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곰이, 어떻게 하죠? “
스태프 회의 시간, 처음 온 날 말한 것 처럼, 병원에 거의 오지 않는 원장선생님만 뺀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다. 부원장, 최 선생님의 말에 모두들 한숨을 내쉬었다.
“ 맡긴지 10일이 넘었는데 안 온다는 건, 유기한 거겠죠? “
왜 유기를 한 것일까. 곰곰이는 건강해 지고 나서는 기분이 좋은 듯 신나서 병원 안을 돌아다녔다. 디스크는 발병했을 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옥 선생이 말했지만, 곰곰이는 그런 것 따윈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 날아 다니듯 뛰어다녔다.
병원에서 키우는 똘이나, 환자로 오는 강아지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사람도 잘 따라서, 특히 곰곰이를 좋아하는 설희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설희가 간식을 손에 얹어서 줄 때는 동글동글 말린 꼬리가 기분 좋은 듯 살랑 살랑 움직였다.
“ 너무 귀여운데, 왜 도대체 버렸을 까요? “
설희의 말에 최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 세상에는 별의 별 이유로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1살쯤 된 푸들이 생각보다 너무 크게 자랐다고 버리는 사람도 봤고, 산책을 한 번도 안 시켜줘서 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꾸만 화장실을 못 찾아 실례를 하는데, 그게 싫다고 버리는 사람도 봤고… 남자친구가 사준 강아지인데, 헤어진 뒤에 남자친구 생각 나서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
“ 곰곰이는 그 중에서도 전형적인 케이스죠. 병에 걸려 버려지는. “
“ 하지만, 곰곰이는 디스크 초기라서 거의 다 나았잖아요. 죽는 병도 아닌데. “
“ 앞으로 계속 관리해야 하는 게 싫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병 아니더라도 그 핑계로 병원 와서 버리려던 거일 수도 있어요. 어쨌던 간에, 어떻게 하지? “
최 선생님의 말에 옥 선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야죠. “
그 말에 옆에 앉아있던 채린이 놀라 옥 선생에게 되물었다.
“ 네? 유기견 보호소요? “
유기견 보호소? 유기견들을 보호하는 곳인가?
옥 선생이 말을 이었다.
“ 보호소 보내서 공지도 내보고… “
최 선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병원에서 새 주인 한번 찾아보고 보내지? “
“ 근데, 곰곰이는 이제 8살이잖아요. 데려가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
매니저와 최 선생의 말에 채린이 말했다.
“ 하지만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면 10일 뒤에 안락사 되잖아요. “
안락사?
그 말에 설희의 눈이 번쩍 떠졌다.
“ 안락사요? “
“ 네,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면 원래 주인을 못 찾거나 새 주인을 못 찾으면 안락사를 당해요. “
심장이 벌렁거렸다. 안락사? 곰곰이가 안락사를 당한다고? 아직 너무 건강한데. 8살이면 아직 살 날이 한참 남았는데, 안락사를 당한다고?
아침에 출근해서 밥을 주자, 반가워 하며 기쁜 듯 그녀의 손을 할짝할짝 핥던 곰곰이를 떠올렸다. 곰곰이가 죽는다?
그건 안될 일이었다. 급한 마음에 차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입에서 말이 먼저 나왔다.
“ 제, 제가 입양 할게요! “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설희를 쳐다보았다.
어, 어쩌지?
사실 입양할 처지가 아닌 설희였다. 안 그래도 짠 동물병원 월급인데, 지금은 수습기간이라 20만원이나 덜 받는다.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었고, 엄마는 천식이라 집에서 동물을 키울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만. 죽는다잖아. 곰곰이가… 죽는 다잖아.
“ 제가 입양하면 되잖아요. “
활짝 웃어 보였다. 말을 하고 보니 그게 맞는 일 같았다. 뒷 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나 밝아진 설희의 표정과 달리 옥 선생의 표정은 험악했다. 지금까지 본 옥 선생의 표정 중 가장 무서웠다.
“ 유설희씨가 입양을 한다고요? “
뾰족한 목소리. 화난 게 틀림없었다.
“ 네에. “
설희가 조심스럽게 답하자, 옥 선생이 한숨을 깊이 쉬었다.
