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밀

　민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노을과 맞닿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학교에서 돌아온 윤이 민이 곁에 앉았다.

　“그냥 뭐 이것저것….”

　윤은 노을에 물든 민을 보는 게 좋았다. 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면 민은 늘 이곳에 있었다.

　“넌 학교에 언제까지 못 가는 거야?”

　“모르겠네. 평생?”

　민은 유일한 친구이자 말벗인 윤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너 친구 있지, 여자애.”

　“누구?”

　“절에 가끔 뭐 물으러 오는 여자애.”

　“승아?”

　“그래, 승아.”

　처음 입 밖으로 낸 이름이다. 1년 간 가슴 속에만 놓아두고 꺼내지 못했던 그 아이 이름.

　“걔가 혹시 나에 대해 물으면 모른 척 해. 나 눈이 안 보이는 걸로 해”

　“눈이 안 보인다고 하라고?”

　“혹시 물으면.”

　“왜?”

　“그게 편해. 사람들이랑 안 엮이고.”

　“왜 그래야 하는데?”

　“그건 내 운명이니까.”

　“그런 게 어딨어!”

　민은 웃으며 윤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윤은 민을 바라보았다. 민은 동갑인데도 늘 형 같았다. 친구도 없고, 말할 사람도 없어 매일 답답할 텐데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는 민이 가끔은 어른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민이 하루 종일 이곳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치는 파도를 보며, 지는 노을을 보며 기다림을 배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해가 뜨면 노을을 기다리고, 파도가 저만치 가면 밀려오기를 기다리고, 스님이 법당에서 염불을 하시면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또 가끔은 불쑥불쑥 나타나는 승아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가끔 민의 눈에서 승아를 볼 때가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윤은 알 수 있었다.

　* * *

　사찰에서 초등학교까지는 버스로 20분 거리. 윤은 하교 버스 안에서 늘 책을 읽었다. 사찰에 도착해 민에게 얘기해 줄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민은 윤과 함께 공부할 때 사소한 것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민은 이해력이 좋았다. 한 번 이야기 하면 대부분 다 이해해 응용했다. 민은 공부 욕심 많은 윤을 자극했다. 윤이 하교 길에 어디에도 들르지 않고 사찰로 바로 귀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윤에게는 훨씬 즐겁고 유익했다. 민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아는 아이였다.

　“어휴, 놓칠 뻔 했네”

　버스에서 내려 한숨 돌리고 있는데 버스에서 같이 내렸는지 승아가 윤이 곁으로 다가왔다. 2학년 들어 다른 반이 돼 만날 일이 차츰 줄어드는 승아였다.

　“여긴 무슨 일이야?”

　“나 물어볼 게 있어.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

　“네 친구 민이 말야.”

　“어.”

　“혹시… 걔 뻥쟁이 아니니?”

　“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윤이었다. 어젯밤 민이 말대로 승아가 민이 눈이 안 보이냐고 물으면 부인하지 않고 침묵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승아는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뻥쟁이라니?”

　“그렇잖아. 멀쩡한 눈이 안 보인다고 하는 게.”

　준비되지 않은 물음에 침묵은 답이 되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직접 물어봐.”

　여기까지 얘기하는 게 지금 상황을 모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승아를 뒤로하고 사찰로 돌아왔다. 사찰마당에는 얼마 전 봤던 고급승용차 2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 * *

　스님이 민을 부른 것은 오후 7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평소 민이라면 그 시간에 책을 읽다 바다를 보러 돌담으로 나갔을 것이다. 스님이 방으로 부르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민이 큰 잘못을 했거나 그게 아니면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방에는 스님 외에 두 분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민은 고개를 숙인 채 스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외부인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승아 이후로 처음이라 어색했다. 방에 들어서면서 민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따스한 햇볕 같은 느낌 같기도 했고, 포근한 살결 같기도 했다. 분명 스님이 아닌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거라.”

　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스님이 누군가를 아무렇지 보게 하는 것은.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맞닿을 때 그것이 설령 정당한 것일지라도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민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색하고 답답했다.

　“고개를 들어도 된다.”

　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신 눈을 감았다. 스님의 눈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기에 바라보아도 상관없었고, 윤의 눈은 이미 봤기 때문에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는데 처음 보는 두 사람에게는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이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거라.”

　“네?”

　“눈을 떠도 된다.”

　민은 긴장되었다. 어떻게 눈을 떠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어린 병아리처럼 눈에 조금씩 스며드는 빛이 피사체를 정확히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빛이 완전하게 눈에 닿았을 때 앞에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이 눈동자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민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 긴 생머리에 가녀린 손목, 작은 얼굴에 오똑한 코를 가진, 이 세상에 태어나 본 여자 중 제일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울고 있었다. 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없이 울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민이 눈에도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옆에 있는 분은 말끔하게 생긴 남자. 스님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컸고, 민이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선생님 같은 분. 그 분 역시 민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민은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한 방울이 떨어져 나무 바닥에 번지면 또 한 방울이 떨어져 번져나갔다. 스님이 왜 그 분들의 눈을 바라보게 했는지 알 것만 같다.

　“네 부모님이다.”

　방 안을 들어섰을 때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는 차마 가질 수 없는 감정. 봄볕같이 따스하고, 살결같이 포근한 거. 민은 그대로 방을 뛰쳐나왔다. 큰 스님 방 밖에서 모든 얘기를 듣고 있던 윤은 그런 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혼자 될까봐 두려운 듯 한 얼굴로.

