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
 1  2  3  4  >>
 
자유연재 > 로맨스
동물의사 옥선생
작가 : 연지주자
작품등록일 : 2017.7.28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된 27살 설희. 그 곳에는 염라대왕 보다 더 무서운 수의사 옥 선생이 있었다. 특이하고 재수없는 이 남자, 근데 자꾸만 이 남자한테 눈이 간다.

 
5화 : 상종 못할 인간
작성일 : 17-07-30 15:37     조회 : 328     추천 : 1     분량 : 805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새벽 6시. 온 집을 울리는 핸드폰 알람에 설희는 겨우 일어났다.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았지만, 일어나야 했다.

  늦으면 옥 선생이 가만 두지 않을 꺼야.

  흔들리는 몸을 겨우 제대로 세워 화장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세 달 동안 방 구석에서 누워만 있었던 설희에게 갑자기 시작된 동물병원 생활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상당히 힘들었다.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며 옥 선생이 만든 규칙을 외웠다. 테크니션들이 정리해놓은 노트도 꼼꼼히 읽었다. 아침마다 읽어야 잊어 버리지 않지. 새벽 7시에 방 밖으로 나오니, 아직 가족들은 다 자고 있었다.

  “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새벽 7시부터 이러고 있지. “

  꿍얼 거리며 밥솥의 밥을 꺼내 대충 아침을 먹었다. 설희는 어렸을 때부터 아침 밥을 먹지 않았다. 유난히 아침밥을 먹으면 더부룩 하니 얹히는 느낌이 들어서 엄마가 억지로 입에 쑤셔 넣는 데도 뱉어내고 학교로 도망갈 정도였다.

  “ 너 그러면 키 안 큰다! “

  아침마다 계속된 잔소리에도 절대 안 먹었다. ( 그리고 엄마의 예언대로 설희는 초등학생 때 이후 키가 크지 않았다. ) 그런데 동물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운동량이 얼마나 많은지, 아침을 안 먹고 일하다가는 11시쯤부터 배가 고파서 버틸 수가 없었다.

  일 시작하고 며칠 동안은 그래도 아침을 안 먹었다. 버릇이 들어 아침 밥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일하는 도중, 눈 앞이 하얗게 변해 비틀거리며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팔을 벽에 대고 숨을 몰아 쉬었다.

 배고파… 밥 먹고 나올 걸.

 배 속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어지러워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였다간 바닥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동물병원의 일상은 의외로 육체적인 일이 많았다. 11시도 안됐는데, 속이 헛헛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 왜 그럽니까? “

  뒤에서 갑자기 남자 목소리가 들려 얼른 벽에서 손을 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뒤를 돌았다.

 정말 발 소리가 안 나는구나.

 인기척이 없었는데, 어느새 옥 선생의 그녀의 바로 뒤로 다가와 설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 아, 아무 것도 아닌데요. “

  설희의 대답에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옥 선생이 눈썹을 실룩였다.

  “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데. “

  그가 얼굴을 훅 자신에게로 들이댔다.

  너, 너무 가까워.

  그의 얼굴의 얼굴이 한 뼘도 안 되는 거리 안에 있었다. 설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이코인 옥 선생이긴 하지만, 얼굴 만큼은 정말 흠 잡을 곳이 없었다. 긴 속눈썹에, 옅은 갈색 눈동자, 오똑한 콧날… 설희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 밥 안 먹었어요? “

  설희가 떨리든 말든, 옥 선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차가운 말투로 질문을 했다. 먹었다고 말을 하려다가 설희는 곧 포기하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거짓말 잡아내는 것도 고수였다.

  “ 네. 안 먹었는데요. “

  “ 하, 참. “

  옥 선생이 저렇게 한숨을 쉴 때는 늘 일장 연설이 나온다. 설희는 쏟아질 그의 잔소리를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살짝 눈을 뜨자, 그가 그녀에게 초코파이 하나를 내밀었다.

  “ 먹어요. “

  설희가 초코파이를 받아 들자, 그가 입을 열었다.

  “ 얼른 먹어요. “

  “ 지금요? “

  “ 당 떨어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먹어야지. “

  웬일이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고.

