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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3-2화. 한 오후의 소란.
작성일 : 17-07-29 12:39     조회 : 330     추천 : 0     분량 : 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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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노인은 이미 표정부터 용서를 내동댕이쳤다. 이마부터 목까지 자글자글한 주름이 얼마나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왔을지 말해줬다. 그는 위에 검은 옷깃에 야자수잎이 패턴으로 찍힌 골프셔츠를 입고 있었으나 골프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마도 아래에 트렁크 속옷 같은 얇은 흰 바지를 착용해서 그런 것 같다. 노인은 팔에 힘을 줬는지 얇은 팔뚝과 손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뼈를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냈다. 당장 우리를 칠 기세였다.

 "뭘 그렇게 야려! 아,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냐! 가정교육 똑바로 못 받았어?"

 나루는 고개를 숙이더니 손가락을 매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귀에 손을 가까이했다.

 "뭐라고! 크게 말해! 목소리가 무슨 3일 굶은 쥐새끼 같네. 집에서 그따위로 가르치디?"

 나는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노인의 욕설에 순간 울컥했다. 건방진 이 늙은이에게 맞대응으로 욕을 한 사발이라도 하려는 그때, 모모가 난데없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루 님의 보호자입니다.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노인은 모모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마에 적힌 'R'을 유심히 보았다.

 "뭐야, 휴머노이드잖아? 하여튼 애미, 애비가 어떻게 회까닥했는지 이런 거였구만? 에잉, 쯧쯧."

 막말을 숨 쉬듯이 내뱉던 노인은 모모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똑바로 생겨 먹으란 말이야! 몸은 이쁘장한 게 애는 왜 그렇게 보살피나!"

 모모는 표정 변화 없이 노인의 음흉한 손짓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더는 참을 수 없다.

 "야! 이 변태 사이코 인격 장애자에 지옥으로 당장 얼리버드 티켓 받고 꺼져버릴 늙은 노친네 새꺄!"

 노인은 손짓을 멈추더니 생전 처음 듣는 욕설에 3초 정도 멍하니 있었다. 노인이 입을 떼려는 찰나에 나는 곧바로 노인의 오른발을 뒤꿈치로 내리찍었다. 허름한 쪼리를 신은 노인의 발에 운동화 밑창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더니 신발 자국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것은 마치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 같았다.

 "나루! 모모! 어서 튀자!"

 나는 둘의 손을 붙잡고 곧장 대로로 나와 UFT(Under Flat Tree) 쪽으로 달렸다. 노인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냅다 무단횡단도 서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밟힌 발을 쥐여 잡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우리를 향해 무어라 계속 소리쳤지만 들을 가치도 없는 욕설일 것이다. 중지 손가락이라도 세우려는 그때 노인이 절룩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 왔다. 거북이 같은 노인을 약 올리듯이 우리는 토끼처럼 달렸다.

 한참을 달리니 노인을 이미 따돌리고도 남은 거리였다. 나와 나루는 바다에 빠진 것처럼 상체를 땀으로 적신 채 숨을 몰아쉬었다. 모모는 그런 우리를 가만히 보더니 음료수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힘도 없어 허리를 숙인 채 손을 저었다.

 "미, 미안해. 으허, 나 때문에."

 나루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쳤다. 나는 깊게 숨을 몇 차례 내쉰 후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이렇게 일을 키운 거야. 그 늙은이는 빈 캔이나 마찬가지야. 빈 캔은 밟아 찌그러트려서 버려야지, 안 그래? 그런 쓰레기한테 전혀 미안할 필요 없어."

 나루는 내 말을 듣자 땀에 젖은 몸으로 두 팔 벌려 내게 다가왔다. 나는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붙지 마! 붙으면 더 더워!"

 나루는 아쉬움에 '힝'하더니 고개를 떨궜다. 문득 앞을 보니 벌써 'UFT'앞이었다. 나는 실망한 나루를 위로해주기 위해 나루의 볼에 손을 댔다.

 "나 이만 갈게. 너도 모모랑 평양역에서 광주송정까지 잘 가고, 알았지?"

 나루는 시선을 내린 채 토라진 표정으로 맨땅을 발로 툭툭 찼다.

 "어차피 수급대상이라 무료 열차야. 지금이 몰래 여기저기 돌아다닐 거야."

 "그래, 여행은 좋은 거야. 모모도 있으니 믿고 맡길 수 있겠네."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 나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루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내 손길을 받아줬다.

 "그럼 진짜 갈게, 다음에 또 보자."

