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키스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가 따뜻한 차와 함께 흘러나온다. 민은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차 한 잔 더 할래요?”

　“네.”

　민은 마음이 참 편안했다. 그녀가 머문 이틀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편히 쉴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이틀 동안, 그녀의 눈 주위를 감싸던 다크 써클이 사라졌고, 볼에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다. 음식도 곧잘 먹었다. 생기가 도는 그녀의 얼굴빛이 좋아 보였다.

　“왜 키스했냐고 안 물어요?”

　“따뜻했어요. 따뜻한 마음… 그걸로 충분해요.”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테라스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았다. 시간의 구애는 받지 않았다. 민은 그동안 서재에서 책을 읽었다. 휴가를 보름간 냈지만 돌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눈을 보면서 또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저 회사 가봐야 해요!”

　그녀는 악몽을 꾸는지 이틀 내내 잠을 자며 소리쳤다. 회사에 병가를 냈다고 했지만, 그녀에게 그녀가 왜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지 충분한 설명을 해야 했다. 일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 되었다. 민은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김비서가 바로 받았다.

　“네, 강 닥터님.”

　“정민아 씨, 말입니다.”

　“네, 연락받았습니다. 병원에서 마케팅 팀장님께도 전화를 했나 봅니다. 밤이 늦어 전화를 못 받으셨다는데 다행히 정민아 씨 소식은 들은 모양입니다. 병가 처리 됐습니다.”

　아버지 김비서님을 닮아서인지 김비서는 자신의 상사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 같았다. 김비서가 민의 부하직원은 아니지만 일을 꽤나 잘할 것 같다. 민의 집안과는 평생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집안이다.

　“정민아 씨 회사 생활이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출퇴근 여부나 실적 같은 게 필요하신 건가요?”

　“네, 그거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1시간 안에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늦었으니 따로 연락은 안 주셔도 됩니다. 1시간 뒤에 메일 확인하겠습니다.”

　민은 서재에 앉아 전공 사례를 살펴보았다. 안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버려야 할 것들이 있었다. 집착, 성공, 시간, 승아. 사람들의 잔상을 읽을 때마다 승아를 떠올렸다. 안 좋은 잔상을 보던 날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무뎌지면 승아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승아는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가슴에 묻어두고 순간순간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잊혀 지면 잊혀 지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그대로 그렇게 남겨두면 된다는 것을.

　민은 메일을 열었다. 그녀의 한 달 간의 회사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근이나 지각한 흔적은 없다. 다만, 퇴근시간이 매일 새벽 2시가 넘었다. 실적도 경력사원 입사한 사람 중 제일 높았다. 일이 한 사람에게만 과도하게 편중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출근 시간도 매일 아침 오전 6시 30분. 그녀의 집과 회사와의 거리를 감안 했을 때 하루에 2시간 정도 밖에 자지 않았다는 말이다. 왜? 민은 머리를 깊게 쓸어내렸다. 똑똑똑.

　“들어가도 돼요?”

　“들어와요.”

　자신의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서재 안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이 예뻐 보인다. 집에 여자 옷이 없어 준 와이셔츠다. 가끔 선미가 와 자신의 옷을 두고 가긴 했지만, 선미의 옷을 입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민은 자신의 곁에 의자를 하나 끌어다 놓고 앉도록 했다.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내일부터는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쉬는 김에 좀 더 쉬어요.”

　“아니요. 나가야죠.”

　민은 민아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왜요?”

　민아는 자신을 가만히 쳐다보는 민에게 물었다.

　“민아 씨, 어떻게 생각해도 좋아. 내가 궁금해서 민아 씨 뒷조사 좀 했어요. 일을 너무 과하게 하던데. 새벽 2시 퇴근, 오전 6시 30분 출근이면 당신은 하루에 두 시간 밖에 못 잔다는 건데.”

　그녀는 미소 지었다. 윤이 그녀에게서 맡았던 향냄새라는 것을 바로 이 미소에서 본 것이라면 분명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고마웠어요. 미국에서 했던 일을 이곳에서 할 수 있다는 것도 기회를 준 사람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땡땡이 안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일하는 동안 행복해요. 괜찮아요, 전.”

　* * *

　민은 가만히 민아를 안았다.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윤은 그녀에게서 우리와 같은 향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민은 그녀에게서 꽃향기를 맡았다. 그녀를 품에서 풀어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적당히 해요, 적당히. 몸 망가뜨리지 말아요. 그게 날 정말 화나게 하는 거니까.”

　민은 이틀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이 락앤롤 같다면 그녀와 함께한 이틀은 뉴에이지 같은 잔잔하고 평온한 음악 같다.

　“그 집.”

　“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당신 집.”

　“네, 서울이 너무 예쁘게 보여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산 집이에요.”

　“왜?”

　민은 왜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입양 후 20여 년 만에 귀국하는 한국에 대한 환상도 있었을 것이고,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어두운 곳이 아닌 밝은 곳을 원한다. 그녀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한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밝은 집을 택했어야 답이 된다.

　“한국에 들어올 때 어머니가 살아계실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직 그 분이 어머니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분이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거처를 정했어요. 혹시 모르잖아요. 시간 되면 언젠가 들르실지.”

