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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풍운협(風雲俠)
작가 : 오월성
작품등록일 : 2016.3.30

결국 선택의 문제였다. 우리의 목적은 같았다.
녀석은 선(善)을 선택했고, 나는 악(惡)을 선택했다.

 
관문 끝에서
작성일 : 16-04-29 13:42     조회 : 465     추천 : 0     분량 : 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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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간 시야가 트였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백사장.

 

 초설이 내린 눈밭 마냥 새하얀 백사장을 보면서 남자는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십 년 전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백사장은 강가를 향해 점차로 넓어졌고, 그 끝자락에서 흑수는 강변을 면한 채 먹빛으로 잔잔했다.

 

 남자는 백사장을 가로질러 강가에 우뚝 섰다. 강물이 발목에서 찰랑거렸다.

 

 잿빛 눈동자가 흑수에 머물렀다. 검은 수면으로 과거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십 년 전 열다섯 살 소년이었던 남자는 검은색 전선(戰船)을 타고 저 강을 거슬러 올랐다. 외역 정벌군 소속이었다.

 

 그때 전선은 강변에 닿지 않았다. 그를 포함한 장병들은 강에 던져졌다. 그는 헤엄을 쳐서 가까스로 뭍에 닿았다.

 

 그러나 정작 전투는 해보지도 못했다. 외역의 환경이 중원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공기가 무겁고 탁했다. 장병 대부분은 숨을 쉬지 못해 죽었다. 무공을 익힌 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역에 잠입한 정벌군 중 살아남은 자는 남자가 유일했다.

 

 ‘괴상한 체질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나 역시 그때 그들처럼 죽었겠지.’

 

 그리고 목적이 없었다면…….

 

 야수들의 함성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자는 상념을 털고 시선을 돌렸다.

 

 이곳은 외역으로 통하는 여러 물길 중 하나일 뿐 포구는 아니어서 거룻배 한 척 눈에 띄지 않았다. 갈대며 나무는커녕 풀잎 하나도 없으니 배를 만들려야 만들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걱정하지 않았다.

 

 흑수 저 너머에 중원이 있다.

 

 그리고 중원 어딘가에 그의 하나뿐인 동생이 있다.

 

 동생을 만날 수만 있다면, 은원을 청산한 뒤 동생과 함께 옛 터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강이 대수일까. 망망대해(茫茫大海)라 하더라도 기필코 건너리라.

 

 ‘그 전에…….’

 

 남자가 돌아섰다.

 

 협로를 빠져나온 야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쇳소리와 함께 창날과 반월도가 단창 자루에 맞물렸다.

 

 야수들이 첨벙거리며 달려들었다.

 

 물보라가 일면서 빛을 반사했다. 찬란했다.

 

 남자는 지척에 다가온 야수의 머리를 낫날로 찍었다. 낫날이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야수는 즉사했다. 남자는 야수를 뒤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흑수에 떨어진 야수는 물속으로 침잠했다.

 

 야수들은 포효하며 휩쓸 듯이 달려들었다. 남자는 처음과 같은 수법으로 야수들을 낫날로 찍어서 흑수 방향으로 집어던졌다. 야수들의 시체는 강물 깊숙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맹렬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표범머리였다. 표범머리는 등 뒤로 넘긴 대두도(大頭刀)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남자는 단창 자루를 수평으로 잡고 대두도를 막았다.

 

 깡!

 

 표범머리의 괴력이 단창 자루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장병겸과 대두도가 열 십(十) 자로 교차된 가운데 남자와 표범머리의 시선이 얽혔다.

 

 “힘들어 보이는군.”

 

 표범머리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인정한다. 너는 강하다. 하지만 내가 죽인다.”

 “…….”

 

 남자는 대답 없이 오른손을 놓았다.

 

 표범머리 그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왼손 하나로 자신의 힘을 감당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대두도를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야수들을 상대하면서 힘이 소진되었으리라 판단한 것이 오판이었던가. 표범머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힘들어 보이는군.”

 

 남자의 목소리는 무감정했다.

 

 명백한 조롱이었지만 표범머리는 어느새 창백해진 얼굴로 비지땀을 흘리며 남자를 노려볼 뿐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한 가지 말해주지. 너에게는 일 초(招)도 무의미하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왼손을 짧게 밀쳤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표범머리가 신음을 토하며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나는 것을 보면 그리 녹록치만은 않는 듯싶었다.

 

 전투 진형을 유지한 채 둘의 힘 대결을 지켜보던 야수들의 이목이 표범머리에 쏠렸다.

 

 표범머리는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부족과 자신을 따르는 부족의 야수들을 대거 희생시키며 여기까지 왔다. 남자를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선뜻 공격할 수 없었다. 투지가 꺾였다. 결국 표범머리는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너와 나 사이에 은원은 없다.”

 

 남자의 그 말에 표범머리는 다시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남자의 시선 끝에는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야수의 딸이 있었다. 수사자의 등에 앉은 채 그녀는 표범머리의 의문 어린 눈빛을 무시하며 남자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내 아비를 죽인 건 나한테 큰 의미 없어. 은원?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단 뜻이야. 당신 마음 편하자고 일방적으로 정한 약속이었지. 물론 외역의 중원 진출을 사사건건 반대한 걸림돌을 제거해주겠다던 당신의 약속, 내게는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이 지금껏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천리혈로(千里血路)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 그 말은……!”

 

 소녀가 말한 걸림돌이 다름 아닌 자신임을 깨달은 표범머리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표범머리의 고개가 떨어졌다. 죽기 직전에 표범머리가 본 것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박혀 있는 소녀의 팔이었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정리해, 흑곰머리.”

 

 소녀가 표범머리의 심장을 꺼내며 말하자 검은 곰의 머리 박제를 뒤집어 쓴 거한이 움직였다. 표범머리 부족과 표범머리를 따르던 부족의 야수들이 도륙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리라.

 

 “중원, 같이 가.”

 

 도륙이 자행되는 가운데 소녀가 말했다.

 

 “그런 약속은 한 적이 없다.”

 “무슨 뜻이지?”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잿빛 눈동자로 소녀를 일별하고는 돌아서서 강을 향해 걸었다.

 

 그 무렵 강물 깊이 가라앉았던 야수들의 시체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야수들의 시체를 징검다리 밟듯 하여 강심으로 나아갔다.

 

 순식간에 마지막 야수의 시체 위에 내려선 그는 양손으로 단창 자루의 중심을 엇갈려 잡고 풍차처럼 돌리기 시작했다.

 

 웅웅웅!

 

 잔잔하던 수면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하얀 갈기를 세우며 곤두선 물줄기들은 바람과 함께 회오리쳤다. 물줄기들은 겹겹이 쌓이길 거듭하더니 마침내 용오름이 되었다.

 

 남자는 그 중심에서 고요했다.

 

 “피, 피해!”

 

 비명에 가까운 소녀의 외침이 들리는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

 

 굉음과 함께 용오름이 짓쳐나갔다. 용오름은 격랑을 일으켰다. 격랑은 해일처럼 몰려가 강가의 야수들을 덮쳤다. 이어서 백사장을 휩쓸고 협로 안쪽으로 도망치던 야수들마저 집어삼켰다.

 

 그리고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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