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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제물 : 너에게 나를 바친다 (가제)
작가 : 조은산
작품등록일 : 2017.7.26

어린 시절 무당 할아버지에게 애기 무당 일을 강요 당하며 학대 받아온 소녀, 연지. 어느 날 연지앞에 나타난 서위.
서위는 연지의 지긋지긋한 세상을 깨부수어 주었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연지는 서위와 자신 앞에 나타난 이상한 차림의 남자를 보게 되고. 그 남자가 다시 자기의 세계에서 서위를 데려갈 것이라 예감한다.

"나의 빛. 나의 선. 나를 구하러 이 추잡한 세계 밖에서 온 나의 서위. 너는 나의 추잡한 세계를 부숴주었고, 그토록 바랐던 평범한 일상을 선사해 주었어. 서위,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로맨스 판타지, 현대 판타지(1부), 차원이동물, 미스터리 로맨스

 
20. 붉은 머리 왕자 (2)
작성일 : 17-07-31 14:37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1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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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누님을 쫓아 제물을 사냥 나온 늑산은 무당 족에서도 소문난 용맹한 아이였다. 그래도 이번 제물 사냥은 여섯 살이 갓 넘은 늑산에게 참가하게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터무니없이 가혹한 일이었다.

 늑산의 누님이자, 무당 족의 이례적인 여자 족장인 헉산은 무슨 생각인지 이 중한 날에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린 늑산의 손을 억지로 끌고서 나왔다. 무얼 생각하고서 헉산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허튼짓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현명하고 위대한 무당 족의 족장이 아니던가.

 헉산은 무당족 역사상, 이례적으로 ‘여성’ 족장이란 것 만 제외한다면, 무력도 신력은 모두 갖춘 부족함이 없는 이상적인 족장이었다. 그런 헉산에 비해 어린 나이에 뛰어난 강골이지만 신력은 하나 없는 늑산이나,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일시아로 태어났지만, 이름만 일시아. 아직 무력을 제대로 부릴지도 모르는데다가 태어난 지 2년이 다 되어가도 단 한 번 자리에서 제 혼자 일어난 적 없는, 게다가 눈까지 맹인인 아산.

 어딘지 하나씩은 모잘라 먹은 그 두 동생들 덕에 헉산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열아홉이란 나이에 족장이란 자리를 아버지에게서 이어 받았다.

 하지만, 사람의 앞길이란 그 알량한 신력을 부려도 알 수 없는 법. 사실, 벌써부터 알게 모르게 무당 족 내에서는 여 족장 헉산을 고깝지 않은 눈으로 보며, 이곳, 저곳 깎아내리는 자들이 곳곳에 돌고 있다.

 비록 늑산도 아산도 족장이라는 자리를 이어받기에는 가망이 없지만, 헉산이 여자라는 이유 하나에만 꼬투리를 잡아, 전설로만 내려오는 게다가 붉은 머리 왕을 해치울 수 있는 유일한 일시아가 태어났는데 어찌 족장자리를 일시아가 아닌 이가, 그것도 여자인 헉산이 자리를 맡는다 하는가. 하고 자격 운운하며 아직 제대로 자리서 서지도 못하는 일시아를 앞세워 말만 놀리는 미련한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였기에 망정이지만 헉산은 그 이야기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는 힘들었다.

 

 헉산은 지팡이를 들었다. 태양에서 난다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지팡이. 몇 대째 내려오는 가보이자, 무당 족의 최고가는 무기이다.

 “이 쪽이다!”

 헉산의 지팡이가 부르 떨리더니, 일정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 가리킴에 무당 족들의 최고 전사들의 그 쪽으로 훌쩍하고 뛰어 들어간다. 늑산은 그 어린 나이에 무당 족들의 빠른 발을 잘도 따라 들었다. 헉산은 그런 늑산을 보며, 가끔 소름이 돋았다. 언젠가 분명 늑산은 자신의 목에 칼을 들것이다. 그가 그런 마음을 먹지 않아도 무당 족이, 이 세상이 그렇게 만들 거다. 그리고 몸이 약한 아산은 그 높은 신력만 이용해 먹고 내버리겠지. 늑산 또한 신력이 없으니, 제들끼리 죄다 이용한 후엔 족장 가문 자손을 잇는다며, 나중엔 종마마냥 써놓아 버릴 거다. 너, 나 할 것 없이 무당 족의 족장 가문의 사람들은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간다. 말만 족장이지, 아무리 잘났어도 남성, 신력, 그리고 그릇까지 하나가 빠져 완벽하지 못한다면 그저 ‘쓰이기’만 하다 인생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족장으로서는 완벽하다 했던 전대 족장, 헉산의 아버지도 자신의 인생을 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당 족으로, 그것도 족장으로 태어났으면, 그에 맡은 바를 다 하여야 한다. 자신이 부족하다면 희생을 해서라도 채워야 하며, 정녕 올곧게 쓰임을 받지 못 할 거라면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걸 달게 받아야 한다.

 헉산은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바로 다음 족장이 될 어린 늑산을 데리고 다녔다.

