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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일레인과 그 뻔뻔한 반지
작가 : 유르르
작품등록일 : 2017.7.27

폭탄제조에 비상한 재능을 가진 연금술사, 일레인.
위장취업 중 영주의 보물창고를 털어 달아나는데...
영주를 따돌린 그녀의 앞에 왠 사내가 한명 나타난다!

소원을 빌라고 속삭이는 반지에서 나온 마법사가 일레인은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 반지는 눈치가 없다
작성일 : 17-07-31 22:06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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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서 불을 뿜으려하는 남작님이었다. 머리는 새파란 데, 날뛰는 형국은 레드드래곤의 형상이었다. 같이 다니려면 꽤나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일레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저 쪽은 얽혀서 골치만 썩겠구나.

 내일까지라며! 당장 오늘부터 엮이게 생겼구만. 일레인은 첫인상을 죄인으로 못박을 것인지, 혹은 다른 길을 개척해볼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왜 가지 않지?」

 “내일이라고 했는데, 오늘 당장 만나게 돼서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에요.”

 「하……?」

 

 

 일레인이 저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동안, 자동마차의 안과 밖을 샅샅히 훑어본 유진이었다. 유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레인을 돌아보았다.

 

 

 “가십시오. 저희 길드에서는 남작님들께 최선의 배려를 다해드리고 있습니다. 허니, 남작님들께서도 저희 쪽을 최대한 배려해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사업장에 막 찾아오고 그러시면 안돼죠. 아이들을 풀어 숙소까지 베웅해드릴까요?”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흉터도 무서운데, 저렇게 얼굴을 찌푸리고 제 팔뚝을 과시하면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말만 정중한 문전박대였다. 새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작님께서 길길이 날뛰었지만, 저 사람도 헬라의 밑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었다. 귀족이라고 하나, 그 이유 하나로 무릎을 꿇지는 않지.

 

 

 “칼라스, 진정해. 그래, 그래. 오늘은 돌아가겠다고 전해주게. 그러나, 우리도 더 이상 기다리고만은 있을 수 없다고 전해줬으면 좋겠어.”

 “그러지요.”

 

 

 은발머리는 헬라의 취향답게 차분한 쪽에 속했다. 화를 내거나 분노를 토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사내에게 필요한 말만 남기고 선연히 돌아섰다. 돌아선 그 둘의 표정에서 아연함이 묻어났다.

 

 

 “오늘도 또…….”

 “뭐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정보길드의 수장이라하나, 그녀 또한 마땅히 제국 콤피루스터의 신민입니다. 마땅히…….”

 “듣는 귀가 많아. 칼라스.”

 

 

 파란 머리의 이름이 칼라스인 모양이었다.

 

 

 “타지 않으실 건가요?”

 “아뇨.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기다리다 지친 자동마차의 마부가 일레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자동마차의 금액이 워낙 비싸고 예약비도 따로 걷기에 마부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실패로군.”

 “하……. 돌덩이 위에 삽질하는 기분이에요. 삽질.”

 “네가 삽질을 해봤고?”

 “당연히! 안해봤죠…….”

 

 

 붉은 벽돌로 쌓인 담에 기대, 한숨을 내리 푹푹 쉬어대는 두 남자에게 일레인이 다가섰다. 로브를 꽁꽁 싸맨 터라 경계할까 싶어 천천히 머리를 덮고 있는 후드를 넘기고는 입을 열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연출이라도 된냥 일레인의 연분홍의 꽃잎같은 머리가 흩날렸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오?”

 

 

 그럼 그렇지. 저 파란머리는 싹바가지가 분명했다. 일레인이 흔들리려는 미소를 애써 붙들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흩날린 풍선한 머리체를 정리했다. 싱그러운 숲을 연상시키는 연두빛의 눈동자는 더 없이 맑게 보였다. 물론 이건 명백한 연출이었다. 일레인은 헬라가 마냥 걱정하는 것처럼 제 외모를 완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푼수는 아니었다.

 

 “정보 길드를 찾아오셨나봐요?”

 “그렇소만은…….”

 “곤란스러운 일이 있으신거 같은데, 혹시 따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하세요. 빛과 꿀이 머무는 곳에 묵을 예정이랍니다.”

