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거짓과 진실사이
“잠깐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10분이면 됩니다.”
VIP라운지 직원은 민에게 인사 한 후 자리를 비웠다. 넓은 홀에 민과 정민아만 마주 보고 앉았다.
“그 사람들이 날 고소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듣자고 부른 게 아니잖아!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당신 보면서 웃어넘기는 게 좋을까? 꼬치꼬치 물어봐야 할까?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머리 터지도록 생각했다. 결론은 무슨 얘기든 당신 얘기가 먼저야. 정민아 씨 당신 얘기 듣고 그거 믿어보려고.”
정민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민아는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는 진심이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고 진실이다. 정민아는 이 눈빛에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굳건히 지켜온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자꾸 약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그를 멀리하려 했었다. 이 사람 앞에서 더 이상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이 사람 곁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전… 당신에게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 없어요. 꽃뱀이라. 꽃뱀한테… 한 번 물렸다 생각하시고, 절 그냥 벌레 취급 하세요. 그렇게 지나치면 됩니다. 여기서 일하는 절 보는 게 부담스러우시다면 사직서 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 없습니다.”
“모른다? 나도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당신 눈이 보인다고! 뭘 숨기고 있는지 난 다 보인다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말씀 끝나셨으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은 그런 정민아의 팔을 잡았다.
“뭐가 이렇게 당당해? 벌레처럼 보라고? 나도! 내 마음에도 수천가지 수 만 가지 생각이 든다고! 안 된다고. 그게 안 돼서 이러는 거라고! 엄마 찾으러 한국 온 거 아니야? 그러면 엄마를 찾아야지, 왜 허튼 짓을 해! 왜?!”
“엄마? 나한테 엄마가 어딨어?! 엄마는 찾아서 뭐해! 그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한국 들어올 때 일말의 기대를 했어. 한국에 있는 친엄마가 정말 좋은 엄마였으면 좋겠다. 내 비참하고 외로웠던 서른 인생, 엄마라도 좋은 분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꿈같은 생각을 했지. 아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상은 다르지 않았어. 만나고 싶지 않아, 그런 엄마 따위!”
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민아의 모습이 낯설고 어색했다. 아니, 어색하기 보다는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힘들고 외로웠을 그녀의 서른 인생이 마음 저리도록 애처로웠다. 배신감, 배반감 이런 거 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건 그녀의 애처로움과 힘겨움이었다. 왜 이토록 그녀 앞에서는 약해지는 지. 정말 그녀 말대로 왜 이렇게까지 그녀를 놓을 수 없는지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이게 내 진짜 모습입니다. 여리고 연약한 여자가 아니라 이렇게 썩어빠진 생각만 하는 여자가 바로 나 정민압니다. 이제 보입니까?”
[울고 있는 정민아. 박 씨 보살과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정민아. 누군가의 사진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는 민아.]
민은 민아의 또 다른 잔상을 읽었다. 누군가의 사진은 흐릿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민은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을 잘못 본 적이 없는 자신이었다. 잔상이 거짓인 적도 없었다. 그럼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은 정민아 하나다.
“보인다, 정민아 라는 여자. 이제 제대로 보여. 기다리고 있어. 그냥 기다려. 일 제대로 하면서. 망신 받아가며 뽑은 사람이 당신이야. 날 실망시키지 마. 날 속이는 건 여기까지야.”
민아는 돌아서서 가는 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말한 대로 그녀는 강릉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다. 민아는 늘 사람이 없는 시간에만 다녀야했다. 절 안에 정민아라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때 나이 4~5살, 남은 기억이 많지도 않다. 다만,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죽어가던 언니의 모습이었다. 언니가 죽어가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갑갑하기만 했던 절이었기에 언니를 따라 곧잘 학교에 가곤 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언니를 찾아왔었다. 역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머리가 긴 여자였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언니를 급하게 찾는 그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갔다. 언니가 과학실에 있다는 것을 안 그 아주머니는 주위를 살피고, 불을 붙였다. 알코올램프가 가득한 과학실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과학실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언니가 허우적댔다. 민아는 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언니에게 손을 뻗으려 하면 할수록 불길은 더 거세게 일었다. 민아는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달리 그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고작… 고작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는 게 다였다. 그 날 일을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강민이라는 사람을 보면 아팠던 자신의 과거가 자꾸 되살아나 너무 괴로웠다.
“민아씨, 민아씨!! 괜찮아?”
누군가 민아를 흔들어 깨웠다. 입사 동기인 이민준과 장미희였다.
“괜찮아?”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 바이어한테 메일 보낸다고 사무실 들어와서 한참 소식이 없길래 와봤더니 쓰러져 있잖아, 민아 씨가. 얼마나 놀랐던지.”
“제가요? 아… 죄송해요, 걱정 끼쳐 드려서.”
입사 동기이긴 했지만 민준은 민아 보다 2살, 미희는 1살이 더 많았다.
“아니야, 진짜 괜찮아? 과장님 연락드렸더니 얼른 구급차 부르라고 하시면서 병원으로 오신다고.”
“… 괜찮아요. 과장님께 연락드려서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진짜 괜찮아? 병원 안 가도 되겠어?”
