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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The Sky Is Filled With Clouds
작가 : ssssss
작품등록일 : 2017.7.30

여느 때처럼 구름이 가득한 영국 Norwich의 한 해변가. 그곳에는 어릴 적 불의의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진다.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살던 그녀는 15살이 되는 해, 희망을 찾으러 뉴욕으로 떠나는데… 수 년이 흐르고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속에 있는 한 남자를 본다. 그녀는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날 저녁, 그녀의 집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The Present (Love) - 2화
작성일 : 17-07-30 19:51     조회 : 284     추천 : 1     분량 : 1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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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당신을 봐왔어요. 하지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네요.”

 그가 올려다보며 말할때 그의 초록색 눈동자가 빛났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오랫동안 봐왔다는 이야기가 신경쓰였지만 지금은 더 궁금한 사실들을 위해 잠시 넘어가기로 했다.

 “잠... 잠시만요. 우선 하나씩 이야기 하기로해요. 당신은 어디서 온거죠?”

 오로르가 물었다.

 "저는 구름위에 살아요. 구름을 치며 세계 곳곳에 구름을 보내기도하고 데려오기도하죠.”

 그가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로르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이해해보려 노력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말은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좀 더 상식적으로 말해줄 수는 없나요? 저는 아티스트치고는 꽤 논리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녀가 물었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어떻게요? 저는 단지 저를 창조하신 신이 보내라고 하는 장소로 구름을 보낼 뿐이예요. 단지 그뿐이지요. 저는 그분의 뜻대로 움직이거든요.”

 그가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신이라고?’

 그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증거가 하나도 없다구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믿으라는거죠?”

 그녀가 그를 몰아쳤다.

 “그럼 궁금한걸 물어봐요.”

 그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는 그녀의 공격적인 질문에도 전혀 화내거나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한결같았다.

 “그럼 당신이 어떻게 왔는지 말해줘요.”

 그녀가 말했다. 그의 여태까지 대답으로 봐서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단은 물었다.

 "구름에서 내려왔지요.”

 그가 짧게 대답했다.

 ‘역시.’

 그녀의 생각대로였다.

 “구름에서? 말이 안되잖아요.”

 그녀가 살짝 비웃었다. 그가 끄덕였다. 그는 비록 더 이상 미소짓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에서 분노나 상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구름에서 내려왔다면 뛰어내렸다는 건가요?"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자 그녀가 물었다. 하지만 의미없는 물음이었다. 다소 회의와 냉소가 섞여있는.

 “아뇨, 타고 내려왔어요.”

 그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타고 내려왔다고요? 구름을요?"

 ‘무슨 개소리야, 도대체?’

 "네. 때로는 구름이 낮은 곳에서 형성되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구름을 낮은 곳으로 내려보내도 되고요. 구름치기가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는 것이 하늘에서 뛰어내렸다는 것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고 논리적이지 않나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 부드러운 미소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골리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않았다.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는 지금 그녀에게 논리를 이야기했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저는 바보가 아니예요, 오로르. 사람들이 구름을 만지거나 타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있어요. 다만, 저는 구름을 치기 위해 창조되었기에 가능하죠. 그래서 구름을 타고 내려올 수 있었던 거예요.”

 오로르는 당황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이 읽힌 것만 같아 불쾌했다.

 “지, 지금 이거… 마음을 읽거나 그런건가요?"

 오로르는 바로 후회했다.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었다. 그녀의 미간 사이로 주름이 생겼다.

 "정확히는 아니예요. 다만… 당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예요.”

 또 이해할 수 없는 대답. 오로르는 아무말도 없이 그냥 그를 쳐다보았다. 이제 물어보는것도 귀찮았다.

 "제 눈은 영혼을 볼 수 있어요. 그뿐이예요.”

 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잠시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래요, 논리적이지는 않죠.”

 그가 그녀를 이해한다는듯이 말했다.