 

 

 의심어린 시선이 안면에 꽂히는 기분이었지만, 일레인은 웃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우아하게 고개를 살짝 숙여 귀족의 영애들이나 할 법한 인사를 하고는 일레인은 회심의 공격인 꽃과 같은 미소를 다시 지어보였다. 이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 영주에게 폭탄을 던지고 도망친 하녀보다 임팩트가 크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첫인상이 아닌가. 일레인은 스스로 뿌듯한 마음에 팔랑거리는 걸음걸이로 마차에 올라탔다. 역시 이쁜건 최고였다. 헬라말대로.

 

 

 「늦어.」

 “뭐 그럴 수도 있죠.”

 「나에겐 이 모자를 벗지 말라 그렇게 잔소리를 하더니, 너는 언제든 그렇게 벗어서 유혹하는 것이냐?」

 “유혹이라뇨! 이것도 다 작전에 필요한 기술중 하나라구요……. 하, 아저씨는 몰라도 돼요”

 「작전? 아저씨이?」

 

 

 마차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출발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진의 말에 대답하다가 일레인이 움찔했다. 왜 이 사람 말에 하나하나 다 대답해주고 있었지?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연금술사인 것도 걸려, 신분이 한 개가 아닌 것도 걸려……. 게다가 정보길드장인 헬라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까지 의도치 않게 헌납하고 말았다. 반지에 매여있는 사람이니 관청에 가서 제 존재를 밀고할 것 같진 않았지만, 제대로 된 경계한번 해보지 못하고 이렇게 되다니. 일레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유진을 노려보았다.

 

 

 「……뭘 그런 눈으로 보는거냐.」

 “혹시, 저한테 마법이라도 건 거에요?”

 「허?」

 “아니, 그렇잖아요. 내가…….”

 

 

 일레인이 벙긋했던 입을 텁하니 닫았다. 둘만 있는 것 같아도 저 칸막이 뒤편에 마부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경계심이 사라진 거지. 일레인이 제 얼굴을 감싸쥐고 한탄했다. 아니 어릴적엔 도도한 고양이 일레인이라 불리던 까다롭던 자신은 어디로 간거지 ! 그 코딱지만한 영지에서 하녀로 살아온 1년 때문인가! 너무 나태하게 살았다. 그러니 이렇게 풀려버린 거지. 일레인이 느슨한 신경줄을 조이려 제 미간만 잔뜩 찌푸렸다.

 

 

 「할 말이 있다면 끝까지 해라」

 “……하아.”

 

 

 일레인은 한 숨만 폭폭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말도 아니거니와, 이상하게 저 남자랑 말을 섞으면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말을 섞지 않을 수도 없고 참……. 제가 입을 딱 다물고 제 갈길만 간다고 하여 따돌려지거나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렇게 반지로 돌아가지 않고 제 존재로 시위를 하겠지. 커다랗게 뚤린 창에 동그란 이마를 바짝대고 바깥을 바라보는 이 몇년 묵은지도 모를 반지속의 사내를 바라보며 일레인은 다시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없이 달리는 자동마차가 외곽의 숲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

 

 

 

 여관의 시설은 몹시 좋았다. 별장으로 이용했다더니 그럴만한 풍경도 가지고 있었다.

 여관에 들어오자마자 일레인은 제일 먼저, 내일 아침 일찍 예약해두었던 자동마차를 취소했다. 헬라와 만나기 전이라면 이 근방을 뜨는 일이 가장 시급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 않은가.

 

 

 “두 분이십니까? 죄송합니다만, 방을 두 개로 배정해드릴지…….”

 “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조금 직원이 조금 난처하다는 듯 묻자 일레인의 시선이 유진을 향했다.

 

 

 「뭐냐.」

 

 

 투박한 물음이 되돌아왔다.

 다른 사람도 있는 자리에서 반지에 들어가서 잘 거에요 라고 물을 수 없었던 일레인이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그렇다고 방 두 개를 잡기엔 시설이 너무 좋아보였다. 가격이 얼마나 되려나. 로비에 장식된 대리석 조각이 윙크하며 안녕, 난 비싼 조각상이야 하고 인사하는 것만 같았다. 소시민 축에 속하는 일레인은 고작 잠을 자는 데 이렇게 커다란 돈을 써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잠자리란 밤이슬 안 맞고 얼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레스토랑에서 귀족으로 오해만 안했어도 이렇게 안하는데! 괜히 고기 처음 먹어본 사람처럼 구는 이 순진한건지 바보같은 건지 영악한건지 모를 반지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멀뚱이 서있는 유진을 한껏 노려보다가 겨우 직원에게 대답했다.

