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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최강 서울 삽질녀
작가 : 로미유
작품등록일 : 2017.7.31

애정 불신이 만연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순수 처녀의 막돼먹은 연애기!

 
오징어가 자꾸 이빨에 끼는 밤
작성일 : 17-07-31 13:12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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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검은 안개, 구름, 저승, 도깨비.

 그런 몽환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비주얼,

 음식과 폭식의 반영.

 나의 절친, 마리였다.

 

 지연이 니가 떡볶이랑 김말이 같은 것을 잔뜩 먹어도

 ‘널 사랑해 줄 것이다’ 이런 막말을 했던 마리.

 그녀가 지하철역 입구에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 수수하고 퉁퉁한 얼굴을 보자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

 

 32세, 뭐든 맘껏 사 먹을수 있는

 월수입 천만 원까지 찍어본 로맨스 작가, 김마리.

 로코의 대왕인 그녀는 진작에 서른 줄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설탕이 가득 묻은(아마 설탕 추가 주문한듯) 핫도그를 쩝쩝 씹으며,

 입술에 촉촉한 케찹을 묻히고 지하철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친구 밖에 없다. 마리가 내 등을 툭 쳤다.

 매운 손, 아팠다.

 

 “힘내! 나 물 좋은데 알어. 한 판 당기러 가자!”

 

 지나가던 젊은 청년이 우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백악관, 한국관 이런데 가는

  '출산증후군'을 겪어서 부어버린 아줌마로 보는 것 같은 그 느낌.

 

 “지금은 노래방 갈 힘이 없다.. 일단 좀 먹고”

 

 우리는 떡볶이 집에 들어갔다.

 마리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말했다.

 

 “아줌마, 여기 떡볶이 2인분, 순대 2인분, 오뎅 열꼬치, 튀김은 김말이 7개, 오징어 5개, 고구마 2개, 그리고 뭐 더 먹을래?”

 

 난 힘없이 말했다.

 

 “그냥 그것만.. 저녁인데 소식해야지”

 

 “아니야, 너 강남 갔다 왔잖아.

 오늘 칼로리 소모가 너무 많았어! 아줌마, 김밥도 두 줄 주세요!”

 

 옆에 앉은 여중생들이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뭔가 우리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결연한 의지가 눈빛에 피어오르는 듯,

 그들은 눈빛 교환을 하면서 마리와 내 면상을 번갈아보다가

 자신들의 포크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뭔가 귓속말로 킥킥거리기도 했다.

 

 두루마리 휴지로 아이들의 두뇌 원펀치를 날리고 싶었으나,

 참았다.

 행여나 나빠보이는 저 아이들의 머리, 혹시나 더 나빠질까봐

 역시 난 천사야!

 

 그냥 기분나쁜 것은 곧 나오게 될 음식으로 풀기로 했다.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고, 마리도 공인이고,

 얼굴 없는 로코 대왕, 식탐은 천하제일 대왕.

 

 김말이를 작고 요염한 주둥이에 쑤셔 넣는

 마리의 그 포크 놀림이 너무나도 섹시했다.

 그녀가 김말이를 먹어도,

 곱창처럼 보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이런 게 외모의 후광 효과라는 것이지.

 마리는 평생 걱정 없이 맘껏 이것저것 먹으며,

 무척 행복하게 살 것 같았다.

 

 “남자 그까짓 꺼~! 미친놈 만나서 개고생하느니 그냥 혼자 편하게 사는 게 훨 나아!”

 

 그 때 전화가 왔다.

 

 어게인 황경철.

 

 “어! 경철 오빠네. 받아봐!!”

 

 마리가 우기적우기적 먹을 것을 씹으며, 말했다.

 

 난 받지 않았다. 경철 오빠와 마리, 나.

 우리는 대학 시절, 같은 시 창작 동아리였다.

 

 마리는 꽐라가 된 경철오빠를 손수 자신의 어깨에 메고,

 집에 데려다준 적도 꽤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남자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경철 오빠의 부모님은

 허약한 경철 오빠를 한 손에 들어서 침대까지 배달해 준 마리를 보고,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를 ‘며느릿감’으로 콕 찍었으나,

 

 마리와 경철오빠는 서로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심지어 경철오빠는 마리랑 자신을 자꾸 엮는 부모님 앞에서

 독기에 찬 눈으로

 ‘쥐약’을 삼키는 코스프레까지 했었다고.

 

 내가 분노를 가라 앉히지 못하고,

 오뎅 국물만 하염없이 흡입하고 전화 걸기를 거부하자,

 마리는 내 스마트폰을 빼앗아 들었다.

 황경철에게 전화를 건 마리는 완전한 갑의 목소리였다.

 덩치갑, 소리갑, 우렁찬 그녀.

 

 “죽고 싶어?! 일을 이따위로 해?!”

 

 마리의 대찬 음성에

 떡복이 집 아줌마는 국물을 휘젓던 국자를 떨어트렸고,

 사람들은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여..여보세요?”

 

 경철 오빠의 쫄아버린 음성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나 마리야!”

