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은 코우 플로스를 보면서 분명 20대라고 확신했다.
군더더기 없는 외모에 젊은 몸매까지 갖추니 누가 보더라도 당연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코우 플로스는 올해 46세인 사마트의 전 사제장이었다.
지금은 은퇴해 사마트 대 학원의 교사를 맡고 있지만, 현 사마트 사제장보다 훨씬 강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신성계가 4단계가 되어야만 사제장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
즉 코우 플로스는 신성계가 4단계다.
그녀의 외모가 이렇게 보이는 것은 그녀의 특수 능력인 신내림(패시브) 덕분이다. 신내림은 신성력을 증폭시켜주고 젊은 육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젊은 외모라고 해서 젊은 패기를 내뿜지는 않았다. 인자하고 자비로운 느낌을 풍기는 코우 플로스에게 아린은 조금 의아해하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을 시작할게요. 오늘은 새로운 학생이 들어왔으니 신성에 대한 복습을 조금 하고 본 수업을 나갈까 해요.
일단 기본적으로 신성력이란 신으로부터 힘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에요.
정확히는 신께서 사용하시는 기술을 저희가 따라하면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가 신성력의 정의입니다. 질문 있나요, 아린 학생?”
아린은 단번에 신성력을 이해했다.
이런 방면의 지식은 풍부해서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아린이 아니었다.
“없어요. 계속 해 주세요.”
“꽤나 똑똑한 학생이로군요. 그럼 계속해서 할게요.
하지만 신이 사용하는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신을 볼 수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신을 봤다는 사람도 몇 명 보기는 했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제 특수능력은 신내림이에요.
그런 저도 신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솔직히 신이 있는지 없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제가 저런 말을 하니 아린은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최대한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그럼 여기까지 이야기 하고 신성계에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신성계는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나뉘는데, 신성계는 기술이 많지 않아요. 치유하는 능력과 버프를 주는 능력밖에 없지만, 그 효과가 엄청나게 강대하니 사제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직업이에요, 《축복》.”
그리고 코우 플로스는 바로 4단계 신성 《축복》을 사용했다.
그러자 이 반에 있던 전체 학생들에게 축복이 내려지고 몸 주위가 따뜻해지고 온 몸에 힘이 돌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오감이 더더욱 강화되었다.
치유의 능력은 다친 사람이 없어서 발동되지는 않았다.
“마나 소모량이 극심해 하루에 단 한번 밖에 사용할 수 없는 4단계 신성인 《축복》이랍니다.
마나 소모량이 극심한 대신 광역으로 치유 효과와 각종 버프 효과를 부여하죠. 여러분들 전부 느껴지시나요? 이 따뜻함이 바로 신성력의 핵심입니다.”
어려운 말을 하는 듯 했지만, 아린은 이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따뜻함이 온 몸을 감싸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오, 코우 선생님의 《축복》은 처음이야……. 정말 따뜻하다…….”
“역시 전 사제장님이라니까. 이래서 신성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학생들의 잡담이 오가는 가운데, 《축복》효과가 식어갈 즈음에 코우 플로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은 1단계 신성인 《신성 하급 치유》를 복습할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미 배웠으니 옆 학생과 맞춰가면서 연습해 보세요. 아린 학생은 제가 옆에 가서 가르쳐 드리기로 하지요.”
그 말에 아린은 학생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았다.
완전 개인교습이라니 아린도 그 기분에 들떠 감정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코우 플로스는 아린 바로 옆자리에 앉아 아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린은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아 이리저리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았지만, 딱히 문제될 만한 건 없었다.
“혼내는 게 아니니 당황하지 말아요.”
“앗, 네.”
가까이서 보니 코우 플로스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사제장을 맡았으니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을 게 뻔하다.
“아린 학생은 신성계가 몇 단계지요? 이 사실은 사마트 대 학원의 교사로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을게요.”
선생님으로서 학생의 능력을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아린도 잘 안다.
모험가 조합에서 자신의 스테이터를 남에게 함부로 보여주는 것은 안 된다고 했으니 스테이터를 보여주지 않고 자신의 신성계만 말했다.
“4단계요…….”
그러자 코우 플로스는 흠칫 놀라는 듯싶더니 다시 안정을 되찾고 자비로운 눈으로 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와 같은 특수 능력으로 된 건가요?”
“아니요……. 제겐 신성력을 높여주는 특수능력이 없어요.”
“음……. 그럼 혹시 여신이거나 신의 자식은……. 아니겠죠.”
“네? 저 사람이에요. 설마 그럴 리가.”
사실 아린의 신성계가 4단계가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이세계로 넘어오기 전, 아린은 전국적으로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 와중에 종교 비슷한 신앙심이 생겨날 정도니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겠는가.
그런 국민의 믿음 덕분에 아린은 일종의 ‘신’이 된 것이고, 그 영향이 이세계까지 넘어와 신성계가 4단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아린은 자신이 왜 4단계인지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어요.”
코우 플로스는 차기 사제장으로 아린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좀 더 빡세게 아린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요, 그럼 일단 《신성 하급 치유》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아까 느꼈던 그 느낌을 가지고 대상에게 집중하며 마나를 사용해 치유한다는 생각을 하면 되요.
제가 먼저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신성 하급 치유》.”
코우 플로스가 자신의 마나를 조금 사용해 아린을 보며 《신성 하급 치유》를 사용했다.
빛이 아린을 감싸며 따뜻한 온기를 아린에게 전해주었다. 그 효과는 《축복》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것이었지만, 아린에게는 온정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그럼 저도 해 볼게요. 《신성 하급 치유》.”