 “이 집이다.”

 전사들이 도착한 곳은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막 집이었다.

 “나오너라.”

 헉산의 목소리에도 막집은 조용했다. 헉산의 고갯짓에 전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나는 문을 부셨고, 하나는 창을 부셨다.

 “나오너라.”

 문과 창이 죄다 부서져 훤히 드러난 그 막집 안에는 앳된 여인이 안쓰럽게 자신의 아기를 꼭 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본 열아홉 먹은 소녀, 헉산은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족장의 눈을 하고서 독한 마음을 먹고 말하였다.

 “그 아이는 태양의 아이, 별이다.”

 그 말에 여인은 고개를 들어 헉산을 쳐다보았다. 겁에 잔뜩 집어 먹고서도 눈에는 독기를 품었다. 그렇게 도망 다니다가 이제야 잡히다니. 헉산은 처연하게 그 여인과 그 품의 아기를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별은 태양이 다시 거둬가야 하는 법. 네 배로 낳았어도 그 아이는 명백히 태양의 아이다.”

 헉산의 목소리는 그녀의 슬픈 눈빛과는 다르게 냉랭했다. 그래서 언제나 족장의 뒤에 서서 엄호를 하고 있는 무당 족의 전사들은 헉산의 심정을 알지를 못했다. 오로지 헉산 옆에 선 어린 늑산만이 제 누나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을 잡아 주었다.

 “네 손으로 바쳐라.”

 헉산의 잔인하다 할 만큼 감정 없는 목소리에 여인은 악에 받쳐 그 아이를 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여자가 틈을 보고 도망치려 하는 순간, 그걸 놓치지 않고 전사들의 손에 있는 창들이 모두 그 여인의 몸에 기술 좋게 파고들었다. 당황한 헉산은 한 박자 늦게 늑산의 눈을 가려주었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들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생생한 피 비린내에도 어린 늑산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늑산은 헉산보다도 더 담대히 그 자리를 지켰다. 전사 하나가 숨을 놓지 못하고 아직 꿈틀 대는 그 여인의 품에서 억지로 그 아이를 뺏어 들었고, 그 손 안에서 이제 비참한 운명을 타게 된 아이는 자신의 비참할 운명을 아는 건지 울음으로 그 시작을 알리려는 듯 크게 울어댔다.

 전사는 제 어미의 피를 뒤집어 쓴 그 아이를 헉산에게 안겨 주었고. 헉산은 지팡이를 들었던 손으로 그 아이의 가슴의 한 가운데를 짚었다.

 “…심장이 뛰는구나. 가운데의 심장을 지니고 있어. 진정 태양의 아이, 별(星)이야.”

 

 

 **

 

 올해 설위의 나이 열하나가 되는 날이었다. 무당족의 족장, 헉산이 설위를 맡긴지도 벌써 열해가 되었단 거다. 외눈 장군 적엽은 달력에 날짜를 헤아리며 마른침을 자꾸 삼켰다.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부인과 아이 둘을 잃은 게 엊그제 같은데, 왕의 아이가 붉은 머리를 하고 태어났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그 까짓 미신 믿지 않겠다며 말했던 왕도 불안함은 떨칠 수 없었나보다. 저 멀리 떨어져 사는 무당 족의 부락을 찾아내 그들을 부려 제물을 찾아내다니…. 게다가 그 제물을 자신이 제일 믿고 있는 충신이었던, 하지만 이제 모든 걸 버리고 귀향해, 마을서 홀로 살던 적엽에게 그 제물을 맡기다니….

 그 때에는 그랬다. 무당족의 전사에게 안겨 온 그 피투성이의 아기를 보며 자신의 주군의 마음을 헤아렸다. 이미 수많은 전쟁으로 처도 잃고 자식도 잃어도 왕의 옆을 지켰지만 장군이 왕 옆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전쟁에서뿐이었다. 적엽은 전쟁에 이기고서 1년도 안 되어 왕의 옆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자의가 아니었지만 왕의 옆은 사실 버거운 자리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전쟁에 이긴 기쁨보다 헤아릴 수 없는 허무함을 어찌 왕 앞에서 표할까. 사실 고향으로 돌아 온 것이 적엽에게는 차라리 더 큰 위안이고, 또 잘 된 일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는데, 왕가서 태어난 게 붉은 머리 왕자라니. 그걸 듣고 어이가 없다 못해 하늘이 너무하다 싶었다. 그렇게 힘겹게 나라를 지켰는데, 후에 왕을 기다리고 있던 게 재앙이었다니…. 자기가 이룬 업적이, 대대로 지켜온 자신의 나라가 자신의 아들의 손에서 무너질 거라니…. 절망이었다. 왕에게도, 적엽에게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왕의 측근이었던 적엽과 몇몇 신하들 그리고 무당 족들만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무당 족은 움직였다. 제사를 지내어 태양의 노여움을 진정 시키고, 왕자의 붉은 머리를 금빛으로 변케 하였다. 아니, 위장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별을 찾았다. 태양에게서 난 별(星)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 별을 왕이 가장 신임하면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적엽에게 맡긴 거다. 그래, 처음엔 그랬다. 적엽은 그 임무를 맡으며, 왕에게 맹세 하였다. 붉은 머리를 차단할 제물을 받고서 꼭 이 일이 별 탈 없이 끝나리라-. 하지만 10년이란 시간은 적엽의 마음을 바꿀 수 있게 하기에 충분했나보다.

