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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네메시스 (NEMESI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0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여왕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背叛)하여
원수(怨讐)가 되었도다."

예레미야애가 Lamentations
1:1-2

 
네메시스(NEMESIS) 4
작성일 : 17-07-31 19:55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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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HWAN)〕

 

 

 

 

 

 다 부서져가는 폐허로 나는 돌아왔다.

 

  아직은 이 밖을 나가보지 못해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아, 우물이란 단어가 제일 적절한 듯 하다. 그녀가 다쳤던 날 데리고 온 이곳은 아주 옛날, 내가 차마 헤아릴 수도 없이 아득한 먼 옛날에 짓다가 만 성당 같았다.

 

  공간을 둘러싼 벽의 높이도 내 키보다 조금 높은 2미터 남짓에 그 높이 또한 제각각 이었으며 화강암 재질의 벽돌 벽돌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하얀 물감으로 용 그림자가 그려져 있었다. 바닥은 이미 색이 바랜 대리석. 중간중간 균열이 가고 깨져있어 걸을 때마다 신중을 기울여야 했다. 예배를 관장하는 곳인 것 같은 작은 계단 위의 단상에는 양 팔걸이가 사자로 조각된 무게감 있는 의자 하나 만이 놓여져 있다. 막을 천장도 없는 하늘 위로 햇볕에 반사되어 불타오르듯, 황금빛으로 빛난다. 순간 저 진짜일까, 본능적이고도 불온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의자를 거점으로 반대편 저 문도 달리지 않은 출구까지 이어진 레드 카펫이 먼지가 뽀얗다. 그리고 교회에 필히 있을 법한 장의자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다. 내가 저 중 하나에 내가 덮었던 이불과 베개가 있다.

 

  그리고 사실, 거의 유적이라고 불러도 손상이 없을 이 성전을 다시금 살펴보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성전 한 가운데를 높게 차지하는 나무 한 그루. 좌우간.

 

  어느 새인가 나의 아름다운 생명의 은인의 곁에 또 다른 두 명이 나를 응시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당신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지요?"

 

  나의 질문에 그녀가 기쁜 듯이 입을 크게 벌리다가 이내 입을 닫아버렸다. 마침내 바라던 왕자를 만났지만 목소리를 잃어버려 어찌 도리 할 방법이 없던 인어처럼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들어 노래하듯 대답했다.

 

 "에리얼 (Ariel)이라고 불러줘. 그리고 여기서는 괜찮지만, 우리끼리는 괜찮지만 행여 나의 무리 일원을 만나게 된다면 이름대신 나를 도미나(Domina)라고 불러줘. 나는 무리를 이끄는 수장(首長). 나의 일원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곤 하지.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좋아. 몇 년을 살아왔던, 일단 연배는 너와 난 비슷해 보이니까."

 

 "좋아, 에리얼!"

 

  난 호쾌한 사람이다. 억지로라도 벽을 허물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반말을 그녀에게 던져보았다. 이로써 아름다운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소개할게, 나의 사제들이자 친구들이야. 이 어린 친구가 루갈반다(Lugalbanda), 줄여서 우린 루갈이라 불러. 그리고 이쪽이 엔투(Entu)."

 

  나보다 대략 네 다섯 살 어려 보이는 남자애가 심드렁하게 날 쳐다본다. 고양이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그는, "괜찮습니다."라는 한 마디와 함께 그저 고개를 한 번 까닥이고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쟤는 에리얼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야."

  엔투라고 부르는 여인이 그녀의 길고 구불거리는 금발을 어깨 뒤로 넘기며 장난스런 미소를 내게 짓는다. 귀여운 상이다. 그녀가 짙은 잿빛 홍채를 반짝이며 내 두 손을 와락 붙잡아 나는 조금 놀랬다.

 

 "네가 환이구나! 에리얼에게 많이 들었어! 만나서 반가워! 귀엽게 생긴 게 내 취향이네-? 그런데 너 좀 피곤해 보인다. 아, 당연한 건가? 거의 반 빈사 상태로 에리얼이 주워왔으니."

 

 "엔투, 놀리지 마."

 

  에리얼이 가볍게 웃는다.

 

 ****

 

  아, 농도 짙은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만큼 피로 또한 계속 쌓여갔다.비록 나는 웃고는 있지만, 반갑긴 했지만 새로운 만남, 새로운 환경을 도저히 한꺼번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도 좀 적응하며 익혀갈 시간이 필요해.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체감 시간은 이미 며칠이고, 지난 기분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엔 그녀가 있다. 나의 시선을 느낀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았다. 잔뜩 위축된 신경에 수축된 혈관이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자마자, 눈에 담자마자 예민해진 손끝에서부터 가슴 속 깊숙한 심장까지 이완됨을 느낀다. 최면이라도 걸린 기분이다. 길을 잃고 울며 헤매던 어린아이가 끝내 집을 발견한 듯 하였다.

 

 "자, 내가 더 알아야 할 게 있을까? 더 다른 사람은 없는 거지? 이제 쉬어도 될까....요, 에리얼?"

 

  조금씩 몽롱하고 아파오던 두통은 그래도 많이 사그라져 간다. 나에 대한 복잡한 고민을 하기를 포기하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이 상황, 그리고 눈 앞에 있는 그녀에 대해 집중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아까 그녀가 내게 속삭였던 때처럼 내 두 어깨를 짓누르던 심적 부담감이 한결 가벼워진다.

