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한국식 생일 밥상
오늘은 어떤 특식이 준비되어 있을까? 아, 나 하루만에 왜 이렇게 뻔뻔해진거야. 이런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잭 아저씨에게나 어울리는 거지. 그래도 마음 속의 기대는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 귀찮기만 했던 식사 시간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태일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젤리씨가 아주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서 앉거라!]
난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식탁을 한번 둘러보았더니 아주 낯선 음식들이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하얀 색 구슬 같은 것, 진한 초록색 스프, 스파게티. 스파게티인가? 면이 왜 이렇게 투명하지? 소스는 또 뭐고. 그리고 식탁 힌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저건 뭐지? 엄청 알록달록하네. 솔직히 좀 실망이었다. 더더 솔직하게는 아주 실망이었다. 이런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음식들을..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더니. 난 태일러의 얼굴을 살폈다. 나와 달리 태일러는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다. 음식을 보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나도 안심이 되었다. 태일러는 저 음식들을 알고 있는거야, 맛있으니까 웃고 있는거야.
[왜 그러니? 어서 앉아.]
지젤리 씨가 날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 네..]
내 생일응 챙겨주신 것 만으로 감사해야지, 나 따위가 뭔데 음식을 판단하고 있어. 냄새는.. 참 좋다. 낯선데도 좋다.
[아빠, 이게 바로 그..?]
태일러가 물었다. 잠깐, 너 이거 안 먹어본거야?
[그래, 이게 바로 그 한국식 생일 밥상이란다. 조금 생소하겠지. 태일러가 아침에 오늘이 네 생일이라고 말해주더군. 그래서... 조금 특별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 태일러가 그렇게 하자고 하더구나. 착한 것. 맛으로는 한국식 생일 밥상이 최고라더구나. 아주 끝내준다지.]
아, 이게 한국식 밥상이구나. 한국.. 어디서 들어보았지? 맞다, 신수철 할아버지(6장 참고)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지. 그리고... 한국. 엄청 발달한 나라라고 했지. 홀로그램 아이돌도 최초로 데뷔시키고, 인공지능을 개발 하는데 한 몫 했다지. 그런 나라에서는 이런 음식을 먹는다고? 갑자기 엄청 기대되네.
[으챠챠!!]
태일러는 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려놨다. 우아, 아깐 몰랐는데 정말 크구나.
[1층은 초콜릿에 딸기가 안에 들어갔어. 2층은 플레인인데, 안에 초콜릿이 들어갔어. 혹시 초콜릿 안 좋아하니?]
태일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전혀. 엄청 좋아해.]
태일러는 얼굴이 확 피며 환하게 웃었다. 내 누런 이빨과 달리 참 하얗고 고른 치아였다.
[흠, 흠!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해도 되겠니?]
지젤리 씨가 말했다. 물론이죠 , 어서 해요! 궁금하니까.
[이건 미역국이라고 해.]
그는 초록색 스프를 가르켰다. 이제 보니 스프 치고는 많이 묽어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얘는 좀 별로다.. 비주얼이 초록이라니. 그것도 싱싱한 초록도 아니고.
[미역국 맞지?]
지젤리 씨가 이렇게 말하자 어제 보았던 로봇 '쓰리'가 다가왔다.
[네, 미역국입니다. 슈그라햄 지젤리 씨.]
[그래, 이건 미역국. 이건 잡채라는 거야. 맞지?]
그가 투명한 스파게티를 가르켰다.
[네, 잡채입니다. 슈그라햄 지젤리 씨.]
[이건....]
지젤리 씨는 한 가운데에 놓인 판을 가르켰다.
[오늘의 메인 요리인데 ..]
나도 저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빨리 말해줘요..!
[구절폰이란다 !]
그는 아이처럼 천진 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태일러가 말했다.
[아빠.. 구절폰이 아니라 구절판이에요..]
지젤리 씨는 무척 무안해보였다. 그는 로봇에게 말했다.
[왜 틀렸다고 네가 말을 하지 않았어?]
로봇의 대답은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안 물어보셨잖아요 .]
이런, 쟤도 참 단순한 잭 아저씨같은 캐릭터군 . 태일러 말대로 확실히 멍청하기는 하구만?
[그래, 내가 안 물어보았지.. 그렇군.]
그가 중얼거렸다.
[쓰리, 이만 가봐.].
쓰리가 가려고 뒤돌아보자 지젤리 씨는 쓰리의 등을 세게 치더니 칩을 꺼냈다. 쓰리는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아니, 로봇이니까 꺼졌다고 해야 하나? 어쨋든, 엄청 무섭다. 마음에 안 든다고 꺼버리다니.... 그때 지젤리 씨가 다시 또 다른 로봇을 불렀다.
[파이브? 빨리 와봐.]
아주 빠른 속도로 투와 비슷하게 생긴 로봇이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슈그라햄 지젤리 씨? ]
[그래, 이 칩에 추가할 게 있는데.]