  “ 감사합니다. “

  설희가 포장을 뜯어 초코파이를 한입 물었다. 단 맛이 온 몸으로 퍼져나가며 흐릿해졌던 눈 앞도 서서히 선명해졌다. 그녀가 초코파이를 먹기 시작하자, 옥 선생이 그녀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열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 아니, 왜 아침밥을 안 먹고 다녀요? 한국 사람들은 밥심으로 사는 거 아닙니까? 일하다가 쓰러지기 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강아지를 안고 있다가 어지러워서 바닥으로 엎어지면, 강아지가 다칠 것 아닙니까? 아침밥을 안 먹는 것은… “

 바로 며칠 전 있었던 일이었다. 그 날 일을 떠올리며 설희가 한숨을 쉬었다.

  또 밥 안 먹고 갔다가 그 일장연설을 듣느니, 그냥 밥을 먹고 말지.

  밥을 퍽퍽 퍼서 입으로 꾸역꾸역 집어 넣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병원으로 출근하니, 출근시간 30분 전인데도 이미 몇몇 사람들은 출근해있었다. 환자 대기실로 들어가니, 매니저가 의자에 앉아 오독오독 뭘 먹고 있었다.

   “ 설희씨, 좋은 아침. “

   깐깐한 옥 선생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설희에게 잘 대해줬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자가 많은 직장은 왠지 파벌도 심하고, 기싸움도 심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것이 편견이라는 것을 병원 와서 깨달았다. 사람들이 하나 같이 잘해줘서 그 재미로 옥 선생의 일장연설을 참아낼 수 있었다.

   “ 뭐 드세요? 아침식사? 과자 드세요? “

  설희가 매니저에게 묻자, 매니저가 손에 들고 있는 봉지를 보여주었다.

   ‘ 전 연령용 램 프리미엄 유기농 사료. ‘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 봉투는 누가 봐도 사료였다.

   “ 사료를 드시는 거에요? “

   매니저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먹다 보면 맛있어. 먹어볼래요? “

   그녀가 내민 봉투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설희는 손을 저었다.

   “ 바, 밥을 많이 먹고 와서. “

   좋은 사람이지만 이상한 사람이야.

   그러자 설희의 경악한 표정을 눈치 챘는지, 매니저가 웃었다.

   “ 사람도 사료 먹어도 되요. 애초에 사람이 못 먹는 재료를 쓰는 사료는 팔면 안되고. 가끔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 이건 무슨 맛이에요? ‘ ‘ 강아지들이 좋아할까요?’ 그럴 때 말해주면 좋거든.

 ‘ 이건 심심한 맛이고 이건 좀 감칠맛이 있는 편이라 좋아해요. ‘ 그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놀라면서 ‘ 어쩜 그렇게 잘 알아요? ‘라고 물어요. 그러면 ‘ 전 제가 다 먹어보고 판매해요. ‘ 그러면 거의 백발 백중 보호자들이 사료를 병원에서 사가요. “

  그렇구나. 그런 깊은 뜻 까지는 몰랐다. 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열심히 하고 싶어.

  한달 가까이 되어가는 요즈음, 그런 생각을 했다. 일하는 시간도 굉장히 길고, 일도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재밌는 점이 많았다. 설희는 입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자, 병원에서 키우는 개인 똘이가 뛰쳐나오며 그녀를 반겼다.

  “ 똘이야, 잘 잤어? “

  골든 리트리버인 똘이는 그녀를 보고 격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성격이 좋은 똘이는 처음 그녀가 병원에서 일한 날부터 그녀를 잘 따랐다.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부드러운 갈색 털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스르르 빠져나갔다.

  설희가 일하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자신이 동물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 근데 왜 동물병원은 다들 동물이 좋아서 일하겠다는 식으로 말하죠? 앞으로 유설희씨도 프로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 줬으면 좋겠어요. 돈을 받는 만큼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

  그렇게 옥 선생은 첫 날 말했지만, 점점 동물들에게 정이 들어서 동물병원의 삶이 즐거워졌다.

  프로 의식을 가지고 일 하는 건 좋지만, 일 하는 곳에서 즐거움 하나 정도 있어도 되잖아.

