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운명 읽는 남자
작가 : kory
작품등록일 : 2017.7.31

1. 세 가지 사건에 모든 실타래가 얽혀 있다.

- 1988년 첫 번째 사건 : 세 명의 사상자 발생
1988년 88올림픽으로 세상은 떠들석했으나 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평화롭기만 했던 한 여교수의 남편과 아들이 하루아침에 사망.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던 여교수는 미치광이가 되어 강릉의 한 암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8살이었다. 아이의 눈은 8살짜리답지 않게 깊고 섬뜩했다. 아이가 상대의 눈을 깊게 바라보면 상대는 움찔했다. 아이는 여교수의 눈에서 그녀의 5년 후를 읽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주지스님의 경고를 잊고 발설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고 만다. 아이는 그녀의 눈에서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 1989년 두 번째 방화사건 : 8살 여자아이 의문의 사망
아이는 타인의 운명을 읽는 눈을 갖고 태어났다. 그것은 도저히 없앨 수 없는 아이의 운명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모르던 한 남자아이. 분홍색 꽃신을 신은 첫사랑 여자 아이 눈에서 화재로 죽는 잔상을 읽어낸다. 여자 아이는 죽었다. 의문의 사고로 분홍색 꽃신을 신은 여자 아이는 사망하고 말았다.

- 25년 후, 나머지 하나의 사건 :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지 25년 만에 다시 하나씩 모이게 된다. 다들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암자의 주지스님은 25년 전 덮어진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언젠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고 말했다. 실타래는 결국 풀린다고 했었다.

2. 모든 등장인물은 용의선상에 있다.

악몽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그, 강민. 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듯 세월에 몸을 맡긴 채 살았던 25년이 지난 어느 날, 죽은 첫사랑과 똑같은 잔상을 가진 여자를 면접장에서 만난다. 잔상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서도 다른 잔상이 보이기 마련인데, 25년 전 불에 타 죽는 그 여자아이 같은 잔상을 가진 이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죽음을 목격한 자, 죽음을 방관한 자, 죽음을 파헤치려는 자, 죽음을 감추려는 자,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25년 전 그 암자에 있던 사람은 주지스님, 보살, 여교수, 죽은 여자아이, 검사 강윤. 25년 전 사건과 관련된 인물. 이승아와 똑같은 잔상을 가진- 면접장에서 만난, 정민아라는 여자, 그리고 타인의 운명이 보이는 강민.

사건을 풀어갈수록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사건을 해결해 갈수록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실타래는 의문의 방화사건을 낸 자가 쥐고 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마지막 사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16] 재회(再會)
작성일 : 17-07-31 19:36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742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6] 재회(再會)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민아의 말에 그녀를 차에 태웠다. 호텔에서 등명락가사 까지는 한 시간 남짓. 헤드라잇에 의지해 칠흑 같은 도로를 달렸다.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가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아마 정민아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민이 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그때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그 마음이 민의 가슴에 담겼다.

 

 “갑자기 왜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서요.”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는 그녀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찾지 않으면 그녀를 만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게 딸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 했을 테니. 그녀에게도 엄마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린 나이였다. 그녀가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녀에게 엄마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지금 그녀는 덤덤해 보인다. 회사 행사 뒤라 편안 트레이닝복 차림에 후드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 옷차림만큼이나 편안해 보였다.

 

 “엄마를 만나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정민아의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긴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민은 다그치지 않았다.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더 큰 이유는… 제가 풀어내야 할 것들이 있고, 그보다 더 큰 건 언니를 보고 싶었어요.”

 “언니?”

 “저보다 4살 많은 언니….”

 “엄마와 같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데.”

 “엄마와 같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예요.”

 

 그녀는 언니 이야기를 꺼내는 중에 여러 번 쉬었다. 그녀는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했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마음은 참 무거워보였다. 언니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져왔다. 엄마의 무게보다 언니의 무게가 더 큰 아이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옅고 작아요.”

 

 4살 어린 아이가 무슨 기억이 있을까. 그 나이에는 기억할만한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언니에 대한 기억은?”

 

 민아는 민의 질문에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언니를 그려보았다. 언니는 늘 자신의 것을 먼저 내놓는 아이였다. 민아가 갖고 싶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양보했다. 절에서 숨어 지낼 때, 언니를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밤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언니는 민아에게 아주 좋은 엄마이자 아빠였고, 아주 좋은 선생님이었다.

 

 “아주 옅지만 커요.”

