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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네메시스 (NEMESI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0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여왕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背叛)하여
원수(怨讐)가 되었도다."

예레미야애가 Lamentations
1:1-2

 
네메시스(NEMESIS) 5
작성일 : 17-07-31 20:00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5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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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HWAN)〕

 

 

 

 

 

 "깜짝이야!"

 

  분명 일부로 그랬던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내 코 앞에서 엔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엔투의 얼굴을 칠 뻔했다. 그녀는 허둥거리는 나에게서 몸을 참새같이도 재빠르게 피해갔다. 장난에 성공하여 득의 양양한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녀를 따라 나도 모르게 함께 따라 웃는다. 엔투는 밝은 금발이 반짝거리며 웃을 때마다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 사랑 많이 자랐을 것 같은 티가 난다. 내 친구들 중에서도 저렇게 마냥 해맑았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에리얼이 네가 잠든 이후 한 숨도 자지 않고 널 밤새 내내 지켜보고 있었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 쿡쿡 나를 찌르며 엔투가 말을 잇는다. 나는 그녀의 말에 온 갓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내 잠버릇이 어땠더라, 나 자는 모습 추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괜시리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힐까, 양 손바닥, 손등으로 애꿎은 뺨만 집적거린다. 입 언저리에 비집고 나올 거 같은 미소를 참느라 굳게 입술을 다문다.

 

 "환이는 표정이 참 솔직하구나."

 

 "시, 시끄러워!"

 

 "에리얼! 루갈! 환이가 깨어났어. 우리 이제 물어보자! 참고로 내가 깨운 거 아니다? 나 얌전하게 잘 기다렸다?"

 

 "너 나 깨우려고 했구나."

 

 "안 들려, 안 들려!"

 

  그녀가 양 귀를 막으며 눈을 질끈 감은 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부드럽게 잘 익은 밀밭 같은 엔투의 금발 뒤로 에리얼과 그 곁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는 루갈이 보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줄 천장이 없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오늘은 날이 좋다. 그 둘은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걸어 나와 내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렬하게 쬐는 햇살만큼 가지가 드넓게 드리워진 무화과 나무 그늘이 퍽 시원하게도 보였다. 날 저 아래에 재워줄 만한 친절은 기대하지 말아야 하나 보다.

 

  그녀가 내게로 다가온다. 그녀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걸을 때마다 트여진 긴 튜닉자락 사이로 하얗게 상아 같은 허벅지가 드러났다. 그녀가 뒤집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 얼굴을 내게 보였다. 그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새삼스럽게도. 새삼스럽게도 넋을 놓고 바라본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러나 본 것 같은 아름다움이다.

 

  그 옛날, 그 정의로웠다던 초대의 도미나가 그녀와도 같았더라면 가히 그녀 반대편에 섰던 무리들이 질투에 몸을 비틀만하리라. 그리고 감히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미처 그녀를 사랑하지 못하리라. 장미처럼, 석류 알처럼 붉게 물든 그녀의 뺨과 입술을 칠하기 위해 신은 몇 날 며칠 동안 고심을 했었을까. 나와 달리 그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던 그녀를 사람들이 본다면, 만약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더라면 이 세상 모든 예술가들을 성녀도, 마녀도 아닌 그녀를 화폭에 담고 싶어 탐욕스럽게 달려들어왔을 것이다.

 

 "잘 잤어, 환아?"

 

  나는 차마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끄덕였다. 곁에 있는 루갈이 그런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그의 아니꼬운 시선이 피부에 콕콕 날아와 박힌다.

 

 "너는 무엇을 보고 왔니?"

 

  그녀가 노래하듯 물었다.

 

 

 ****

 

  나는 그녀에게 내가 보고 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알려주었다. 머릿속에서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 눈꺼풀 아래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린다 누구나 그럴 듯 꿈 꾸고 있는 그 당시에는 아귀가 맞지 않는 이상한 점이 있다 하더라고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머릿속으로 정리해가며 말하면 말할 수록,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감지된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던 그들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나는 꿈 속에서 어느 한 소녀를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이방인은 아니었다. 그 소녀는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곤 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루갈도 얼핏 본 것 같았다. 꿈 속에서 내가 있던 장소는 이곳과 다른, 어느 넓은 성전과 같은 곳이었다. 붉게 늘어진 카펫을 양 사이로 그 어떤 로프도 걸치지 않은 채, 여러 가지 색으로 자유롭게 복장을 입던 수많은 무리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밝은 분위기였다. 그 어떤 전쟁의 징조나, 혹은 전시 상황에서의 분위기가 아닌 것만큼은 분명했다. 굳게 닫혀 있던 돌문이 열리고, 이윽고 내 꿈 속에서의 주인공인 소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가 걸음걸음을 내 디딜 때마다 무리들이 환호하며 그녀에게 앞길에 꽃을 던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녀는 에리얼과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닮은 인상이었다.

 

  그녀가 호쾌하게 웃으며 일원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처음 보는, 머리가 긴 남자가 그녀에게 뱀 두 마리가 얽혀 있는 황금색 지팡이와 목걸이를 건네준다. 건네 받은 백합 모양의 펜던트 목걸이가 그녀의 가슴 부근에서 경쾌하게도 흔들린다. 굳이 따져보자면, 그녀는 성격 면에서는 에리얼보다 엔투에 더 가까웠다. 무리들의 성원과 함성에 그녀가 이들로부터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나까지도 느껴진다. 그녀의 왼 팔에는 당연하다는 듯 내가 잘 아는 뱀 한 마리가 들러붙어있다.

