랑이 사이에서 여유롭게 찻잔을 다 비워냈다. 라무엘은 물론 잭과 한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을 잔뜩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자기들끼리 설전하는 잭과 한수는 물론이고 자기 이야기임에도 전혀 관심없는 라무엘까지.

 

 "빨리 말해줘요. 답답해서 돌아버리겠으니까."

 

 짜증스럽게 말하자 잭이 여전히 망설이는 초록색 눈동자로 날 봤다.

 

 "후, 그게."

 

 이야기를 꺼내려던 잭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답답했는지 한수가 기대고 있던 쇼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거참 답답하네. 고위 뱀파이어들이 성에서 나올거라는 제보야. 네가 찾고 있던 그 애가 성 밖으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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