 심각한 표정의 적엽은 수염을 손으로 쓸며 달력을 헤아리다, 어제 설위가 자신의 책상 위에 가져다 올려놓은 가지런한 무화과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미워 할 수 없는 아이다. 처음 왕에게 제물이라며, 애물단지 맡기듯 보냈을 때 그 아이를 보고 정을 주지 않으려 했건만 그럴 수 없는 아이였다. 어찌나 올곧고 밝은지. 아니, 이 세상에서 태어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서러운 임무를 띠고 어찌 이렇게 밝고 맑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아이가 아니어도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없다. 이토록 액삭스러울 수 없다. 그래서 적엽이 가슴으로 품은 아이다.

 왜 하필이면 이 아이가 그런 가혹한 짐을 지고 제물로 태어난 걸까. 적엽은 이 가혹한 세상에 이젠 신물이 난다. 부인도 자신의 핏줄을 탄 아이들도 지겨운 전쟁으로 잃었건만, 이젠 가슴으로 품은 자식인 설위마저….

 이 세상의 가혹함에 적엽은 벌써 너무도 많은 걸 잃은 터였다.

 “적엽님! 적엽님!”

 적엽을 부르는 설위의 다급한 목소리에 적엽은 다시 웃음을 띤 얼굴로 설위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래, 나 어디 도망 안 간다. 뭐가 그리 급해.”

 “연 줄이 끊어졌어요! 이 여름에 바람이 불어 신나서 연을 날렸는데, 그만 연줄이 끊어졌어요!”

 연을 잃었다는데 뭐가 그리 즐거울까. 설위는 자빠져 무릎에 생채기가 나도 즐겁고, 나무에 떨어져 팔에 금이 가도 즐거운 아이다. 정말 이 세상의 모든 걸 즐기러 온 태양의 아이처럼.

 “어? 어제 제가 갖다 드린 무화과잖아요! 아직도 안 잡수셨어요?”

 말은 그러면서도 설위는 적엽의 눈치 하나 보지 않고서 얼른 잘 익은 무화과를 들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둘로 곱게 갈라 한 쪽을 자기 입에 우겨 넣는다. 그 작은 입에도 그 커다란 무화과가 잘도 들어간다. 우물우물 무화과를 씹는 설위의 모습이 귀여워 적엽은 허허. 하고 소리 내어 웃는다.

 “아, 달다. 자, 아버지도 드셔보세요.”

 그러면서 밖에 나가 놀다와, 시커머진 손으로 집은 무화과의 나머지 반쪽을 적엽에게 턱하니, 내민다. 그걸 적엽이 받아 아무렇지 않게 입으로 넣고는 흐뭇하게 설위를 바라본다.

 “정말 달구나.”

 설위는 그 말에 헤헤 웃으며, 손에 묻는 무화과 즙을 제 옷 춤에다가 슥슥 대충 닦는다.

 “어허. 내가 계집을 데려다가 아들로 키웠구나.”

 그걸 보고 괜히 하는 적엽의 말에도 설위는 헤헤하고 웃으며 너스레를 떨고는 마저 남은 무화과를 씹어 삼키며, 적엽의 방을 뛰쳐나간다.

 “저, 멱 좀 감고 올게요! 오늘 너무 더워요!”

 그렇게 점점 작아지는 설위를 바라보며, 단 무화과를 입에 물고 있는데도 적엽은 자꾸만 써지는 마른 침을 삼키고 또 삼켰다.

 

 “형님! 형님!”

 설위는 마을 골목의 꼬맹이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닌데도 골목대장노릇을 한다. 신기하게도 설위보다 너 댓살이나 많은 사내아이들도 곧잘 설위를 따른다.

 “형님!”

 설위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지도 가늠을 못하는지 고래고래 질러만 댄다. 그 소리를 듣는 주인공인 적엽의 부하, 우장은 찡그린 얼굴로 한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그런다.

 “조용히 좀 불러라.”

 “나 오늘 멱 감으러 갈 건데 같이 가실라우?”

 설위의 말에 우장은 하하 웃는다. 어쩜 그렇게 적엽의 웃음소리와 비슷한지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검술도 용맹한 것도 적엽의 옛 모습이란다. 보는 사람다 하는 소리다. 어쩜 우장이 적엽의 친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만도 하다. 그래서 설위가 그렇게 우장을 잘 따르나보다.

 “어쩜, 계집애가 사내보고 멱을 감으러 가자고 그러냐?”

 그러면서 또 크게 웃는다. 설위는 그 말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는 우장에게 소리 지른다.

 “자꾸 계집, 계집 그러지 마오! 작년만 해도 같이 매일 멱도 감고 그랬음서. 요즘 자꾸 그래.”

