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일
박씨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을 바라보았다. 민의 팔을 한 번 쓸어주었다. 그 손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지 못하고 마음에 안고 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도 알지, 승아 잘 알지. 절에 자주 왔었다. 윤을 찾아오는 것 같기도 했고, 널 찾으러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사연이 참 많은 아이다. 떠난 아이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구나.”
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박씨의 눈이, 손길이, 말이, 표정이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지만 더 이상 알아서도 물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20여 년의 이야기를 하루아침에 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궁금증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제 얘기 하나 드릴게요. 들어주시겠어요?”
박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은 부모님에게도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터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보따리 풀어내듯 풀어내어도 그것을 다 덜어주실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많은 말로 그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필요가 없었다.
“승아가 떠나기 하루 전날, 승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승아에게 대학교수님한테 그랬던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말했습니다. 불 근처로 가지 말라고. 불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고. 주지스님이 늘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불행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그걸 말하게 되면 상대방이 불행해 진다고. 전 그걸 알고서도….”
마음에 응어리처럼 평생 안고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풀어내니 눈가가 뜨거워졌다.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박씨는 그런 민이 등을 말없이 쓸어주었다. 민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괜찮다… 그 또한 그 아이 운명인 것을….”
민은 말하고 싶었다. ‘똑같은 잔상을 가진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런 여자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승아가 아니라면 못 본 척 스쳐 지나가면 될 텐데 그 여자를 보는 제 마음이 승아와 같습니다. 또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여자를 불행하게 할까봐 겁이 납니다.’ 민은 박씨 보살님과 더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절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려 했지만, 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보살님이 승아를 알고 계셔?”
“응, 널 찾아 온 여자아이로 알고 계시더라. 절에서 널 기다리는 걸 몇 번 보셨다고.”
“그러게, 그랬을 수도 있겠네. 근데 넌 어떻게 알았어? 보살님이 승아를 알고 계셨다는 걸.”
윤은 그때 어렸다. 어른들 눈에는 보였을 민의 비밀이 윤이에게는 안 보였을 것이다. 민은 윤이 그 날 일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내가 8살 때였을거야. 대학교수 아주머니 한 분 들어 오셨었잖아, 절에.”
“기억하고 있어.”
“내가 이상하게 행동했다는 것도?”
“기억하지.”
윤은 그 날 민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듯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우뚱, 왼쪽으로 갸우뚱하기도 했다.
“30살 넘은 어른들끼리 대화니까 그냥 터놓고 얘기하면, 네가 신기가 있다고 생각했어. 아버지가 면접 때 널 꼭 참석시키는 거 보면서 그렇지 않을까 추측만 했고.”
“근데 왜 한 번도 안 물어봤어?”
“물어보면 뭐. 그런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누면,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게 있다. 가끔 민의 이상한 부분에 대해 윤이 궁금해 하지 않을까 생각 했었다. 한 번도 묻지는 않았지만.
“그러게. 가끔 내가 무섭지 않았어? 그랬을 때 있었을 거 아니야.”
“있었지. 나 수능보고 나서 내가 원하는 대학교 법대에 갈 수 있을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때, 넌 말했지. 합격! 그랬더니 정말 합격! 로스쿨 졸업하고 검사가 된 케이스가 많지 않은데 내가 검사가 될 수 있을까 했을 때도 넌 그럼! 넌 반드시 된다! 했을 때도 그랬고. 사건으로 고민하다가 나 승소할 수 있을까? 했는데, 넌 사건의 내막을 들어보지도 않고 이번엔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랬는데 정말 어려웠지. 그러고 보면 너한테 의지 참 많이 했다. 이제 서야 말이지만.”
“날 이용한 거구나~”
민은 피식 웃었다. 윤도 민이를 보며 피식 웃고 만다.
“들켰나?”
무거웠던 마음이 윤 덕분에 풀린 적이 많다. 앞으로도 그럴 일이 많을 것이다. 윤이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면 지금처럼 지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평생을 함께 한 형제가 있어 눈감을 때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윤아, 넌 사귀는 사람 없어?”
“있겠어? 맨날 너랑 이러고 돌아다니는데?”
“만나라, 좋은 사람.”