 "물론 제 눈에 유령처럼 하얗고 둥둥 떠다니는 그런 것들이 보인다는건 아니예요. 보이는 것은 비슷해요. 하지만 저는 눈에 보이는것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볼 수 있죠. 정확히 말하면 마음을 보는거죠. 마음을 보는 것과 읽는 것은 달라요. 보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죠.”

 그가 그녀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법했다.

 “흐음. 예를들자면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이쁘다 혹은 매력적이다 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당신의 행동들에서는 소극적이다, 착하다, 또는 이기적이지 않다 라고 느낄 수 있죠. 저도 당신의 외모나 행동들이 보여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 제 눈에는 당신의 슬픔이 보여요. 당신의 눈물이 보여요..."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기분나빠하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이곳에 온 진짜 이유가 뭐죠?"

 그가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속으로 작은 승리감을 느꼈다.

 "저를 봐왔다고 했잖아요.”

 오로르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봐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 믿기지는 않지만 사실이라면 왜 저를 오랫동안 봐왔고 왜 이곳까지 왔는지를 묻고 있는거예요.”

 그녀가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주저않고 입을 열었다.

 "정말 당신을 보고 싶어서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이대로였어요. 사람처럼 유년기 시절이나 사춘기 같은 자람의 과정을 겪어본적이 없어요. 앞으로 노년의 시절도 없을거고요. 구름 위에서 늘 이 모습 이대로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았죠. 수많은 왕조의 흥망, 그리고 세월의 흐름. 처음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을때 세계는 너무 아름다웠어요. 모든 것이 눈부셨죠.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자연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수억종의 동물들. 하지만 단연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었어요. 태초에 아담이 죄를 짓지만 않았더라도 인간은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일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이 죄의 본성에 타락했고 죄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추하게 변했어요. 가장 신과 비슷한 형상으로 창조되어진 사람이 가장 신을 외면하고 살아가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신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인간들을 바라보는 일이었어요. 그들이 기뻐할 때, 사랑할 때, 용서할 때, 어둠에 무릎꿇지 않고 빛을 소망할 때, 소수이기는 해도 정말로 신을 알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창조주의 뜻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 모든것들이 내게는 즐거움이었어요.”

 

 그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듯이 크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로르는 그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비가 오던 어느 날, 작은 섬나라 해변가에 위치한 어느 마을 병원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지요. 당신이 태어난 그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어요. 신이 당신을 얼마나 기뻐하며 창조하셨는지요. 당신 행복해지기를 얼마나 바라시는지를요. 그날부터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당신을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건 너무나 즐거웠지요. 당신이 처음 걷던날, 어머니가 처음 당신에게 피아노를 사준 날, 당신이 처음 피아노 친 날,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과 아버지가 공식적으로 당신 곁을 떠난 날까지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당신을 바라봤어요. 처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리고 아버지가 떠났을때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했었죠. 아닌가요? 모든 것을 탓하면서 어머니를 돌려달라고 울부짖었어요. 아닌가요? 어머니가 돌아가기전의 행복했던 시절을 바랐어요. 당신은 그를 비난하다가 그것마저 지쳐 결국 그를 떠났죠. 하지만 그는 당신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는 당신에게서 행복을 빼앗기 위해, 불행을 주기 위해 당신을 만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그가 부드럽게 말을 마쳤다. 오로르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당신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큰 계획이 있기에 그 어린시절의 사건을 통해 당신을 성장시키려 한다는 말이 낫겠네요.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에 한계가 있네요."

