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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켈베로스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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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을 살라먹고 살아가는 자.
작은 형이 죽던 날, 심장은 멈췄고.
큰 형이 죽던 날, 나의 두 눈은 빛을 버렸다.

그대, 기억하라.
어둠을 기생하는 이여.
나의 손짓이 찾아가는 순간, 너의 세상은 멈출 것이다.

분노, 순수한 감정의 불길이 타오른다!

 
2 화
작성일 : 16-08-24 11:45     조회 : 683     추천 : 1     분량 : 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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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어둠이 내린 지 한참 지난 시간이었지만 불빛이 휘황한 강남시외버스터미널은 대낮처럼 환했다.

 드르르륵.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의 뒤를 따라 막 버스를 내리는 혁의 호주머니에서 강한 진동이 왔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화면을 본 혁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노는 건 눈뜨고 못 본다니까.”

 장난스럽게 중얼거린 그는 콜 버튼을 눌렀다.

 “왜, 누나?”

 핸드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혁의 얼굴에서 조금씩 표정이 사라졌다.

 담담하지만 눈빛이 강해서 차갑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알았어.”

 혁은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쩝…….”

 전화를 끊은 후 잠시 건물의 외벽에 왼쪽 어깨를 기대고 기우뚱 서 있던 혁은 낮게 혀를 차며 팔짱을 풀고 몸을 세웠다.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간만에 쉬는 날이라 세 시간에 걸쳐 치악산 정상을 밟은 후 내려와 잠시도 쉬지 않고 서울로 돌아온 그였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서는 피로 대신 절제된 강인함이 느껴졌다.

 혁은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깊었다.

 “여자라… 이틀이 지났으면 못 볼꼴을 보게 되기 쉽겠군.”

 낮게 중얼거린 그는 걸음을 옮겼다.

 음성은 담담했지만 발놀림은 빨랐다.

 

 가로등도 없는 거리는 괴괴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불이 꺼진 건물의 외벽 그늘에 서 있는 혁의 눈이 밤고양이처럼 푸르스름한 빛을 발했다.

 오늘 그가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건물은 저 어둠 한구석에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을 터였다.

 그의 얼굴은 선이 굵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최근의 트렌드인 가늘고 수려한 스타일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한 그의 얼굴에 언뜻 피로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육체적인 피로 때문에 떠오른 기색이 아니었다.

 피로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왔다.

 “누나와 함께한 세월이 벌써… 1년이 넘었나…… 세월 참 빠르군.”

 그는 블랙진의 뒤 호주머니에 꽂아두었던 검은 가죽장갑을 꺼내어 손에 꼈다.

 우두둑.

 깍지 낀 양손가락을 가볍게 비틀자 뼈가 퉁기는 소리가 기분 좋게 났다.

 “말로 해서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뚜벅뚜벅.

 훤칠한 장신이다.

 그만큼이나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나가며 중얼거리는 혁의 낮은 목소리가 거리에 낮게 깔렸다.

 “그런 걸 기대하면 누나에게 바보 소리 듣기 딱 좋겠지…….”

 

 ***

 

 “사장님, 저희 먼저 들어가요. 좋은 꿈꾸세요.”

 팔등신의 늘씬한 아가씨 두 명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십대인 듯도 보이고 이십대인 듯도 싶고 어찌 보면 삼십대로도 보여 나이를 종잡기 어려운 아름다운 여인은 싱긋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두 아가씨를 배웅하고는 안쪽의 문고리를 잠갔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려면 두어 시간은 지나야 했다.

 그동안 그녀는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바로 돌아간 그녀는 진열대에서 로얄 샬루트 한 병과 잔 하나를 꺼내 들고 홀 중앙의 빈자리에 앉았다.

 단순하지만 우아한 디자인의 검은색 롱드레스는 왼쪽 허벅지 깊은 옆트임이 있었다. 다리를 꼬자 깎은 듯 매끄럽고 긴 다리가 드러났다

 쪼로록.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잔에 술을 따르던 그녀의 고운 눈썹 끝이 살짝 찌푸려졌다.

 “요새 혁이 기색이 조금 이상하던데…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한 모금.

 입안에 감도는 술의 향기를 음미하다가 넘긴 그녀의 얼굴이 펴지며 봄바람과도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춘기가 늦게 오는 것일지도 몰라. 훗!”

