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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네메시스 (NEMESI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0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여왕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背叛)하여
원수(怨讐)가 되었도다."

예레미야애가 Lamentations
1:1-2

 
네메시스(NEMESIS) 19
작성일 : 17-07-31 21:20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4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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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HWAN)〕

 

 

 

 

 

 인정하기 싫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까. 나는 그녀가 상복을 입고 있다는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녀를 눈에 담은 찰나의 순간에 얼어붙어버릴 듯 했다. 아름다웠다. 그녀가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무리들의 속한 이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나다.

 

  머리는 정금과 같았고 머리카락은 구불거리던 것이 까마귀 같이 검구나. 머리카락이 엔투의 거미 같은 손을 걸쳐 정성스레 땋아 올려 있다. 그리고 붉은 장미 한 송이가 그녀의 머리를 장식한다. 그녀는 시냇가에서 노닐던 때묻은 비둘기의 눈을 앗아다 박아 넣은 것 같았으며 젖은 듯이 아름답게도 빛났다. 뺨은 입술은 몰약이 떨어질 듯 백합화와 같았고 뺨은 석류의 한 쪽처럼 물들었다. 아, 떠오르는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이 여인은 누구인가.

 

  검고 파리 날개 같이 검은 속사포가 내려 앉은 그녀의 머리 위엔 그녀가 백합이 조각된 황금색 면류관이 올려 있다. 그녀의 목걸이와 같은 문양이다. 왼다리 부분 옷자락이 트인 검고 긴 드레스 사이로 굽 높은 검은 구두가 그녀와 잘 어울렸다.

 

 "이제 곧 영영 이별이겠구나, 엔투."

 

  그녀가 나를 아랑곳하지도 않으며 차분하고, 또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엔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루갈이 내게 그랬었다. 엔투는 태생부터 원초의 뿌리에 속한 사람이었음에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었더라고. 아무런 사심도, 조건 없이. 한 편으론 역시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그녀다웠다. 나도, 루갈도 없을 적 네이트마저 스승을 자처하긴 하였더라지만 그는 그녀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에겐 무관심하였다. 엔투라곤 그녀라고 해서 그 화살을 막아줄 방패가 되어줄 수 있었겠냐만, 그러나 그녀 스스로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루갈을 찾아낼 때까지 그리고 나를 다시 만날 때까지 엔투는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어 세웠다. 에리얼과 엔투. 키마저도 비슷한 서로에게 있어서 그녀들은 색이 다른 대칼코마니다. 그러나 이젠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하여 그 중 한 명은 찢겨져 나간다.

 

 "이제 가야겠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엔투,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거겠지?"

 

 "에리얼."

 

  에리얼이 평소답지 않게 약한 소리한다. 그런 그녀에게 엔투 역시 평소 그녀답지 않게 단호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네가 이곳에 어떤 존재로, 무엇 때문에 있는지 유념해."

 

  그리곤 그녀의 등을 떠민다. 여지 없이 단호한 그녀의 말에 되려 내가 상처 입는다.

  에리얼은 상아 같은 몸에 걸치고 다녔던, 어깨로부터 뜯겨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검붉은 로프를 가로지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떠난다. 그녀가 꼭 입었었던 채도 높은 파란 튜닉 드레스는 얌전히 개인 채 엔투가 들고 있었다. 엔투는 행여 옷에 나쁜 냄새라도 배일까 석류 몇 알과 무화가 두 알을 옷 위에 올려 두었다. 에리얼을 따라가지 않았다. 우두커니 혼자 에덴으로 향하겠다는 그녀를 배웅하지도 않았다.

 

  독한 것들. 내 주위의 여자들은 너무도 강하고 독해서 나 같이 평범하고 정신 약한 사람들은 숨을 쉴 수가 없다. 정작 상처 받는 것은 나다. 엔투는 그녀에게 꼭 그렇게까지 매정했어야 했나?

 

 "엔투! 너는 따라지 않을 거야?"

 

  들으라는 듯 그녀에게 신경질적이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도저히 너희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따라가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에리얼이 약해져서 안 돼. 언젠가, 아주 먼 옛날에 에리얼과 약속했어. 이런 일이 생긴다면 꼭 그녀 혼자 떠나보겠다고. 자, 우리의 때가 왔어. 그깟 개인적인 감정으로 모든 걸 망쳐버려선 안 돼. 환아. 너는 어서 따라가. 중요한 예식 가운데에 행여 에리얼이 울음이라도 터뜨리지나 않도록 지켜봐 줘. 우리도, 신도, 필연도 언제나 그 아이에겐 너무도 모질게 굴었지."

 

 "에리얼은 네가 필요해. 네가 맡은 일을 내게 떠넘기지 마!"

 

 "그렇게 되나? 그나저나 엔릴이 걱정이네."

 

  나는 제대로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서둘러 그녀의 집무실을 나와 달려갔다. 언제나 에리얼이 있는 곳엔 진한 석류와 무화과 그리고 이질적인 백합꽃 향이 뒤섞인 묘한 향이 난다. 그 향이 얼마나 강하기도 한지 금방이라도 옷에 배어들어 톨로이를 지나갈 때마다 익숙하고도 불쾌한 향이 난다면 그녀가 가까이에 있던가, 아님 표면적으로 나서지 않은, 몇 안 되는 그녀의 추종자들이었다.