 설위 말에 우장은 마저 웃고는 그런다.

 “오늘은 혼자 놀아라. 나는 장군께서 부르셔서 가는 길이다.”

 그러면서 설위의 머리를 한 번 헤집어 놓고는 대문으로 들어선다.

 “적엽님이랑 얘기 다 나누시고, 더우시거들랑 저기 계곡으로 오시오, 형님!”

 설위는 그러고서 바람 따라 계곡으로 달린다. 그러는 설위를 한참동안 지켜보던 우장이 마저 갈 길을 간다. 아까 설위에게 말했듯, 우장의 발이 다 달은 곳은 적엽의 방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장군.”

 들어선 우장을 보고 기다렸다는 듯 적엽은 손짓으로 자신의 앞 의자를 가리킨다. 그걸 보고 우장은 고개를 의례로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는다. 아직 스물 둘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나, 잦은 전쟁으로 많은 부하를 잃은 적엽이 현재 제일 믿을 수 있는 부하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답지 않게 의젓한데다가 무예도 어찌나 뛰어난지 적엽은 우장을 믿고 옆에 잘 두었으며, 또한 정말 아들처럼 가까이 대했다.

 “이번 주 안으로 그들이 온다는 구나.”

 적엽의 한 숨 섞인 목소리에 우장은 깜짝 놀라며, 그런다.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래, 그렇지.”

 그러며, 적엽은 두통이 오는 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이번에 설위를 데리고 무당 족의 부락으로 간다는 구나.”

 그 비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듯, 적엽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숨에 들이켰다. 우장은 그제 서야 오늘 적엽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적엽은 그저 설위를 제물로만 맡아 놓은 게 아니 란걸 우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장 역시도 설위를 자신의 친동생처럼 대했다.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따라, 태자책봉이 된 붉은 머리의 왕자와 어느새부턴가 미쳐버려, 침소에만 누워 허수아비가 다름없는 왕.

 장군 적엽은 그들을 위해 싸우느라, 벌써 십 수 년 전에 자신의 부인과 아들들을 잃었다. 이번에는 그들에게 또 소중한 걸 바치지 않으려는 듯 적엽은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장은 그런 적엽을 당연한 듯 따르련다. 잦기만 한 전쟁으로 가족 모두를 잃은 우장에게도 적엽은 아버지요, 설위는 하나뿐인 동생이다.

 적엽이 그걸 위해 무얼 각오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우장은 그 또한 속으로 홀로 결연을 다지며,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는 검, 몇 해 전 적엽에게 직접 선사받은 일도(日刀)의 도두를 엄지로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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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는 조금 흉년기가 돌았다. 그래도 큰 탈 없이 잘 보냈지만, 올해는 아주 땅이 쩍쩍 갈라지기까지 했다. 멱을 감으러 간 설위도 계곡이 예전 같지가 않아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얼마 후면 무당 족이 오니, 기우제를 부탁하도록 하자.”

 적엽의 말에 설위는 신나 물었다.

 “정말 무당 족 사람들이 옵니까?!”

 그렇게 물어오는 설위의 웃는 낯에 적엽은 자신의 심각한 표정을 애써 감춰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그 대답에 설위는 아주 신이 났다.

 ‘무당 족.’

 그들이 사는 곳은 이 큰 대륙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그 곳은 국경에 아슬아슬하니 걸쳐있으면서도 광활하다 할 만큼 넓은 사막 가운데에 위치한 곳이다. 하지만 소문에 듣기로 무당 족이 살고 있는 부락은 사막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커다란 강이 흐르고 땅은 윤기가 돌며, 어떤 농작을 지어도 풍년일 만큼 기름진 곳이라 했다. 그 뿐이랴, 무당 족은 입는 것이며, 먹는 것도 어찌나 희귀하고 신기한지 그들이 두드리는 악기에서 나오는 음악은 어찌나 신명이 나며, 음식은 얼마나 맛이 좋고 옷이나 장신구는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그런데 어찌나 꽁꽁 잘 숨겨 있는지 무당 족 말고는 몇몇 운이 좋은 상인들만 길을 잃었다 겨우 들른 정도 인 곳이다.

 무당 족이 사는 부락, 아니 그 사막은 설위가 살고 있는 마을서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다. 말을 타고서도 꼬박 한 달이 걸려 닿는 곳에 있다.

 몇 해 전, 설위의 안위를 확인하러 왔던 무당 족을 떠올리며 설위는 설레임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본 무당 족의 모습은 설위에게만 신기 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나라의 다른 인종마냥 그들은 생김새부터 비범했는데 검은 머리가 아닌, 붉 갈색의 머리에 구릿빛 피부. 이목구비도 큼직하니, 시원스럽게 떨어졌고. 덩치나 키도 얼마나 큰지 평균적으로 마을 사람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큰 셈이었다.