“너 8살 때도 그랬어. 친구들 만나서 떡볶이 먹으로 왜 안 가냐고. 너 공부 때문에 일찍 오는 거 아니냐고.”
사람들은 어렸을 때 기억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 민은 8살, 9살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아마 윤에게도 그럴 것이다. 떡볶이 먹으러 가지 않고 절로 일찍 돌아오는 윤이 고마워서 한 말이었는데 윤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윤은 민이 누군가를 늘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야 말로 사귀는 사람 없어?”
“아직은.”
“아직은? 곧 생길 수도 있다는 거야?”
“그 말이 왜 그리로 가?”
“그렇잖아. 보통 네가 하는 대답이 아니잖아.”
윤은 예리하다.
“너 그 경력사원, 맞지?”
“무슨 경력사원?”
“맞잖아. 저번에 경력사원 채용을 서두르고 싶네, 어쩌네 하면서 그 여자네 집으로 갔었잖아.”
윤은 귀신같다.
“배고프다, 휴게소에 들러 밥이라도 먹고 올라가자.”
휴게소에 들러 윤과 민은 라면을 먹었다.
* * *
본가로 간다는 윤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음악을 틀었다. 열어 놓은 테라스 창문 안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딩동딩동. 민은 반사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밤 10시 20분이 넘은 시각.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다. 초인종이 다시 울린다. 거실로 나가 인터폰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잘못 눌렀을 수도 있다. 다시 방으로 가려는데 또 초인종이 다시 울린다.
“누구세요.”
“짠~~ 나야!”
인터폰 속에 선미의 모습이 보인다. 민은 피식 웃었다. 선미는 야근을 하는 날이면 곧잘 민의 집에 들렀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어 생각하지 못했다. 선미는 양 손에 음식과 술을 잔뜩 사들고 들어왔다. 매번 그랬다. 남의 집 오는데 빈손은 예의가 아니라며 항상 양손 가득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안 먹는다니까.”
“사온 사람 생각해서 먹어.”
선미는 봉지를 식탁에 내려두고 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살 것 같다.”
민은 선미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민과 선미의 사이는 거기까지였다. 선미는 오랜 습관 같다. 4년 전, 쓰러진 자신을 병원에 눕혀 밤새도록 간호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간 남자를, 보호자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눈을 떴을 땐 퀭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미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민과 선미는 친구가 되었다.
“늦었네.”
“좀 바빴어. 휴가 왜 냈어? 4월이라 그런가?”
4월이면 민은 어김없이 보름정도 휴가를 냈다. 전문의가 되고나서는 거의 매년 그랬다. 선미는 민에게 많은 걸 묻지 않았다. 윤이처럼 늘 민이 얘기하는 것까지만 듣고 말했다.
“안인 갔다 왔어?”
“응”
선미는 민의 허리를 감싸던 손을 풀며 물었다. 선미가 싱크대에서 이것저것 무언가를 만드는 동안 민은 식탁에 앉아 선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번은 선미가 술에 취해 오늘처럼 집으로 찾아왔었다. 아무런 말없이 소파에 앉아 눈물을 펑펑 흘렸다.
“너한테 나는 뭐니?”
물을만한 질문이었다. 선미의 마음을 모른 척 했을 뿐이지 선미가 무슨 마음으로 자신을 대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름다운 우정만을 생각하기엔 선미의 마음이 너무 컸고, 민은 그런 선미와 멀어져야 했다.
“네가 지금 속상해 하는 이유, 뭔지 알아. 하나만 얘기할게.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앞뒤 가리지 않아. 무조건 들이대고 봐.”
“잔인하다, 너 진짜….”
“더 잔인하게 말할 수도 있어. 나한테 그 어떤 기대도 하지 마.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날 위해서라는 말 따윈 하지 마! 그래, 알았어. 네가 무슨 마음인지 정확히 알겠어. 그러니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피하지 마. 멀어지지도 마. 그냥 딱 그 정도에만 있어. 너 마음 안 바랄 테니까.”
“그래. 그럴게.”
그 날 선미는 민의 집에서 잤다. 민이 선미에게 할 수 있는 건 윤이한테 할 수 있는 것까지 만이다. 윤이한테 할 수 없는 것은 선미한테도 할 수 없다. 손을 잡을 수도, 키스를 할 수도, 같이 잠을 잘 수도 없다. 그저 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 듯, 윤과 함께 우정의 포옹을 하듯, 같이 밥을 먹듯. 거기까지였다.
