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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Catch me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823년. 연쇄살인마 사이킬의 5번째 피해자의 최초발견자가 된 프리멜라 핑거우드의 돌아오지 않을 계절에 대하여.

 
4월의 이방인들(12)
작성일 : 17-07-30 21:51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8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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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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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어째서. 무수히 많은 물음이 머리를 채우다 못해 아래로 내려와 눈을 찌르고 목구멍을 막았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쏟아지듯 내리는 비와 바닷물로 잔뜩 젖어버린 옷에선 물방울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잠깐의 변덕이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죽었어야했다. 그 날. 처음 그녀를 본 날. 에들리 데마논은 프리멜라 핑거우드를 발견했을 때의 그 환희를 잊을 수가 없었다. 지독하게 자신을 좀먹어오던 기억의 끝에는 그 이름이 있었다.

 

 ‘프리멜라 핑거우드입니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신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그녀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내게. 기회를 주셔서. 이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한껏 차오른 고양감에 얼굴이 절로 씰룩였다. 제 목덜미에 칼을 드민 자가 누구인 지도 모르고 점점 경계를 풀어가는 그녀가 얼마나 한심해보였는가. 예기치 못한 극의 전개에 잠시 변덕을 부리기로 했을 뿐이었다. 그녀와의 만남도 빈번해지는 통화도 연락도, 모두 한낱 거짓일 뿐이었는데. 그랬는데.

 

 나는 왜 당신을 살렸을까.

 

 에들리는 동굴 밖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나야만했다. 이미 이곳에서 얻을 것은 다 얻었으니까. 사실은 이렇게 일처리가 늦어질 줄은 몰랐고 지금까지 프리멜라 핑거우드가 살아있다는 가정을 해 본적도 없었다. 모든 것은 저 비가 내려 땅에서 웅덩이를 만들고 흘러가듯이, 그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을 뿐이었다. 그는 오늘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상상했던 대로 손 안의 나이프를 찔러 넣기만 하면 끝이었다.

 

 인콘스탄티아. 바다의 변덕이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을 때 심장은 계속해서 불규칙적으로 쿵쿵 소리를 냈다. 정말로 사색이 되어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거짓말처럼 떨리던 몸이 진정되고 숨이 가라앉았다. 뜨겁게 치솟았던 열이 식기 시작하자 싸늘한 한기가 볼을 타고 내려와 서늘하게 목덜미에 자리했다. 미친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이 얼마나 멍청한 감정인지.

 

 에들리는 그 자리에서 멈춘 채로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프리멜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두커니. 그저 멈춘 채로. 둥글게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저 물살 속에 버려두면 그녀는 제 손을 거칠 필요도 없이 숨을 멈출 것이다.

 

 네가 바래왔던 순간이잖아. 즐겨. 저 숨이 끊어지는 고통을.

 

 배가 떠나버리고 요동치는 바다위로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육지로 걸었다. 끝은 간단하다. 복잡했던 과거의 이유와 분노와는 관계없이 죽음 앞에서는 한낱 미물이 되는 게 모든 인간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이들도, 제 손으로 명을 거둔 이들도 그랬다.

 

 ‘에들리.’

 

 붉고 노란 꽃밭 사이에선 그녀가 다가오는 저녁의 노을을 바라보던 장면이, 그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검은 머리칼과 영원이 되어버린 짧은 순간. 에들리는 제 다리를 거칠게 휘감는 바닷물에 발걸음을 멈췄다.

 

 사실은 알잖아. 왜 그 사진을 찍었는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떨림은 심장에서 울렸다. 쿵쿵. 입술을 깨물던 에들리는 곧바로 몸을 돌려 거센 물살을 가르고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미 보이지 않는 모습에 그는 순식간에 불어난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이렇게 끝을 낼 수는 없었다.