 뭐, 그 때 온 무당 족은 거의 전사라 그랬다 하지만, 그게 또 보통 전사인 것이 아닌 게 설위네 마을서 힘 꽤나 쓴다는 자경단 청년들과도 차원이 다르다 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 들의 차림은 또 어찌나 독특한지 모른다. 어깨를 비롯하여 가슴께까지를 시원히 들어내고, 붕대 비슷한 모양의 화려한 자수가 놓아진 기다란 천을 가슴 밑에서 허리춤까지 감아올리고 그 위에 헐렁하니, 품이 넉넉한 바지를 입었는데 그 바지 또한 자수가 화려한 것은 물론이고 모양새도 그렇게 희한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차림뿐만이 아니라, 무당 족 사람들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얼굴에 치장을 많이 한다는데 코나 귀를 뚫는 것은 물론이고 몇몇은 눈썹, 혀, 입술 등등 아주 제각각으로 뚫어 그 곳에 화려하기도 한 장신구를 걸어 놓았다. 또 성인 전사들만 한다는 무당 족 특유의 문신은 장엄하기까지 해 그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 해진 마을 아이들을 비롯해 몇몇 철없는 어른들까지도 무당 족 사람들이 가고난 후 장난삼아 몸 이곳, 저곳에다가 먹으로 무당 족의 문신을 따라서 낙서를 해댔다.

 그리고 그 빠른 발……. 얼마나 비호같이 빠른지 모른다. 보통 사람은 말을 타고도 한 달이 넘게 걸린다는 거리를 발로 뛰어, 삼 주 만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들이 있겠는가. 빠른 발은 물론이고, 그들의 강철과도 같은 체력은 무당 족의 전사라는 이름을 한층 더 위엄 있는 인상을 심어 줬다.

 그 위엄 있고 대단한 전사들 중 하나, 설위 또래의 설위보다 네 살이 더 많은 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아이라 하더라도 무당 족 전사들과 똑같이 발로 뛰어 마을에 당도했다고 했다. 그걸 듣고 적엽이 내심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 때 늑산은 무당 족의 족장 가문의 장남으로서, 족장인 누나를 대신해 이곳에 왔겠지만 그 사실을 늑산이나 설위는 몰랐다.

 “늑산 형님.”

 이곳에 와서는 설위와 놀아주느라, 다른 무당 족들보다 두 달을 더 있다가 간 그 분. 설위보다 네 살이나 많은 늑산은 마을의 자기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다른 친구들과 달랐다. 설위 딴에는 자기보다 빠르고 자기보다 힘이 세며, 자기보다 더 빠르게 나무를 오르는 그런 소년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홀딱 반해 어찌나 졸졸 따랐는지 모른다. 늑산이 창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적엽에게 창술을 배운다며, 얼마나 귀찮게 했는지 모른다.

 “다음에 내가 와서 알려 줄게. 창술도, 활도. 그리고 그 때는 내 아끼는 동생을 보여줄게. 너랑 같은 나이다.”

 그 약속을 설위는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다. 형님, 형님 하면서 쫓아다니는 게 우장 말고는 늑산이 처음이었지만, 늑산이 마을에 있었을 때 사실 우장은 아주 찬 밥 신세가 따로 없었다.

 “설위는 기쁜가보다. 아주 웃음꽃이 피었어”

 “아, 내가 뭘요?!”

 설위가 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소리를 치자, 장난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우장은 괜히 섭섭해진다.

 “아이고, 설위가 이제 계집처럼 구는구나.”

 우장의 말에 설위는 팡팡 하고 우장의 다리에 작은 주먹을 휘두른다.

 “근데, 늑산은 네가 사내인 줄 알지 않니?”

 우장의 말에 설위는 더더욱 그 작은 주먹에 힘을 실었고, 끝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며, 인상을 한 바가지로 쓰고는 그런다.

 “형님 바보! 나빴어!”

 그렇게 왁, 소리 지르고 사라지는 설위를 보며, 우장은 설위가 주먹을 휘둘렀던 자신의 다리깨를 문지르며, 참았던 신음소리를 낸다.

 

 **

 

 설위는 그제야 얼굴을 닦고 마을 사는 여자애들 흉내를 내며, 늑산을 기다렸다.

 가끔 그걸 못 견디고 사내아이들과 나가 뛰어 놀다가도 우장이 놀리면 다시 돌아와 조용히 방에 앉아 있곤 했다. 그 모습에 적엽과 우장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론 얼마나 편치 않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른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다린 설위의 기대에 저버리고 이주정도 뒤에야 선발로 온 늑산이 속한 전사 족이 도착했다. 몇 해 전 찾아왔을 때보다 더 성장한 늑산은 아직 소년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내진 못했지만, 늠름하기론 설위네 마을 또래 누구보다 더했다. 선천적인 강골에 다부진 체격, 총기 어린 눈, 그러면서도 무당 족답지 않게 서글서글한 외모. 늑산과 그의 무당 족 동료들이 설위네 마을에 당도했을 때는 동네 계집들이 소녀나, 어른 할 것도 없이 뒤집어졌다.

 “나 무당 족의 늑산. 선발로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마도 후발대는 이 주 뒤에는 도착할 듯 합니다.”