 

 민은 기억에 대한 그녀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민에게 9년간의 절 생활은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강하고 컸다.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없다면 지금의 강민은 없었을 테니까.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저한테는 한없이 착했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당당하고, 씩씩하고. 이것도 정확한 기억은 아니에요. 그저 막연한 느낌이 그랬다는 것 뿐이죠…. 언니는 한 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한 쪽 눈에 의지해 사물을 봤죠. 그래서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얼굴을 만져보곤 했어요. 그게 제가 갖고 있는 언니의 기억 전부예요.”

 

 그녀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함께 나눈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민에게도 있다. 그러니 그녀에게도 언니란 존재는 컸을 것이다. 자신에게 윤이 그랬던 것처럼. 힘든 일 많았던 자신의 인생이 가끔 행복했던 이유는 바로 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그 외에도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차를 절 앞에 대자, 인기척이 났는지 누군가 절에서 나왔다. 헤드라잇 때문에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민아와 민은 차에서 내렸다. 절에서 나온 분은 주지 스님. 민은 주지스님께 합장해 인사를 했고, 옆에 서 있던 민아는 그저 고개만 숙여 예의를 표했다. 주지스님은 민아와 민을 여러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서서 걸었다. 주지스님은 한 번도 사람을 그냥 보고 지나치신 적이 없다. 짧은 말 한 마디라도 건넸는데 오늘은 아무 말씀도 없었다. 손님방에 들어서자, 박 씨 보살님이 국화차를 세 잔 가지고 나왔다.

 

 “보살님, 멀리서 손님이 오신 것 같구려.”

 

 주지스님은 만난 지 30분 만에 처음 말문을 열었다. 박씨 보살은 미소를 지으며 스님 앞에, 민이 앞에, 그리고 마지막 민아 앞에 차를 내려놓으며 처음 얼굴을 들었다. 그러자 이내 표정이 굳어지고 만다. 쏟을 뻔한 차를 민이 간신히 잡았다. 박씨 보살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민아는 아직 정확히 느낌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민정… 아니 민아…?”

 

 민아의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엄마의 기억이 없었다. 엄마가 불러준 두 개의 이름. 두 개의 인생. 서글펐던 지난 세월. 그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한 번에 정리되는 것 같은…. 눈에 맺힌 뜨거운 것들이 민아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겨우 4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다. 그리고 25년을 떨어져 지냈다. 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느껴지는 정과 그것을 아우르는 어떤 느낌이라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민아의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먹먹해졌다. 자신의 30년의 세월에 대해 ‘나 많이 아팠다고. 나 많이 힘들었다고.’ 마음 놓고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안도감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민아는 떨궜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대로다. 미국 절에 있을 때 엄마와 언니의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마당에 늘 엄마와 언니 얼굴을 그렸다. 그렇게 10년을 그리고 20년을 그리니 마음에 새겨졌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나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랬지만, 잊지 않기 위해 마음에 담은 엄마 얼굴이었다.

 

 “예쁘게 잘 컸네.”

 

 민아는 눈물을 닦아냈다. 자신의 손을 잡은 엄마에게서 손을 빼내었다.

 

 “미안하구나.”

 

 박 씨 보살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엇이 미안한 것인지 괄호 안에 들어간 말은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만해요. 사과 받자고 온 게 아니에요. 언니…가… 보고 싶어 왔어요. 가까이 있죠?”

 “그래, 가까이에 있다.”

 “언니만 보고 갈게요.”

 

 박씨 보살은 길을 안내했다. 절에서 비탈면을 내려오면 작은 납골당 하나가 있다. 그곳은 민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매달 4월이면 승아를 만나러 오던 곳이다.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근무를 하는 납골당 직원은 없을 것이다. 박씨 보살은 납골당 앞까지만 배웅했다.

 

 “끝에서 두 번째다.”

 

 민은 납골당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춰 섰다. 끝에서 두 번째 자리는 민도 아는 자리다. 끝에서 두 번째 자리. 끝에서 두 번째 자리…. 승아의 자리. 승아 자리에 왜? 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뜨거워지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제주도에도 가지 못할 만큼 어두운 하늘이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싶게 반짝이는 별들이 떠 있다. 승아의 자리… 정민아가 그토록 기다리다 찾아온 언니의 자리…. 언니의 자리. 정민아의 언니가 승아. 승아…. 승아….

 

 “저는 25년간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씨 보살은 민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찾은 승아였는데, 승아는 다들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찾았습니다. 승아와 조금이라도 연결된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승아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바라고 바랐는지 모릅니다.”

 “다 내 업이다. 내 팔자 때문에 내 딸들이 피해보는 게 싫어서 선택했던 길이다.”

