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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스타가 사랑한 파파라치
작가 : 몽지나11
작품등록일 : 2017.7.31

6세기 대가야 왕녀 연과 신라 진흥왕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이들의 사랑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한채 비극으로 끝나고...21세기 한류스타 양욱과 시골처녀 귀은으로 다시 태어난 두 사람. 의문의 죽음을 당한 귀은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파파라치 기자 진마리의 몸을 빌어 양욱과 의도치 않은 동거를 시작한다.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두 사람의 로맨스가 대가야 2왕녀 수가 깨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삼진그룹의 음모 속에서 다시금 애틋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3. 도둑키스
작성일 : 17-07-31 04:21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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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도둑키스

 

 

 30살 즈음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는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차가운 표정에 입술을 꾹 다물고 귀은을 쏘아보았다. 깔끔하게 2:8 가르마를 탄 머리에 놀랍도록 핸섬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도회지에서라도 마주쳤으면 “배우인가”라고 가슴을 떨며 한번쯤 돌아다 봤을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 풍겼다.

 

 그러나 여기는 도회지가 아니라 귀신들이 어깨동무하며 살고 있는 상엿집이었다. 당연히 귀은의 눈엔 섬뜩한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귀은은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여 구신이여! 구...구신이믄 썩 물러가! 하...할렐루야!!”

 

 귀은은 이번엔 물개 박수를 치며 미친 듯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런 귀은의 꼴을 얼마간 지켜보던 남자가 비식 웃더니 병풍을 밀치고 쓱 걸어나왔다. 187센티 정도 되는 큰 키에 날카롭고 오뚝한 콧날, 쌍꺼풀 없는 이지적이고 그윽한 눈매와 약간 찡그린 미간 옆으로 굵게 새겨진 눈썹과 각진 얼굴이 차가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사람이면? 사람이면 어쩔건데?”

 

 “사...사람? 사람이라구유?”

 

 남자는 혼이 나가버린 듯한 귀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사람이었나? 귀은은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쌀가마니를 척 척 들며 논일 들일을 해온 귀은에게 깡마른 도시 남자 따위는 전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얼허고 있는거요! 쥐새끼모냥 아무도 읎는 척 하믄서”

 

 그는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귀은의 코앞에 멈춰섰다. 번개가 칠 때마다 남자의 얼굴이 더욱 자세히 보였다. 버럭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사실 귀은의 가슴은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마치 영화포스터에서 빠져나온 듯,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눈앞에서 처음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웬지 낯이 익어보이기도 했다. 누구지? 이런 미남을 봤으면 기억 못할 리가 없었는데...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못 볼꼴 보여준 당신도 나한테 미안해해야지? 게다가 감히 나한테 말이야...”

 

 그제야 귀은은 자신이 티셔츠를 입지 않은 속옷바람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엄마야!”

 

 서둘러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그리고는 남자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으악...이 변태새끼가 어딜 보는 겨...쥐새끼마냥 지금까지 내 몸을 훔쳐보고 있었구먼.”

 

 뺨을 맞은 양욱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 사이 귀은은 걸레처럼 후줄근해진 티셔츠를 얼른 꿰어 입었다. 졸지에 따귀 벼락을 맞은 양욱은 억울한 듯 외쳤다.

 

 “훔쳐봐? 내가? 당신 몸을?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엄밀히 따지면 이곳에는 내가 먼저 들어와 있었고 그쪽이 일방적으로 그 가슴....아니 그 꼬락서니로 나타난 거란 말야. 그런데 왜 내가 변태야? 당신이야말로 노출증 환자 아냐?”

 

 “노출증? 이 변태아저씨가 지끔 나헌티 발광헌 미친년이라고 뒤집어 씌우는거여? 사람이 아무리 비겁하더래도 그렇게 살믄 못쓰는 거여”

 

 귀은이 다시 그의 뺨을 한 대 치려는 순간 남자가 먼저 재빠른 동작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이거놓으라구. 너같은 늠은 철창신세를 한번 져봐야혀.”

 

 “감히 누구 얼굴에 손찌검이야. 이 여자가 이성을 빗물에 말아 드셨나. 내 얼굴에 멍이라도 생기면 당신은 인생 쫑난거야. 엄청난 배상금이나 준비해두라고.”

 

 두 사람이 불꽃튀는 눈싸움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상엿집 문 앞에서 빗속을 뚫고 누군가의 발자국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발자국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저 미저리.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양욱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낭패라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서 선명히 떠올랐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끼이익 문돌쩌귀 소리가 상엿집을 울렸다. 바로 순간이었다.

