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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운명 읽는 남자
작가 : kory
작품등록일 : 2017.7.31

1. 세 가지 사건에 모든 실타래가 얽혀 있다.

- 1988년 첫 번째 사건 : 세 명의 사상자 발생
1988년 88올림픽으로 세상은 떠들석했으나 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평화롭기만 했던 한 여교수의 남편과 아들이 하루아침에 사망.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던 여교수는 미치광이가 되어 강릉의 한 암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8살이었다. 아이의 눈은 8살짜리답지 않게 깊고 섬뜩했다. 아이가 상대의 눈을 깊게 바라보면 상대는 움찔했다. 아이는 여교수의 눈에서 그녀의 5년 후를 읽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주지스님의 경고를 잊고 발설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고 만다. 아이는 그녀의 눈에서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 1989년 두 번째 방화사건 : 8살 여자아이 의문의 사망
아이는 타인의 운명을 읽는 눈을 갖고 태어났다. 그것은 도저히 없앨 수 없는 아이의 운명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모르던 한 남자아이. 분홍색 꽃신을 신은 첫사랑 여자 아이 눈에서 화재로 죽는 잔상을 읽어낸다. 여자 아이는 죽었다. 의문의 사고로 분홍색 꽃신을 신은 여자 아이는 사망하고 말았다.

- 25년 후, 나머지 하나의 사건 :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지 25년 만에 다시 하나씩 모이게 된다. 다들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암자의 주지스님은 25년 전 덮어진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언젠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고 말했다. 실타래는 결국 풀린다고 했었다.

2. 모든 등장인물은 용의선상에 있다.

악몽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그, 강민. 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듯 세월에 몸을 맡긴 채 살았던 25년이 지난 어느 날, 죽은 첫사랑과 똑같은 잔상을 가진 여자를 면접장에서 만난다. 잔상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서도 다른 잔상이 보이기 마련인데, 25년 전 불에 타 죽는 그 여자아이 같은 잔상을 가진 이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죽음을 목격한 자, 죽음을 방관한 자, 죽음을 파헤치려는 자, 죽음을 감추려는 자,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25년 전 그 암자에 있던 사람은 주지스님, 보살, 여교수, 죽은 여자아이, 검사 강윤. 25년 전 사건과 관련된 인물. 이승아와 똑같은 잔상을 가진- 면접장에서 만난, 정민아라는 여자, 그리고 타인의 운명이 보이는 강민.

사건을 풀어갈수록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사건을 해결해 갈수록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실타래는 의문의 방화사건을 낸 자가 쥐고 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마지막 사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14] 25년을 돌고 돌아
작성일 : 17-07-31 19:35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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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5년을 돌고 돌아

 

 민은 다시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그런 민의 눈치를 살필 만도 한 윤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스테이크를 우그적 우그적, 샐러드도 우그적 우그적 먹었다. 30대 접어들면서 사람 사이의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다. 그 불편함을 풀 수 있는 길은 자신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편하게 대하면, 그 누군가도 자신을 편하게 대하게 된다는 너무 쉬운 진리를 뒤늦게 적용하면서 살았다.

 

 “김 비서님이랑 통화는 잘 했고?”

 “뭐?”

 “안 봐도 뻔해. 그냥 여기서 받지. 뭐 하러 나갔어? 뭐 나온 건 있고?”

 “없어.”

 

 민은 윤의 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윤이랑 있으면 늘 편했다. 아주 무거운 얘기도 가볍게, 그렇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꺼냈고, 아주 가벼운 얘기도 가끔은 진지하게 말해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

 

 “민아.”

 “왜?

 “승아는 죽었겠지?”

 

 민은 그 말에 가슴이 철렁한다. 주위 사람 모두 승아가 죽었다고 할 때도 윤은 자신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동의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윤이 오늘은 승아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의 죽음에 대해, 가볍게, 그렇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그냥… 넌 어떤 생각인지 모르지만, 가끔 난 승아가 살아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 있어.”

 

 그건 민도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랑 지금까지 친구였을까. 너의 여자가 됐을까. 뭐 그런 생각.”

 “그만해.”

 “근데 민아, 승아는 정말 죽었다. 죽은 게 맞다.”