 “지난 번 승아 기일 날, 이 근처에서 보살님을 뵈었을 때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그 이상했던 마음을 풀고 갔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민은 천천히 납골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아의 모습이 보였다. 민아는 승아의 사진을 부둥켜안았다.

 

 “언니 나야, 민정이. 너무 오랜만이다. 그치? 마지막 떠나던 언니 모습이 너무 아프고 애처로워서… 언니 볼 용기가 안 났어….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언니가 보고 싶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언니…. 너무….”

 

 민은 그 모습에 마음 한켠이 먹먹했다. 정민아는 이승아의 동생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고이 새겨두었던 승아에게 정민아라는 동생이 있었다.

 

 * * *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 민과 민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경력사원 면접 때 민아의 눈에서 본 잔상은 이렇게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승아와 민아의 운명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민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창문 좀 열게.”

 

 민은 창문을 열었다. 바다 내음이 섞인 공기가 차 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방관하다 승아를 잃었다. 뒷짐 지고 서 있다 승아를 놓았다. 그래서 괴로웠다. 평생 괴로웠다.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결심하고 결심한 자신이었다. 민아를 잃을 수는 없다. 민아를 지켜야 한다.

 

 “성공하고 싶었어요.”

 

 무거운 공기가 흐르던 차 안의 적막이었다. 민아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공부를 참 열심히 했어요. 무시 받지 않고 성공하려고. 성공해야 언니의 죽음을 밝혀낼 수 있으니까. 어떤 끄나풀이라도 잡아야했어요. 강 민씨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일 거예요. L그룹과 연관된…. 제가 나쁜 사람이 돼도 상관없어요. 전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았을 뿐이에요.”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제가 해요. 할 수 있어요. 벌써 25년이에요.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그 누구도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누군가 필요했어요. 언니 인생이 너무 안타깝잖아요. 아프게 생을 마감한 9살 언니 인생, 안 됐잖아요. 너무 안 됐잖아요….”

 

 민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민아의 볼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 내렸다. 민은 차를 한 쪽으로 댔다. 민아는 한 번도 소리 내 울어보지 않은 사람처럼 울먹거림을 삼켜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슥슥 닦아냈다. 민은 그런 민아의 손을 잡았다. 자신의 품에 민아를 안았다. 민아는 한참동안 그렇게 민에게 안겨 있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승아를 그리워하는 동안, 이 아인 마음에 무거운 짐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세상은 강릉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죽어간 9살짜리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것과 부딪히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을 것이다. 민은 민아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그렇게 민아는 한동안 민의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 * *

 

 "민아! 강민! 어딨어?”

 

 회의가 끝나고 룸으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민과 술 한 잔 하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윤은 30분 동안 민을 찾다가 민이 방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새벽에 어딜 갔을까. 윤은 룸에 있는 진토닉을 한 잔 따라 테라스로 나갔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무던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계장이 메일로 보낸 서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승아는 왜 이름을 바꿔야했을까. 이름을 바꿔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말이 되는 이유에서 말이 안 되는 이유까지. 승아의 이유는 그 어디쯤이었을까. 동생은 아민정. 그때 갑자기 윤의 머릿속에 정민아 팬던트 이니셜이 스쳐지나갔다. ASY/AMJ 왜 갑자기 그 이니셜이 생각났을까. 무슨 이유가 있었다면 동생도 ‘아’씨 성을 버려야 하지 않았을까. 아승이, 아민정. 승아가 이름을 ‘아승이’ 라는 이름을 ‘이승아’라고 바꿨다면. 앞뒤를 바꾸어 이름을 계명했다면 동생 ‘아민정’ 은 ‘정민아’라고 이름을 바꾸지 않았을까. 정민아? 민의 방에서 나오면서 그윽한 향냄새를 내뿜던 그 여자 이름이다. 하지만 세상에 정민아라는 이름이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서계장님. 제가 너무 늦었죠.”

 [아… 지금 몇 십니까? 아… 4시 조금 안 됐네요. 이 새벽에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갑자기 부탁할 일이 좀 있어서요. 아민정에 대해 혹시 나온 게 있나요?”

 [아니요, 아씨 성이 특이해서 대한민국에 몇 사람 없었는데, 그 사람들한테 뭐 나온 건 없었습니다. 특이사항도 없고요.]

 “그럼 아민정 말고 정민아 쪽으로 조사 방향을 바꾸죠.”

 [정민아요? 왜… 갑자기?”]

 "잡히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출근하자마자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거 말씀하시려고 이 새벽에…?]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부터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생각나 전화 드렸습니다.”