 

 “어..그래, 잘 지냈니..”

 

 “그 시키 뭐야? 집 어디야? 그 똥철인가 동철인가!”

 

 마리가 화를 이기지 못해 벌떡 일어섰다.

 마리가 나 대신 곤장을 치러 동철 시키의 집에 쳐들어갈 태세였다.

 

 “아니, 그게.. 일단 지연이 좀 바꿔줄래? 내가 얘기할게!”

 

 “나한테 얘기해! 얘 지금 받을 상황이 아니야!”

 

 나는 입 안에 순대 두 덩이를 넣고 오물쪼물 씹고 있었다.

 

 경철 오빠가 말했다.

 

 “아니... 내 친구가

  정말 급한 일이 생겨서 전화를 못 했다고, 미안하대”

 

 “그게 말이 돼?!”

 

 “그게... 걔가 하는 일이 좀 그래”

 

 “뭐하는데? 뭐하는 놈 소개시켜준거야? 어?!! 껌팔어?”

 

 “아니.. 그게. 내가 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래서 그 시키 우리 동네로 지금 당장 보내!

 어디서 강남까지 오라가라 난리야!!!!"

 

 로코의 대왕, 마리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고 있는 그녀.

 마리가 너무 사랑스럽다.

 이렇게 박력있지만,

 몸매와 얼굴 만큼은

 마리와 정반대인 남자가 있다면,

 오늘이라도 내 전재산이 담긴 통장을 냉큼 넘겨주고,

 혼인을 하고 말 것이야.

 

 “아무튼... 동철이가 직접 연락한대”

 

 “황경철, 이거 똑바로 처리 못 하면! 나 내일 니 네 집 찾아간다.”

 

 “아니야, 아니야!! 처리 할께! 절대 오지 마, 잠깐만 기다려!”

 

 경철 오빠가 겁먹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은 지 오 분 남짓, “깨톡”이 울렸다.

 

 "저 지연씨.. 정말 죄송해요. 아까 급한 일이 있어서..

  그리고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지금 PC에서 문자 드리는 겁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갑자기 오징어 튀김의 살들이 이빨 사이로 박히는 느낌. 당황스러웠다.

 늦은 오후에 강남역에서 내가 겪은 그 일들.

 똥 밟은 느낌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느낌...

 

 나는 확인하고 깨톡의 ‘1’을 없앴지만, 답장을 보낼 수 없었다.

 

 “마리야... 이것 봐. 뭐라고 해야 하냐?”

 

 문자를 보여주자, 마리는 잠시 고민했다.

 족손가락 두 개를 두턱에 개더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잠시 고민을 하더니,

 오뎅꼬치 두 개를 한 입에 흡입했다.

 

 “씹어... 니 인연 아닌거야”

 

 “어?!”

 

 나는 당황했다. 그의 프로필 사진을 다시 봤다. 포기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지갑에서 몰래 만원을 훔쳐 장미꽃 10송이를 사서,

 우리반 최고 킹카 반장한테 고백하자,

 장미꽃만 받아서 냉큼 지네 집구석을 튀어버린

 그 놈 때문에 울면서 방에 들어온 내게 매를 들지 않았다.

 대신 코까지 흘러 내려오는 뿔테 안경을 올리며 말씀하셨다.

 

 “지연아, 한 번 찍어서 넘어가는 나무 봤니? 내일 또 가라.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란다!”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모아온

 비상금 만원을 다시 내게 냉큼 내어줬고,

 나는 다음날 다시 장미꽃을 사서 고백했다.

 그 남자 아이는 ‘너 참 당돌한 여자구나!’ 라면서, 내 마음을 받아줬다.

 그리고 우리는 딱 ‘일주일’ 사귀었다.

 

 그게 어딘가!! 마음에 드는 남자와 일주일을 사귈 수 있다면!

 사실 둘이 좋아 사귀는 경우가 어디 있나. 보통 한 명이 당근 더 좋아하지.

 

 난 그냥 동철씨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게 좋아함인가, 사랑인가, 오긴가. 아 뭐지. 복잡하지만, 지금 씹고 끝낼 수는 없었다.

 

 문자를 막 쳤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진짜 미안해요.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제가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저녁때 지연씨 회사 근처에서 저녁 먹어요.”

 

 “야!!!!!이것봐!”

 

 나는 쾌재를 부르며, 일어났다.

 마리는 나의 기차 화통 삶아먹은 목소리에 놀라서,

 실수로 내 몫이었던 남은 오징어 튀김 하나를 일부러 입에 넣었다.

 

 “너!!! 이년아, 그거 내 껀데!”

 

 나는 내 오징어 튀김을 냉큼 먹어버린 마리에게 투정을 부렸다.

 마리가 입을 동그랗게 모은다.

 귀여운 친구. 세상이 갑자기 밝아 보인다.

 그래! 오늘은 내가 쏘자. 동네 분식집 매상 좀 올려주자고!!

 

 “아줌마! 여기 오징어 튀김 열 개 추가요!”

 

 그래, 인연은 질긴거야.

 오징어가 자꾸 이빨에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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