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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공작부인 클로에
작가 : 봄고양이
작품등록일 : 2017.7.25

죽은 남편에게 숨겨진 아이가 있었다. 사생아의 후견인은 데온 파이어. 한 번도 남자에게 빠진 적 없는 공작부인 클로에의 앞에 나타난 그가, 클로에는, 진심으로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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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9 22:46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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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온은 저택 입구에 서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클로에는 머뭇거리며 로빈을 안고 제시에서 내렸다. 순간 삔 다리가 저리면서 아파 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때 그가 다가왔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당연히 화를 내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가둬버릴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데온이 클로에를 번쩍 안아 올린 것은. 아무리 아이라지만 로빈도 함께인데 그는 너무나 쉽게 그녀를 안고 이동했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과 협상……”

 

 “입 다무시오.”

 

 날카로운 말에 클로에는 조용히 로빈을 끌어안았다. 데온이 화를 낼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고요하게, 이토록 무섭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실제로도 데온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일단 클로에를 놓친 자기 자신에게 기가 막혔고 그녀가 보기보다 똑똑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는 클로에가 멍청하고 아둔한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데온도 그의 누이도 평민이었다. 평민 여인에게 공작 남편을 빼앗기다니 정말 한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로 클로에를 만나 보니, 그녀는 멍청하지도 아둔하지도 않았다. 예상치 못한 재치로 데온을 몇 번이나 받아넘기고 도발했다. 사실 공작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클로에가 오면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짐했었다. 소중한 혈육을 상속을 받기 위한 도구로 쓸 테니까.

 

 빌어먹을 귀족들. 사람의 몸에서 흐르는 피는 귀천을 가리지 말고 똑같이 빨간색이다. 귀한 분들은 피를 볼 일이 없으니 잘 모르는가 보지만, 데온은 언제나 인간들과 그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왔기에 알았다. 양자 간에 그다지 커다란 차이도 없다는 걸.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 서로를 차별하고, 때때로 저들이 그렇게 멸시하는 사생아를 찾으러 오기도 했다. 비겁하게도.

 

 “꺄악!”

 

 생각하다보니 분노가 치밀어 데온은 클로에를 거의 집어던지듯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로빈의 등을 양팔로 교차해 안고서, 커다란 동공을 파르르 떨면서 그를 응시했다.

 

 “왜 돌아온 거요? 아니, 다리는 어쩌다 다친 거요?”

 

 미친 질문이기는 했지만 클로에가 말에서 내릴 때부터 그녀의 발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데온은 알아챘었다. 클로에를 안고 저택까지 들어온 것도 그대로 걷게 내버려 두기 싫어서였다. 그렇다고 이것부터 묻는 건 아니었다. 왜 달아난 건지도 따지고 충분히 화도 내고 필요하다면 겁박도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가장 궁금한 건 클로에의 상태였다.

 

 “놔요.”

 

 데온은 클로에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의 옷자락을 들어 올려 발목을 확인했다. 퉁퉁 부어 있었다.

 

 “빌어먹을.”

 

 “왜 욕이람? 애가 듣는데.”

 

 클로에는 로빈의 귀를 황급히 막았다. 데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여자들이란.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하오? 이걸 좀 보시오.”

 

 데온은 클로에의 발목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꼬았다. 클로에가 괴로워하자 로빈은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하면 고통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주 애를 짧은 시간에 잘도 구슬렀군.’

 

 속으로 빈정거리면서 데온은 클로에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이 꼴이 되었는데도 말을 탈 생각을 하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소. 제시는 또 무슨 수로 꼬여냈지? 내가 아니면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는 아이인데. 로빈은 또 왜 이러는 거고?”

 

 “내가 마녀라도 된 줄 알아요?”

 

 클로에가 딱 잘라 말했다. 여전히 공포심으로 몸이 떨리고는 있지만 이상하게도 데온을 만났다는 사실에 안도감 또한 들었다. 그녀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도발하듯 눈을 똑바로 떴다.

 

 “마녀가 아니라면 치료를 받아야겠지.”

 

 “그건…… 치료해 주겠다는 건가요?”

 

 데온은 피식 웃었다. 뜻밖의 미소에 클로에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놀라움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도톰한 입술에 오랫동안 머무는 그의 시선을 느꼈다. 클로에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앞으로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네?”

 

 “다치지 마시오. 절대. 무리하지도 말고. 내게 먼저 말하고 행동하시오. 무작정 달아났다가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요. 어차피 그대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으니.”