지젤리 씨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 쓰리의 등에서 빼낸 칩을 들어 올렸다.
[네, 타 로봇 칩 수정 모드를 가동합니다.]
파이브라는 그 로봇은 그렇게 말한 뒤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수정할 내용을 선택해 주십시오. 1번 칩 오류 수정, 2번 칩 내용 수정, 3번 칩 정보 추가, 4번 칩 초기화..]
[3번.]
[칩을 이곳에 올리고 추가할 내용을 상세하게 말해주세요.]
딱 칩 크기 만큼 비워진 판이 파이브의 몸 속에서 나왔다. 지젤리 씨는 그곳에 칩을 올리고는 말했다.
[주인이 앞에서 물은 질문들을 분석하여 다음 질문을 예측할 수 있는 인지 능력.]
[정상 처리되었습니다.]
[그래, 고마워. 파이브, 이만 가봐.]
지젤리 씨가 말했다. 갑자기 식당에 어떤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건 바로 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었다. 아침도 안 먹어서 배가 많이 고팠는데, 하필 이런 때 울릴 건 뭐람. 하아, 또 나 혼자 부끄러운 상황.
[음, 미안하다. 울프, 아침도 먹지 않아 배가 고플텐데 내가 너무 시간을 끌었구나. 아까 구절판 얘기 했었지? 간단하게 설명해주마. 이건 아주 옛날 한국에서..]
[왕들이 먹은 음식이에요!!]
태일러가 마치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싶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래. 내가 막 하려던 얘기다. 그전에, 내 견해를 하나만 말하자면 말이다. 어떻게 나라를 한 사람이 다스리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지젤리 씨는 말했다 .
[하지만 지금도 힐린 클린티 한 사람이 원스잖아요.]
태일러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 나라, 특히나 버드시 중에서도 구스 마을은 주민들의 뜻이 최우선이란다. 원스는 그냥 얼굴 같은거지.].
원스.. 원스..... 어디서 들어보았..... 아, 맞다!! 저번에 잭 아저씨가 화장실 장난을 칠 때 '원스 님' 이라고 했었어!
[원스가 뭐... 에요?]
내가 묻자 태일러가 내가 이걸 물어볼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아주 빠르게 대답했다.
[일종의 지도자 같은거야.]
지젤리 씨가 말을 받았다.
[맞아, 태일러가 말한 그대로야. 그냥 한 무리의 대표 같은 것이지. 하지만 이 사람 혼자 정치를 하진 않아. 정치란 아주 심오하고 어렵고 추접은 것이지. 그렇다고 정치가 필요없다는 건 아니야. 추접다는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진 말거라! 그냥 복잡하다고 알아들어. 나 역시 정치를 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단다.]
[네.]
무슨 소리인지 단 한 마디도 모르겠지만 일단 알아들은 척. 대답했다.
[이런, 또 시간을 끌어버렸구나. 미안하다, 울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말이다... 구절판은 보다시피 이렇게 생겼단다. 알록달록 아름답지 않니? 마치 앵무새 떼가 있는 것 같구나.]
[어쩌면 잉꼬 새요. 물론 그건 더이상 이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이지만요. 잉꼬 새에 대한 건 '과거 생태계의 구성원이 '었던' 생물들에 관한 책'에서 읽었죠. 그 책은 엄청엄청 재밌었어요. 울프, 나중에 너도 일게 될 수도 있어.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 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난 네가 그 책을 꼭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어... 아니, 내 말은 꼭 읽어보라는 거야.. ]
그건 또 뭐야? 난 몹시 배가 고픈데...
[이건 어떻게 먹냐면, 아.. 이런..... 설명하기가 몹시 곤란한데.. 왜냐하면 네가 아직 밥을 먹지 않아서... 일단 너부터 먹으렴. 그 다음에 구절판 먹는 법을 설명해주마.]
또 부담스럽다. 뭐부터 먹어야하지.... 일단은 내 바로 앞에 놓인 이 길쭉한 하얀색 구슬부터 먹어야겠다. 제일 낫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게, 가까이 가면 얼굴이 촉촉해지는 것 같다. 아까 전 아침에 수면 캡슐로 한 세수처럼 말이다.
[그건 밥이라는 거야. 우린 빵을 먹지만,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주식은 이런 밥이라는구나.]
[맛있겠다...].
태일러가 중얼거렸다.
[정말 뽀얗다...]
앨리샤도 중얼거렸다.
모두가 내가 먹기만을 기다리고 있구나. 그냥 먼저 먹어도 될텐데.
[숟가락 보이니? 숟가락으로 먹으렴...!]
지젤리 씨가 침을 삼키는 것을 본 것 같다. 난 숟가락을 들고 그 뽀얀 '밥'이라는 것을 크게 한 술 펐다. 숟가락이 입에 가까워질 수록 눈이 커지는 지젤리 씨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난 밥을 입에 쏙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