　집 나간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가 이사 안가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무슨 이유에서건 자신을 버린 어머니 아닌가. 그런 어머니가 혹시 들를지 모를까봐 집을 산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민도 알고 있다. 민은 다시 한 번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 * *

　윤은 점심시간에 근처로 온다는 선미를 만났다. 선미와 점심식사를 하고 법원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일광욕을 나눴다.

　“윤아.”

　“왜?”

　“나 요즘 민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데.”

　“음… 나 그 자식에 대해서는 노코멘튼데. 본인한테 확인하는 게 빠를 건데.”

　“네가 알만한 거라 그래.”

　윤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선미를 바라보았다.

　“뭔데?”

　“민이 말야.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집에서 너무 꼼짝도 안 해서. 오지도 못하게 하고.”

　윤은 커피를 마시다 헛기침을 했다. 선미는 성의 없이 윤의 등을 툭툭 쳤다.

　“집에서 뭐 하겠지. 얘는 괜한 걱정이야.”

　“집에서 뭐?”

　윤은 연신 헛기침을 한다.

　“너 천식이야?”

　“그런가? 진 닥터, 나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윤은 굳이 병원에 들르라는 선미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늘 선미처럼 민에 대해 궁금해 하는 여자가 많았다. 민은 사귀는 여자에게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일 거다. 민과 가장 친해 보이는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이유가. 승아도 그랬다. 민은 승아가 물으면 자신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라 했지만 승아는 물음 대신 ‘걔 뻥쟁이 아니니?’ 라고 말했다. 윤은 피식 웃었다.

　민은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민은 입을 닫으면 닫았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승아는 어린 나이에 꽤나 당돌하고 직설적인 아이였다. 공부도 꽤 잘 했다. 하지만 승아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 민과 닮았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

　윤은 서류를 펼쳤다. 사건번호 8167. 방화사건. 이 사고로 승아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사건이 아닌 사고로 마무리 되었다. 어느 누구도 항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이 사고에 대해 윤이 의심이 가는 부분은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나 조용했다는 점이다. 누군가 학교에고 법원에고 딸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을 법한데 너무 조용했다. 마치 일이 터질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빠르고 쉽게 마무리 되었다. 분명 서류에는 어머니가 생존해 있다고 되어 있다. 이름 1953년 4월 30일생 박정심. 지금은 예순이 넘은 나이다. 딸이 죽고 나서 한 번쯤 모습을 드러낼만한데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기일에 한 번 올만한데 매년 기일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는 거라면 굳이 기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납골당 근처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기일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존은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는 승아의 어머니…. 이 사건에 대해 뭔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승아의 어머니인 박정심 씨를 만나야 했다.

　윤은 고개를 뒤로 한 번 젖혔다가 창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승아의 어머니라면 승아와 닮아 있을 텐데 어떻게 닮아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승아와 닮아 있던 정민아 씨가 떠올랐다. 민의 손님방에서 나오는 그녀의 목에 절표식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목걸이에는 ASY/AMJ 라고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 주말아침, 김비서님이 부랴부랴 갖고 들어 오길래 얼핏 본 기억이 있다. 다른 목걸이와 다르지는 않았지만, 이니셜이 좀 이상했다. 분명 두 사람의 이니셜인데 자신의 이니셜이 아닌 다른 두 사람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한 친구들과의 우정 목걸이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 향냄새는? 분명 그녀에게서 향냄새가 났다. 민의 집에 하루를 머물렀는데도 향냄새가 났다면 분명 평소에 향과 가까이 한다는 얘기다. 잠깐 인사를 하면서 본 것은 손목에 보일 듯 말 듯 난 칼자국 상처와 손톱이 고르지 못하고 뜯겨 있는 정도. 손톱을 뜯는 사람들의 특징은 보통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해 남은 습관 혹은 불안증. 민의 곁에 두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한 여자다.

　* * *

　윤이 퇴근 시간에 맞춰 집 앞에 차를 대자 민은 마지못해 차에 올랐다. 굳이 가지 않겠다는 민을 밖으로 끌어내 자주 들르는 바(bar)로 갔다.

　“그 여자는? 갔냐?”

　“말투가 상당히 거슬리는데.”

　이 바에 자주 들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장님이 민과 윤에게만은 특별 요리를 해줬기 때문이다.

　“형, 라면 둘. 위로 올라간다.”

　“고급 양주집 와서 라면은…”

　“라면에 양주 넣어줘.”

　“콜!”

　민과 윤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넓은 홀도 있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조용한 룸도 있었다.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 정재계 사람들이 은밀한 비즈니스 회의를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테이블에는 여느 날과 같이 작은 초가 놓여 있다. 초를 보니 승아가 떠오르고 승아가 떠오르니 정민아 씨가 떠오른다.

　“갔냐고, 그 여자.”

　“갔어. 그거 묻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닌 것 같고. 뭐야?”

　윤은 민이 물고 있는 담배에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그 여자는 아닌 것 같다.”

　“뭐가?”

　“그 여자, 느낌이 안 좋아.”

　“무슨 느낌?”

　“내가 너 여자 만나는 거 어디 한 번 말리디? 이번에는 그럴 만 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그럴 만 한 게 뭔데?”

　“라면 들어간다.”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민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눌러 껐다. 공기가 무겁다. 라면을 주러 왔던 바 사장도 그 분위기를 직감했는지 다른 때 같으면 한 마디 거들고 갈 텐데 말없이 나간다. 라면과 함께 나온 양주. 민은 말없이 윤의 잔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