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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물의사 옥선생
작가 : 연지주자
작품등록일 : 2017.7.28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된 27살 설희. 그 곳에는 염라대왕 보다 더 무서운 수의사 옥 선생이 있었다. 특이하고 재수없는 이 남자, 근데 자꾸만 이 남자한테 눈이 간다.

 
2화 : 연애의 끝
작성일 : 17-07-30 13:25     조회 : 382     추천 : 1     분량 : 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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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희야, 우리 헤어지자. "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내가 쌓아올린 모래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설희는 지금 앞에서 자신에게 헤어짐을 고하는 찬정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그 모래성은, 아무리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해도 속절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모래가 빠져나갔다.

  5년이나 사귄 남자친구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교시절 만나 당연히 이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설희만의 착각이었다. 지난 5년간의 시간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 나는 30살이 되면 결혼을 하고 싶어. "

  " 그래, 내년이잖아. "

 

  그의 나이는 설희보다 2살 많은 29살. 결혼을 이야기하기에는 남자치고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30살이 되기 전 결혼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 이야기하던 그였다.

 

  " 그때 우리 결혼하면 되잖아. "

 

  덜덜 떨리는 설희의 목소리에도 찬정은 차가웠다.

 

  " 응, 근데 넌 내년에 결혼 할 준비가 안됐잖아. "

 

  찬정이 그녀를 턱으로 가르키며 한 소리에 설희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라면 그녀가 내년에 결혼 할 길은 요원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평탄하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열심히 산 인생이었다. 고등학생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갔다. 대학 때도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졸업 즈음 찾아온 취업난에 몸부림 쳤지만, 공모전과 어학실력을 쌓아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에 들어갔다. 그녀가 취업하자, 누구보다 좋아했던 것은 남자친구인 찬정이었다. 곧 결혼 할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그런데... 취업한 지 1년 2개월이 지나자 회사가 망했다. 30년간 잘 유지되던 나름 탄탄한 중견 기업이었는데, 설희의 운이 거기까지인지 힘없이 스러져 버렸다. 회사가 망한데는 설희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10명 이서 해야 할 일을 5명에게 시키는 회사였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시키면서도 야근 수당도 없었다. 연차를 쓰는 데도 눈치가 보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연차를 쓰면, 10명이서 해야 할 일을 4명이서 해야 했으니까. 그런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도 묵묵히 버티며 일을 했다.

 

   “ 우리 설희가, 중성기획에 들어갔잖아. “

  “ 중성기획? 그 회사 꽤 유명하지 않아? 잘됐다! “

 

  취업난에 취직한 그녀를 엄마는 자랑스럽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 내고 다녔지만, 어느 순간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3개월쯤 월급이 밀리고 회사가 허망하게 망했다.

  30년 전통의 회사인데, 설희가 들어가고 꼭 1년 2개월 만에 망해 버렸다. 회사가 망하고, 경력이라고 쓸 수도 없는 1년 2개월의 경력을 가지고 여러 회사 문을 두들겼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아직도 무직이었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대로 내년에 결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5년 사귄 남자친구다. 고작 3개월 무직 상태로 있다고 찬정은 자신에게 헤어지잔다.

 

  " 솔직히, 네가 무직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다른 것보다 네가 회사가 망할 상황에서 이직도 못하고 회사가 망하고 나서야 직장을 찾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실망스러웠어. "

 

  억울했다. 찬정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다. 월급이 밀리며 회사가 망해가는 것을 알았지만 월차도 못쓰는 상황에서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100년만의 불황이라지 않는가. 그만두고 나서도 간단하게 직장이 구해지질 않았다.

  " 조금만 시간을 주면 안돼? " 그렇게 물어보려 했던 설희는 곧 입을 닫았다. 어차피 떠난 사람이다. 5년이나 사랑했는데, 설희의 첫 사랑인데, 그의 첫사랑 역시 설희라고 귓 가에 속삭였으면서, 고작 회사가 망했다고, 3개월 백수로 살았다고 헤어지잔다.

  결혼해서 병이라도 걸리면 이혼할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상황이 좋았기에 몰랐던 그의 밑바닥이 지금에서야 보였다. 말이 없는 그녀를 대신해 찬정이 계속 말을 이었다.