 

 양욱은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귀은을 자신의 다부진 가슴팍으로 잡아당겼다. 코앞에서 그의 단호하게 빛나는 눈을 올려다보며 귀은은 생전 처음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뭐허는 겨! 이거 안놔? 놓지 못혀? 이 변태새끼야. 소리지를텨!”

 

 귀은은 그의 품안에서 버둥거렸지만 그의 완력은 한층 더 세었다. ‘호미라도 있었으면...’ 아까 호미를 밭에 놓고 온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어쨌든 아가씨. 오늘 계탔군”

 

 남자가 귀은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귀은의 가슴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지끔 뭔짓을 헐라고 허는겨? 빨랑 이 손 놓지 못혀?”

 

 두려움과 떨림이 깃든 표정으로 귀은이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자 양욱의 눈빛이 잠시 조금 흔들렸다.

 

 잠시, 양욱은 어질머리를 느꼈다. 톱스타인 그는 수많은 미녀스타들을 수두룩하게 보아왔지만 이렇게 맑고 깊으면서도 선한 눈동자를 가진 여자를 본적은 없었다. 탄산음료에 중독되어있던 혀가 마치 가마솥에 오랫동안 끓인 숭늉의 수굿하고 구수한 맛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망설일 틈이 없었다. 여기서 진마리를 따돌리지 못하면 희주누나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는 소리치려는 귀은의 목을 끌어당겼다. 이어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차갑게 다물었던 입술을 덮쳤다.

 

 “읍...”

 

 처음 당해본 키스에 귀은은 혼이 빠져나간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연애란 자고로 남자가 돈을 물 쓰듯 쓰면서 안달 났을 때 줄 듯 말 듯 감질나는 입맞춤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나불대던 읍내 명다방 미스박의 연애특강을 귀동냥으로 담아들었던 것이 연애지식의 전부였던 귀은은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남자의 키스는 처음엔 거칠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입속에서 솜사탕을 녹이듯 부드러워졌다. 축축한 입술의 감촉과 함께 혀에서 달디단 캐러맬 향기가 느껴졌다.

 

 “이건 꿈이여..현실일리가 없어”

 

 막무가내로 입술을 탐하는 남자의 키스에 귀은은 충격에 젖어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상엿집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도둑키스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던 것이다.

 

 ‘못된 도깨비가 나한테 장난치러 온건가?’

 

 귀은은 눈을 꾹 감고 이것이 분명 못된 도깨비의 장난이라고 확신했다. 귀은의 벗은 등을 움켜쥔 남자의 손바닥 악력이 느껴졌다. 귀은은 ‘이게 무슨 귀신조화 속이랴’라며 더욱 아찔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나 도깨비장난은 그녀를 껴안고 있는 남자에게 셔터를 들이대는 누군가의 등장에 다시 현실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가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겨. 왜 저 여자는 우덜을 찍고 있는겨.”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귀은이 깜짝 놀라 몸을 버둥거렸지만 남자는 그녀를 더욱 거세게 안았다. 그녀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이대로 있어. 파파라치가 갈 때까지만...나 좀 도와줘. 보상은 충분히 할게”

 

 귀은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남자의 반응에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느덧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운 키스로 귀은의 혼을 쏙 빼놓았던 남자는 버둥거리던 귀은을 그제야 거세게 밀어냈다.

 

 겨우 그의 품에서 벗어난 귀은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거친 키스 때문에 입술이 터졌는지 비릿한 피가 혀끝으로 감겨들어왔다. 그제야 귀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이 배라먹을 놈아! 죽고 싶어? 감옥서 콩밥 먹을 각오나 하라구.”

 

 귀은은 성추행범으로 고소하려 했지만 휴대폰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이렇게 원통할 수 없었다.

 

 그는 입가에 묻은 침을 쓱 닦고는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가 그녀를 바라봤다. 이어 딱 보기에도 두툼해 보이는 지갑에서 수표다발을 건넸다.

 

 “이 정도면 아가씨 입술값은 하고도 남을거야...미안하게 됐군.”

 

 뜨겁고 강렬하게 키스를 퍼붓다가 차갑게 돌변해 돈을 건네는 남자의 행동에 귀은의 가슴이 이상하게도 시큰하게 아파왔다. 귀은은 제 심장이 순간 미쳤다고 생각했다.

 

 ‘내가 뭘 기대헌겨. 이 년이 미친겨? 저 개도 안물어 갈 눔은 빨리 신고를 혀서 콩밥을 실컷 맥여야 쓰는디’

 

 억울함이 북받친 귀은은 눈을 다시 부릅뜨고 남자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고작 이걸로는 안되겠는디? 내놔. 나 이래뵈도 비싼 년여. 니 넘보다 천 배 만 배 비싼 년여. 돈이 하두 많어서 도대체 워디다 쓰야 허는지 물르겄디?”