 가볍게 웃던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혁이가 들었으면 기분 나빠 하겠다.”

 그녀는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턱을 괴었다.

 그녀의 크고 맑은 눈이 잠시 흔들렸다.

 “하아… 혁이가 원한 일이긴 해도 못할 짓을 시키고 있긴 해. 그 나이에 누가 그렇게 살겠어. 이 나라가 남미의 콜롬비아 같은 나라도 아니고…….”

 그녀는 깍지 낀 양손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조만간 한번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봐야겠어.”

 술잔을 잡아가는 그녀의 눈빛은 호수처럼 깊었다.

 

 ***

 

 백여 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을 백열등 전구 하나가 밝히려니 힘에 부친 듯 중앙의 10여 평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침침한 어둠에 덮여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몇 미터 떨어진 불빛 아래 펼쳐진 광경을 지켜보던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그는 등을 의자에 깊이 묻으며 눈을 치켜떴다.

 “거 참, 보고만 있는 것도 고문일세.”

 의자 뒤에 장승처럼 늘어서 있던 사내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좀 남았습니다. 저희들만 재미 봐서 죄송했는데, 몸 한번 푸시죠. 앙탈을 제대로 하는 게, 계집이 꽤 쓸 만합니다.”

 의자에 앉은 사내, 백동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말을 했던 사내는 찔끔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이며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백동주의 잇새로 낮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흐흐, 니가 지금 나하고 구멍동서하자는 거냐?”

 웃고는 있지만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운 음성이다.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식은땀으로 이마를 적신 사내가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잘못했습니다, 사장님.”

 백동주는 삼십대 후반임에도 초반처럼 보일 만큼 피부가 좋고 호남형이라 여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생김새와 달리 마음은 뱀처럼 차갑고 독해서 눈에 거슬리는 걸 가만 놔두질 못했다.

 사내는 그런 백동주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웃음기가 돌았던 사내들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해졌다.

 그들은 백동주의 시선을 따라 불빛 아래로 눈을 돌렸다.

 환한 전등 아래.

 그곳에는 넓은 당구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당구대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여인이 큰대 자로 누워 있었다.

 세상 어느 여자도 남자, 그것도 여러 명의 남자 앞에서 저런 모습으로 누워 있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인의 팔목과 발목은 등산용 밧줄에 묶여 있었고, 밧줄의 반대쪽은 당구대의 네 모서리에 깊이 박혀 있는 굵은 대못에 연결되어 있었다.

 백동주와 그의 부하 네 명이 있는 위치는 다리를 활짝 벌리고 누워 있는 여인의 거뭇거뭇한 사타구니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백동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구대로 걸어갔다.

 뚜벅뚜벅.

 정적에 묻혀 있던 어둠이 구둣발자국 소리에 진저리를 쳐댔다.

 당구대 옆에서 걸음을 멈춘 백동주는 누워 있는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독한 년.”

 당구대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여인은 이십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였는데 미모는 평범한 편이었지만 눈매가 지적이어서 인상적이었고, 몸매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은 여기저기가 퍼렇게 부어올랐고, 코와 턱 근처는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인은 치욕스러운 상황임에도 눈을 똑바로 뜨고 백동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기에 가까운 독기가 느껴지는 눈길이었다.

 그녀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듯했지만 말은 하지 못했다.

 입에 두꺼운 청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백동주는 장갑 낀 손으로 여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하… 눈빛이 여전하네? 여간한 강단이 아니야.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칭찬해 주고 싶은 눈빛이야.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아. 그건 이소영 씨도 알지? 심층취재 전문 프리랜서 기자라… 다 좋아. 대한민국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민주공화국이잖아. 자기가 하고 싶다는데 누가 그걸 말리겠나?”

 백동주의 말투는 온화하게 들릴 만큼 부드럽고 사근사근했다. 하지만 눈빛은 이소영이라 불린 여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이 씨발년아, 취재도 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거든. 아직 초짜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런 영역을 취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야. 잘못하면 이런 꼴이 나니까.”

 이소영의 머리를 쓸던 백동주의 손아귀가 그녀의 턱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섬에다가 팔아넘겨서 걸레로 만들고 싶은데…….”

 백동주는 잠시 말을 멈췄다.