 그가 열정적으로 말했음에도, 자신이 신에게서 사랑받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그녀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다만 그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당신을 버린 후로 당신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힘들어하고 있어요. 당신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쳤어요. 가만히 내버려두면 조만간 슬픔이 당신을 잠식할거예요. 늪처럼 당신을 빨아들이는 슬픔 속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당신을 봤어요. 나중에는 오히려 당신 스스로 슬픔에 빠져드는 것을 봤어요.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당신의 순수함과 새로운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도 볼 수 있었죠. 그러나 당신은 지금 배신의 시련속에서 잘못된 믿음을 따르며 그 소망마저 포기하려해요. 나는 당신이 어릴적부터 계속 지켜봐왔어요. 당신이 기쁘면 나도 기뻤고 당신이 슬프면 나도 슬펐어요.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성이나 성에 대한 감정은 없어요. 다만 당신이 좋아요. 웃을때, 피아노를 칠 때, 당신의 영혼이 살아 숨쉬며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 당신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당신이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슬픔을 걷어내주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신에게 기도했어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평소와달리 그때만큼은 신도 내게 침묵을 지키시더군요. 나는 분명 당신을 향한 계획이 있기에 침묵을 지키시는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 계획이 나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로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과거뿐 아니라 제인과 사라만이 알고있는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제인과 사라는 그녀의 마음속 이야기를 어디가서 할 사람들이 절대 아니었다. 그녀가 그들을 배반하고 상처주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자신이 구름에서 왔다고 하는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가 말을 할수록 그녀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로르, 왜 내가 여기에 왔냐고 물었지요? 맞아요. 나는 정말 이곳에 오고 싶었어요.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구름을 떠날 수 없어요. 신은 저에게 구름을 몰라고 창조했어요. 창조된 목적과 다르게 살 수는 없었지요. 떠나려 시도해본 적도 없었구요. 오늘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며 당신이 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신이 비행기를 탈때면, 제게는 잠시지만, 아주 잠시지만, 당신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비행기가 지나갈때, 나는 당신을 보았죠. 당신은 여느때보다 더 힘들고 지쳐 보였어요. 당신의 육체도, 정신도, 그리고 당신의 영혼도… 그때 당신은 나를 보았지요. 내가 있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보았어요. 나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데도, 당신은 나를 보았어요. 당신의 놀란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죠. 당신은 나를 보았어요. 나는 놀랐고, 당황했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설레고 기뻤어요. 누군가가 나를 보았어요. 게다가 그게 당신이라니. 지난 수천년동안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직 나는 홀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내려다 볼 뿐이었지요. 나는 신이 당신을 향한 계획에 나를 사용하실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분께 기도했어요. 비록 응답은 없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당신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땅을 밟았어요. 당신을 돕기 위해. 나는 내려왔어요.”

 그가 그녀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을 마췄다. 그것은 따뜻한 햇살처럼 부드러웠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위화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의 이야기에서 진정성과 따뜻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말하는 신이란 분이 허락해줬기 때문이라는거죠? 그랬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네, 그렇게 믿어요.”

 오로르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대답에 지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닫혀있는 커튼 사이로 햇빛이 조금씩 들어왔다. 아직은 희미했으나 이미 해가 고개를 들었음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혹시 더 하고싶은 질문들이 있다면 나중에 해도 괜찮아요. 언제든 편할 때 해주세요. 그럼 우리는 이제 뭘 해야하죠?"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갑자기 몰려오던 피곤함이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방금 뭐라고?'

 그는 분명 '우리' 라고 했다. '우리' 란 동행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오로르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다시 오른 엄지 손가락이 긴장했다.

 "저..."

 그녀는 무슨 말을 이어나가야 할 지도 모른채 입을 벌렸다. 식은땀이 났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기..."

 그녀는 계속 입만 뻐끔거릴뿐 어떤 말도 뱉어내지 못했다. 생전 처음보는 남자는 새벽에 그녀를 찾아와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을 시작했다. 자신이 구름에 산다고 했고, 그녀가 태어났을때부터 그녀를 바라봐왔다고 했다. 그녀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신기한 분위기의 그에게 낯익음과 호기심을 느껴 그를 집에 들였고 시간 가는줄도 모른채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가 한 말들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 그에게 약간은 적응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수상한 남자와 우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현재 놓인 처지나 그녀의 주위상황은 여전히 끔찍하게끔 복잡하고 절박했다. 그녀는 그가 혹시라도 안나가려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오른손가락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저기... 우리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여기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죠? 당신이 이야기해준 것들은 재미있게 들었어요. 하지만 사실 저는 당신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신이 한 말들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겠네요. 그리고 당신과 조금 이야기했다고 내가 당신을 여기에 머물게 해줄 이유도, 당신과 우리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어요.”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다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가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새삼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그런가요? 그럼 어떻게 해야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는거죠?"