 

 민은 사실인 그 말에 또 가슴이 답답했다. 가끔씩 승아 생각이 나면 늘 나타나던 증상이었다. 아팠을 그녀의 인생을 대신할 누군가 있다면… 하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녀에게 못해줬던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기길 간절히 바랐던 적도 있다.

 

 “동생이 하나 있는 거 같다.”

 

 민은 윤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동생이라니? 무슨 말이야?”

 “4살 터울 있는 동생이 하나 있었대. 혹시 넌 한 번도 본 적 없어, 절에서?”

 

 민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밤이 되면 민과 윤이 자는 방문은 잠겼다. 누가 잠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번은 그 문을 열고 나온 적이 있었다. 돌담에 앉아 밤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뭔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주 어린 꼬마 아이 그림자가 재빠르게 지나간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나무 그림자를 아이라고 착각했나보다 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직까지 하고 있는 건, 그 날 밤 방을 나갔다는 이유로 스님께 종아리를 꽤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 살아있어?”

 “너도 본 적 있나보구나. 사정이 있었겠지. 없는 듯 키워야 했대. 그 이유에 대해 아직…”

 “살아있냐고!”

 “살아 있어. 어디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고. 알아보는 중이야.”

 

 민은 두 손을 꽉 쥐었다. 동생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알아볼 걸…. 진작 알아보고 더 많이 곁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살아있으면 됐어…. 살아있으면…. 찾아야지. 얼른 찾아야지.”

 “그래, 나도 최대한 알아보고 있어.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 * *

 

 다음 날 민은 수술을 마치고 선미와 수술실을 나섰다. 주말에 윤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승아 동생이 있어.’ 승아는 절에 자주 왔었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불쑥 불쑥 많이 왔다. 절에 있던 동생을 보러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생은 왜 숨어 지내야 했을까. 승아 엄마는 안 계셨을까.

 

 “강 닥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어, 아니.”

 

 선미가 민의 눈앞에 엄지와 중지로 딱딱 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민은 그런 선미의 손을 쳤다. 선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린다.

 

 “어? 남 교수님이네?”

 

 지난 번 선미와 밥 먹을 때 잠깐 얘기했던 남 교수라는 분이 맞은편에서 신경외과 교수님과 걸어오고 있었다. 민은 자꾸 남 교수에게 눈이 갔다. 낯이 익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 진 닥터. 인사해. 여기는 한국대학교 생물학과 남소현 교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안과 전문의 진선미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남 교수는 선미의 옆에 서 있는 민을 쳐다보았다. 민도 남 교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강단에 서 있는 모습, 무릎 꿇고 우는 모습, 바다를 보며 통곡하는 모습, 용서를 구하는 남 교수]

 

 “안녕…하세요. 혹시 절 아시나요?”

 

 남 교수가 민을 보며 물었다.

 

 “아주 오래 전에 한 번 뵌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때에 따라 본의 아니게 에둘러야 할 때가 있나보다. 25년 전, 절을 아주 시끄럽게 만들었던 교수. 남편과 아들을 잃고 그 억울함 마음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던 그 교수. 절을 나가면서 “네가 제일 무서웠다” 말하던 그 교수. 남 교수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민아도 정확한 것을 정확하지 않게,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8살 그 무렵, 민은 교수의 눈에서 강단에 서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보다 당당히, 누구보다 씩씩하게 견뎌 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는 에두르는 것을 모를 때였다.

 

 “네… 저도… 낯이 익은 듯한데… 어디서?”

 

 민이 8살 때였다. 남자들은 2차 성징을 거치며 어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그것을 고려했을 때, 그녀는 민을 못 알아볼 수도 있다.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혹시…”

 

 그 교수는 민이 누군지 점점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녀는 민에 대한 생각이 정확하게 났는지 당황해하며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라며 병원에서 열리는 회의에 불참했다. 민은 여전히 그녀에게 두려운 존재일까. 어쩌면 자신의 눈에서 무언가를 또 읽지 않을까 겁이 났던 것일까.

 

 “저 분을 네가 어떻게 알아? 미국에서 만난 적 있어?”

