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실마리
윤은 주소를 받자마자 밖으로 나와 시동을 걸었다. 수사계장한테 받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치고 보니 이 주소는 등명락가사? 다시 한 번 확인해도 등명락가사? 잘못 받은 건가? 윤은 주소를 들고 한참을 보다 서 계장한테 온 전화를 받았다.
[검사님, 서계장입니다.]
“네,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이 주소 맞는 겁니까?”
[네, 그 절로 가셔서 박 씨 보살님을 찾으면 된답니다.]
“이 주소가 맞단 말입니까?”
[네, 맞는 주소입니다. 무슨 다른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윤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숨을 가다듬었다. 승아의 어머니를 추적한 주소가 등명락가사다. 그렇다면 그곳에 승아의 어머니가 되는 분이 계셔야 하는데 그 절은 자신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뻔히 아는 곳이다. 승아의 어머니가 될 만한 분이 그곳에는 없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예감이 좋지 않았다. 뭔가 꺼림칙했다. 마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윤은 차로 이동하는 동안 생각을 했다. 서류대로라면, 서계장이 조사한 대로라면, 절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승아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면 박 씨 보살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승아는 박 씨 보살의 딸이다. 그러고 보니 승아는 뜬금없는 타이밍 유난히 절에 많이 왔었다. 수업이 끝나면 자신과 같은 버스를 타고 절로 와 한참 주변을 서성이다 가곤 했다. 그때 민이를 보러온 줄 알았다. 사실 정말 민이를 보러 왔는지도 모른다. 만약, 절에 엄마가 있어서였다면? 그것도 역시 말이 된다. 그렇다면 승아의 동생은? 승아 동생과 승아가 성이 다른 이유는 뭘까? 아버지가 다른 건가?
윤은 복잡한 머리를 쓸어내렸다.
절 주위는 컴컴했다. 산 속의 밤은 늘 일찍 찾아왔다. 윤은 대웅전으로 갔다. 합장을 하고 세 번 절을 올렸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부처님 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절에 온 목적대로 박 씨 보살을 먼저 찾는 게 맞지만, 사실 윤은 박 씨 보살님을 뵙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실을 알게 될까봐 겁이 났다. 더 겁이 나는 건, 민도 언젠가는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거였다.
“누구요?”
윤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지스님이다. 얼른 일어나 주지스님에게 합장하고 인사를 올렸다. 주지스님도 합장을 하고 윤의 인사를 받았다.
“이 저녁에 절에는 무슨 일인고…?”
윤은 스님이 주신 모과차에서 나는 수증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주지스님 방 옆에 손님을 대접하는 방에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민이 부모님을 처음 만났다. 민은 그날 이 방에서 뛰어나가 어디론가 갔었다. 윤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민은 그날 승아를 만났을 것이다. 윤은 모과차를 한 입 먹고 방을 둘러보았다. 방에는 화선지 하나, 벼루 하나, 목탁 하나, 책장 하나. 모든 게 하나뿐이었다. 늘 그대로다. 마루도 문도 모두 나무. 오랜만에 와도 늘 같은 곳. 윤과 주지스님 사이에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이 길어질면 길어질수록 윤이 불리해진다는 것을 안다. 주지스님은 침묵을 읽는 법을 알고 있었다.
“많이 불안하구나.”
주지스님은 민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윤에게는 늘 부드럽고 온화했다.
“누굴 만나러 온 것이냐? 누굴 계속 찾는 것 같구나.”
침묵이 너무 길었다. 주지스님은 윤을 읽어냈다.
“이 절에는 어떤 분이 계십니까?”
“박 씨 보살을 찾아 온 게로구나.”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마을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 곧 올게다.”
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주지스님도 그런 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마치 오늘 일어나리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평온했다. 윤이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주지스님의 표정은 읽을수록 어려웠다. 범인을 수사 하다보면 단순한 동작 하나에도 상대를 파악하게 되는데 유독 오랜 시간 봐온 스님의 표정과 행동에서는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평온하다는 거 외에는.
“스님.”
“그래.”
“제가 이 절에 있을 때요.”
“그래.”
“이 절에는 누가 있었나요?”
“그게 무슨 의미냐?”
“누가 같이 살았었습니까?”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나, 너, 민이, 박 씨 보살, 대학 교수. 이렇게.”
“그리고요?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었지요?”