 

  길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스스로 최면을 걸듯 되뇐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실들에 대해 미처 거부하기도 전에 알아버렸다. 낯선 이에 대해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알아버렸다. 어떠한 사람에 대해 알아버렸다는 건, 그와는 더 이상 낯선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와 나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됨을 느낀다. 나는 이제 그녀를 외면할 수 없게 되어버렸으리라. 은인이라는 족쇄를 내 발목에, 나의 의지로, 걸어 잠근다. 그녀는 도리어 나를 쉬라고 다정하게 속삭이면서도 정작 내가 차분하게 앉아 내 상황을 이해할 틈조차 주지 않는, 배은망덕한 고뇌에 잠시 빠져들었다.

 

  돌아 가고 싶다, 내가 있던 곳으로. 그래서,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녀는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고 나는 지금 괜찮으며 돌아가도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쉬고 싶다. 지친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입술은 움직였지만 소리를 뱉어내진 않았다. 아무렇지 않아 하기엔, 그러기엔 내 마음이 너무 아려온다. 환상 같은 연극의 무대가 현실이 되어 마주해 도망가고 싶을 만큼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애써 울음을 삼킨다. 꼴 사납게 굴고 싶진 않다. 주제에 자존심이라고 부리고 싶은 것이다. 적응이 되고 나니,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피로가 몰려온다. 내 삶에서 이렇게 시간이 길게 느꼈던 적이 있었나.

 

 "환아, 괜찮아?"

 

  피로가 역력해진 나의 기색을 살펴보러 그녀가 어린 새처럼 날아온다. 식은 땀으로 젖은 내 앞머리를 길고 거미 같은 손으로 넘겨준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되려 저가 먼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네가 그렇게 나오면, 당신이 먼저 울 것 같으면 내가 괜찮아할 수 밖에 없잖아.

 

  당신은 나로 하여금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바보 같게도 나는 그 누군가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막연하게, 그저 막연하게만. 나는 당신 같이 아름다운 사람을 이전에 알지 못했어, 당신도 괜찮다면, 당신과 조금 더 함께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당신이 언젠가 나를 반드시 돌려보내 준다 약속하였으니, 나를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지켜준다 하였으니까. 그런데, 내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아까부터 식은 땀이 그치지 않고 턱을 따라 내 셔츠를 적신다. 목덜미가 뜨거워진다. 아까 그 뱀에게 고의로 물린 자국에서다. 그녀 품 안에서 스러지는 엎어졌다. 당황한 그녀는 그런 나를 안아 다시 내가 누워있던 장의자에 뉘였다. 그녀가 담요 따윈 거칠게 던져버렸다.

 

 "엔투, 젖은 물수건을 가져올 수 있어?"

 

 "알았어, 에리얼!" 그 인형 같은 아이가 쪼르르 뛰어갔다.

 

 "나,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우물거렸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스타르테가 괜찮을 거라고 그랬었으니까. 아직 네가 여길 온전히 적응하지도 못하였는데 내가 성급했어. 그러니까 이겨내 줘. 조금만 견뎌 줘. 내 잘못이야. 내가 여기에 있어서, 내가 네 곁에 있어서. 아아."

 

  석고 조각 같던 에리얼의 예쁜 얼굴이 나 때문에 일그러진다.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 때문이라면, 좀 더 마음 아파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타르테의 독이 네겐 조금 강했나 봐. 환아, 걱정하지 마. 죽지 않을 거야. 내가 널 어떻게 해서 발견했는데! 어떻게 다시 되살려 놓았는데!" 그녀가 의자를 세게 내리쳤다.

 

 "다신 잃어버리지 않아."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어깨에서 줄곧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그녀의 귓가에 혀를 날름거리며 뭐라고 속삭인다. 저게 날 이렇게 만든 원인이랬지? 놀라 갑자기 뜬 그녀의 동공이 흔들린다. 아스타르테를 한 번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녀가 다시 기쁜 듯이 내게 속삭인다.

 

 "예언의 열병이야, 환아. 아아. 하룻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나을 거야. 걱정하지 마. 왜 진작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지? 나도 그랬었어. 너보다도 더 최악의 상황이었는데도 봐, 이렇게 멀쩡하잖아. 조금만 견뎌 내줘."

 

 "그게 뭔데?"

 

  시야가 흐릿해진다. 옷이란 옷은 죄다 던져버리고 싶다. 순간 사고 당시의 계절은 겨울이었던 것을 떠올랐다. 여기 이곳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거의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다.

 

 "더워, 답답해. 죄다 찢어버리고 싶어."

 

 "에리얼, 여기 물!"

 

 "엔투, 네 손이 더 차가우니까 네가 환이 이마에 갖자 대 줘."

 

  한결 나았지만 뜨겁게 타버릴 것 같은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환아, 잘 들어. 넌 이제 아주 긴 꿈을 꾸게 될 거야. 원래는 나의 몫이지만... 어쨌거나 잘 기억해 줘. 너는 예언과 마주 하게 될 거야. 우리가 평화로운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는 작은 틈과 같은 힌트를 너는 얻어가지고 올거야. 네가 꿈 속에서 보는 모든 것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내게 알려줘."

 

  에리얼, 내가 이렇게 아파 죽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나보다도 더 중요해?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그녀에게 서운한 감정이 은연중에 퍼진다.

 

 "내가 다시 아침에 눈을 뜬다면, 내가 감사의 선물로 넌 나의 아도니스이자, 아티스이자 바알이 되어 있을 거야. 도미나의 연인. 이름뿐이라지만, 대타라지만, 넌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이 세상 어떤 것도 널 아프게 하거나 해치지 못해. 내가 네게 그런 이름을 붙여줄게."

 

  잠시만, 날 뭐라고? 그녀가 나의 이마에 따뜻한 입술을 대었다. 이윽고 나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후에 들어본 바로는 난 여기서 장작 사흘 동안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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