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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여왕 수호 기사단
작가 : 지니2
작품등록일 : 2017.7.18

“주인이다……”

황갈색 눈의 집시들 사이에서, 자그맣게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집시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로웬과- 불타오르는 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에서 산발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유리가시가 주인을 스스로 선택했다!”

로웬은 바들바들 떨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의 노란 눈이 로웬에게 꽂혔다.

“자격이 없는자- 날카로운 유리 조각 위에서도 무사하리라. 유리 가시는 스스로 선택하는 검. 맨발로 바닥을 뛰어라, 유리 조각을 밟아라. 너의 피가 네 자격을 증명할 것이다. 유리 가시는 선택하는 검.”

집시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간간히 시리어스 주의][생각보다 안진지함 주의][주인공 2명][기사단물][정통(?) 판타지]
[천재검사, 얼굴이 열일하는 주인공1][잔머리대왕, 그냥 일 안하는 주인공2]

 
Episode 1. 잠입 (9)
작성일 : 17-07-30 20:22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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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설마 남이 바라볼 때 흥분한다거나. 둘의 생각이 공통적인 곳까지 가 다다랐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견습기사 두 사람의 표정이 혐오감으로 물들었다.

 

 

 “히이익, 변태.”

 

 

 두 사람의 공통적인 생각의 결과물을, 유비 이그렛이 대표로 내뱉었다. 이이실이 고개를 들고 짜증을 왈칵 냈다.

 

 

 “끝났다는 소리다, 이 꼬맹이들아.”

 

 “아, 혼잣말이었는데. 들렸어요?”

 

 

 유비가 뻔뻔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 뻔뻔함에 이이실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지만- 그의 상대였던 여자에게서는 도리어 웃음이 터져나왔다.

 

 

 “귀여운 학생들이네.”

 

 

 유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손을 올려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포니테일로 올려묶고, 약간 구겨진 셔츠를 툭툭 눌러 펴고 있었다.

 

 

 “오늘 일은 비밀로. 알았죠?”

 

 

 유비는 눈을 깜박였다. 비밀로- 해야 할 이유가 있던가? 어차피 저 바람둥이랑 만나는 여자들은 하루 이틀 못가서 바뀌는데.

 

 긴 웨이브 갈색머리를 휘날리면서, 그녀가 유비 쪽으로 또각또각 걸어왔다. 타이트한 H라인 스커트와 높은 힐이 돋보인다. 그녀의 눈가에 옅게 드러나있는 주름이 아니었다면- 아마 로웬은 그녀를 고학년 학생 쯤이나… 젊은 교직원으로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왜요?”

 

 

 유비가 맹랑하게, 자기를 지나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안 그러면 너희가 찾아온 베르제트 교수님이 좀 곤란하시겠지.”

 

 

 그녀의 시선이 연구실 중앙의 교수 책상에 가 닿았다. 책상 위에는 대체 누가 줬는지 모를 선물상자들이 즐비하게 쌓여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쉬이 짐작된 로웬이 지끈거리를 머리를 쓸어올렸다.

 

 

 “교수님이… 저거 받는걸 꽤 즐기시는 거 같거든.”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로웬의 날카로운 눈이 이이실에게로 가 닿았다. 이이실이 뭐 어떠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로웬은 예의없이 문을 벌컥 열어버린 유비와 잠복 임무 중에 여자랑 놀아나고 있었던 이이실 둘 모두를 베어버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교수님.”

 

 

 그녀가 또각또각 걸어서 문을 나서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서는 찡긋 이이실에게 윙크를 날렸다.

 

 

 “내일 저녁 약속 잊지 마세요.”

 

 

 복도를 따라서 그녀의 또각이는 구두 굽 소리가 멀어졌다. 유비는 멍하니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교수실 문을 닫았다. 그녀의 약간 푸석푸석한 피부와- 살짝 뜬 화장이 떠올랐다.

 

 

 “이이실? 취향의 범위가 늘었네. 저런 아줌마라니.”

 

 “엠마 라니스 교수님이시죠? 생물학과의. 교수와 불건전하게 어울리면 임무 수행에 있어서 차질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유비의 농담조로 던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웬의 질책이 날아들었다. 로웬은 고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이이실- 그들의 직속 선배를 바라보았다.

 

 

 “와. 그냥 얼굴 한번 봤는데 누군지 어떻게 알아? 우리 생물학 안 듣잖아.”

 

 

 정작 그 말에 반응한 건 유비였다. 유비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잔뜩 띄워져 있었다. 로웬은 잠입하기 전에 내부 관계자- 즉 교직원 조사는 필수라는 말을 해줘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곧 단장이 둘 모두에게 던져줬던 잠입 임무 개요서에 해당 정보가 있었다는 게 떠오른다. 유비 이그렛이 엠마 라니스 교수를 몰라본 건 단순히 게을러서인게 분명했다. 개요서만 읽어봐도 아마 어렴풋이 알았을 테니까.

 

 

 "뭐 어때. 불륜만 아니면 됐지."

 

 

 이이실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유비는 힐긋, 로웬 아일체스트의 얼굴이 조금 더 굳는 것을 보았다. 저 굳은 얼굴에 유비 이그렛의 무식함이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 이이실 카룬티아스의 주책없는 아랫도리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베르제트'는 이이실 카룬티아스의 가명이었다. 그의 본래 성인 '카룬티아스'가 로웬네 아일체스트만큼이나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딱 그만큼 유명했다. 아일체스트 가와 더불어 왕국의 2대 검이라고 불리는 곳이니까.