 

 남자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훗..이제야 날 알아본건가? 그래그래, 촌구석 아가씨 인생에서 금맥을 발견한거랑 같겠지. 자...아가씨...그러니까 입막음으로 얼마를 원합니까? 얼마면 입 다물어 주겠어요?”

 

 “이늠이 지끔 뭔 소릴 지껄이고 있는겨?”

 

 귀은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낯이 익긴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니가 그렇게 대단헌 넘여? 뭐 군수아들내미라도 되는겨?”

 

 “정말 날 모른단 말야? 아...그러니까...난 배우요. 아가씨는 도대체 집에 tv도 없나? 어떻게 날 모를수가 있냐구...나는 사실 양욱이요. 내 이름 들어는 봤겠지? tv틀면 스무번도 더 나와. 하루에도”

 

 물론, 양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가 양욱이라곤 상상도 할수 없었다. 뭣하러 한류스타가 이 시골마을까지 내려와 상엿집에서 자신의 입술이나 훔치고 있겠는가.

 

 

 “아아...배우님이구먼. 그럼 난 미쓰코리아여. 이 사기꾼 놈아. 시골 산다구 무시허덜 말어. 니 말루다 텔레비전 틀면 수십번도 더 나오는 양욱두 모를 줄 알었냐? 한류스타 짝퉁겉이 생긴 낱판떼기루 사기치고 다니면서 사는 늠아”

 

 “짝퉁이라고? 하...이거 정말 말이 안통하는 아가씨로군”

 

 남자의 얼굴에서 ‘이 여자 뭔가?’라는 빛의 낭패어린 기색이 내비쳤다. 귀은의 입장에선 치명적으로 잘생기긴 했지만 제 입으로 배우라고 하는 남자의 행동이 영 미덥지 않아보였다. 그는 잠시 당황하는 듯 했지만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후, 머리아파. 알았어. 알았다구. 내가 다 잘못햇소. 잠깐 입술 빌린 것은 미안하지만 애초 아가씨한테 흑심 따윈 없었소. 저 거머리 같은 파파라치를 떼어내려고 그런 거 뿐이라구.”

 

 “넘의 입술을 뺏고는 그걸 말이라고 허는겨?”

 

 “아가씨. 미안하게 됐는데 질척하게 굴지 마. 질척거리는 여자들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니깐”

 

 남자는 그녀의 가슴을 감정 없는 눈으로 한 번 더 훑어보고는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더 꺼냈다.

 

 “이거면 우리 거래는 끝난거요. 나중에 딴소리 하면 나도 가만 안있을거요, 내 얼굴 때린값 청구하면 아가씨 집안은 쪽박찰테니 알아서 해요”

 

 남자가 내민 수표를 귀은은 입술을 깨물고 쳐다봤다. 그러나 귀은은 차마 그 수표를 받을 수 없었다. 수표가 상엿집의 퀴퀴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은은 모멸감에 숨도 쉬지 못할 듯했지만 그 돈이면 그녀가 몇 달 동안 땡볕에서 품을 팔아도 만지기 힘든 액수라는 것을 절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첫키스였나? 숙맥도 보통 숙맥이 아니던데. 그건 좀 미안하게 됐군. 그래도 나중에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오히려 계 탔다고 생각하게 될걸...내가 아주, 백프로 확신해...”

 

 “뒷집 거맥이 짖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

 

 “그런데 마지막으로 정말 물을게...정말 정말 날 모르겠어? 양욱이라니까. 양! 욱!”

 

 “...미친눔”

 

 그녀는 자존심은 접어두자고 몇 번이나 마음을 추스린 뒤에 떨리는 손으로 돈을 줍기 시작했다. 동생의 말문을 터주려면 그녀는 정말로 돈이 절실했다. 등을 둥글게 말고 쪼그려 앉아 허겁지겁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 귀은을 남자는 잠시 뒤돌아 바라보았다.

 

 자신의 등뒤로 남자의 눈길이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후 남자는 상엿집 문을 열고 가버렸다. 순간 귀은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아주 못된 도깨비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나쁜 도깨비 놈. 정말 나쁜 도깨비놈아...사람을, 사람을 그렇게 놀리믄 못쓰는 뱁여...큰 벌을 받는 뱁이란말여...나쁜 도깨비 놈아...”

 

 하지만 그도 그녀도 그때까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운명이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격랑 속으로 휘말려들 것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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