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의문의 목걸이

　가끔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에 몸을 감추고 싶을 때가 있다. 밝은 불빛에 몸을 맡기면 깊은 터널 같은 어둡고 깊숙한 마음에 빛이 투영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밝은 네온사인에 몸을 맡겨 거리를 미친 듯이 뛰었다. 서동현을 보내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서동현은 민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민아는 그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강민!]

　“강윤! 잘 지내고 있어?”

　민은 집으로 들어가기 전, 계단에 걸터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윤의 목소리를 들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민에게 윤은 늘 같은 자리에서 지금처럼 웃게 하는 동지였다.

　[공무원은 나라 잘 지키고 있다]

　“그래, 강윤이 나라 지켜야지.”

　[여기는 낮인데, 거긴 새벽 아냐? 안 자고 뭐하냐?]

　“술 한 잔 했어.”

　[얼른 복귀해야지. 아버지가 너 취임식 준비하시는 것 같더라. 발령 내자마자 미국지사부터 둘러본대서 내심 서운하셨나 봐. 단단히 준비하실 모양이야]

　“얘기 들었어. 곧 귀국할 것 같다.”

　[얼른 와라. 술친구 없어서 답답하다]

　또 한 번 피식 웃는 민이다. 윤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주위에서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얼른 사무실 들어가.”

　[민아, 정민아 씨 말야.]

　“아니, 하지 마.”

　[민아.]

　“듣고 싶지 않다.”

　[알았다. 곧 보자.]

　민은 휴대전화를 껐다. 민아가 자신을 꼭 만나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민아는 생각보다 승아의 죽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니의 죽음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 시기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봤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자신에게도 서로를 지켜보는 충분한 시간을 필요하다. 정민아를 만난 것이 불과 채 5개월도 되지 않았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알려고 하다 보니 얽히고 설켜 복잡해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 * *

　민이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셔츠 버튼을 잠그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김비서가 현관문을 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민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누가 왔다 갔어요?”

　“한국에서 택배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누구한테?”

　“주소는 정확하게 적혀 있지 않고 ‘서울시 강북구’ 정도로만 적혀 있습니다.”

　민은 박스 겉포장을 뜯었다.

　“사장님, 저는 내려가서 차 대기 시켜놓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겉포장을 뜯자, 손 한 뼘 크기의 하얀 박스 하나가 형태를 드러냈다. 민은 하얀 박스 뚜껑을 열었다. 박스 안에는 절 표식 목걸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분명 민아의 목에 걸려 있던 그 목걸이었다. 목걸이에 새겨진 이니셜도 ASL/AMJ 동일했다.

　“김비서님, 한국에 연락해서 정민아 씨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했는지 체크해 보고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1시간 이내로.”

　“알겠습니다.”

　민은 회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목걸이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늘 민아의 목에 있던 목걸이다. 그녀가 시간이 생길 때마다 만지작거리던 목걸이다. 절대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잃어버렸다면 왜 그녀가 아닌 자신에게 온 것일까. 그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엘리베이터가 25층에 섰고 민은 곧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미국 지사 임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민은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곧잘 이곳에 들렀다. 다른 볼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낯선 이국땅에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보금자리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민의 소개를 마치자, 민은 자신을 바라보는 10명의 임원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CV 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미국지사의 영향이 컸습니다. 초창기부터 힘써주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취임 전에 미국지사를 가장 먼저 둘러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기업으로 제2의 도약을 하기 위해 한국 지사와 미국 지사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앞으로 더 할 일이 많습니다. 어려운 점이 발생했을 경우, 주저 말고 계열사 간 소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든 보고 바랍니다. 그럼, 각 계열사 보고부터 듣겠습니다.”

　CV 그룹의 식문화 파트, 엔터테인먼트 파트, 건설 파트, IT 파트 등으로 보고가 이어졌다. 민은 임원들의 보고를 들으며 계열사를 평가했다. 필요한 내용은 간단하게 정리했다. 앞으로 CV 그룹을 끌어가기 위해서는 임원의 보고를 선별해서 듣고, 각 계열사 간의 시너지를 높일 방법을 찾는 것이 자신을 포함한 지주사의 역할이었다. 계열사의 브리핑이 끝나자 생각했던 1시간보다 1시간이 더 지나 있었다. 민은 회의실을 나섰다.

　“알아봤습니까.”

　민은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김비서에게 말했다. 회의 시간 내내 신경이 쓰였다.

　“네, 연락 왔습니다. 아이보리 원피스에 검은색 구두를 신었고, 평소와 다름없는 손목시계와 목걸이를 착용했다고 합니다.”

　“목걸이요?”

　“네, 여기 사진 같이 왔습니다.”

　회사에서 팀 사람들과 회의하는 모습이었다. 긴 머리카락도, 하얀 얼굴도, 목에 걸린 목걸이도 모두 그대로였다. 민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사진을 확대해 민아의 목에 걸린 목걸이와 대조해 보았다. 동일한 것이었다. 동일한 목걸이가 2개였다. 하나는 민아에게, 또 하나는 한국 땅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와 지금 자신의 손에 있다.