  “ 칫, 자기도 강아지 좋아하면서. “

  첫날 옥 선생이 한 말을 떠올리면서 설희는 꿍얼거렸다.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면, 옥 선생이 몰래 강아지들에게 애기말투로 이야기하는 걸 다 들었다.

  “ 똘아, 똘아, 산책가까요? 가까요? 산책 가고시포요? “

  며칠 전, 퇴근 전 입원실로 들어가는 데 똘이에게 혀 짧은 소리로 옥 선생이 말하고 있었다. 귀여운 척 하면서 애기 말투를 쓰는 옥 선생의 목소리에 설희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못 볼 걸 본 느낌.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기도 그렇게 동물을 좋아하면서 왜 나만 동물 좋아한다고 뭐라 그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더라니 입원실에 또 다른 테크니션, 진영이 들어왔다.

  “ 안녕하세요! “

  “ 설희씨, 빨리 왔네. “

  진영은 경력이 하나도 없는 설희와 달리 애견 관리 학과를 나와 10년이나 병원에서 일한 베테랑이었다. 늘 깐깐한 옥 선생 조차, 진영에게 대해서는 “ 뭐 하나 지적할 점이 없고, 병에 대해서도 웬만한 수의사보다 잘 안다. “라고 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꼼꼼하지만, 성격도 친절해서 늘 헤매는 설희를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줬다.

  진영과 잡담을 하면서 입원견들의 배변 패드를 갈고, 사료를 주었다. 진영은 입원한 개들의 입을 벌려, 점막을 꾹 눌렀다 떼었다.

  “ 뭐 하시는 거예요? “

  그녀의 행동이 궁금해 어깨 너머로 구경하자, 진영이 씩 웃었다.

  “ crt 측정하는 거예요. “

  Crt? 뭐였지? 노트에 써져 있던 것도 같은데.

  설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지만, 진영의 대답이 더 빨랐다.

 “ 모세혈관 재충전 시간이라고 해서, 탈수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알아보는 거예요. “

  그리고 진영이 똘이의 머리를 잡고 그의 입을 벌려서 안의 점막을 보여줬다.

  “ 이렇게 예쁜 핑크색이죠? 그런데 이 점막을 이렇게 꾸욱 누르면. “

  진영이 점막을 누르자 핑크색이었던 점막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곧 핑크색으로 돌아왔다.

  “ 누르면 하얀색으로 변했다가, 핑크색으로 돌아오는데, 정상인 개들은 이렇게 똘이 처럼 1,2초 안에 돌아와요. 근데 문제가 있으면 그냥 쭉 하얀색이다가, 4,5초만에야 핑크색으로 돌아오죠. 한 번 해볼래요? “

  진영의 말에 그녀를 따라 했다. 하얗게 변한 똘이의 잇몸이 설희가 손을 떼자, 곧 핑크색으로 돌아왔다.

  “ 와, 정말 그렇네요. “

  “ 그렇죠? 이게 기초 신체검사 할 때 유용하니까 외워두시면 좋아요. “

  “ 아직 설희씨는 신체검사 할 정도는 안됐는데. 아직 보정도 제대로 못하는데, 뭘.“

  뒤에서 난 남자의 목소리에 설희가 놀라 돌아보았다.

  와, 옥 선생… 저 인간은 고양이인가, 왜 걸어 다니는 소리가 안 나냐. 문 여는 소리도 안 나고.

  언제 출근 했는지 그가 벌써 입원실 안으로 이미 들어와, 진영과 설희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있었다.

  다행이다… 옥 선생 욕 안 해서.

  “ 그래도 알아두면 좋잖아요. “

  진영의 말에 옥 선생이 눈을 얇게 뜨고 설희를 바라보았다. 또 뭔 소리를 하려나 싶어 두근거리며 그의 반응을 보는데, 평소 같았으면 핀잔을 줬을 텐데 진영의 말이라 그런지 별 말 안하고 오히려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다.

  “ 설희씨는 좋겠네요. 진영씨 같은 선배가 있어서. 사실 이 업계에 저렇게 경력 길고 능력 있는 테크니션은 별로 없으니까. “

  웬일이야. 남의 칭찬을 다하고.

  병원에서는 폭군과도 같은 그가 칭찬을 하는 것이 신기해 설희가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싱긋 웃으며 설희에게 말했다.