 

 "펜던트라면, 이것과 같은 모양이니?"

 

  그녀가 지금까지 옷 안으로 감추어 두었던 목걸이를 내게 내밀어 보였다. 정확히 같은 모양이었다. 좀 더 자세히 묘사해보자면, 꿈 속에 있던 것이 더 낡아 색이 바래있었다.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is). 이건 역대 도미나들만이 물려 받아왔던 펜던트야."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누군가 나를 밀어내고 새로운 도미나가 된다는 예언. 하지만 누구?"

 

  무거운 침묵만이 대답을 대신하였다.

 

 ****

 

 

  폐허를 빠져 나와 겨우 수 백 걸음 떨어져 있던 바위 위에 주저 앉았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는 이방인인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것만 같았고 무엇보다도 혼자 있고 싶었다. 그녀에게 실수라도 저지른 것 같았다. 물론 내 잘못은 아님은 그녀들과 나 모두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저 그들에게 부탁 받은 대로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거짓 없이 모두 토해낸 것 뿐이었다. 그녀가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여기, 우리 외에 예언에 대해서 아는 이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난 괜히 울적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온 것이다.

 

  폐허 근방에는 놀라울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내 눈이 닿는 모든 수평선 너머까지도 간간히 보이는 바위나 돌 조각을 제외하고든 그저 풀밭이 전부였다. 내가 알던 세계와 그녀가 속한 세계 그 어디 중간 즈음의 차원이라는 느낌이었다. 파란 풀잎이 바람에 따라 파도 친다. 망망대해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다. 발이 닿을 수 있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그 때였다. 믿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게 내 눈앞으로 튀어 올랐다.

 

  물고기였다.

 

  나는 이 드넓은 풀밭이 바다와 같다고 생각했지 바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주위에는 손바닥 만한 물웅덩이 하나 조차 없다. 내 눈 앞에서 튀어 오른 물고기가 풀 사이를 마치 물 속에서처럼이나 헤엄쳐 다녔다. 게다가 한 마리가 더 있었다. 두 물고기가 지나가는 길목 사이로 딱 그 포복의 깊은 개울가가 생겨나 그것들이 지나가면서 사라진다. 그렇게 내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헤엄쳐간다. 따라오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사 그렇게 느끼지 않았더라도 난 이 진귀한 풍경에 감탄하여 따라갔을 것이다. 두 마리의 서로 얽어진 물고기가 다시 한 번 크게 튀어 오르다 땅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인기척에 앞을 바라봤다.

 

 "쉿." 낯선 그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잠시 저들은 바쁜 것 같으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비밀로 하자."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남자였다. 태양 아래에서의 후광에 나는 그를 자세히 쳐다볼 수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흰 셔츠가 바람에 자유롭게 풀어헤쳐 펄럭인다. 그는 나로부터 작은 강 하나가 흐를만한 거리에 있다. 아, 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저 반대편에 속한 이다.

 

 "다행이다. 건강해 보이는 구나."

 

  그가 내게 말을 건넨다. 여기서 큰 소리로 그녀를 부른다면 내 목소리가 그녀가 있는 저 곳까지 다다를까.

 

 "오늘은 긴 얘기는 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너를 따라왔어.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오늘은 더 이상 미련이 없어.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건, 그녀도 여기에 있다는 뜻일 테니까."

 

  엔투를 말하는 걸까? 아니, 그는 에리얼을 유념해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언제든지 그로부터 달아날 수 있도록 조금씩 발을 뒤로 내빼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잘 속고 순해 빠졌는지 모르겠어."

 

 "나도 거기에 포함된 거야?"

 

  내가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그의 앞에서 나를 그에게로 인도하던 두 마리의 물고기가 튀어 날아오른다. 그는 그런 자신의 애완어가 귀엽다는 듯 손가락으로 장난친다.

 

 "너는 널 그렇게 만든 범인을 알고 싶지 않아? 왜 너는 네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이상하다고, 부조리하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알고자 하지 않는 거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게? 왜 나는 이곳에서 나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적응하고 있다. 분명 처음에는 그녀를 붙잡고 뭐든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다 갑자기 이길 수 없는 두통에 나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린 것 같았다. 에리얼이 일단 나보고 쉬라고 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런 생각 하는 것조차 버겁겠지. 이젠 저도 어엿한 마녀라도 최면 향을 쓸 줄 알게도 되었구나."

 

  최면 향이라니?너는 대체 나에 대해 뭘 알고 거야?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너는 그녀에게 속고 있어. 그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널 제 곁에 묶어둘 거야."

 

 "하지만 나를 왜?"

 

  내가 반문했다. 그리고 당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그 사실을 확신하지?

 

 "나는 네가 당한 사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목격자. 널 그렇게 만든 범인을 알고 있어. 알고 싶다면 그 날의 사고 현장으로 찾아와. 기다릴게. 네가 원한다면, 그녀는 네 부탁을 들어줄 거야. 늘 그랬듯이 그녀는 네게 약했거든."

 

 

 ****

 

  "에리얼!"

 

  엔투와 루갈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정신 없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나는 있는 힘껏 뛰어오느라 겨우 숨을 고른다.

 

 "저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내가 사고를 당했던 장소, 아니 내가 있던 동네로 잠시만이라도 날 데려다 줘."

 

  고개를 돌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뜬 그녀의 눈초리가 마치 그녀의 어깨를 휘감고 있는 뱀과 겹쳐 보였다. 처음으로, 그 날의 봤던 그녀의 첫인상과 현재의 그녀가 일치 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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