아린은 최대한 방금 받은 느낌을 살려 또 마나 조절을 못하고 코우 플로스에게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빛이 코우 플로스를 감싸고 플로스에게 온기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코우 플로스가 사용한 《신성 하급 치유》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신성을 사용할 때 감싸는 빛이 엄청나게 밝았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서로에게 치유를 걸어줘 주위에 빛이 났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였다. 코우 플로스의 《축복》보다는 아니지만 거의 근접하게 빛이 났다.
“이, 이건…….”
“앗, 또 마나 조절에 실패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이라 마나를 잘 다룰 줄 모르거든요.”
그러나 코우 플로스는 화내는 기색 없이 오히려 웃으며 아린에게 말했다.
“아린 학생. 기술을 사용하는 아린 학생을 보고 확신이 들었어요. 제 특별수업을 들어보시는 것이 어때요? 차기 사제장을 하기엔 제격인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제가 배운 모든 신성을 가르쳐 드릴게요.”
“네에?! 하지만, 전 이제 처음 배우는 입학생인데……. 게다가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린은 잠시 생각하다 역시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린이 원하던 이세계에서 할 것은 모험가이다.
어느 한 곳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모험을 떠나며 많은 동료를 사귀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사제같은 구속된 직업을 가지는 건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행위다.
“선생님, 죄송해요. 역시 사제장은 제겐 무리일 것 같아요. 게다가 귀족도 아닌 제가 어떻게 그런 막중한 직책을 맡을 수 있겠어요.”
“후후후, 역시 그러시군요. 사제장은 그냥 제가 추천드리는 거지 꼭 하라는 것은 아니었답니다.
그냥 저는 아린 학생의 재능이 아까워서 꼭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꺼낸 말이었어요.”
“그럼, 특별수업만은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럼 물론이죠. 전 따로 신성력이 높은 학생들만 모아서 추가 수업을 하고 있어요. 시간은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동안 일주일에 한 번 해요. 마침 내일 수업이 있으니 4-5반으로 8시까지 오도록 해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서 코우 플로스는 아린의 귀에 가까이 입을 가져가 속삭였다.
“사실 이렇게 빨리 신성을 배워 사용한 사람은 제 인생 통틀어서 아린 학생이 처음이랍니다.
제대로 된 구조와 이미지도 가르쳐 드리지 않았는데 아린 학생은 단번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에요.
보통 학생들이 《신성 하급 치유》를 습득하는 기간은 3개월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아린은 눈동자가 크게 떠지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책이나 만화를 보면 주인공은 이세계에 들어가서 바로바로 마법이나 검술을 배워 능숙하게 사용하니 배우는 건 쉬운 줄 알았는데, 3개월이나 걸리는 신성을 자신은 불과 몇 분만에 사용한 것이다.
아린과 헤어지고 3층 맨 왼쪽에 자리한 1-7반에 들어간 현우는 아린과 마찬가지로 대충 구석에 앉아 1시가 되길 기다렸다.
겉으로 보기엔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학생들의 주의를 끌진 않았다.
1시 종이 울리고, 교실 앞문에서 근육질에 덩치가 큰 남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남자 선생님은 장부를 펼쳐 출석을 확인하고 다시 닫았다. 그리고 새로운 학생인 현우를 보았다.
자네가 그 이현우라는 새로 들어온 학생인가?”
“아, 네.”
“그래, 반갑다. 난 무투를 가르치는 자이칸 콘드리라고 한다. 자, 그럼 바로 제 3 훈련장으로 집합!”
자이칸 콘드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현우와 다르게 학생들은 근육이 제법 붙어있었다.
그에 비해 현우는 평소에 힘을 자주 쓰지 않아 왜소한 몸이다.
자이칸 콘드리는 처음 온 현우를 배려해 현우와 같이 제 3 훈련장으로 갔다.
제 3 훈련장은 본관 후문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나온다.
훈련장에 도착하고 학생들은 2열 종대로 맞춰 섰다. 현우도 눈치껏 그 뒤로 서서 자이칸 콘드리를 기다렸다.
“흠, 좋다. 그럼 일단 가볍게 훈련장 10바퀴를 뛴다! 체력은 곧 싸움을 결정짓는 중심이다! 무투계 스킬로 커버하려 하지 말고 기본부터 단단히 다지는 거다!”
훈련장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대충 봐도 한 바퀴를 돌려면 500m는 뛰어야 한다. 그런데 가볍게 5km를 뛰자는 자이칸 콘드리에 현우는 좌절을 하며 학생들을 따라 뛰었다. 게다가 5km나 뛰는데도 학생들의 속도는 처음 시작했던 속도에서 전혀 줄지 않았다.
4바퀴째부터 현우의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지더니 결국 학생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졌다.
죽을 듯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었다.
체력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는 현우였기에 자신은 원래부터 10바퀴를 완주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 현우를 자이칸 콘드리는 살갑게 바라보지 않았다.
자이칸 콘드리는 인간 중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무투계 上단계의 기사단장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조금 많다는 이유로 퇴직했긴 했지만, 아직까지 사마트에서 그를 무투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무투는 下, 中, 上, 神단계가 있는데, 인간 중에선 神단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종족에서도 神단계인 자는 이 세계에서 단 셋이다.
그런 자이칸 콘드리는 가장 기초가 되는 체력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의 수업에선 매일매일 시작으로 훈련장을 10바퀴 뛰고 시작한다.
그러니 새로 입학한 학생이 처음 봤을 때, 정말 비리비리하게 생겼고 남자다운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체력까지 약하니 좋게 볼 수는 없던 것이다.
“허억, 허억, 더 이상은…….”
이미 다 뛴 학생들은 헐떡거리며 아무렇게나 자세를 잡고 누워 쉬고 있었고, 8바퀴째인 현우는 더 이상 걸어 다닐 힘조차 없었다. 그래서 중도 포기를 하고 학생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나와 벌러덩 엎드려 숨을 고르며 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