  “ 제발, 제발 좀 잘 배워요. 진영씨 100분의 1이라도 됐음 좋겠다.“

  그러나 곧 설희를 비꼬는 말투에 그녀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그럼 그렇지, 아오, 짜증나.

  아침부터 옥 선생의 빈정거림을 듣고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아 투덜거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되려는 일이 없는 건지, 점심 도시락을 사러 가는 당번도 설희였다. 가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같이 가는 사람이 옥 선생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 갈까요? “

  옥 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서 도시락을 주문해 먹는 업체는 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곳으로 둘이 천천히 걸어갔다.

  옥 선생은 별 말이 없었다. 뜨거운 햇살에 설희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니, 그녀를 잠시 쳐다보며”더워요? “ 하고 물은 것이 대화의 전부였다. 평소 맨날 혼만 나던 설희는 그에게 뭐라 말을 해야할 지 몰라 어색하게 도시락 업체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즈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다른 여자랑 걸어가고 있는 남자. 50m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그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한달 전 헤어진 찬정이었다.

 숨을 들이쉬었다. 동물병원에 들어오고 나서는 아주 평온한 일상이었다. 일이 힘든 만큼, 실연 바로 후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에 몰두 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일을 쫓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찬정의 생각을 거의 안 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곧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으니까.

  아픔의 시간을 겪질 않아서였을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를 보니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침을 삼키려 해도, 긴장한 탓에 입 안이 바싹 말라있었다. 갑자기 걸어가다가 멈춰서서 유령이라도 본 듯 앞을 멍하니 바라보는 설희를 옥 선생이 이상한 듯 바라보았다.

  “ 유설희씨. “

  그러나 설희는 한참 멀리 떨어진 찬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찬정의 옆에는 예쁜 여자가 있었다. 자신보다 조금 어린듯한 그 여자는, 찬정의 팔에 매달려서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왜 찬정오빠가 여기 있지. 그의 회사는 여기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놀러 오기라도 한 걸까? 저 여자는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다정하게 찬정의 팔을 두들기는 모습을 보고 침을 삼켰다.

  헤어진 지 28일. 다른 여자가 생겼구나. 아니야, 어쩌면 그 전부터 사귀고 있었는 지도. 헤어질 때 너무나도 담담하고 차가웠던 찬정이 떠올랐다.

  그들이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찬정은 아직 여자에게 정신이 쏠려 설희를 발견 하지 못했지만, 조금만 더 앞으로 오면 싫든 좋든 만나게 될 것이다.

  싫어.

  지금 설희는 일하다 나와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만나는 것은 싫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옆에는 공원, 한쪽은 도로, 어떻게 피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유설희씨. “

  나지막한 소리로 정신이 빠져 주변을 둘러보는 설희를 옥 선생이 불렀다. 설희는 옥 선생을 바라보았다. 눈 앞이 뿌얘진 상태였다. 눈물이 지금이라도 흘러 내릴 것 같았다.

  “ 서…선생님. 저, 저, 저 좀 도와주세요. “

  “ 무슨 일이에요? “

  “ 저 앞에, 사람이 오는데 저 좀 숨겨주세요. 저 그 사람 보면… “

  설희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했다. 눈치 빠른 옥 선생. 늘 그런 그가 원망 스러웠는 데. 옥 선생이 금세 알아듣고 되물었다.

  “ 앞에서 오는 커플이요? “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더 가까워 지고 있었다. 몸을 돌려 달아날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더 눈치를 챌 것 같았다.

  “ 알겠어요. “

  병원에서의 날카로운 말투와 달리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설희를 끌어당겼다. 무슨 일이 일어 난 지 몰라 그의 손에 이끌려 몸을 움직이니, 어느새 설희는 옥 선생의 품에 안겨있었다.