 

  내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복도 복도마다 내걸린 촛불들의 향연이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 지 길을 안내한다. 어린 양이여, 어둡고도 알지도 못하며 보이지 않은 다른 곳으로 가지 마오,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도착한 그곳의 굳게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작은 틈일 비집고 몸을 구겨 넣었다. 그녀만이 거닐던 자줏빛 카펫을 기점으로 양 갈래로 나뉘어 모두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우러러본다. 그녀의 석류와도 같이 붉은 입술이 내뱉는 말 한 단어라도 놓칠까, 또 한 편으로 그녀의 마지막이라는 잔칫날과 같은 묘한 들뜸이 회장 전역에서 느껴진다.

 

  그녀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흔히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들의 존재 정의가 조금 다르다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분명 이들은 악하며 마귀이다. 쓸모 없어진 개는 삶아진다.

 

  그 동안 누렸던 오만과 부귀와 권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 자격도 없는 네 년이 드디어 저들의 손아귀에 넘어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마녀보다 더 마녀 같은 여인이여. 신의 총애를 잃은 존재여. 지금까지 너를 떠받들어준 건 우리 공동체를 대신하여 희생할 제물이기 때문이지. 도미나로써 저들 가운데 유일한 능력이던 예언을 잃어버린 너로선 아무런 힘도 쓸모도 없도다.

 

  희로애락의 분열이 지배하는 이 가운데서 그녀는 정말 그녀 태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순 없는 것인가. 저 멀리, 가장 높은 곳에서의 그녀가 보인다. 신마저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였기에 그녀에게 이런 형벌을 주는 것이로다. 가슴이 미어진다.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가 회장을 가득 메운다.

 

 "기억하라. 이전의 전쟁에서 패한 우리들은 저들만이 신의 사랑하는 사도란 이들 손에 의해 무저갱에 던지어져 잠가짐을 당하였고, 그 위에 인봉을 당하여 천 년이 차도록 만국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천 년이 차매 우리는 비로소 그 옥에서 놓이리라. 잠깐 놓이리라. 자, 그 예언의 때가 도래했도다. 한 때 같은 창조주 안에서 태어난 형제와도 같았던 저들은 제 동생을 돌로 내려쳐 살해한 가인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성전이 시작할 때다.

  우리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던가. 왜 우리는 이토록 차가운 땅바닥에 기생하여 돌팔매를 당해야 하는가? 부정한 저들의 폭력은 우리들의 찬란한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며 파괴해버렸다. 저들이 우리에게 그랬듯 우리를 섬기던 사랑스러운 자들 또한 그들의 머리채를 잡아다가 땅바닥에 내쳐버렸으며 그들이 마땅히 누려할 권리를 빼앗았고 명예를 더럽혔으며 우리에게 선물 받은 생명력을 음란으로 낙인 찍어 천시한다. 이번이야 말로 우리들의 신이 허락해주신 틈을 나는 결코 뱀처럼 놓치지 않으리라."

 

  그녀의 빛을 잃은, 망부석 같은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성전 중, 어떤 희생이 있던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이미 잃었고 앞으로 잃을 우리의 무리를 위해 지금 애도하리라. 짓밟히고, 짓밟히고 짓밟혀 왔던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평화를 얻은 순간에서야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리라.

 

  자, 돌아가자. 우리들의 그리웠던 때에 마지막을 고하고 쫓겨났던 그곳으로. 우린 그곳을 스스로 떠나지 않았었으며 굴복하고 핍박당하였으니, 이제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난 저희를 위해 그 무엇도 희생할 수 있음을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는 신께 맹세한다."

 

  그녀가 숨을 조금 고른다. 여느 때보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루갈이 보이지 않는다.

 

 "보다 도약을 위하여, 나를 비롯한 일곱 명의 장로는 일시적으로 저들의 요구에 응한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저들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주지 않으리라. 후에 아스타르테와 뱀의 홀과 플뢰르 드 리스는 정당한 이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 내려질 것이다. 우리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이가 누구보다도 먼저 에덴에 첫발을 디딜 것이며 달이 지고 해가 뜨기 직전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서약하노라."

 

  그녀는 마지막 말과 함께 뒤로 돌아 이윽고 그녀를 지켜보는 수백 개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녀가 단상에서 사라짐은 곧 예식의 끝을 의미하니, 그 어떤 행위나 말도 웅성거림도 그저 길거리에 나뒹구는 잡담에 불과하다. 그녀의 자리 바로 아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네이트와 그 곁을 지키는 엔릴이 보였다. 아니, 고막을 긁어 내리는 날카로운 엔릴의 웃음소리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드디어 바라던 때가 왔다! 도미나를 사칭하는 가짜는 어서 저들에게 줘버리고 혼탁해진 우리의 피를 정화할 시간이! 네이트님. 당신이 다시 저 위로 오를 때에 내가 당신에게 저것들을 넘길 명예를 주십시오."

 

  네이트는 늘 그렇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 동이 트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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