 나는 ‘무엇’. 무당 족의 누구.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 무당 족의 귀족이 인사를 하는 예인데, 늑산은 족장의 핏줄인데도 신력이 없어, 그저 다른 전사들처럼 인사를 했다. 그 인사에 적엽은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한다. 하면서도 얼마나 저 인물이 아까운지, 무당 족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그저 혼자 속으로 생각을 한다.

 “손님을 모셔라.”

 적엽의 말에 종 몇몇이 늑산과 그의 일행을 데리고 그들이 묵을 방으로 안내를 한다. 늑산은 예전에 찾아 왔을 때도 따로 방을 받지 않고 전사들과 같은 방을 썼다. 적엽이 따로 대접을 하려 해도, 족장인 헉산과 늑산 본인이 그것을 마다했다. 아마도 신력이 보통 무당 족 사람들보다도 없는 늑산은 이미 무당 족의 전사로 살아갈 것을 각오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무당 족에서도 늑산의 총명과 그의 무예, 그릇을 인정해 알게 모르게 어린 그에게 전사족의 임무 말고도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무리들이 생겼다는 일을 적엽도 알고 있었다. 그 덕에 헉산은 늑산을 아낌과 동시에 견제를 해야 했다.

 방에 짐을 푼 늑산은 시종 하나에게 물었다.

 “저…, 혹시 설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무당 족들은 설위를 별이라고 부르지만 늑산은 달랐다. 설위라고 똑똑이 이름을 불러 주었다. 그것도 설위가 늑산에게 호감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아, 설위님은….”

 시종이 수줍어 대답하려는데, 설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늑산 형님!”

 목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우장의 등에 업혀 있는 설위가 보였다.

 얼마 전부터 그렇게 계집흉내를 내더니, 또 고새를 못 참고 사내들과 같은 차림을 하고 나가서는 오늘은 새 알을 훔친다고 나무에 오르다가 떨어졌단다. 볼에도 생채기가 잔뜩 나있고 머리모양새도 정신이 없는 게 딱 늑산이 몇 해 전에 보았던 설위의 모습 그대로였다.

 “형님! 내려주오! 나 늑산 형님께로 갈테야!”

 “제대로 걷지도 못 하는 것이. 가만히 있거라. 내가 데려다 줄게.”

 그러는데도 우장에 업혀 있는 설위는 그걸 못 참고 내려달라 성화다. 그 모습에 늑산이 웃으며, 거기로 달려갔다.

 “안녕하십니까.”

 “나 무당 족의 늑산. 안녕하십니까.”

 그렇게 늑산과 인사를 나눈 우장이 그제 서야 설위를 땅에 내려놓는다. 한 발로 멋지게 땅에 선 설위가 신이 나서 늑산에게 인사를 한다.

 “늑산 형님! 오랜만이우!”

 계집이면서 계집답지 않던 설위가 요 며칠, 그렇게 계집 흉내를 낸다며 용을 쓰더니, 다 헛짓거리였다. 이렇게 형님, 형님 하면서 소리, 소리 지를 건데 뭣 하러 그렇게 용을 썼나 싶다. 우장은 그런 설위를 보면서 피식하고 웃어보였다.

 “그래, 오랜만이다. 많이 컸구나.”

 사실, 그렇게 인사한 늑산이 더 몰라보게 컸다. 설위는 그저 키만 조금 컸을 뿐 어쩜 몇 해 전과 그리도 달라 진 것이 없는지 신기할 뿐이다.

 “형님도 몰라 보겠수!”

 신기도 하다.

 장군 적엽의 밑에서 친 자식처럼 컸는데, 꼭 말투는 상인이나 농부 자식처럼 소박하다. 설위의 말투에 우장이 민망해, 설위의 뒤통수를 툭툭 치니, 괜히 왜 머리를 치냐며 짜증이다. 설위를 본 무당 족의 전사들이 모두 설위에게 온다. 그리고는 모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며, 인사를 한다.

 “별이여. 무고하셨습니까.”

 아무래도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은 그 거창한 인사를 받고 설위는 머쓱해 웃는다. 사실, 설위도 알고는 있다. 자신이 제물로 태어났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들어왔는지 적엽이 아무리 입조심을 시켜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떠들어대, 설위 귀에 그 말이 들어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별이라느니, 제물이라느니 들어왔지만 제물의 뜻이 뭔지는 몇 해 전 늑산과 무당 족이 마을에 왔을 때야 알았다. 그 때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제물이란 단어를 들을 적마다 찔끔 찔끔 놀라기 일쑤에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게 먼 미래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듯, 싶었다. 설위가 그 사실들을 아는데도 이렇게 티 없이 밝게 크는 게 적엽은 꼭 기적처럼 여겼다.

 우장은 설위를 다시 안아들었다. 무당 족의 거창한 인사에 우장은 심기가 불편해 졌다. 그러지 않아도 될 걸, 이 어린 것에게 꼭 그래야 하나. 우장은 대충 무당 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표하고 당장에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보고 늑산이 한 숨을 몰아쉰다.

 불쌍한 것. 내 동생, 하나 뿐인 내 동생 일시아보다 불쌍한 것. 아니, 이 나보다도 불쌍한 것.