  큰 키의 그의 품 속에 폭 감싸져 숨을 몰아 쉬었다. 그의 품에서는 알싸한 소독제 냄새가 났다. 주먹을 꼭 쥐고, 찬정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을 지나쳐 가기를 빌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옥 선생의 한 손이 설희의 머리에, 한 손이 그녀의 어깨에 올라와있었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화가 났다. 왜 여기서 하필이면 이렇게 초라할 때 만나는 지. 그리고 저 여자는 누구인지…

 내가 뭐 노력 안 해서 싫다더니 다른 여자가 생겼구나? 그렇게 크게 따지고 싶었지만, 당황하고 놀라 그럴 여력도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이가 어색한 옥 선생의 품에 이렇게 안겨 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처음에는 이 고비만 넘기자고 생각해서 안겨있었는데, 점점 더 숨이 막혀왔다. 찬정이 가고 난 이후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말을 빨리 알아들어줘서 금방 고비를 넘기게 해 준 것도, 그리고 이렇게 서슴지 않게 도와 준 것도 고마웠다. 하지만 너무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 데도, 옥 선생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설희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 그 사람들 아직 안 갔어요? “

  그러자 옥 선생이 그녀의 머리와 어깨에 있던 손을 떼고 그녀를 살짝 밀어냈다. 따뜻한 온기가 떨어져 나가자, 설희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 갔어요? “

  옥 선생의 입술에는 약간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심상치 않은 미소에 설희가 눈을 찌푸렸다.

  “ 뭐예요? “

  “ 사실 아까아까 갔는데. “

  “ 근데 왜 계속 안고 있었어요? “

  “ 설희씨가 얼마나 그러고 있는 지 궁금해서. “

  욕지기가 튀어 나왔다. 주먹을 쥐고 옥 선생의 어깨를 툭 쳤다.

  “ 장난 쳐요? “

  나는 지금 긴장되서 죽을 뻔 했는데. 지금 장난도 아니고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 옥 선생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설희는 그를 놓아두고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 같이 갑시다, 거 참. “

  뒤에서 옥 선생이 따라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를 내버려두고 앞만 걸었다. 웬일인지 도와준다 했다. 정말 상종 못할 인간이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전체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2017 / 9 / 5 554 0 -
27 27화 : 같이하는 아침식사 2017 / 9 / 5 369 0 4077   
26 26화 : 자나깨나 술조심 2017 / 9 / 5 312 0 4356   
25 25화 : 살려줘 2017 / 9 / 5 353 0 4378   
24 24화 : 콩, 콩, 콩 2017 / 9 / 5 308 0 4390   
23 23화 : 작은 오해 2017 / 9 / 5 301 0 3633   
22 22화 : 데이트? 2017 / 8 / 29 342 1 4709   
21 21화 : 이사가는 날 2017 / 8 / 29 332 0 5434   
20 20화 : 만나지 마요. (1) 2017 / 7 / 30 366 0 3934   
19 19화 : 전 남친. 2017 / 7 / 30 332 0 5888   
18 18화 : 콘서트 2017 / 7 / 30 333 0 4405   
17 17화 : 남자친구 2017 / 7 / 30 337 0 6874   
16 16화 : 술주정 입니까. 2017 / 7 / 30 341 0 4574   
15 15화 : 전봇대 밑에서 2017 / 7 / 30 312 0 4591   
14 14화 : 비가 오는 날 2017 / 7 / 30 310 0 6000   
13 13화 : 새 집 구하기 2017 / 7 / 30 304 0 5427   
12 12화 : 그의 취향 (1) 2017 / 7 / 30 337 1 4729   
11 11화 : 정말 중요한 물건일지도. 2017 / 7 / 30 318 1 3772   
10 10화 : 들켰다. 2017 / 7 / 30 311 1 4659   
9 9회 : 귀여워. 2017 / 7 / 30 309 1 5906   
8 8화 : 두 얼굴의 옥 선생 2017 / 7 / 30 296 1 7099   
7 7화 : 버려지다. (1) 2017 / 7 / 30 372 1 4178   
6 6화 : 퍼그 곰곰이 2017 / 7 / 30 326 1 4138   
5 5화 : 상종 못할 인간 2017 / 7 / 30 329 1 8053   
4 4화 : 나, 괜찮을까? 2017 / 7 / 30 339 2 4292   
3 3화 : 돌마래 동물병원 2017 / 7 / 30 326 3 6954   
2 2화 : 연애의 끝 (1) 2017 / 7 / 30 378 1 4203   
1 1화 : 동물의사 옥 선생 (8) 2017 / 7 / 30 607 3 438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