 

 유비는 그쯤에서 저 가명을 쓰라고 내려준 단장이 지나치게 안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이실 카룬티아스- 그의 짧은 수도 생활에서도 몇 번이나 소문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치였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의 소문은 간단하다. 여왕이 인정한 왕국 제일의 기사. 그 누구도 그를 보조할 만큼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홀로 임무를 수행한다는 천재 검사. 지금 가장 강할 남자.

 

 문제는 나쁜 쪽으로의 소문이었다. 저 이이실 카룬티아스가 사교계의 여자들을 홀리고 다닌다더라... 그를 거쳐가지 않은 마담이 없더라... 하는 류의 소문. 거기에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합쳐져 있었다. 부인들의 외도로 분노한 남편들이 그 구렁이 같은 자식의 정체를 알아봤더니 이이실이어서, 복수를 포기했다는 이야기 같은 거였다. 이이실 카룬티아스의 무용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결투 신청을 못했다더라 하는 슬픈 결말.

 

 유비는 이 학교에서도 이이실 카룬티아스의 품 안을 거쳐간 여자가 한 명 이상은 있을 거라는 데, 언젠가 얻을 수 카넨의 쿠키를 걸 수도 있었다. 그런 곳인데 변장도 하지 않고 이름 하나 달랑 바꾸다니...

 

 

 "어, 그래도 음. 임무에 충실하긴 해야지.... 이이실? 나도 그렇게 임무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닌 처지에 이런말 하기 민망하긴 하지만."

 

 

 유비가 어물쩡, 로웬의 눈치를 보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이실은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종이 뒤쪽에 찍혀있는 왕실 인장을 보건데 아마 기사단에서 전달된 문서인 것 같았다.

 

 로웬 아일체스트로 말하자면... 그는 사실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이실 카룬티아스에 대해 동경심까지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사실 검을 쥔 사람치고 이이실 카룬티아스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 대단했던 동경이 기사단에서 실체를 만나면서 산산히 부서졌지만.

 

 동경심이 부서지고 남은 것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선명한 자격지심 뿐이었다. 저런 쓰레기같은 남자조차 이길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격지심. 그걸 억지로 눌러삼키면서, 로웬은 날카롭게 이이실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서류를 다 읽은 듯, 그걸 탁 소리가 나게 덮은 이이실이 둘의 시선과 마주했다. 그는 유비의 불성실한 눈빛과 로웬의 반항심을 훑어보고는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열등생 견습 기사님들- 이건 너희 임무잖아. 난 그냥 비상사태를 대비한 보호자로 따라온 거라고요."

 

 

 그의 목소리에 귀찮음이 가득 배여있었다.

 

 

 "나한테 시비 걸 시간에 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단장이 이번 임무 수행 결과에 따라서 앞으로 임무에 더 투입할건지 말 건지를 결정한다는데. 이이실이 추가적인 단서를 던져줬다. 유비가 눈을 깜박이다가 바르르 어깨를 떨었다.

 

 

 "뭐, 뭐야. 이거 임무 성공하면 정식 기사 되는거 아니었어?"

 

 "허. 승격은 너희가 정식기사로서의 조건을 다 맞췄을때 되는 거고."

 

 

 그가 손가락으로 로웬과 유비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니까 이쪽은 인적성 탈락. 이쪽은 검술 탈락이던가. 기사단에서 한 달 간 머물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자신의 '결격 사유'에...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이 임무를 성공하면 정식기사가 될 수 있을거라는 건 두 사람의 예상이었을 뿐이었다. 단 한번도 마르모넷사 단장이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던진 적은 없었다.

 

 충격으로 바들거리는 유비를 무시하면서, 그는 로웬을 바라보았다. 로웬 아일체스트가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귀염성 없는 자식 같으니. 속으로 중얼거리던 이이실은 로웬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발견하고 비죽 웃었다. 초보 기사는 초보 기사인 모양이었다.

 

 

 "자아, 견습들.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해봐."

 

 

 유비는 쉽게, 이이실이 비죽대며 하는 저 말이 내포하는 의미가 '뭘 알아낸 게 있긴 있겠냐, 열등생들아.' 정도인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웬 아일체스트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 들고 온 보고서를 그에게 건네줬다. 그의 붉은 입술선이 움직이며 담담하게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갔다.

 

 

 '저 망할 선배가 히죽대는 게 왜 그런 건지- 눈치 좀 채주지.'

 

 

 유비 이그렛은 이 상황이 그에게만 고통스러운 건지 고뇌에 휩싸였다.

 

 

 "이틀 전. 비명 소리가 들려서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현장에서 사라지는 검은 괴한을 추적했고, 마지막으로 흔적으로 확인한 곳은 여자기숙사였습니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자가 여자 기숙사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자라는 것으로 좁혀집니다. 보고서는 해당 여자기숙사의 기숙사생들과, 그 기숙사에 근무중인 직원들을 정리한 겁니다."

 

 

 삐긋, 유비는 옆으로 넘어질 뻔 했다. 아니 대체- 언제 저렇게까지 수사를 진행시킨 거지, 혼자서. 유비는 어안이 벙벙하게 로웬을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사실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검은 후드의 괴한이 자취를 감춘 곳이 여자 기숙사였다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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