 

 “아……”

 

 클로에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일단 자신은 ‘그대’가 아니라 공작부인이라고 호칭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화내는 거, 맞죠?”

 

 확실히 하려고 클로에가 물었다. 거친 질주에 지친 로빈은 어느 샌가 품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 있었다. 참 뻔뻔하고도 강한 녀석이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감탄과 웃음을 주는 아이의 머리에 잠시 키스했다. 데온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어딜 보고 있는 거야. 클로에는 그에게 핀잔을 놓고 싶었다. 또, 입술이었다.

 

 “화내는 거냐구요. 알고 싶어요.”

 

 그제야 데온은 클로에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렸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그는 자신이 그녀를 뜨겁게 응시했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가 제 발로 찾아왔기에 이 정도로 그치는 거요. 만약 내가 직접 찾으러 갔다면……”

 

 “그러지 그랬어요.”

 

 클로에가 냉큼 말을 가로챘다. 데온은 이 여자가 또 게임을 하자는 건가 싶어 눈썹을 찡긋해 올렸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에요. 누구라도 있어주기를 바랐거든요.”

 

 데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누가 그대에게 해를 끼쳤소?”

 

 “나는 공작부……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겠죠. 이런 상황에서.”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하시오!”

 

 클로에는 움찔했다. 로빈이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괜찮다고 아이를 달래려다 돌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킬루세스로부터 로빈을 살려야한다는 일념 하에 이곳으로 달아나기는 했지만 클로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친 발목의 치료와 마음의 상처에 부어 줄 만한 위로였다.

 

 “제기랄. 왜 우는 거요. 무슨 일이 있어서.”

 

 여자의 눈물 앞에서는 유독 참을성이 없는 데온이었다. 그는 욕설을 내뱉더니 로빈을 클로에에게 빼앗아 안았다.

 

 “돌, 돌려줘요. 으흑.”

 

 클로에는 자신에게 남은 것이 로빈 하나뿐이라는 듯 두 팔을 높이 들고 애원했다.

 

 “방으로 데려가 재우려는 것뿐이오. 남은 이야기는 아무래도 우리 단 둘이서 해야 할 듯해서.”

 

 “혼자 있기 싫어요. 따라갈래요. 아니, 로빈이랑 떨어지지 않을래요.”

 

 아이를 죽이겠다던 킬루세스의 모습이 훅 하고 떠올라 클로에는 몸서리쳤다. 품에서 떼어놓았다가 로빈이 작은 상처라도 입으면 큰 죄책감을 느낄 것만 같았다. 데온은 그녀가 보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고, 걷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져 버린 발목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진정하시오.”

 

 “나와 아이를 떼어놓지 말아요.”

 

 클로에가 무리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데온은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안아 들어 소파 위에 앉히더니 저항하려는 순간 입을 맞추었다. 클로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녀가 뭔가 말을 하려 입술을 열자 혀가 들어왔다. 그의 키스 솜씨는 매우 좋았다. 언제 키스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클로에에게 지나친 자극이었다.

 

 데온은 클로에의 머리를 힘껏 감싸 안고 입술을 밀착했다. 이가 부딪치는 소리에 그녀는 흠칫댔다. 소녀처럼 겁을 먹고 떨고 있다니. 그는 속으로 이런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약간의 죄책감 어린 불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클로에의 입술이 몹시 달콤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그저 진정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던 입맞춤은 점점 길고 농밀해졌다. 클로에는 혀를 간질이는 데온의 솜씨에 점점 빠져들었고, 긴장도 풀려갔다. 치열을 더듬고 입안을 훑는 그의 혀는 단단했다가 부드러워졌다가 하면서 그녀를 흥분시켰다. 숨소리가 조금씩 뜨거워졌다. 젖꼭지가 단단해지면서 옷을 힘껏 밀어냈다.

 

 “이제 좀 진정됐소?”

 

 마침내 데온이 입술을 뗐지만 클로에는 초점 없는 눈으로 여운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나른해졌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에 빠졌다. 클로에의 이런 반응은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딱이었지만, 데온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신을 통제했다. 그 차가운 태도에 그녀의 정신이 확 깰 정도였다.

 

 “아이를 두고 올 테니 얌전히 기다리시오. 발목은 팔걸이에 올려두고. 부기가 빠지는 데 도움이 될 거요.”

 

 데온이 방을 나가자 클로에는 그에게 사로잡히게 하고, 집중하게 만들었던 마법같은 순간이 끝났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달아오른 뺨을 손등으로 식히며 데온이 돌아오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이러니저러니 하도 그는 클로에를 위협하거나 협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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