　* * *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민은 내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새겨진 이니셜을 되뇌어 보았다. < ASL/AMJ >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이 이니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이니셜이라고 한다면, A로 시작하는 성? A로 시작하는 성이라면 고작해야 ‘아’씨 정도이다. 만약 뒤에 'u'가 생각된 것이라면 ‘유’씨가 될 수도 있다. 성이 ‘아’라고 하면, 이름이 성리, 송로, 서리, 선루, 손리.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민은 이 이니셜이 새겨진 목걸이를 정민아가 착용하고 있었다는 것에 집중했다. 정민아는 누군가의 두 명의 이니셜이 새겨진 목을 목에 걸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것을 소중히 여겼다. 왜? 무엇 때문에? 민은 오른손 손목에 목걸이를 걸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흔들거리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이니셜이 거꾸로 보였다. 그 순간, 민은 흔들거리던 목걸이를 낚아채 다시 이니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거꾸로 보니 보였다. 분명, 두 번째 이니셜은 정민아를 거꾸로 해놓은 이니셜이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이니셜은…. 첫 번째 이니셜은 이승아. 이 두 이니셜은 아승이, 아민정. 두 자매의 목걸이…? 성이 '아' 인 자매. 그렇다면 왜 이름을 이렇게…. 민은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승아의 목걸이 일수도 정민아의 목걸이 일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목걸이는 두 개였는지도 모른다.

　비행기는 정직하게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섰다. 민은 손에서 목걸이를 놓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놓을 수가 없었다. 이 목걸이만 있다면, 답답한 지난날의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심 같은 것이 있었다. 두 달 만에 돌아온 한국의 공기는 한국을 떠날 때와 사뭇 달랐다. 한국을 떠날 때, 민의 머릿속에는 하나 밖에 없었다. 해결하자고. 끝을 보자고. 아직 그 어떤 것도 끝을 보진 못했다. 떠날 때와 바뀐 것이 있다면, 의문점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민의 생각이 여기까지 머물 즈음 되니 차는 회사 정문 앞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3시. 아버지가 준비하신 취임식 시간이 다가왔다. 30분 후에 민은 취임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민을 태운 차가 회사 정문 앞에 서자 전 계열사 임원들이 민을 향해 서 있었다. 민이 차에서 내리자 임원들은 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민은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둔 목걸이를 힘껏 쥐었다. 회사 정문을 지나가던 직원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민 쪽으로 시선을 모았고, 민은 경호원과 함께 VVIP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00여 명의 임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취임사 준비되었습니다.”

　민은 김비서에게서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취임사를 받았다. 한 번 쭉 읽고 나서 그대로 김비서에게 건넸다.

　“다 보셨습니까.”

　“하고 싶은 말 하면 되는 게 취임사 아닙니까. 하고 싶은 말 해야죠.”

　민은 김비서를 향해 슬쩍 미소 짓자, 김비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민이 대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취임식 안에 들어올 수 있는 100여 명의 임원들과 지주사 홍보팀과 법무팀, 재무팀 정도의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대강당 안에는 200여 명 즈음 있었다.

　“여기 강당에 모여주신 임원진들, 그리고 각 사무실에서 방송으로 보고 있을 전 임직원 분들, 여러분이 CV그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든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설령 좋지 않다면, 제가 책임을 질 것이며, 결과가 좋다면 모두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항상 선봉장에 설 것이며, 여러분의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CV그룹의 주인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회사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절 믿고 함께 해주십시오. 2025년까지 세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도록 각 부서 모든 임직원분들은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은 취임사를 끝내고 임직원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대강당을 나왔다. 10시간 이상을 날아왔기에 몸도 피곤했고, 목걸이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야 했다. 민은 김비서를 제외한 나머지 비서진을 모두 돌려보내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그 순간, 익숙한 향기가 번져왔다. 누구나 사람에게는 고유한 향기가 있어 그 향기로 그 사람임을 판단할 수 있기 마련이다. 정민아. 눈앞에 있는 그녀에게서 그녀의 고유한 향 향기가 번져 온다. 윤은 정민아의 그 향이 싫다고 했다. 자신의 앞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정민아를 못 본 척 지나쳤다. 아버지가 정문으로 들어오셨다. 강진만 회장은 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인사는 잘 마무리 했니?”

　“네, 지금 임원진 만나고 나오는 길입니다.”

　“앞으로 네가 할 일이 많구나.”

　“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잘 할 거다.”

　민은 차로 이동하며 아버지와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가에 들어서자 어머니와 윤이 민을 맞이했다. 두 달 만에 만나는 어머니도, 윤도 반가웠다. 민은 저녁 식사 시간 오로지 가족에게만 집중했다. 집 밥의 힘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민은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식탁에서 나눈 대화가 가족의 화목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식사 시간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매일 아침 테니스를 치신다는 것과 어머니의 매일 오후 시간은 봉사활동이 주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회사에 계신 동안 어머니 또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것도. 윤은 한 달 전에 특별 승진을 했다고 한다. 윤은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것이다. 윤의 눈동자가 늘 그렇게 말했다.

　“너 승진했다는 말 왜 안 했어?”

　“이렇게 너 들어오면 놀래켜 주려고. 언제고 할 승진 좀 빨리 한 것 뿐이야. 그리고 미국에 있는 너한테 얘기해봤자 축하한다. 얘기 밖에 더 듣겠어? 같이 술 한 잔 할 수가 있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가 있나. 같이 미치도록 놀지를 못하잖아.”

　식사가 끝나고 민과 윤은 2층으로 올라와 술 한 잔 더 했다.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동지를 만났다.

　“미친 듯이 놀 수 있는 나이는 지났지.”

　“노노, 집에서라면 가능하지. 미친 듯이 술 푸고, 미친 듯이 얘기하고. 밖이 아니라면. 아, 슬프다. 우리도 이제 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됐구나.”

　“그러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