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유난히 기운이 없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뜯어진 갑옷에서 진한 패배의 향기가 흐르는 듯하다.
하지만 면갑의 눈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검사의 서슬퍼런 안광은 자신이 패잔병이란 걸 부정하고 싶었던지 더 없이 매섭다.
이윽고 석양빛을 받아 핏물처럼 붉어진 강가에 다다를 무렵.
푸르르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유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삐를 당기는 그의 거친 움직임에도 쉽사리 투레질을 멈추지 않자 그는 면갑을 올리고 위급한 상황에 맞지 않게 갈라진 입술 끝을 말아올리며 씹어뱉듯 소리쳤다.
"나와라 이 짐승...! 당장 결판을 내자!"
그의 부름에 응하듯 잔잔한 물결속에서 별안간 물기둥을 일으키며 핏덩어리 같이 붉은 물체가 튀어 나왔다.
그것은 꽤 컸다.
눈높이가 말에 탄 사내보다 높을 정도로 덩치가 큰, 두 발로 선 짐승.
패잔병을 비웃듯 일그러진 그 포식자의 아가리에서 뜻밖에도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옛정을 생각해 살려주려 했건만... 제 발로 죽으러 왔군. 마지막으로 그 잘난 여신에게 목숨을 구걸해보아라."
스르릉
갑옷을 입은 사내는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양 손을 교차하여 쌍검을 천천히 뽑았다.
"기필코 네놈의 가죽을 벗겨 전우들의 무덤에 바치리라."
짐승을 보고 공포에 질려 미쳐 날 뛰던 말의 허리가 순간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꺾이며 잔상조차 남기지 않은 사내의 몸은 대포에서 뿜어져 나온 포탄처럼 짐승을 향해 빠르게 발사되었다.
쾅
말 그대로 포격맞은 소리.
뒤 덮인 먼지 구름이 걷히고 짐승은 손톱과 헐겁게 감긴 붕대같은 것에만 의지하여 정체모를 힘으로 찬란히 빛을 뿜는 날붙이를 맨손으로 막고 있었다. 때때로 스파크를 튀기며.
세배가 넘는 체격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짐승을 몰아부치는 도저히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괴력.
까가각 거리는 불쾌한 쇠 긁는 소리에 아랑곳 없이 사내와 짐승은 상대를 죽일 생각에 즐거운 듯 살벌한 웃음을 흘리며 힘 겨루기를 시작했다.
"레이글..."
"그 더러운 아가리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오...가여운 여신의 종이여...너는 내가 누군지 잊었던가?"
비열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짐승의 검은 그림자가 흉측한 아가리를 벌린 채 검사를 검게 뒤덮었다.
곧 주인을 구해달라는 듯 구슬픈 말의 비명소리가 저멀리 울려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