 “아니, 그냥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뵌 적이 있는 거 같다.”

 

 민은 급하게 돌아서서 가는 그녀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25년 이라는 시간을 돌고 돌아 왔는데 또 만나지는 것을 보면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민의 기억에도 그 교수의 기억에도 그 날의 기억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좋은 기억과 추억만 가지고 살기에도 부족한 것이 인생인데 이렇게 또 만나지는 것을 보면, 다시 한 번은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잔상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수시로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들어 간섭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인간의 섭리를 깨뜨리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의 인생이 보이는 눈을 가졌기에 누구나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건 승아의 사건으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민은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전화벨 소리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었다. ■

 

 “네, 아버지.”

 [그래, 민아.]

 “출장은 잘 마무리 되신 거예요?”

 [내일 또 회사 워크숍이라 다녀와야 한다. 매년 가는 거니까 잊지 않았지?]

 “내일요? 저 병원 일은 어쩌고요”

 [매년 병원에서 지원 나왔잖아. 올해도 나오면 되는 거고. 몇 백 명이 움직이는 거라 어떤 의료사고가 생길지 몰라. 병원 측에는 얘기해 놨으니 걱정 말고.]

 “어디로 가는데요?”

 [제주도다.]

 

 매년 제주도 연수원으로 회사 워크숍을 갔었다. 늘 6월쯤에 갔다.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회사 워크숍에서 큰 의료사고는 없었다.

 

 “아버지, 하나 부탁드릴게요.”

 [얘기해 보거라.]

 “워크숍 동안 불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캠프파이어나 바비큐를 밖에서 구워먹는다거나. 화재가 일어날 만한 요인들은 일정에서 모두 빼주세요.”

 [매년 하던 캠프파이어랑 바비큐파티를 빼면 어쩌누. 그래, 대강당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알았다.]

 

 처음 만났을 때 정민아에게서 본 승아와 똑같은 잔상. 그 잔상을 보고부터 회사 안전관리팀에 지시해 회사 내부 벽과 유리가 모두 방화·방탄용인지 확인하도록 하고,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 곳은 모두 교체하도록 했다. 그래서 회사는 그나마 마음이 놓였지만, 영화관 내부가 늘 마음에 걸려 서울에 있는 지점부터 내부벽을 방화·방탄용으로 교체하고 있었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불과 관련된 모든 요인은 그녀 곁에서 떼어놓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승아와 똑같은 잔상을 갖고 있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승아 때처럼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 * *

 

 민은 진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섰다. 25년을 돌고 돌았는데 그 무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재등장을 하고 있다. 박 씨 보살, 대학교수, 그림자 꼬맹이, 죽은 승아, 주지 스님, 그리고 자신과 윤. 25년 전, 그 절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서로에 대해 아는 사연도 그렇지 않은 사연도 있다. 알아내야만 하는 사연도 있다. 찾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이 다시 하나 둘씩 모이게 되는 이 시점이 민에게는 참 불안하고 이상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럴 때면 민은 늘 바(bar)에 들렀다. 진토닉을 한 잔 하고 싶어서였다. 진토닉은 목을 넘길 때 따끔거림이 있다. 그 따끔거림이 기분 나쁘지 않아 좋았다.

 

 “오늘은 혼자네?”

 

 바 사장님이 민에게 묻는다. 민은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피식 웃었다. 민에게는 혼자가 익숙했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혼자 있는 민이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민의 곁에는 늘 윤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보이는 것의 내면에 감춰진 그 무언가를 알아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민 자신이 정민아를 생각하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는 대로 그녀를 판단해 버리는 자신, 그런 자신에게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정민아. 민은 진토닉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악몽을 꾸는 일은 뜸해졌는데 대신, 정민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언제 왔어?”

 

 민의 목을 살포시 감싸며 선미가 옆자리에 앉았다.

 

 “민, 너 퇴근하는 거 아니었어?”

 “퇴근 했잖아.”

 “훗. 여기 올 거였으면 같이 오지.”

 

 민은 선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선미도 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미는 민의 눈을 보면서 늘 많은 생각을 했다. 민의 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눈이었다. 포근하기도 하고, 포근한 줄 알아서 마음을 풀어놓으면 다시 냉정하기도 했다가 또 어떤 때는 사랑스럽기도 했다가 다시 차갑기도 했다.