 

 **

 

 그리도 기다렸던, 늑산이건만 설위는 칠칠치 못하게 발을 삐어 밖에 나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한 숨을 푹푹 쉬었다.

 “어린놈이 뭐가 그리 한스러워 한 숨을 쉬느냐.”

 적엽의 웃음 섞인 목소리에도 설위는 한 숨을 쉬는 게 멈춰지질 않는다.

 “나는 왜 계집답지가 못 한 걸까요. 그렇게 기다렸는데 같이 놀지도 못하고. 미련스럽게.”

 적엽은 또 그게 귀여워, 글쎄 왜 그럴까. 하며 능청을 떤다.

 “늑산 형님이랑도 못 놀고.”

 적엽은 또 크게 웃는다. 그러면서도 안쓰럽다. 늑산은 무당 족의 전사. 언제고 설위의 그 작은 가슴에 칼을 꽂아들려 할지 모르는데, 어찌 그리 아무 것도 모르고 따를까.

 “설위야.”

 그 목소리에 설위는 귀를 쫑긋이 세우고 거길 보았다. 늑산이었다.

 “아, 형님!”

 늑산은 들어서면서, 적엽을 보고는 잠시 멈춰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는 설위를 불렀다. 적엽은 부드러이 웃으며 자리를 내어 준다.

 “식사 하셨어요?”

 설위의 말에 늑산은 고개를 끄덕이곤 설위 방 마루에 걸터앉았다.

 “너는 먹었니?”

 “네, 먹었어요. 아까, 아까요.”

 설위는 또 뭐가 그리 신난 건지 함박웃음을 하고는 그런다. 그러는 설위를 보니, 늑산도 같이 웃는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으니, 쉬라는 우장의 말을 뒤로 하고 설위를 찾아 온 보람이 있다.

 어린 설위는 정말, 여지껏 자신이 배우고 들어 온 ‘태양의 아이’ 그대로였다. 한 없이 빛나고 한 없이 맑고. 또 한 없이 뜨거운….

 정말 이 세상의 잠시 놀러와 이 땅의 모든 걸 즐기러 온 것처럼 설위는 모든 게 즐겁고 행복한 아이였다.

 처음 설위를 봤을 때는, 자신도 다른 전사들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별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다른 전사들과 섞여 그랬지만 그 이사를 받고 놀란 토끼처럼 눈을 붉히는 설위를 보고는 자신의 동생처럼 대했다. 늑산은 설위와 동갑인 자신의 동생보다도 더 설위가 가깝게 느껴지고 애잔타.

 “이번에는 형님의 친동생도 온 담서요?!”

 “응. 그래. 이번에 오지. 아마도 그 아이는 늦게 도착할거야. 족장과 함께.”

 “왜요?”

 “몸이 약하거든.”

 거기까지 말하고 늑산은 말을 잠깐 멈췄다. 우스갯소리로 일시아, 아산과 함께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먼저 모태에서 나오면서 네 힘이랑 체력이랑 키까지 다 들고 나와, 네가 그리 몸이 약한가보다. 그러면 아산은 웃으며, 왜 힘이랑 키만 가져 가셨어요. 신력도 조금이라도 챙기시지 그랬다.

 “아, 형님 오면 창술도 배우고 활도 배우려고 했는데.”

 설위의 볼멘소리에 늑산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런다.

 “하면 되지.”

 “늑산 형님 오기 전에 새알 훔치다가 나무서 떨어졌어요.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해요.”

 그러자, 늑산이 걱정되는 소리로 설위의 발을 본다. 행여 아플까 손도 못 대면서,

 “많이 아프니?”

 그러자, 설위가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아뇨. 그냥 있으면 괜찮아요. 접질렀대요. 차라리 삐었다면, 뼈만 맞추면 된다던데….”

 “내게 신력이 있었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말하는 늑산 표정이 괜히 애처롭게 느껴져, 설위가 일부러 밝은 소릴 내며 그런다.

 “형님! 그럼, 나 업어 주오! 나, 이래 뵈도 한 개도 안 무거워!”

 그러면서 혼자 신나서 자리에서 한 발로 일어나, 늑산 등에 기댄다.

 “사람들이 나보고 바람을 타고 논다 그러지 안 그러우. 내 뼈는 모두 텅텅 비었을 거래. 그러니, 하나도 안 무거워. 나 좀 업고 우리 나무에 오릅시다!”

 그러자 늑산이 웃으며, 설위를 등에 업은 채, 자리에 일어선다.

 “정말 하나도 무겁지가 않다!”

 그러며, 원래도 신지 않은 발로 땅을 딛고는 그래도 모르니 설위 신을 챙겨 설위에게 주며, 힘차게 땅을 내질러 도약한다. 설위를 업은 채로도 금세 늑산이 담벼락에 오르니, 설위가 아주 신이 난다.