 

 축 늘어진 몸을 업고 겨우 육지로 나왔지만 이미 육지도 육지라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잠겨버릴 저지대를 빠져나온 그는 툭 옆으로 떨어지는 하얀 손을 슬쩍 잡아보았다. 차가웠다.

 

 배가 정착했던 곳과는 다른 위치였다. 어디든 바닷물과 비를 피할 곳이 필요했던 그의 눈에 동굴이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업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소용돌이치는 물은 푸른색이 아니라 완전히 녹색이었다.

 

 프리멜라를 바닥에 눕혀두고 그 옆에 앉은 에들리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품에 가지고 있던 나이프를 꺼냈다. 가녀린 목덜미에 가져다대고 그는 숨도 멈춘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도대체 왜. 그녀를 제 손으로 살렸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 혼자만의 고뇌 끝에 그는 나이프를 내려놓고 반대편 벽 쪽으로 가 기대어 앉았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자신의 다음 번 피해자가 될 이를 눈에 담았다. 전부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래 전에 속에 삭히고 또 삭힌 다짐이 무겁게 그를 내리눌렀다.

 

 에들리는 폭우가 땅을 두드리며 바다로 향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치 어딘가에서 막혀있던 수문이 열린 듯 나타난 녹색 바닷물의 소용돌이는 거대한 입을 벌린 짐승과도 같았다. 바다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는 그날의 발걸음소리를 닮았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고함소리와 숨을 죽인 이들. 진정해. 괜찮아. 다독이며 책을 읽어주던 얼굴 모를 이의 목소리만 흐릿하게 기억이 되어 남았다.

 

 그 녹색의 바다를 타고서

 푸른 별빛이 쏟아지는

 폭포로 돌아온단다.

 

 “결국에는 돌아온단다.”

 “예쁜 시네요.”

 

 에들리는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군요.”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두드림만이 잠깐의 침묵 속에 존재했다. 프리멜라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그처럼 벽에 몸을 기대면서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시선은 오랫동안 마주쳤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프리멜라는 온몸을 짓누르는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고통에 낮게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기댔다. 긁히고 멍이든 상처가 팔다리에 가득했다. 이미 구두는 벗겨진 지 오래였고 원피스는 끝이 너덜너덜했다. 제 모습을 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정말로 엉망이었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찾으려는 손이 더듬더듬 옷가지 위를 방황했다. 물살에 휩쓸려간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쉬자 늦은 대화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개면 구조대가 도착할거에요.”

 

 에들리가 자신의 휴대폰을 느릿하게 흔들었다.

 

 “운이 좋았죠. 다행히 고장 나지 않았거든요. 구조 요청을 보내고 배터리가 다 됐지만.”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는 않군요. 문장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의미는 명확하게 전해졌다. 두 사람은 내리는 비를 조금 떨어진 간격을 두고서는 바라보았다.

 

 “물에 빠졌었는데.”

 

 프리멜라의 말에 에들리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 섬에 남은 건 우리뿐이에요. 모두가 배에 탔죠.”

 “구해준 건 당신이군요.”

 “…그렇죠.”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던 프리멜라의 시선에 바닥에 떨어진 나이프가 들어왔다. 물웅덩이 위로 놓인 시린 색감의 칼날은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칼날을 접을 수 있는 폴딩나이프(folding knife)였다. 은백색 칼날은 관리가 잘된 듯 날카로웠고 손잡이에는 짧은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프리멜라는 손을 뻗어 나이프를 잡고 그 단어를 바라보았다.

 

 'Elize'seeker'

 

 대화는 다시 멈췄다. 천천히 들어 올린 시선의 끝에 두 사람이 다시 마주했을 뿐이었다.

 

 밝게만 보였던 레몬빛 머리칼은 동굴 속에서는 검정이 스며들어 어둡게 윤곽만을 드러냈다. 마주친 눈동자는 일순간 샛노랗게 보였다가 눈을 깜박이니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일시적인 착시현상인가. 프리멜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서늘하고 축축한 감촉에 솜털이 쭈뼛 섰다.