 

 “왜 그렇게 봐?”

 “넌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야?”

 

 아무 사연이 없는 듯 편하게, 유복하게,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은 선미다. 선미에게도 아팠던 순간이 있었을까. 이렇게 맑고 밝은 사람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을까.

 

 “나도 있지. 강민이 나 힘들게 하잖아.”

 

 선미는 진토닉을 한 잔을 들이켰다. 선미는 민을 쳐다보지 않았다.

 

 “내 남자였으면 좋겠다. 생각 했어. 사연 많은 남자라는 건… 잘 알지. 그래도 감당 못할 게 없는데, 내가 한 걸음 다가서려 하면 두 걸음 멀어지더라고. 거기다 대고 뭘 어떻게 해.”

 민을 바라보는 선미의 눈에 무언가 반짝였다. 선미는 민을 바라보던 시선을 술잔으로 옮겼다. 민은 선미 앞에 가만히 티슈를 내려놓았다. 못났다. 자신 때문에 우는 여자에게 고작 티슈를 건네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해진다. 민은 선미를 가만히 안았다.

 

 “미안하다.”

 

 * * *

 

 민아는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한강타워에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절 표식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언니와 같은 목걸이. 그것이 언니와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언니가 떠나고 나서 언니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었다. 매번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자신이 죽고 언니가 살아있다면, 언니는 어떻게 했을까,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

 

 “왔어?”

 

 대학교 때부터 10년을 봐 왔지만, 민아는 가끔 이 남자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사무실로 올라오지 않고?”

 “아니, 여기가 좋아.”

 

 누군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냐고 민아에게 묻는다면, 민아는 대학교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동현이라는 남자를 만나고부터였다. 그는 물심양면 민아를 도왔다. 민아는, 유복하게 자랐지만 외로웠던 한 남자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했다. 배가 다른 형과 동생에게 치이며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했던 그 남자에게 연민이나 동정심 같은 게 생겼었다.

 

 “왜 말하지 않았어?”

 “뭘?”

 “L그룹 아들이라는 거.”

 

 민아는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에서 동현을 만났다. 사람들은 절 표식 목걸이를 한 동양인 여자애 하나가 동아리에 들어왔다며 물 흐린다고 반대가 심했다. 기독교 모임에 갔던 건,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절에서 자랐고, 절에서 모든 생활을 한 민아로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편을 들어 준 유일한 사람이 동현이었다. 그로 인해 고집과 아집으로 가득 찼던 자신이 조금씩 변해갔다. 동현 덕분에 어렵게 들어간 모임이었지만, 정작 아르바이트 때문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 하는 자신의 학비를 그가 내주었다는 것을, 두 달 치 아르바이트 비용을 들고 입학 사무처에 갔을 때 알게 되었다.

 

 “나 부모님 돈으로 살던 놈이야. 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거뿐이라고. 그걸 너한테 떠벌리듯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 널 도왔던 건, 그게 내 마음이었기 때문이야.”

 “그래, 그 마음이 내가 널 돕게 했지. 처음부터 너의 마음에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민아는 동현 앞으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CV 작년 매출액과 올해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아는 범위 내에서 정리했어. 악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동현은 일어서는 민아의 손을 잡았다.

 

 “네가 날 어떤 놈으로 생각해도 상관없는데 날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지,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거. 잘 알아. 너 안 미워해. 널 안 보는 일도 없을 거야. 그냥 단지 지금 내 모습, 네 모습이 비겁하게 느껴질 뿐이야.”

 

 민아는 동현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갑자기 뒤에서 뭔가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민아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현은 자신이 내밀었던 서류를 찢었다. 민아는 다가가 서류를 찢는 동현의 손을 잡았다.

 

 “너 아버지한테 드려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하는 거잖아!”

 “잃어버렸다고 하지 뭐.”

 “그거 통할 분 아니야. 네가 더 잘 알잖아.”

 “괜찮아. 나는 한 번 혼나면 끝이니까. 나는 괜찮은데, 너까지 비겁하게 만들 수는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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