주지스님은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찻잔에 담긴 차가 미세하게 파동을 쳤다.
“4살짜리 꼬마아이, 아민정… 여기 있었나요?”
그때 방문이 열렸다. 그곳엔 박 씨 보살이 서 있었다. 바닥에는 과일이 흩어져 있었다. 박 씨 보살은 밖에서 윤과 주지스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윤이 떨어진 과일을 주워 담고 한참이 지나서야 박 씨 보살은 정신이 드는지 윤이 줍는 것을 도왔다.
“왜 숨기셨습니까?”
모과차를 멍하니 응시하는 박 씨 보살, 여전히 평온한 주지스님, 진정이 안 되는 윤이 나무 탁자에 둘러앉았다. 조금 전만해도 스님과 윤만 앉아 있던 곳이다. 진정이 되지 않는 사람은 윤이 뿐이었다.
“숨긴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딸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딸들을 지키는 방법이라? 그래서 승아를 그렇게 만드셨습니까?”
“그리 말하는 건 아니지.”
주지스님이 흥분한 윤을 향해 일침을 놓았다. 윤은 숨을 깊게 내쉬고 박 씨 보살을 바라보았다.
"정운초등학교 화재사고 아니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입니다. 그 사건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으시지요? 승아,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윤의 물음에 주지스님도 박 씨 보살도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방 안 공기는 무거웠다. 그 공기가 한 번도 주지스님을 압도한 적은 없었다. 이 방의 분위기는 늘 주지스님이 만들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네가 알다시피 승아는 죽었다. 그동안 뭘 하다가 왜 이제서야 승아 죽음이 궁금해졌느냐. 이제와 네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누구를 나무랄 권리는 네게 없다. 네가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먼저다. 얘기해 보거라.”
윤은 주지스님 말에 찻잔을 바라보았다. 찻잔에는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자신이 여기 있었던 25년 전에도 있던 찻잔이다. 스님은 여기에 차를 담으시며 연꽃을 닮으라셨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랐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속이 통하고 밖이 곧아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하셨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고아로 자랐지만, 고고하게 자라고 싶었고, 누구한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검사가 되었다.
“제가 말씀 드리지요.”
보살 박 씨가 말문을 열었다.
“운명이 참 묘하다. 묘하다 하지만 이리 엉킬 수 있을까? 너를 만난 것도, 민이를 만난 것도, 남편을 잃은 것도. 딸들을 만난 것도. 참 묘한 것들뿐이다.”
박 씨 보살의 목소리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쭈글쭈글해진 자신의 손등을 연신 쓸어내렸다. 핏기 없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도 희끗해진 그녀의 머리카락도 힙겨웠던 지난 그녀의 세월을 보여주는 듯 했다.
“나는 신기가 있었고 무당이었지. 신기는 대물림 되고, 그렇게 되면 내 딸들의 삶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머물면서 딸들에게 신기가 가지 않도록 노력했었다. 승아는 내가 있는 곳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것이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사고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나는 그 아이가 단명할 거라는 걸 알고 여러 방법을 찾았을 뿐, 그 사고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싶은 것 투성이다. 그렇지만 당시, 남편을 잃고 얼마 안 돼 딸을 잃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지나고 보니 이미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가 있더구나.”
윤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아이들이 승아를 놀렸었다. 너한테서는 향냄새가 난다고. 너희 엄마가 무당이라 불결하다고. 승아는 그런 아이들 기에 눌리지 않았다. “그래서! 무당이 무슨 일 하는지는 알고들 그러는 거야! 니네가 뭘 안다 그래!” 라며 오히려 큰 소리쳤고, 결국 싸움판이 벌어졌다. 다음 날, 선생님은 승아에게 부모님을 모셔 오라셨지만, 승아는 그 대신 벌을 받겠다고 했다. 어쩌면 승아는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문의 신 야누스처럼 두 얼굴로 생활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여리고 여린 승아, 또 하나는 자신과 엄마를 지키기 위해 친구들과 물고 뜯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승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제가 그 사건을 조사 중에 있습니다. 승아에게는 너무 늦어져 미안한 일이지만, 제게도 이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권한은 갖게 됐지만 시일이 너무 많이 지났군요. 그래도 끝까지 알아보려 합니다. 계속 알아보던 중 민과 제가 모르는 것뿐이라 너무 혼란스럽고 화가 납니다. 사건은 조사 기간 중이라 자세히 말씀 드리기는 어렵지만 승아의 죽음에 대해서는 꼭 밝혀내겠습니다.”
