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수 없어!
그냥 내 입과 마음을 닫을 수야 없지!
그렇고 말고!!
야수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럼 저번에는 대체 둘이 왜 보자고 한 건데요?”
난 제대로 흥분했다.
개거품을 문 스모선수처럼 덤빌 태세.
“아... 그게요..”
또 말이 없다.
답답해서 뒈지겠다우.
어렸을 때, 거북이를 구워먹은거니?!
느리고, 답답하고,
성격 만큼은
나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순간, 문득 들었지만,
그래도 잘생겼으니까!! 봐줄 수 있다.
“삼세판! 세상은 삼세판이라고,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요.”
그런 말을 아버지가 한 적은 없다.
막 임기응변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 입에서 뭔 말을 나불거리고 있는 것인지.
남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일단 오늘 한번으로 치고,
두 번만 더 만나 봐요.
저번에는 그냥 가버린 거니깐 한 번으로 칠 수가 없거든요!”
당황한 기색,
그가 갑자기 자신의 구둣발을 쳐다본다.
그때의 표정은,
뭔가 달랐다.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로 갈 때의 순진한 표정도,
아닐 수도 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계천을 배회하던 어리버리한 뒷 태도,
그 싸늘함.
끝나버린 것인가?
그는 나를 진짜 끝내려는 것인가!
그래도 괜찮다.
나는 할 말 다했으니깐!
그런 마음으로 나는 마음을 ‘훅’ 비웠다.
“좋아요, 근데 지연씨...”
올레!
좋단다,
근데 뭐?! 뭐 말하려고?!
엄청난 재촉의 욕구가 솟구쳤지만,
참고 참았으니.
“지연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제가 좋거나,
멋진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아니야, 넌 충분히 멋져.
니 얼굴을 보라고.
만지면서 그를 다독거리고 싶었지만,
속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돈 없는 거요?
저 그래도 꽤 벌어요! 아마 내년에는 과장 꼭 진급 할 꺼예요.”
헉,
괜히 말했나.
32살에 대리인 게 자랑도 아니고,
으이구! 입방정, 깨방정!!
그가 웃는다.
“지연씨가 저에 대해 너무 좋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어요.”
“걱정 마세요! 제가 원래 좀 뭐든지 좋게 보고,
음..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좀 있지만,
그래도 저 진짜 괜찮은 여자거든요!”
정말 미친 여자같다.
맘에 드는 남자 앞에서는,
코뿔소처럼 들이대는!!
“알아요...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아요.”
헉.
따뜻한 사람.
그가 나의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나름대로 난 정말 따뜻한 사람이지.
한여름의 오리 솜털처럼 부담스럽도록 따뜻할지 언정,
절대 차가운 종자가 아니라는 말이야!!
“제가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뭐 간단한 거라도 요기 하실래요?”
“네! 저기 군만두 맛있게 하는 집 있는데, 드실래요?”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방긋, 고른 치열.
그가 우산을 폈다.
하나의 우산 속, 우리 두 사람.
이제 우리는 사귀는 거니깐,
둘이 하나?!
으하하하.
그가 말했다.
“제가 다음에는 정말 맛있는 거 사 드릴께요,
스테이크?!”
“오! 콜콜!!”
나는 즐거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촐한 만두가게.
이곳이 본점이라지만,
분점이 이제 족히 백 개 정도 되다보니,
맛은 이미 변질될 대로 변질된 느낌이지만,
돌을 씹어 먹어도 맛있을 것만 같은 이 기분!
다양한 꼼수로 이것저것 섞어서 파는
만두 세트 한접시를
주문했는데,
그는 역시 입이 짧았다.
내가 두 개 먹을 때, 하나 정도 먹는 느낌이랄까.
이런 게 아마 식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 아니겠는가!
둘 다 많이 먹으면 싸울 거 아니야.
으하하하.
“지연씨, 이거 가져가세요,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니예요! 오늘 잘된 것 만도 땡큐죠!”
아..씹.
또 저렴한 말을 씨부렁거렸다.
“지연씨, 너무 웃겨요!”
그가 돌아섰다.
우산을 내 손에 쥐어준 체,
“이거 가져가요.”
비를 맞으면서 사라지는 남자,
청색 린넨 셔츠에 스며드는 빗물.
빗물이 내 맘 속에 고여 흐른다.
비로 조금씩 젖어 꿉꿉한 사람들의
썩쏘로 붐비는 지하철,
내 기분은 참으로 좋았으니!
나는
충전100% 쇼에서나 즐겨 들었을법한,
노래 한 곡을 찾아들었다.
불후의 명곡!
박지윤 언니의 ‘소중한 사랑’.
이런,
야릇하고 좋은 기분.
그냥 집에 훅,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 기쁨을
나의 절친에게 알려야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끈질긴 자만이 미남을 얻느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어.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마리의 집 앞으로 갔다.