 

 전화를 하고서야 새벽 4시가 다 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텔 입구에서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자신의 차다. 아마 민이 타고 어딜 다녀오는 모양이다. 스위트룸에 묵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직선도로를 타고 바로 들어오면 된다. 민이 탄 차는 좌측으로 돌아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다 차에서 누군가 내렸다. 머리가 긴 걸로 봐서는 여자다. 윤은 그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보기 위해 테라스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키나 체형 등으로 볼 때 딱 정민아다. 아무리 봐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여자다. 첫인상도 강했고, 그 후로도 묘하게 신경 쓰이는 여자. 민은 같이 내렸다가 그 여자가 숙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차에 올랐다. 잠시 후 민이 들어왔다. 윤은 룸 입구에 서서 민을 기다렸다.

 

 "뭐 왜? 죄졌어? 이 새벽에 어딜 다녀와?”

 “그냥… 바람 좀 쐬러.”

 “누구랑?”

 “알면서 뭘 물어?”

 

 윤이 누구랑 다녀온 줄 몰랐다면 ‘혼자?’ 라고 먼저 물어봤을 것이다. 윤이 ‘누구랑?’이라고 물었을 때는 이미 누군가 다녀온 것을 안다는 것이고, 확인차원일 가능성이 크다. 검사 특유의 심문을 민에게 써먹기에는 너무 오래 가까이 지냈다.

 

 “뭘 알고 싶은 거야, 강윤?”

 “그 여자랑 오밤중에 나가서 지금까지 뭐하고 들어왔는지 묻고 싶은 거잖아.”

 “다녀올 곳이 있었어.”

 “어딜?”

 “윤아, 나 너무 피곤하다. 심문은 날 밝으면 하자.”

 

 민은 2층으로 올라갔다.

 

 “저번에 VVIP 시사회 때 너 주먹 휘두르는 바람에 국회의원 고소 들어온 거 내가 정리 했다.”

 “미안하다, 윤아.”

 “내가 검사지, 변호사야?”

 

 민은 2층으로 올라가려다 윤이 있는 소파 쪽으로 와 앉았다.

 

 “윤아.”

 “그래.”

 “미안하다.”

 

 민은 윤에게 검사라는 직업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윤이 검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 일류대 로스쿨에 들어가 똑똑한 놈들 사이에서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밤새며 공부했던 얘기를 부모님께 들었다. 그때 민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여러 번 실려 갔었다는 얘기도 선미를 통해 들었다. 민은 무엇보다 윤의 말을 기억한다. 부모님 없이 자란 자신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검사라는 길 뿐이었다고.

 

 “무슨 일 있어?”

 윤은 그제 서야 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승아는 저 세상으로 떠나고서도 나를 참 힘들게 한다.”

 “새삼스럽게.”

 “내가 안고가야 할 몫이지.”

 “내 몫이기도 해.”

 

 민은 윤 앞에 있던 진토닉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승아… 동생을 만난 것 같다.”

 “누구?”

 

 민을 윤을 쳐다보았다.

 

 “정민아. 정민아 씨.”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20] 의문의 목걸이 2017 / 7 / 31 260 0 5751   
20 [19] 발자취의 한 시점, 그 남자 2017 / 7 / 31 251 0 5461   
19 [18] 결심 2017 / 7 / 31 280 0 6071   
18 [17] 그와 그녀의 거리 2017 / 7 / 31 266 0 5513   
17 [16] 재회(再會) 2017 / 7 / 31 274 0 7423   
16 [15] 만나야 할 사람 2017 / 7 / 31 258 0 5858   
15 [14] 25년을 돌고 돌아 2017 / 7 / 31 274 0 7007   
14 [13] 거짓과 진실사이 2017 / 7 / 31 267 0 5414   
13 [12] 야누스 같은 여자 2017 / 7 / 31 275 0 5675   
12 [11] 실마리 2017 / 7 / 31 249 0 6039   
11 [10] 단서 2017 / 7 / 31 255 0 5411   
10 [9] 키스 2017 / 7 / 31 247 0 5478   
9 [8] 향이 나는 여자 2017 / 7 / 31 252 0 5503   
8 [7] 기일 2017 / 7 / 31 282 0 6266   
7 [6] 그 사건의 실체 2017 / 7 / 31 285 0 6308   
6 [5] 만남 2017 / 7 / 31 271 0 5297   
5 [4] 그 여자 2017 / 7 / 31 247 0 6061   
4 [3] 악몽 2017 / 7 / 31 272 0 5398   
3 [2] 비밀 2017 / 7 / 31 270 0 5505   
2 [1] 분홍꽃 신발 2017 / 7 / 31 281 0 5382   
1 [ 프롤로그 ] 내 눈은 말을 한다. 2017 / 7 / 31 419 0 155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