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차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 밤하늘은 늘 별로 가득했다. 민은 별과 바다를 좋아했고, 윤은 연꽃을 좋아했다. 남들이 아무리 무당 딸이라 놀려도 윤이 승아를 가까이 했던 것은 그 아이의 분홍색 연꽃 신발 때문이었다. 신발에 그려진 연꽃 수가 너무 예뻐서였다.
“가보겠습니다.”
윤의 옆에서 같이 하늘을 바라보던 주지스님이 윤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마음 아플 일을 만들지 마라.”
윤은 스님의 말에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미소로 답하고 차에 올랐다.
* * *
민은 오전 진료를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선미와 점심을 먹었다. 누군가 눈에 익은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고 민은 고개를 왼쪽으로 있는 힘껏 쭉 뺐다. 얼굴은 다시 확인할 수 없었다.
“왜?”
“아니,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아서. 잘못 봤나 보네.”
“저 쪽 창가에 앉았던 분?”
“응, 혹시 알아?”
“남소현 교수님. 한국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님이신데, 우리 병원 신경외과랑 프로젝트 진행한다고 들었어. 매주 오시더라. 수요일에 오시든가 그랬지, 아마.”
“그래?”
“넌 어떻게 아는 분인데?”
“그냥 낯이 익어서 아는 분인가 싶었던 건데, 얘기 들어보니 잘못 본 것 같네.”
선미는 밥을 먹는 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주보고 있는 선미의 왼쪽, 민의 오른쪽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햇볕이 민의 얼굴에 닿았다. 민의 오똑한 콧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쌍꺼풀 없는 눈을 긴 속눈썹이 감싸고 있다. 불그스름한 입술. 누군가는 저 입술에 키스를 했을까? 저 입술로 누군가의 입술을 감싼 적이 있을까?
“밥 먹지, 선미야. 내 얼굴 그만 쳐다보고.”
“누가 얼굴을 쳐다봤다 그래.”
“아닌가? 아님 말고.”
민은 선미를 보며 피식 웃다 다시 밥을 먹는다. 선미는 민의 얼굴을 만질 수는 있었다. 민의 눈, 민의 코, 민의 입술, 민의 머리카락. 하지만 닿을 수는 없었다. 민은 선미의 그 어떤 것도 만지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정도. 친구 사이에 ‘고생했다, 인마’ 하며 머리 쓰다듬어 주는 그 정도. 민은 항상 그 정도까지만 허락했다.
“참! 오후 진료 오프 냈어.”
“나? 너?”
“너!”
“왜?”
“너희 회사 오늘 VVIP 모임 있다고 윤이 그러던데. 그래서 너 오프 내야 한다고. 몇 달 전부터 얘기했는데?”
“그게 오늘이야? 너 잘못 안 거 아니고?”
선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최신기사를 검색해 보여준다. ‘CV엔터테인먼트, 정재계 인사들을 위한 VVIP 시사회 개최. CV엔터테인먼트 사장을 제외한 임원진이 한 자리에 모일 것으로 예상’
“이래도 VVIP 모임이 아니야? 영화 안 보는 시사회잖아. 비공식적으로 정치 얘기하고 사업 얘기하려고 만나는 행사. 그나저나 윤이는 그리로 바로 오려나?”
“윤이 녀석 요즘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전화하면 바쁘다고 끊고. 그 녀석, 너랑은 연락 하나보네?”
“가끔. 요즘 바쁘긴 한가보더라.”
매년 하는 VVIP 시사회 겸 모임은 선미 말대로 단순히 영화 관람용이 아니기에 빼놓지 않고 참석해야 하는 행사 중 하나였다. 부모님이 해외 출장 중이라 아버지를 보필하는 김 비서님이 얼마 전에도 연락 와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만 잊고 있었다.
“가야겠네. 오프 내줘서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잊을 뻔 했다.”
민이 시사회장에 도착하자 보디가드 4명이 민을 감쌌다. 민이 CV엔터테인먼트 차기 사장이 될 거라는 소문과 의사라 사장자리에는 관심이 없어 윤이 사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무성해 언론에 이목이 집중되는 시국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윤도 차에서 내려 시사회장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