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선 나는 빠르게 마을로 돌아가서 칸과 이 문제에 상의해 보기로 했다.
한참을 달려서야 겨우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달리 마을에는 수많은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고, 마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 질 수 록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벌서 소문이 난 것인가?’
나는 재빨리 대장간으로가 칸을 만났다.
칸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자네! 도대체 어디를 갔었던 건가?!”
“왜 그러시지?”
“자네가 갑자기 말도 안 하고 사라지면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ㆍㆍㆍㆍㆍㆍ.”
아무 말도 없이 반나절이나 사라져 있었더니 칸이 제법 걱정을 한 것 같다.
나는 우선 숲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칸에게 해주었고, 변종 몬스터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흠ㆍㆍㆍㆍㆍㆍ 변종 몬스터라.”
칸은 무슨 심각한 고민을 하듯 한숨을 내 쉬었고,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핀다.
내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던 칸의 태도가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던 나는 인상을 쓰면서 칸에게 말했다.
“말할 수 없다면 됐다. 낭비하고 있을 시간은 없으니깐.”
그럼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칸을 본 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일어났다.
‘이거ㆍㆍㆍㆍㆍㆍ 생각보다 일이 길어지겠군.’
쿠당탕!
문을 열려던 순간. 갑자기 뒤에서 들린 소음에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내 눈 앞에 보인 것은 무언가에 발이 걸려서 거하게 엎어져 있는 백발의 다부진 몸을 가진 대장장이 칸이었다.
“이, 이보게!”
칸이 나를 보면서 애원했다.
“내 전부 말해줄 터이니 제발 우리 영주님 좀 구해주게!”
‘뭐라고?’
내가 당황하든 말든 칸은 말을 이었다.
“지금ㆍㆍㆍ 영주님께서는 아주 큰 위험에 처해있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칸은 방금 보여주었던 안절부절 하던 모습과는 달리 거침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라인데’라는 몬스터를 아는가?”
칸의 입에서 익숙한 단어가 나왔다.
“라인데?”
라인데.
마족과의 대전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원한과 욕망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로 군단장 바포메트가 창조한 몬스터이다.
이 몬스터는 주로 정신이 약해져 있는 상대에게 조금씩 스며들어 결국에는 육체의 주도권을 차지하는 기생형 몬스터이다.
하지만 거의 폐인이 되지 않는 이상 이 몬스터에게 당할 위험성은 매우 적고, 설령 몸의 주도권을 빼앗긴다 해도 작은 충격에도 금방 몸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에 바포메트에게 버려진 몬스터이다.
“알고 있다.”
내 대답을 들은 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모험가이면서 많은 것을 알고 있구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생각지도 못한 이에게 지적당한 나는 조금이나마 당황하였다.
“그, 그런 건 상관없으니 말이나 계속 해봐라. 혹시 영주가 잠식당했나?”
“아닐세.”
“그렇다면 뭐가 문제가 되는 거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칸은 나의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영주님의 검에 라인데가 깃들어있네.”
예상치도 못한 말에 나는 크게 당황하였다.
방금 말했듯이 라인데는 정신이 급격하게 약해진 생명체에게 기생하는 몬스터이다. 심지어 그 수준도 매우 낮아 거의 라인데에게 당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더더욱 영혼은커녕 자아조차 가지지 못한 사물에 라인데가 깃든다는 것은 내가 알기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뭐? 라인데가 검에?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내 반응을 본 칸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인걸 어떡하나?”
“ㆍㆍㆍㆍㆍㆍ .”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칸은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말을 이었다.
“흠흠! 뭐 아무튼 간에 좀 도와주겠나? 도와만 준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네.”
띠링!
『히든 퀘스트: 칸의 부탁(2).』
현재 플라쉬 영지의 영주인 가리안 프레하이 백작은 누군가가 일부로 라인데를 기생시킨 검을 사용해 점점 몸이 잠식당하고 있다. 이를 알게 된 칸은 백작을 구하기 위해 검을 파괴하려 했지만 하지만 오히려 백작의 미움을 샀고 영지의 구석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칸의 충성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건: 백작의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시오.
- 퀘스트 성공시: 대량의 경험치, 모든 일의 진실, 플라쉬 영지의 부흥, 백작의 호감도 상승.
- 퀘스트 싶패시: 레벨 초기화, 플라쉬 영지의 멸망.
- 기간: 없음.
- 연계 퀘스트.
- 난이도: B-
이미 이런 내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나는 주저 없이 퀘스트를 받아들었다.
“알겠다.”
“다시금 말하지만 정말로 고맙네.”
칸은 고개를 한껏 숙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대장간에 나갔다.
그렇게 영주 성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하려 하자 생각지도 못한 알림이 떴다.
띠링!
[전 서버 공지.]
[안녕하십니까. 환상의 세계 에오스의 운영자 ‘판도라’입니다.]
[우선 에오스를 플레이 해주시는 많은 유저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서버 내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겨 갑작스럽게 점검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10분 자동으로 게임이 종료 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친,”
10분간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일에 맥만 끈길 뿐이라서 미리 접속을 종료한 후 캡슐에서 나와 전원을 끄고 치킨을 시킨 뒤 캡슐 옆에 있던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 하였다.
‘뭔가, 귀찮은 일에만 연류된 것 같군.’
“후우ㆍㆍㆍㆍㆍㆍ.”
머리가 좀 복잡해진 나는 잠시 2층에 있던 테라스로 나갔다.
저녁 시내의 고요한 소리.
얼마 전에 비가 온 탓인지 이상하게도 선명한 달빛이 내 몸을 위로하듯 감싸 안았다. 하지만 달빛은 모든 것을 감싸지는 못하였다.
‘과연 다른 애들도 이곳에 왔을까? 만약 오지 않았다면ㆍㆍㆍㆍㆍㆍ.’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던 찰나 현재 자신에게 삶의 의욕을 되찾아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 띵동.
“어? 벌써왔나?”
아무래도 당분간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
덜컹
수많은 예술 작품들과 장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명검들이 열을 맞추고 있는 황금의 방.
하지만 아름다운 방의 분위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오래되어 보이는 상자 하나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제발ㆍㆍㆍ 이곳에서 꺼내줘!]
처절한 비명소리.
하지만 성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이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다.
[제발, 제발, 제발!!]
계속되는 비명은 가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두웠다.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이제는 작은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제발ㆍㆍㆍ 나 좀 죽여줘.]
*****
이데아의 갑작스러운 점검으로 인해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유저들의 불만이 폭발 할 것으로 예상 되었으나. 오히려 짧은 플레이시간 동안 전 세계의 유저들이 이데아에 푹 빠져 든 것인지 점검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 보다는 빨리 접속하게 해달라는 말만 나오고 있었다.
ㅡ천사 좋다: 점검 언제 끝남?
ㅡ콩밥: 점검 끝나는 시간 아시는 분!!
ㅡ휴가 맨: 이거 때문에 휴가 냈는데ㆍㆍㆍ 뭐 하지?
ㅡ영계백숙: ㅋㅋㅋ 윗분 그래서 닉이 그런 거임? ㅋㅋㅋ.
ㅡ롤까스: 님들! 님들! 님들!!
ㅡ천사가 좋다.: 왜요?
ㅡ롤까스: 지금 점검 끝남.
ㅡ콩밥: 진짜요?
ㅡ휴가 맨: 달려갑니다.
오전 9시가 돼서야 갑작스러운 점검이 끝났고, 그와 동시에 점검을 기다리던 유저들로 인해 다시 한 번 온라인 게임의 동시 접속자 세계기록을 갱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