 

 웅크리고 있던 그가 어깨를 펴고 몸을 일으켰다. 타박 타박.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에 물기가 튀었다. 에들리가 다가와 제 앞에서 다시 무릎을 굽힐 때까지 프리멜라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커다란 그의 손이 다가와 이마에 닿자 프리멜라는 몸을 움츠렸다.

 

 “열은 없군요.”

 

 다행이에요. 미소가 사라진 얼굴은 건조한 감정만이 남아있었다. 이번엔 다른 손이 다가와 나이프를 잡은 손위를 두드렸다가 부드럽게 나이프를 가져갔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에 앉더니 칼날을 접었다.

 

 “당신 건가요?”

 “제 부적이죠.”

 

 그가 다가오니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외딴 섬에 배는 떠났고 비는 쏟아지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있다는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멜라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동굴에도 물이 들어와 차오를 지도 몰랐다. 불안함에도 프리멜라는 애써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듯 맞닿은 서로의 팔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그저 불안함을 삼키고 또 삼켜냈다.

 

 비는 언제 그치는 걸까. 불안함에 입술을 저도 모르게 짓이겼다. 천둥이 치기 시작하자 그녀는 희게 질린 낯으로 에들리를 바라보았다. 에들리 데마논은 웃지 않는다. 그 또한 많이 당황했으니 당연하겠지. 미소가 사라진 얼굴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지독하게 낯설게도 느껴졌다. 에들리는 오랜 침묵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는 항상 대화를 주도하는 쪽이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결국 입을 다시 연 것은 그녀였다.

 

 “그 부적은 믿을만한가요?”

 “언제나.”

 “그럼 다행이군요.”

 “쉽게 믿는군요.”

 “믿고 싶은 게 생겼을 땐, 그렇게 하는 게 좋죠.”

 “그런 걸 합리화라고 부르죠.”

 “지금이 바로 그 합리화가 필요한 때니까요. 이야기를 해 줄래요? 그 나이프는 언제부터 당신의 부적이 된 건가요?”

 “당신. 많이 두렵군요.”

 “솔직히, 네. 그래요.”

 “…많이 걱정하지 말아요.”

 

 그제 서야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식어버렸던 눈이 다시 서툴게 다정함을 담았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그 또한 가만히 눈을 마주하면서 손을 얽어왔다.

 

 “내가 당신을 당황하게 했군요. 딱딱하게 굴어서 미안해요.”

 “아뇨, 아니요.”

 

 프리멜라는 순간 목이 메여 숨을 삼켰다가 답했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이프가 궁금하다고 했나요? 이야기를 해 줄게요.”

 “…네.”

 “그날은 추웠어요. 비가 내렸죠. 내겐 다리를 절던 여동생이 있었는데. 기억이 명확하진 않네요. 사실 친동생은 아니었거든요. 어쨌거나 함께 사는 가족이었죠.”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처음이었다. 프리멜라는 에들리를 한참 바라보다 마주친 시선에 태연한 척하며 밖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어렸을 때 살던 곳은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외곽이라 산짐승이 많이 동네였어요.”

 “짐승이요?”

 “네. 가끔씩은 짐승들이 내려와 주택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일이 빈번했거든요. 동생이 다리를 절게 된 것도 그 짐승들 때문이었죠. 그래서 주변엔 어딘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누군간 다리를 절었고 팔이 한쪽이 없고. 제 친구는 머리를 다쳐서 좌우 구분을 못했는데 저처럼 정상인 경우는 정말 다행인 거였어요. 국가에서 근본적 해결책을 내주지 못했기에 결국 마을 사람들이 총을 들고 불침번을 섰죠.”