 그는 그녀와 우리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혀 상처받거나 기분나빠 보이지 않았다.

 “글... 글쎄요. 이건 방법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일단 생판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다녀야 한다는 것부터… 이건 말이 안되잖아요. 제 가족이나 남자친구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오늘 저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곤란할 것 같네요."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서든 그를 떨쳐내고 싶었지만 그가 너무 당연하게 나오자 그녀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요? 그럼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일단은 저와 함께 아침을 먹죠. 그리고 그곳에 같이 가요.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하면 좀 더 용기가 생긴다더군요.”

 그가 묘안이라는듯 자신있게 말했다.

 '용기가 필요한 것을 어떻게 알았지?'

 오로르는 그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괜시리 마음을 읽힌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제 말은 당신과 있는것을 다른사람들이 보는게 싫다구요.”

 그녀가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답답하게 사방이 꽉 막힌것 같은 현재의 상황만으로도 이미 견디기 힘들었다. 육체도 정신도 최악의 컨디션을 달리고 있었다. 그녀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재능은 1주 후 재평가 받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거의 나와 있었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은 5초만에 버저미터를 넣어서 경기를 뒤집는 일 뿐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녀는 이 모든 상황들을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는것은 고사하고 직면하는것 조차 버거웠다.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애써 참아냈지만 이미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걱정하지마세요. 아까 이야기했듯 저는 지금 당신 외의 사람들에게는 안 보여요. 우선은 아침을 먹죠.”

 

 10 시간 전(약 하루 전)

 

 사라는 제인의 집에 있었다. 제인이 부탁한 옷가지들을 옷장에서 꺼내 가방에 하나씩 차곡차곡 넣었다. 쌓인 피로에 온몸이 쑤셨고 하품이 연달아 나왔다.

 ‘그래도 얼마 후면 이것도 그리울거야.’

 휴가를 다녀온 인도계 여성의사 줄리아는 오늘 사라를 따로 불렀다. 사라는 그녀가 할 말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채하고 그녀 앞에 앉았다.

 “곧 임종의 준비해야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은 사라가 예상했던 그 어느 대답보다도 부정적이었다. 줄리아는 그녀가 딱히 어디가 안좋아서 그런게 아니라고 했다. 그저 나이가 많이 들어 몸이 쇄약해져 방어를 제대로 못하게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럴 때 약물치료를 권할 수도 있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가벼운 약도 치명적이 될 수 있기에 안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줄리아는 사라에게 왠만하면 지금 그들의 대화를 그녀에게 꺼내지 말라고 했다. 사라가 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인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줄리아와의 대화가 끝나고 제인의 병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봐, 사라. 나 얼마나 남았대?"

 마치 그녀가 사라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한듯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사라의 얼굴이 창백했다.

 "무슨 소리예요, 제인. 갑자기. 당연히 오래 살죠.”

 사라가 대충 넘어가려했다. 하지만 그녀의 호흡장애는 절대 그냥 넘어가는법이 없었다. 사라가 등을 돌려 숨을 크게 쉬었다.

 "솔직히 말해줘, 사라.”

 제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뒤돌았을때 제인은 사라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볼 수 있었다.

 “사라…”

 제인이 대답을 재촉했다. 하지만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인이 알겠다는듯이 눈을 감았다. 사라의 흐느낌이 지나갈 때까지, 둘은 침묵을 지켰다.

 "사라. 나 각오가 되어있어."

 사라의 흐느낌이 다소 가라앉자, 제인이 말했다.

 "..."

 사라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 죽음 말이야. 사실 별거 아니야. 나이든 사람이 죽어가는건 그리 슬픈일이 아니야.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이 나이까지 큰 병치레 한번 없이 잘 살다가니. 다만 아쉬운 건 이제야 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거지.”