“민아.”
“응.”
“나 오늘 자고 가도 돼?”
“그래.”
민은 선미가 자고 간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다. 선미가 말한 것처럼 멀어지지 않는 최선의 노력을 할 뿐이었다. 선미가 만든 타코타치즈샐러드를 먹으며 영화 <화양연화>를 봤다. 왕가위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선미도, 민도 여러 번 본 작품이었다.
“민아.”
“저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 있어?”
민은 선미의 물음에 샐러드가 목에 딱 걸렸다. 기침을 여러 번 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잦아들었다.
“먼저 묻자. 넌?”
“난…. 지금!”
“그만.”
민은 선미의 말을 잘랐다. 선미의 말에 대해 더 해줄 말도 들을 말도 없었다.
“민이 넌?”
“나 34살이야.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영화는 캄보디아 장면이 나오면서 끝나갔다. 왕가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앙코르와트는 시대가 없는 곳, 시간의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곳이라서 좋았다고 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 영원한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미국 유학 시절, 이 장면을 보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끝없이 떠오르는 승아를 마주해야 했다.
“누군데?”
“듣고 싶어?”
“아니, 됐어. 안 들을래.”
“자자.”
민은 테이블 위에 있는 맥주 캔과 샐러드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가려는데 선미가 민의 등에 기댔다. 선미는 따뜻한 민의 등에 기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러면 넌 어떨 거 같아?”
“음…. 축하해줘야지. 당연히.”
선미는 민이 앞으로 가 섰다.
“그게 다야?”
“그릇 좀 놓고 얘기하자.”
민은 거실을 지나쳐 부엌으로 갔다. 식탁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맥주 캔을 휴지통에 넣었다. 민은 선미 쪽으로 돌아섰다. 선미의 눈에서는 늘 좋은 잔상만 보였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 남부럽지 않을 만큼 충분히 공부했고, 남부럽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공하는 모습.
“그게 다야?”
“선미야, 넌 참 똑똑하고, 예뻐. 당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 아니야?”
“넌? 넌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너한테 좋은 사람은 아니야.”
“넌 여자 절대 만나지 마.”
“기회가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장담은 못해.”
“여자만 생겨봐. 내가 그 여자 어떻게 하나.”
“너 답지 않게 신파 말고 자자.”
민은 선미가 오면 늘 자던 방으로 데리고 갔다. 선미의 이부자리를 봐주고 방 불을 껐다. 침대 옆 협탁에 스탠드 불을 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미의 잠자리를 봐주고 방을 나오는데 갑자기 진동이 울렸다. 민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부터 확인했다. 12시 15분. 발신자에 ‘정민아’라고 떴다.
“강민 입니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민아 씨!”
아무 대답이 없었다. 민은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불현 듯 안 좋은 생각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강 닥터님?”
“누구지?”
“저… 인턴 박인철 입니다.”
“그래, 근데 왜 이 전화로 전화했어?”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들어왔는데요. 최근 통화 목록 확인하다 연락드렸어요.”
“구급차에 실려와?”
민의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서 어느 순간에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안 좋은 생각부터 들었다.
“화재…사고야?”
“아니요, 화재 사고는 아니고, 환자가 길에 쓰러져 있어서 신고 받고 구급차가 간 모양입니다. 우선 혈액 맡긴 상태고, 신경외과에 연락해 놓은 상태입니다.”
“알았어, 곧 갈게.”
민은 전화를 끊고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다행히 화재사고는 아니었다. 마음이 그나마 놓였다. 민은 거실로 가 차키 부터 찾았다. 옆에 있던 선미가 그런 민의 손을 잡았다.
“너 지금 운전 못해. 누군데? 무슨 일인데?”
“병원가야 돼. 응급환자야. 내가 가야 돼.”
“민아, 우리 응급환자 처음 보는 거 아니야. 뭣 때문에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같이 가. 내가 운전할게.”
민은 병원 가는 내내 그 여자 상태가 궁금했다. 빨리 보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이제 더 이상, 그 여자를 방치하는 것은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