 

 이따금씩 깊은 산속이나 심해에서는 정체모를 동물들이 발견되곤 했다. 과거의 전쟁으로 지하에 몸을 숨긴 인간들은 먼 훗날을 위해 동식물의 유전정보를 챙겨 지하에 DNA은행을 만들었다. 그렇게 저장된 유전정보가 다시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지상의 햇빛을 받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인류의 새 시대가 도래 했을 때 기존에 존재했던 과거의 생명체와는 다른 변이된 종들이 이미 지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또 다른 갈래가 되어버린 지상인들처럼.

 

 과거보다 한층 더 흉포해진 이빨과 발톱은 사람을 짓이기기 충분했다. 지상인들과 지하인들과의 협정이 맺어진 후 제일 처음 시행된 정책은 짐승들의 말살이었다. 프리멜라는 낮게 탄식을 뱉었다. 외곽지역에 아직도 과거의 짐승들이 몇 개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 정도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뭐.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니까요. 지금은 조금 다르겠죠.”

 “그렇군요.”

 “비도 오는데 산책을 하러 나왔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었죠. 잠깐 다른 곳을 보는 사이에 나타난 짐승이 동생의 팔을 물고 끌고 가지만 않았더라면요.”

 “…세상에.”

 “순간 바닥에 떨어지는 노란 우산만 눈에 들어왔어요. 그 아이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건 뒤늦게 인식이 되더군요. 그 다음부턴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죠. 무작정 달려가 칼을 휘둘렀는데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해요. 소란을 들은 어른들이 와 총을 쐈고, 그래요. 그렇게 나도 그 아이도 살았어요. 그 때부터 이 나이프는 제 부적이에요. 안심이 되거든요.”

 “그 나이프는 생생한 기억 그 자체군요.”

 “네. 제게 있어서 이건…. 조금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전혀요.”

 “그 때 이후로 두렵거나 불확실한 감정이 생기면 이걸 가지고 있으면 마음을 정리하기가 쉬워져요. 그러니까 내가 살아 숨 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일종의 확인이고 확신이에요. 그런 의미가 되었죠.”

 “당신이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이제 좀 괜찮아졌나요?”

 “덕분에요.”

 “그럼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해 줘요.”

 

 제 이야기요? 프리멜라는 눈을 깜박이며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 후에야 망설이듯이 첫 말이 꺼내졌다.

 

 “가족, 하니까 하는 말인데. 제게는 오빠가 하나 있어요. 유일한 제 가족이죠.”

 “몇 번 말했었죠. 당신이. 기억나네요.”

 “오빠는 엄격한 사람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께서 일하시던 곳에 폭발사고가 나고부터 단 둘이 되면서 오빠는 제 교육에 더 엄격해졌죠. 당연히 저는 거기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고요. 점점 자라면서 오빠의 방식은 제게 맞지 않았어요. 집이 너무 싫어서 사촌언니 집에 한동안 살았을 정도였거든요.”

 “속을 썩이는 동생이었군요.”

 “여동생 취급하지 말아요.”

 “알아요. 계속 이야기해 봐요.”

 “항상 널 위한 거야, 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요. 날 핑계로 그저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브리엘-뷔스코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되면서 엄청 싸웠어요. 다신 보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악을 쓰고 나왔거든요.”

 “….”

 “혈연이란 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학기 중에 오빠가 학교로 찾아왔었어요. 나름대로 화해도 하고 잘 지내려는 데 또 그게 쉽지가 않았어요.”

 “왜요?”

 “제가 너무 변해버렸거든요. 전 개방적인 학문의 나라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했고 오빠와는 정 반대되는 사상을 가지게 된 거죠. 하아. 화해를 위한 거였는데 결국 골은 더 깊어졌어요. 서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후로 그는 원조를 끊어버렸다. 프리멜라는 그 땅에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야했다. 그러던 와중에 책을 출판하게 된 건 큰 행운이었다.

 

 “졸업하고 여기 돌아와서도 오빠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요.”

 “후회하는 군요.”