“ 개 길러본 적도 없다면서요. 왜 그렇게 쉽게 결정합니까? “
“ 하지만, 안락사를 시킨다잖아요. “
“ 개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알아요? 알고 말한 겁니까? “
모른다. 모르지만, 그렇지만…
“ 그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곰곰이는 이제 8살이예요. 앞으로 관리만 잘하면 10년도 넘게 살겁니다. 앞으로 10년 넘게 관리할 자신 있어요? “
10년. 그렇게 생각하니 아득했다. 10년전 자신은 고등학생이었다. 10년 뒤 자신이 어떤 모습일 지 설희는 상상이 안 갔다.
설희가 약간 움찔하자, 옥 선생이 말을 이었다.
“불쌍해서 바로 입양하면 되겠다.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일년에 버려지는 개들이 몇 만마리예요. 다 불쌍하다고 입양 할 수 있겠어요? 병원에서도, 다른 사람들도 구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그 많은 개들을 다 우리가 구할 순 없는 겁니다. “
“ 하지만 곰곰이는 여기 있잖아요. 다른 개들은 제가 구할 수 없어도, 곰곰이는 제가 구할 수 있는 거잖아요. “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곰곰이가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 늘 조근조근하게 속삭이는 설희의 말투에도 힘이 들어갔다.
“ 설희씨 집에서 개 기를 수 있어요? “
엄마 때문에 집에서는 기를 수 없다. 그러나 옥 선생의 말에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지난 회사 퇴직금 받은 거랑, 적금 이것저것 하면 1500만원정도 있었다. 이 걸로 월셋방을 구하면 된다.
에잇, 잘된 걸 지도 몰라. 애초에 독립하고 싶었는데 꾸물꾸물 결정을 미루기만 했는데, 이제 취직했으니 월세도 낼 수 있다.
“ 못, 못 기르지만 개 기를 수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되요. “
그러나 옥 선생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 10년동안 잘 키울 수 있어요? 설희씨 나이가 몇 살이죠? “
왜 갑자기 나이는 묻지?
“ 27살이요. “
“ 남자친구가 결혼 할 때 개를 싫어해서 버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
그 말에 설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뭔 말이야.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나와.
“ 너무 비약 아니신가요? “
“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강아지 예쁘다고 데려다 기르다가 유학가면서, 결혼하면서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
당황하여 매니저를 바라보니, 매니저가 어색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원장인 최 선생 역시, 한 손으로 옥 선생의 팔을 잡고는 있었지만 완전히 말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다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넘기려고 입양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구나.
갑자기 결정한 것이긴 했지만, 결코 그냥 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달 간 병원에서 일하면서 동물들에게 정도 들었고, 절대 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남, 남자친구 없어요. “
27살, 슬슬 결혼 생각하며 남자를 만나는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설희는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자 옥 선생이 고개를 흔들었다.
“ 언젠가 남자친구 생겨서 결혼하게 되면요? 남자친구가 개는 절대로 싫다고 하거나, 시댁에서 절대 못 키우게 하면? “
으윽. 옥 선생. 짜증나게.
평소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설희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옥 선생에게 소리쳤다.
“ 아, 결혼 안 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 깟 결혼, 안 하면 되지 왜 결혼 결혼 난리예요? "
늘 목소리가 작은 설희가 크게 소리를 내자, 스태프들이 다들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 결혼 안 했으면 개도 못 길러요? 애초에, 옥 선생님이 왜 난리예요? 곰곰이가 옥 선생님네 개예요? 내가 곰곰이 안 키우면 선생님이 키워줄 꺼예요? 왜 자꾸만 태클 걸고 그래요? 죽는 게 낫겠어요, 제가 데려가서 저랑 오순도순 사는 게 좋겠어요? “
그녀에게 차가운 질문을 쏟아내던 옥 선생 조차 놀라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 제가 기른다니까요. 곰곰이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 때까지 제가 책임 질게요. “
단호한 설희의 말에 옥 선생이 말을 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듯 입만 벙끗 거렸다.
“ 나… 나는. “
옥 선생이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최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었다.
“ 이쯤 해요, 옥 선생님. 병원에 버려지는 개를 다 구할 순 없지만, 설희씨 마음이 예쁘잖아. 설희씨가 그렇게 말로만 뭐든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동안 열심히 한 것 알잖아요. 옥 선생님도 그랬잖아. 설희씨가 생각보다 열심히 해서 기특하다고. “
최 선생님의 말에 설희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저 인간이 내 칭찬을 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옥 선생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진, 진짜 내 칭찬 한거 아니야?
설희의 입에서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이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 그렇지만, 유설희씨는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
옥 선생의 말에 설희가 톡 쏘았다.
“ 그럼 옥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면 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