“올레! 너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마리가 막대 사탕을 쪽쪽 빨며 말했다.
사뭇 진지한 표정.
“천지연, 넌 내 로코의 정석을 깬 첫 번째 여인이로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리를 말똥말똥 쳐다보는데?
그녀는 나를 지긋이 살폈다.
잘나가는 로코 작가인 마리는
웹문학계의 ‘신생별’로는 통하지만,
이단아는 아니었다.
로코의 정석만을 추구한다고나 할까.
다소 고전적이고, 신파적 얘기들을 구사하지만,
고전적인 ‘남주’와 ‘여주’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녀가 말했다.
“내 기본원칙이 그거야. 끼리끼리.
못생긴 애들은 그런 것들끼리, 잘생긴 애들도 그런 애들끼리.. 짝을 짓거든!”
마리가 연애를 꿈꾸지 않는 이유다.
물론 잘생긴 남자와 못난이..
못난이와 예쁜 여자의 조합이 간간히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을 만회할만한
뭔가가 존재할 때 가능한 것.
“넌 내 로코의 법칙을 깰
유일한 자가 될지도 모르겠어!”
망할..
내가 못난이란 거야, 뭐야?!
“집도 얼굴도 그럭저럭 한 애가 갑자기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다?!
그런 건 없다고 보거든!”
속에서는 욕이 나왔다.
하지만, 참자 참아.
너는야 내 친구잖아. 토닥토닥.
뭐 결말로 가는 과정 속에서 그런 사람들끼리 간혹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헤어짐으로 귀결된다는 게 내 생각이야.”
알았다..
잘났다! 이년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성숙한 태도로 반기를 들었다.
“그 결말 내가 이번에 깨줄게.
이번엔 결혼까지 가고 말겠어!”
마리가 ‘빙긋’ 웃는데,
저건 뭐지?! 혹시 비웃음?!
내 보잘 것 없는 얼굴과 집,
그런 것들을 가진 여인들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되리라!!
마리가 들뜬 나를 뒤로 한 체,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돌아섰다.
“참, 근데 그 남자, 정말 돈 지지리도 없는 거 아니야?!”
마리가 사탕을 우기적 씹었다.
불안한 이 기분.
뭔들 어떠하리.
아까 똑똑히 말하지 않았는가!
그가 스테이크를 사주겠다고.
유독 맑은 아침 하늘,
푸른 하늘 안에서 첨벙첨벙 헤엄치는 맑은 아침이다.
이 아침,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리오.
그저 출근을 하는 것 밖에!
헉,
근데 또 늦었다.
“지연씨, 잘 잤어요?
저는 이제 나가는 중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내 남자의 아침인사.
푸하하하.
기쁘고, 신나는 아침이도다!
이게 웬일인가!!
향기로운 돼지 냄새라니, 아침부터!
양념 냄새까지 풀풀.
“아침 먹고 가!”
헉.
아침의 유혹.
어제 다운된 기분 때문에,
왜 풀 따위 밖에 없냐고,
거센 항의를 했던 게
유효했던 것.
나는 이미 늦어버린 출근 시간 따위는
잠시 기억 저편에 넣어두고,
고기 한 점을 집었다.
“야! 젓가락으로 먹어,
동물이냐? 손가락으로 먹고 난리야!”
손가락으로 돼지 등뼈 하나를 코 집은 나를 보고,
디스를 퍼부었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순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손가락을 접어 버렸다.
나는 이제 남자친구가 있는 몸이지 않던가!!
이렇게 막 먹어서는 아니 된다.
버릇이 될 수도 있잖아?!
“다녀오겠습니다!”
고기에서 손을 떼자, 창훈이가 놀라서 말했다.
“야! 너 고기 싸가지고 나가는 거 아니지? 지하철에서 막 먹을라고!”
진짜 어의가 없어서, 참.
완전 저질!!
나를 식탐심한 ‘무뢰한 여자’로 저렇게 판단하고 있다니.
세상 사람들은 나를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다.
내 겉모습만으로,
내 내면의 성격까지 확 규정지어버리는
허술한 가족과 세상이여!
“왜 해주니깐 또 안 먹고가!!”
엄마가 무척이나 툴툴거리며, 신발을 신는 나를 따라왔다.
“그게... 내가 너무 먹으면 안 돼서..”
“밤에 족발같은 거 처먹지 말고, 차라리 아침에 먹어!
그 몸으로 어떻게 시집가려고!!”
진짜 안먹었는데,
나 좀 믿어주면 안되겠니?!
아침부터 이런 기분 다운시키는 소리 같으니라구!
하지만, 오늘은 그닥 흥분되지 않는 그런 아침.
나는야 동철씨의 쿨한 여자가
아니겠는가?!
어깨춤이 덩실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