 찡그린 인상이 그의 심기가 편치 않음을 말해주었다.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내 맘대로 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 분이 계셔서 네 취재기록과 녹화필름만 받고 풀어주려는 거야. 그러니 내 인내심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불어라. 물건, 어디에 있냐?”

 백동주는 이소영의 입에 붙여놓은 청테이프를 거칠게 떼어냈다.

 테이프가 떼어진 이소영의 입술은 칼로 다진 것처럼 이곳저곳이 찢겨 있었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입술을 짓씹은 때문이었다.

 백동주는 테이프 조각을 꾸기며 뒤의 사내 한 명에게 손짓을 했다.

 그의 손짓을 받은 사내가 뛰듯이 다가와 5인치가량 되는 PMP를 백동주에게 건넸다.

 백동주는 PMP를 간단하게 조작한 후 화면을 이소영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헉헉, 죽인다. 헉헉.]

 [아으으으!]

 PMP의 화면이 커짐과 함께 음습하던 지하공간에 남녀의 뜨거운 숨소리로 가득 찼다.

 화면을 본 이소영의 독기 어렸던 눈이 수치와 모욕감, 그리고 공포와 좌절로 물들었다.

 화면 속에는 알몸의 남녀가 뱀처럼 뒤엉켜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그 안의 여인은 이소영이었다.

 화면 속 이소영은 현재의 눈빛과 몰골과 달랐다.

 그녀의 눈은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고, 몸짓은 남자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다.

 백동주는 피식 웃었다.

 “매에 장사 없다는 말 알지? 마찬가지야. 뽕 들어가면 요조숙녀도 창녀가 되지. 하지만 이걸 본 사람 중에 네가 뽕 먹었다는 걸 알 놈이 누가 있겠냐? 아무튼 인터넷에 한번 올리면 그날 중으로 너는 이 나라에 사는 남자들의 스타가 될 거다. 모르지, 세계적인 스타가 될지도.”

 이소영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백동주는 당구대에 걸터앉으며 PMP를 손안에서 슬슬 돌렸다.

 “그러니 불어. 불지 않으면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야. 어차피 너는 물건을 내놓지 않으면 이곳에서 나가지도 못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나는 네게서 물건을 얻어낼 거야. 버텨봐야 너만 괴로울 뿐이지. 잘 알지 않나?”

 이소영의 얼굴이 절망감에 거무죽죽해졌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소영은 어리석지 않았다.

 두려움 때문에 죽을 것 같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입을 열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그녀는 납치된 후 이틀 동안 여기 있는 사내들에게 윤간을 당했다.

 그들은 얼굴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다뤘다.

 그 의미는 간단했다.

 물건을 넘기면 사내들은 그녀를 죽일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입을 열면 안 되는 것이다.

 백동주는 흔들리는 이소영의 눈을 바라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후우, 머리 좋은 년들은 이래서 어렵다니까…….”

 뒤의 사내가 백동주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 이 쌍년은 말로 해서는 될 년이 아닙니다. 일단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손발톱 뽑고 난 후에 말씀하시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백동주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맞는 얘기를 하는구나.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뒤의 사내들이 히죽 웃으며 이소영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말은 이소영의 귀에도 또렷하게 들렸다.

 그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으으… 으으…….”

 그녀는 질린 신음을 토해내며 전신을 비틀었다.

 밧줄에 묶인 팔다리가 미친 듯이 뒤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소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백동주는 습관처럼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용을 쓰는구나, 용을 써!”

 “크크크.”

 그의 뒤에 어깨를 쫙 펴고 서 있던 사내들도 백동주와 함께 웃었다.

 사내들의 눈에 열기가 떠올라 있었다.

 이소영은 벌거벗고 있었고, 그들은 이미 몇 차례나 이소영의 배 위에 올라탄 경험이 있었다.

 이소영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두려움과 치욕, 절망감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이들은 사람의 심성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말 대로 하고도 남을 자들인 것이다.

 사내 중 한 명이 당구대에 기대어져 있던 굵은 쇠파이프 손잡이를 잡아 들어 올렸다.

 세모꼴 눈을 번뜩이며 사내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게 말로 할 때 좀 듣지 그랬어. 흐흐. 계집 팔다리 으깨기는 사오 년 만이라 손이 좀 거칠 거야, 소영아. 아파도 좀 참아라, 알았지?”

 느물거리며 말한 사내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전등빛을 받은 쇠파이프의 끝이 검푸른 빛을 흘렸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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