　* * *

　민은 그대로 뛰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마을까지 내려갔다. 버스를 탔다. 사찰을 벗어난 적이 없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지만 어두워진 하늘을 따라 버스를 타고 마냥 갔다.

　“이번 역은 정운초등학교 입니다. 다음 역은 모래시계공원입니다.”

　민은 윤이가 다니는 정운초등학교에서 내렸다. 학교에는 몇몇 아이들이 공을 갖고 놀고 있었다. 윤이 말한 축구가 저거였다. 잔디구장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법 신나 보인다. 축구하다 공이 선 밖으로 나가 우리 팀 공이네, 아니네 다투는 아이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렇게 살 수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귀국한 민을 가만히 안아주는 그녀. 민이 앞에서는 웃었지만, 민이 없는 곳에서는 늘 눈물을 흘리는 그녀. “미안하다, 민아” “미안하다, 민아” 그녀의 눈은 촉촉했다. 그녀는 혼자 숨죽이며 평생 “미안하다, 민아”를 반복한다.]

　그녀의 눈에서 읽었다. 그래서 엄마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를 위해 평생 울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인생도 자신만큼이나 안타까웠다. 민은 가만히 고개를 떨궜다.

　“눈이 보이는 게 확실해”

　불쑥 불쑥 등장하는 분홍색 꽃신이다. 민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눈 보이는 거 다 봤어. 눈 뜨시지?”

　승아는 민의 눈에 손을 올려 강제로 눈을 뜨게 했다. 민은 그런 승아의 손을 뿌리쳤다.

　“너 진짜 큰 일 나고 싶어서 이래?!”

　승아는 화난 민의 모습에 주춤했다. 그러다 이내 축구하는 아이들 쪽으로 몸을 틀어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았다. 민은 갑작스레 눈을 만지는 승아에게 불쑥 화를 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민은 무슨 말이든 하려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눈을 보고 싶어”

　승아의 목소리였다. 민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책을 통해서만 읽었던 ‘가슴이 철렁 한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눈이 안 보여도 좋아. 눈이 안 보인다고 해도 상관없어! 눈을 보고 싶어!”

　승아는 향냄새가 나는 민이 궁금했다. 윤을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먼발치에 있는 그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오후 2시가 넘으면 돌담에 앉아 한참동안 바다를 보았다. 노을 지는 언덕에 앉은 그 아이의 그림자를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아이에게서 나는 향냄새와 그 아이가 늘어뜨리는 긴 그림자는 항상 승아의 발목을 잡았다.

　민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떴다.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비가 올지 모르겠다. 별의 개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비가 곧 올 거라는 걸 아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울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승아의 눈을 딱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 그 아이의 분홍색 꽃신을 보았을 때부터 줄곧 들었던 생각이다. 이제 민은 이 곳을 떠날 운명이다. 이렇게 이곳을 떠난다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그 아이의 눈을 봐도 되지 않을까. 민은 망설였다. 그 아이의 눈을 보게 되면 그 아이의 잔상을 읽게 될 것이다. 나쁜 잔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해서 멋진 여자가 되는 잔상을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잔상을 보는 것이 나쁠 것이 없다. 민은 오랜 고민 끝에 승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눈에서 불이 보였다. 그 아이 온 몸에 불이 붙었다. 그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민은 눈을 감았다. 왜…!!!

　"나 봤지?"

　승아는 다시 민의 얼굴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 다음엔 민의 눈에 손을 올렸다. 다시 한 번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똘망똘망한 눈, 웃으면 초승달이 되는 눈, 바나나 같은 입술, 왼쪽 눈가 밑에 아주 작은 점… 하얀 피부…. 참 예쁘고 밝은 아이다. 그런데 왜 이 아이가 불 속에…. 민은 그녀에게서 본 잔상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그때 민은 알아야 했다. 그녀가 아플 일이 참 많을 것이라는 것을….

　* * *

　연기가 피어올랐다. 거짓말처럼 불이 솟아올랐다. 초등학교 과학실에서 난 불이었다. [저 안에 여자 아이가 있어요! 선생님 저 안에 승아가 있어요! 승아는 한 쪽 눈이 잘 안 보여서 나오다 책상에 걸려 넘어져서 저희 손을 놓았어요!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선생님!] 민은 부모님을 따라 절을 떠나는 길이었다. 승아를 마지막으로 보던 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날, 승아와 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승아.”

　“내 이름,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한 번도 부르지 않았어?”

　“이유가 있었으니까.”

　“이유? 무슨 이유?”

　민은 승아를 보다 승아의 시선을 피해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다. 승아는 하늘을 바라보는 민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민의 얼굴은 따뜻했다. 민의 콧등에 승아의 손이 닿았다. 민은 놀라 승아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그대로 있어봐.”

　민은 눈을 감았다. 승아도 눈을 감았다. 콧등에 승아의 손길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승아의 손이 콧등을 간지럽혔다. 서 너 번 그런 뒤 멈췄다. 승아의 손이 멈추자 이번엔 민이 승아의 손을 잡았다.

　“약속 하나만 해”

　“그래, 뭐?”

　“너 혹시라도 불 근처에는 절대 가지마.”

　“불?”

　“그래,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불 가까이 가서는 안 돼! 명심해, 알았지?”

　“응, 그래, 알았어.”

　절대 안 된다. 민은 마음속으로 승아에게 반복해서 여러 번 그렇게 말했다. 그 날 민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