 그녀가 사라를 보며 웃었다. 찡그리는 표정 같았지만, 분명히 제인은 웃고있었다. 또 눈물이 터져나왔다. 눈물이 그녀의 볼에 서려있는 세월의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 말야, 오히려 이게 잘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3년 전 쓰러졌을때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어. 처음에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싶었지. 하지만 침대에 누워 천천히 생각해봤어. 내 몸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있을거라고. 무언가를 위해서 내가 아직 살아있을 거라고. 그것이 설령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커다란 것일거라고, 그렇게 믿으니 많은 것들이 감사하더라고. 그것이 설령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쓰임이 있다는 데에 감사할 수 있더라고. 그렇게 생각해보니 감사한일들이 참 많더라고… 내 몸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사라와 이렇게 가까워 질수도 없었을테고 인생의 가치도 몰랐을테지.”

 사라가 고개를 들어 제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따뜻했다. 그곳에 평안이 있었다. 이 모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제인과는 달리, 사라는 솔직히 이 부정적인 현실에 불만을 느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곧 외톨이가 된다는 생각을 할때면 여김없이 오로르가 떠올랐다. 하지만 3년하고도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그녀는 아직 연락 한번 없었다. 그녀의 짚앞을 지나갈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늘 집 안을 들여다보지만 그곳에는 어둠뿐이었다.

 사라는 깊이 한 숨을 한 번 내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룩해진 백팩을 매고 그녀는 집을 나섰다. 문을 잠그는것도 잊어버린채, 그녀는 그리우면서도 동시에 가슴아픈 아련한 추억들과 함께 차에 앉았다. 그녀의 에머랄드색 비틀이 신음을 내며 잠에서 깨더니 비틀거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했을때 가장 먼저 사라를 맞이한 것은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 비였다. 병실에 도착하자 자고있는 제인이 보였다. 병실은 조용했다. 사라와 빗소리만이 깨어있었다. 사라는 제인을 깨우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최근에 몸이 악화된 그녀는 제 시간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래서 때로는 밤을 꼬박 새기도 했고 그렇지 않을때도 수시로 잠에서 깨곤 했다. 그래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로 마음이라도 먹은듯 그녀는 아무때나 피곤하면 닥치는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녀가 잘때면 그녀의 마른 얼굴가죽이 그녀의 숨결에 약간씩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없던 검버섯도 많이 보였다. 할머니 냄새도 강해졌다. 그러나 사라는 이런 것들이 싫지 않았다. 곧 그리워질 것을 알고있었으니까. 슬펐다. 그녀의 죽음이 다가오며 싹튼 두려움들은 이제 슬픔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슬픔의 맛은 특별했다. 그 특별한 슬픔은 잘 씼겨지지 않았다. 지우고 지워보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휴지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그것은 점점 퍼져나갔다. 오로르가 떠올랐다.

 '슬픔의 연인 오로르. 그녀는 늘 이런 슬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걸까?'

 그녀가 안쓰러웠다.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에게 다가왔고 그녀 곁에 잠시 머물다가 이내 슬픔으로 바뀌었다. 슬픔이 그녀 안에서 점점 커져갔다. 철저히 홀로 있는 삶이란 이런것이었다. 그녀는 하늘을 보았다. 사라는 오로르가 어렸을 때 클라라가 어디선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하늘을 쳐다보던모습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거침없이 내리는 비 속에서 구름은 소리없이 떼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제 병실 안에는 빗소리만이 깨어있었다.

 

 사라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귀로 부드러운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눈을 들어 제인을 쳐다봤다. 그녀는 아직도 자고있었다. 오늘은 그녀와 대화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면회 시간이 끝날때 까지는 기다리기로 했다. 일어나 조용히 병실을 걸어다녔다. 어느새 빗줄기가 약해져 있었다. 그녀는 창가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아름다운 여인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창 밖으로, 저 멀리 그레이트 야머스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때 그녀는 하늘 가득 떼지어다니던 구름속에서 작은 구름 조각 하나가 낙엽처럼 조용히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똑똑똑...'