 “네. 맞아요. 막상 이런 일을 겪어보니 감정의 골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여기를 나가면 제일 먼저 연락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제가 너무 오랫동안 재미없는 제 이야기만을 떠들었군요.”

 

 그와 대화를 하는 동안 불안하게 떨리던 몸이 차분하게 진정되어 있었다. 거짓말처럼 비도 조금씩 사그러들기 시작했고 검은 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온 몸은 여전히 바닷물과 빗물에 푹 젖어있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아침이 온다. 비는 멎을 것이고 바다는 또다시 자장가를 들은 아이처럼 울음을 멈추고 고요하게 잠이 들겠지. 그녀는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에 체온을 닿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에 닿았을 때 미미하게 입술 끝이 올라가 호선을 그리는 미소가 좋았다.

 

 “실은 제게도 부적이 있는데.”

 “?”

 

 프리멜라는 눈을 휘며 작게 웃었다.

 

 “말하긴 조금 부끄럽거든요.”

 “말해 봐요. 말해 줄 거죠?”

 

 에들리가 키득 웃으며 그녀에게 몸을 숙여 귓가에 속삭이며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귓가에 닿은 숨결에 몸을 움츠리며 키득키득 함께 웃은 그녀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 했다.

 

 “당신이었어요.”

 “….”

 “이 도시에서 전 여러 일이 있었어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죠. 혼자서 방에 틀어박혀 의미 없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녹슬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프리멜라.”

 “당신이 내게 와주었거든요.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 당신은 아마 모를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눈을 뜨고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바보같이 조금 안심했어요.”

 

 에들리의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망설이는 얼굴로 잠깐 입을 열었다 떼었다가를 반복하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당신은…. 너무 직설적이군요.”

 “은유를 굳이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가장 솔직한 제 감정이었거든요. 너무 그 쪽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여기 봐요.”

 “나를 놀리는 군요.”

 “놀리는 재미가 이런 거군요?”

 

 어느덧 비는 멎었다. 바다는 고요해졌고 아침 해가 멀리서 고개를 내밀면서 밝은 빛이 동굴 안까지 들어와 두 사람을 비추었다.

 

 이 순간만큼은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

 

 에들리는 엉망이 된 모습으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프리멜라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의 숨이 끊어지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영원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아.아. 들리십니까?]

 

 멀리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다시 테람으로 인도할 배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에들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프리멜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풋. 웃음을 지은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 위에 손을 얹었고 두 손은 맞잡아졌다.

 

 “나는 오늘 돌아가요.”

 “알아요.”

 “어쩌면 그에 감사해야죠. 당신과 오랫동안. 함께 마지막을 보냈으니까요.”

 “음. 기절한 제 모습이 추하진 않았고요? 조금 신경이 쓰이는데.”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어요. 아마도.”

 “엄청 신경 쓰이는데요. 그 말.”

 “예뻤다는 말이에요.”

 “그건 좀 느끼했어요.”

 “이런.”

 

 에들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서 끌며 밖으로 향했다. 밤새 만들어진 물로 잠긴 바닥에 발이 닿을 때마다 철벅철벅 소리가 나고 물길이 발을 자꾸만 잡아 몸이 휘청거렸다.

 

 “천천히 걸어요. 그러다 같이 넘어지겠어요.”

 “아쉽네. 항상 멋지게 보이고 싶었거든요.”

 “미치겠네, 정말.”

 

 프리멜라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천천히 그의 손을 잡고 걸었다. 거짓말처럼 비를 토해낸 하늘은 맑았고 산뜻한 바람이 맞잡은 손을 휘어 감았다.

 

 “잘 가요. 에들리(Edlih).”

 

 그녀의 말에 앞서가던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가웠어요. 프리멜라(Premella).”

 “정말 많이, 고마워요.”

 “나도 그런 걸요.”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미소 지은 채 물가에 다가오는 배를 향했다. 짧지만 길었던 만남의 끝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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