 

  " 난 치열하게 살고 싶어.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단 말이야. 근데 넌... "

 

  찬정의 시선이 설희에게 닿았다. 깔보는 눈빛. 이 남자, 원래 이랬던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다정한 남자친구였던 그는, 대기업에 취직하고 나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 보면 대기업 다닌 다고 그렇게 변하진 않던데. 대기업에 다니는 자신은 대단하고 향상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무직인 설희는 뭐든지 의욕없고 매력없다는 듯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집을 향해 걸었다. 차마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말 한마디라도 한 다면, 이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쿨하게 돌아서는 여자친구 대신, 질척거리며 그의 바짓가랭이라도 잡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했다.

 

  ' 나도 열심히 하려고 했어. 내가 잘 못해서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니고,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불황에 빠진 것도 아니잖아. 왜 내 탓을 해. '

 

  가슴 속에 불같이 타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그녀를 삼킬 것만 같았지만, 겨우 입술을 깨물며 울분을 삼켰다.

  그녀가 집으로 향해 걷는 이 길은, 찬정이 자신을 집 앞에 데려다 주며 수 백번은 같이 걸은 길이었다. 첫 키스도 이 길의 끝, 집 앞 골목길이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는 늘 함께일 줄 알았다. 인생의 평탄대로가 앞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은 계속 될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게 착각이었지만.

  입술을 꼭 깨물고 집에 왔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엌에서 음식을 하던 엄마가 튀어나오셨다.

 

  " 설희야, 오늘 면접 잘봤니? "

 

  오늘 면접? 오전 일찍 정장을 입고 간 면접을 떠올렸다. 2명 뽑는 자리에 무슨 면접인원을 70명을 불렀더라. 탐탐치 못해하던 면접관들의 표정을 고려하면, 될리가 없었다. 설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엄마가 인상을 쓰며 설희에게 외쳤다.

 

  " 또? "

 

  고개를 끄덕였다.

 

  " 에이, 좀 잘좀 해보지. "

 

  안 울려고 그랬는데, 무너지지 않으려 했는데, 엄마의 지겹다는 말투의 대답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탁 막혀 오는 느낌에 바닥에 가방을 집어 던졌다.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

 

  잘 울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는 설희였다. 그런 설희가 울먹이며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놀라 주걱을 든 채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았다.

 

  " 왜, 왜 그래 설희야? "

  " 회사가 망한 게 내 탓이야? 내가 시켜서 회사 사장이 이곳 저곳에 문어발로 투자 한거야? 회사에 안뽑히는 게 내 잘못이야? 엄마는 텔레비젼도 못봤어? 세상에 취업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서 목숨도 끊는다는데, 난 한번은 성공했잖아. 왜 맨날 날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야? "

  " 기...기집애, 내가 뭘 그렇게 말을 했다고. "

 

  엄마가 놀라 중얼거리는 데도 설희는 그런 엄마가 알 바 아니었다. 바닥에 주저 앉아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 엉엉, 왜 나만 가지고 그래. "

 

  어깨가 들썩이며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가 놀라 주방에서 나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 왜, 오늘 면접이 그렇게 잘 안됐어? "

  " 몰라, 모른다고, 내가 어떻게 알아. 엉엉. "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그녀의 곁을 맴돌다, 그녀의 흐느낌이 적어질 때 즈음 그녀의 옆에 와서 앉았다. 진이 빠졌다. 새벽 7시에 나가서 면접을 보고 하루종일 찬정의 회사 앞 커피숍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만나고,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왔다. 너무 힘들고 긴 하루였다.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조차 " 회사에서 잘려서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다. " 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 내 자신이 쓰레기 같아. ’

 

  세상에서 날 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5년 사귄 학창시절때부터 사랑한 남자친구도, 온갖 공을 들여 들어간 회사도 더이상 날 원치 않았다. 이제는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 엄마에게 말했다.

 

  " 찬정오빠가...헤어지재. "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집에 자주 오며, 엄마를 장모님이라고 부르던 사람이었다. 엄마의 충격이 얼마나 클 지 알았기에 말하기 힘들었지만, 말해야만 했다.

 

  " 내가 백수라고...내가 무직이라고... 한심하대. "

 

  뭐라고 말할 줄 알았던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그런 그녀의 어깨를 꼭 안아주고 아무말 없이 그녀의 등에 얼굴만 대고 있었다.

 

  " 내가 한심하대... "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서 얼굴 아래로 쏟아졌다 . 설희의 정장 위에, 마루바닥 위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말도 못하고 끅끅 대기만 하는 그녀를 안쓰럽게 엄마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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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블루 17-09-06 18:02
 
나쁜 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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