 오로르는 오랜만에 제인의 집 앞에 서자 어렷풋이 풍겨오는 향수를 맡을 수 있었다. 갑자기 3년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노크를 하기 전 그녀는 잠시 문 앞에 선채로 어떤 말을 해야할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딱히 그럴듯한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담배 하나를 꺼냈다. 연기를 몇번 내뿜은 후 벨을 눌렀다. 벨소리가 제인의 집 안에서 울렸고 그녀의 심장이 고동을 치기 시작했다. 오로르가 침을 삼켰다. 곧 제인이 당장이라도 문을 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벨을 눌렀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오로르는 담배 한가치를 더 꺼내 불을 붙였다. 오로르가 어릴적 그녀는 가끔씩 혼자서 슬픔을 견뎌내기 힘들때마다 이곳에 왔었다. 그녀는 조용히 제인에게 다가가 그녀 곁에 앉아 있었다. 특별히 무슨말이나 위로가 필요해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제인도 잘 알았기에 그런 오로르를 가만히 놔두었다. 오로르는 몇 시간동안 그렇게 말 없이 있다가 해가 질 때면 다시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제인은 늘 오로르를 품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괜한 동정심으로 그녀를 상처주지 않으려 늘 조심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오로르는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시절 오로르는 제인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를 때면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생각했었다. 그녀는 그 이유를 몰랐다. 단지 발이 이끄는 곳으로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왜 이곳에 서서 제인을 기다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오로르는 다 타버린 담배를 땅에 던져버리고선 몸을 돌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의 시나리오 안에서 그녀는 어떠한 결과에 도달하든 간에 일단은 제인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로르는 고개를 돌려 제인의 창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생각하기로했다. 제인이 그 나이에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내에 나갔을 수도 있었다. 쇼핑을 갔을 수도 있다. 동네 주민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인이 집에 없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그녀는 방향을 바꿔 역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 옆에는 구름치기가 있었다.

 

 몇 시간 전, 해가 고개를 들고있을때,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라, 제가 구름위에서 당신을 볼 때 가장 해보고싶은 행동들 중 하나였어요.”

 구름치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의 입꼬리에 매력적인 미소가 걸려있었다.

 "뭐가 먹고 싶은데요? 지금 집에는 먹을게 없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일단 그에 대한 경계는 풀지 않는 대신, 그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를 신고하는 것은 아침먹고서라도 늦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침은 사서 먹죠.”