“네, 어제 잠을 좀 못 자서 그래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 집에 바래다줄게.”
“아니에요. 택시만 좀 잡아주세요.”
민준과 미희는 내심 걱정이 됐지만, 계속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민준과 미희는 택시를 잡아 민아를 태웠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월요일까지 푹 쉬고!”
“네, 고마워요.”
민아는 택시가 출발하자 무겁고 뻐근한 목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이내 눈을 감았다. 누르고 눌렀던 기억은 한 번 봇물이 터지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이어졌다. 언니의 생각. 그리고 그 날의 생각. 언니가 죽자, 엄마는 절에서 민아를 데리고 공항으로 갔다. 그렇게 아는 스님을 따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엄마의 마지막 말은 “여기 있으면 너도 언니처럼 돼. 얼른 가. 언젠가 볼 날이 올게다.”가 전부였다. 텍사스에 있는 작은 절에 도착해서도 늘 혼자였다.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널따란 앞마당이 자연스럽게 스케치북이 되었다. 그곳에 그림을 그렸다. 언니 얼굴을 그렸다가 지우고, 엄마 얼굴을 그렸다가 지우고, 나무를 그리고, 새를 그리고, 구름을 그렸다. 하루 종일 웅크리고 앉아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하면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누가 멈추라 하는 사람도 없고, 하지 말라는 사람도 없어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그곳을 방문한 어느 교수님의 눈에 띄어 16살 때 학교라는 곳을 처음 갔다. 16살 때 처음 간 학교, 외국어도 못하고 부모님도 없는 동양인 여자아이, 무시당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학교에서도 힘들고 괴로운 생활은 지속되었다.
“다 왔습니다.”
택시 기자 아저씨께 만 원 짜리 두 장을 내고 내렸다.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달동네. 민아는 나무 곁 벤치에 앉았다.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없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은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절로 돌아와 스님들이 구해주신 영어책과 영어로 된 비디오를 보면서 영어실력을 쌓아갔다. 영어가 느니 수업시간에 하는 내용이 들리고,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들이 자신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18살, 누구보다 공부를 잘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언니를 죽게 한 사람을 반드시 찾겠다고 마음먹은 때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성공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또 하나. 대학교를 가기 위해 밤새 도서관에 있다 돌아오는 길, 밤하늘을 볼 때면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4살 때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절 근처 돌담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던 누군가의 뒷모습. 그 서늘한 뒷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 사람을 만나려면 공부를 잘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왜 서늘하다고 느꼈을까. 그 어린 나이에 그 뒷모습에서 어떻게 서늘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 * *
민과 윤은 평소 주말 아침처럼 영화를 보았다. 최신 영화를 보기도 했고, 고전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는 상영되었다. 오늘 상영작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1994년 상영된 작품으로 민이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개봉된 영화였다. 그때는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대학교 때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 빠져 처음 보게 되었다. 민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금성무의 대사와 ‘California Dreaming’이란 노래는 여전히 기억에 남았다. ‘세상에 유효기간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일까? 5월 1일 아침, 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메이에게 나는 유통기한이 적힌 이 파인애플 캔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사람과 사이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과연 얼마쯤 될까? 오랜 시간 생각했었다. 영화는 ‘California Dreaming’ 노래가 흐르며 끝난다. 영화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금성무와 메이 이야기, 양조위와 페이 이야기. 둘 다 열린 형식으로 마무리 된다. 참 좋은 영화다. 오늘 윤은 왜 이 영화를 골랐을까?
“5월 되면 늘 이 영화 생각이 났어. 정신없이 돌아가던 로스쿨 생활. 그래도 매년 5월 이 영화를 볼 때면,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넌 이 영화 어디서 봤어?”
“미국에서 대학교 때. 주말 되면 영화 1편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고보면 우리 참 바쁘게도 살았네.”
영화가 끝나자 민과 윤은 상영관에 앉아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민아, 정민아 씨 말야…”
“윤아, 오늘은 그 얘기 하고 싶지 않다. 밥이나 맛있게 먹자.”
그때 민의 휴대폰 전화 진동이 울렸다.
“잠깐만.”
민은 영화관 안에서 식사를 하다 잠깐 밖으로 나왔다.
“강민입니다.”
[김비섭니다.]
“말씀하세요.”
[정민아 씨에 대해 알아봤는데, 한국에는 4살 때 이후의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에서 알아봤는데,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절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대학교, 대학원은 입사원서에 적힌 그대롭니다. 대인관계가 넓지는 않았지만 L그룹 막내아들과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친모는 박정심 씨로 확인했습니다. 현재 강릉의 한 절에 계신 걸로…]
“박정심 씨가 친모라… L그룹 막내아들 쪽으로 집중해서 알아봐 주세요. 두 사람이 어떻게 알고 지내게 되었고, 두 사람이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었는지. 거기에 뭔가가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민은 전화를 끊고 깊게 머리를 쓸어내렸다. 미국에서의 생활, L그룹 막내아들, 박 씨 보살님. L그룹 막내아들은 공식석상에서 딱 한 번 스치듯 만난 적이 있다. 형들에게 치여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아와 L그룹 막내아들 서동현. 둘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