 

 

 “……하나만 주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행히, 직원은 두분의 관계가 어떻게 되냐며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기 위해 일레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스승님과 유르겐과 또 다른 사제들과 유랑을 다닐 때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유르겐과 한방을 썼던 적도 많았는데, 누가 사용면적을 더 넓게 차지할지 치고박고 싸웠기만 했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기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가 다시 한숨을 푹 쉰다. 아무리 돈이 모자랄지 몰라 결정한 일이라지만 낯선 남자와 한방에서 밤을 보낸다니!, 다음 도시에서는 꼭 가진 패물을 몽땅 정리해서 떵떵거리며 돈을 써도 아무렇지 않은 제력을 되찾으리라 일레인은 곱씹었다.

 

 

 “다행입니다. 수도에서 오신 남작님께서 방을 다 잡으신 터라, 남아있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거든요.”

 “……네, 그러셨군요.”

 

 

 그 수도에서 오신 남작님이 누군지는 뻔했다. 방금 만나고 왔던 그 두 분 중 한 분이시겠지. 아니면 두 분 다 일수도 있고……. 일레인이 덤덤한 척 대꾸하고는 직원의 뒤를 따라 걸었다.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이 전부 화려한 지라, 괜히 로브를 여미고 있는 단추를 한번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유진이 무심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 그러면 그 분들은 방을 몇 개를 빌리신 건가요?”

 “전체를 대실하신 것은 아니고, 저쪽의 별관을 대관하셨답니다. 별관에는 대략 여섯 개의 방이 있으니…….”

 “별관 대실 같은 경우는 금액이 얼마나 나오나요?”

 “하룻밤에 백골드가 조금 넘습니다. 마님.”

 

 

 컥, 심장마비가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레인이 슬그머니 제 심장이 잘 있는 지 가슴꼐를 더듬었다.

 방 여섯 개가 백 골드면, 방 하는 골드가 몇 개짜리라는 거야? 떡하니 벌어지려는 입을 애써 다물며 흔들리는 시선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 역시 귀족 흉내도 해본 사람이나 내본다고 골드 백 개라니! 1년을 영주성에서 뼈 빠지게 번 돈을 숨만 쉬고 모았다고 해도 꿈도 못 꿀 액수였다. 귀족들의 씀씀이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새삼 느껴지는 간극에 일레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니, 제 폭탄 하나에 성 한 채를 통째로 내놓지…….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마님으로 모자라서 좋은 밤이라니. 일레인이 제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저가 늙어보이나? 어디가서 어려보인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일레인은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항상 외모는 관리해야한다는 헬라의 당부가 떠오르면서, 지금이라도 얼굴에 신경을 써야하나하는 생각에 암담해졌기 때문이었다. 로브를 눌러쓰고, 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남자와 함께 다니니 기혼여성으로 보인다는 사실은 채 깨닫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내 계약자는 연금술사이고, 이름은 일레인인가? 성은 뭐지?」

 “우씨, 아저씨랑 계약한 적 없다니까요?”

 「너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할 필요가 있어. 계약을 하지 않는 다고 하면서, 내 신분은 왜 만들어준 거지?」

 “아저씨 신분은 제가 만들어 준게 아니라 헬라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주절주절 대꾸하던 일레인이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변명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몸은 지치고, 정신도 지치는 데 어딘지 모르게 서러웠다. 제가 원해서 반지를 낀 것은 맞다. 근데, 그건 계약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나중에 팔아치우겠다고 챙긴 것에 불과했다. 나중에 못팔아치웠따면, 영주새끼 따돌리려고 숲 어딘가에 던졌겠지! 누가 반지에 이상한 게 들어있을 줄 알았나. 일레인은 조금 억울했다.

 

 그런 일레인의 심정은 모르고 유진, 이라고 불리는 그 반지의 아저씨는 역시 나의 빛나는 외모때문인가 ! 하며 스스로 감탄했다. 일레인은 조금 더 많이 억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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