 구름치기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로르는 해변가에 위치한 숱한 레스토랑들 사이를 걸어다녔다. 파도가 거칠게 모래사장을 때려대었다. 이제 비는 멈췄지만 새벽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 때문에 거리에는 여기저기 물이 고여있었다. 구름도 아직 짙게 껴 있었다. 아침 시간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오직 몇 명만이 해변가를 바라보며 산책하고 있었다. 오로르는 구름치기가 신경쓰였다. 하지만 진짜 그가 말한대로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없다면 상관없을터였다. 만약 아니라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구조를 요청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그만이었다. 사람들의 눈치는 신경쓰였지만 차라리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걷는 편이 안전했다. 오로르는 웰링턴항구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스페니쉬 레스토랑, 프렌치 레스토랑, 이탈리안 레스토랑, 브리티쉬 레스토랑 등, 유럽 각국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거리. 이곳에서 일하던 종업원이나 주인들을 대부분 그녀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아주 가깝지는 않았지만 대게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몇몇은 그녀가 런던으로 떠나던 날에 역에 마중 나오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중 몇군데는 커다란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어느새 자신이 고향을 떠난지 약10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영국이라도 10년이면 소소한 변화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오로르는 굳게 잠긴 레스토랑들을 지나가며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피아니스트 오로르이던 그레이트야머스의 오로르이던 말이다. 물론 마을사람들을 먼저 만나 사라와 제인의 소식을 물어보는 편이 일을 더 쉽게 풀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상관없이 제인과 사라를 먼저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그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그 외에도 지금 그녀는 골치아픈 문제들이 가득했지만, 이것만은 꼭 이렇게 하고싶었다. 레스토랑이 밀집된 지역을 벗어날 때 즈음 그녀는 멀리서 연기를 내뿜는 스톨 하나를 발견했다. 스톨을 향해 걸어가자 소세지와 베이컨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배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간판에 쓰인 글자가 보일 정도로 다가가자 오로르는 그곳이 제임스네 스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임스는 오로르와 동창으로 비록 많이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의 아버지 프랑크도 클라라의 친구로 오로르에게는 늘 친절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제 스크램블 애그의 냄새도 그녀의 코 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로르는 움직일 수 없었다. 오로르는 모자나 선글라스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다보면 문 열은 음식점이 하나 쯤은 있겠지 싶으면서도 그 가게 주인 역시 그녀가 아는 사람이 아니란 보장은 없었다. 그녀는 담배 한개피가 다 태울 때까지 그자리에 서 있었다. 배는 고팠고 몸은 피곤했다. 그녀는 결국 한 명 쯤은 상관 없을거라며 스스로와 타협한채 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발을 떼어 스톨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낯설음은 짙어졌다. 가게 간판부터 가게 주인까지 낯설음의 연속이었다. 제임스는 영국인임에도 완전한 백색의 피부는 아니었다. 양 볼에는 주근깨가있었으며 금발의 머리칼에 키가 컸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서는 그런 특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창백하도록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키는 어중간했다. 유일한 공통점은 팬티가 다 보일정도로 바지를 내려입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가게 옆에서 재료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흠, 흠. 저기요.”

 그녀의 짧은 헛기침에 그가 하던일을 멈추고 다가왔다.

 "뭐 줄까요, 친구?"

 그는 말할때 몸을 살짝 건들거리며 커크니 악센트를 썼다. 그는 노르위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제임스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뭐 시킬거예요? 지금 바빠요.”

 그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아, 저기. 여기 제임스있나요?"

 그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기 전 주인 말하는거예요? 그는 여기를 팔고 어디 다른데로 이사갔어요. 꽤 오래전 일이예요.”

 그가 바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그랬군요."

 오로르가 짧게 대답했다.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단지 안타까움이 잔잔하게 느껴졌다.

 "이봐요, 보아하니 이 동네에 오랬동안 없었던것 같아서 하는 이야긴데, 경기가 안좋아서 요 몇년새 많은 마을 주민들이 일하던 곳을 팔고 다른곳으로 이사갔어요.”

 그는 말을 마치고 바로 하던일로 돌아갔다.

 "안타깝게 됐네요, 친구.”

 그는 식료품 박스들을 스톨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오로르는 그제서야 그녀가 소소한 변화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거대한 변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스토랑이 즐비했던 거리가 조용해진 이유를, 그토록 동적이었던 분위기가 정적으로 변해버린 이유를. 그녀가 본 자물쇠들은 레스토랑을 지키기위해 잠긴 것이 아니라 열지 못하도록 잠긴 것이었다. 거리가 그토록 생기없던 이유는 가게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가 아니고 폐점했기 때문이었다. 곳곳에 걸린 자물쇠가 마치 마을 전체를 잠구어버린것 같았다. 도시의 레스토랑을 잠그고 도시의 생기를 잠그고 도시의 행복을 잠근 것처럼 같았다. 사라의 스톨이 떠올랐다. 순간 바닷바람이 웰링턴 항구쪽으로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베이컨과 소시지의 냄새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마음은 초조했지만 일단은 더 급한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구름치기는 아무말 없이 이 모든상황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2개 주세요, 포장이요.”

 이제 베이컨을 굽고 있던 그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계산대로 다가왔다.

 "8파운드 50펜스요.”

 오로르가 돈을낼때 다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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