 애초부터 보통 사람들과 남다르게 힘이 세고 발도 빠른 무당 족의 전사들인데도, 그 중에서도 이제 열다섯 먹은 늑산은 으뜸이면 으뜸이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늑산의 어린 나이에 이렇게 다른 전사들과 어울리고 아무리 자신이 원했더라도, 이번엔 족장과 일시아도 모두 오는 이곳에 이렇게 선발대로 올 수 있던 것도 늑산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늑산이 설위를 업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나무 위며, 지붕 위를 그렇게 뛰 다니는데 그 기세나 품새가 얼마나 멋진지, 그걸 마을 사람들이 오다가다 보고는 탄성을 지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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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시아. 무당 족의 아산.”

 별을 데리러 가는 행차 길에 족장도 아니면서 가마신세를 하고 가는 두 발 멀쩡한 사내 아이. 자신의 이름 뒤에 그렇게 읊조려 덧붙이고는 힘에 겨운 듯 몸을 기대 눕는다. 몇 해 전 형과 전사 족 몇몇이 태양의 아이 네에 갔다가 왔다.

 그들의 말로는 그렇게 밝고 그렇게 맑을 수 없다 했다. 바람을 타고 뛰며, 물을 갖고 놀며, 불의 보호를 받는다고 했다. 무당 족에서도 가장 용맹하고 발 빠른 소년, 우리 형님, 늑산과 그렇게 잘 어울려 놀 수가 없다고 그 모습이 모두가 보고 말하길 경이롭다고 까지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아산은 부끄럽지만 투기를 했다.

 아산, 그는 눈도 보이지 않고 발도 느리며, 무엇보다도 조금만 뛰어도 숨이 끊어질 듯 힘이 드는 원래가 병약한 소년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자신을 데려다 논 적이 없다. 가끔 늑산 형님이 자신을 없고 뛰어나가 놀 때에만 바람을 느끼고 물을 만지며 놀았다. 그렇듯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 주던 늑산인데, 이번에 늑산은 동생인 자신은 챙겨줄 생각도 않고 자기가 먼저 선발대로 가겠다고 나섰다. 그 때에 아산은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그깟 별이 뭐라 길래 자신의 형님이 보통 때와 다르게 신이 나 자신을 떠났는지. 난데없이 치밀어 오르는 그 마음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나서야 마음을 다잡는다.

 “불편한데 없습니까?”

 무당 족의 전사 하나가 가마 창에 고개를 들이밀고 묻는다.

 “없습니다. 근데, 얼마정도 걸리겠습니까?”

 아산의 말에 무당 족 전사가 대답한다.

 “이제 곧 도착합니다. 조금 더 서두르면 내일 아침에는 당도할까 싶습니다.”

 아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지러움에 다시 가마 안에서 몸을 기대 뉘였다.

 

 **

 

 한 여름인데도 새벽 공기는 제법 냉기가 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우는 닭인데, 그 전에 까치가 먼저 짖어댔다. 일찍 잠에서 깬 늑산은 방 밖으로 나와, 몸을 풀었다. 이제 다 왔구나…. 하면서 까치가 짖어대는 걸 눈으로 찾는다.

 무당 족 부락을 떠나, 설위네 마을에 머문 것만 벌써 2주다. 설위와 매일 만나노니,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를 수가 없다. 정말 생각 없이 그렇게 놀았다. 이제 열다섯 먹은 소년이 열하나 먹은 아이랑 뛰며, 헤엄치며 노래 부르며, 그렇게 놀았다.

 이제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도. 이제 도착한 자기네 무당 족들이 와서 설위 품에 어떻게 검을 꽂을지를 알면서도.

 

 “어서 오십시오.”

 적엽네 모든 시종들이 줄지어 모여 있고 그 선두에 우장과 적엽이 나와 무당 족을 맞았다. 적엽의 절에 무당 족의 여인이 같이 절을 하고 무당 족의 인사를 한다.

 “나는 호읍음(虎泣音). 무당 족의 족장, 헉산”

 과연, 10여 년 전 설위를 맡기러 왔을 때의 소녀티도 채 벗지 못한 헉산이 아니다. 이제는 번듯이 한 무리의 우두머리로 당당히 자리에 서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헉산이 눈으로 설위를 찾는다. 그리고 늑산 옆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는 설위를 찾아낸다.

 “몸이 많이 지쳤을 텐데, 드시지요.”

 적엽의 말에 설위에게서 시선을 거둔 헉산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그를 따른다. 무당 족의 다른 전사들도 헉산을 따라 간다.

 “누가 형님 아우에요?!”

 설위는 아까부터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는 아주 신이 나있다. 어서 늑산이 늘상 말하던 아산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일시아(日視兒)란 말은 태양을 보는 아이라는 말이란다. 그래서 늑산이 그랬다. 태양의 아이인 너와 아산은 운명이 묶어놓은 사이라고.

 얼마나 두근댔는지 모른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이제 보다니. 신나서 그러는데 늑산이 웃으며, 설위를 달랜다.

 “나중에 보자. 아산은 몸이 약해서 여독을 풀려거든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그 말에 설위가 그런다.

 “그래도 밥 먹고 있을 때, 멀리서 살짝 보면 안 될까요?!”

 그리고는 무당 족의 전사들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간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늑산도 그걸 보고만 있다가 이내 따라 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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