 말이 끝나자마자 나루는 내 볼에 기습적으로 입술을 댔다. 포옹에 이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만 온종일 한 걸까. 나루는 모모의 손을 잡더니 곧장 줄행랑을 쳤다. 그 둘은 녹아내려 가는 햇빛 사이로 점점 빨려 들어갔다. 나는 다가오는 감정의 교차를 무시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UFT는 아직 입주민이 적어서 UTX 정거장에 탑승객이 없었다. 남한에 많은 언더트리 거주민이 있지만, 그들 대다수가 북까지 갈 이유도 없다. 북한은 완벽한 신흥 도시국가로 말하기에 아직도 잔재가 남아있다.

 이윽고 UTX가 왔다. 올 때는 앞 칸에 탔으니, 돌아갈 때는 뒤 칸에 탑승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으니 피로가 밀물처럼 올라왔다. 고개를 살짝 꺾어 좌석 등받이에 눕듯이 기댔다. 어차피 종점은 ULT이니 졸아도 괜찮...

 

 요란한 신디 음이 그의 주머니에서 울렸다. 요즘 20대가 좋아하는 음악 후렴구다. 기억을 상기시키는 중에 그의 전화벨이 현실로 되돌아오게 했다. 그는 아라에게 겨눈 총구를 잠시 내리더니 뒤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점잖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더니 발신자에게 '예'라는 말만 대답했다. 전화를 받는 내내 양발이 서로 다른 발소리를 냈다. 나는 조심스레 아라를 불렀지만 이미 반 혼수상태였다. 우리 둘 다 손발이 수갑에 묶여있어 뺨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탈출해야 할 지도 막막했다.

 바로 그때 통화를 마친 그는 전화기를 바닥에 내던지더니 단단한 구두 굽으로 짓밟았다. 전화기는 파삭파삭 튀겨지는 소리를 내더니 쩌적하며 반쪽으로 쪼개졌다. 그는 휴대폰이 박살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뭉크의 '절규'처럼 절망한 채 비명을 질렀다.

 "종건아! 왜 그랬어! 왜! 이건 한정판이었어! 종건아, 너 미쳤어? 어? 왜 부셨어!"

 그는 자기 뺨을 2대 정도 치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인형 하나를 급히 꺼냈다. 작은 물고기 인형이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못생긴 물고기였다. 그는 살기 어린 눈으로 그 인형을 양손으로 붙잡아 눈을 마주쳤다.

 "블랍님! 블랍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저를 소중히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블랍님께 면목 없어 죽음으로 죄를 치러야겠습니다!"

 그는 상의 주머니에 쑤셔 넣은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댔다. 물고기 인형의 머리를 터뜨릴 정도로 오른손에 꽉 쥐고, 바들바들 떠는 왼손 검지는 방아쇠에 댔다. 눈을 질끈 감더니 갑자기 눈썹이 치켜 올라갈 정도로 똥그랗게 눈을 떴다.

 "잠깐, 총소리에 놀라 바지에 실례할 수 있잖아? 일단 화장실에 가야겠어."

 그러더니 진짜 총을 내리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여러 생을 살았지만 저런 미친놈은 처음이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다가 우리는 저런 미친놈의 목표가 된 걸까. 그가 화장실이든 어디든 가버린 동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기억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짜장 냄새가 현관까지 쫙 퍼졌다. 오늘 저녁은 배달음식인가 싶어 부엌에 가니 아빠가 뜰채로 면을 건지고 있었다. 엄마는 테이블에 식기와 밑반찬으로 먹을 깍두기와 단무지를 올리고 있었다.

 "뭐야, 오늘 저녁은 짜장면이야?"

 엄마는 "이제 집에 왔어?"라고 말하더니 곧바로 냄비를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배달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가니까, 직접 만들었어."

 나는 '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힌두교를 믿지만, 소뿐만 아니라 돼지도 먹지 않는다. 아빠는 테이블 중앙에 삶은 면을 올렸고, 뒤따라 엄마도 완성된 짜장을 그 옆에 뒀다. 흔히 먹는 짜장면과는 다른 풍미가 올라왔다.

 "면만 100% 수제, 소스는 시중에 파는 거로 했어. 속 재료만 따로 볶아 만들었고."

 아빠는 접시마다 면과 짜장을 덜어줬다. 인도인이지만 풍채가 좋아 중화 요리사도 왠지 잘 어울렸다. 물론 헛된 선입견이다.

 "자, 어서 먹자."

 우리는 '잘 먹겠습니다'를 외친 후 곧바로 면을 짜장에 버무렸다. 달달하면서도 진한 짜장의 향이 쫄깃한 면발에 찰싹 붙었다.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왔으며, 시켜먹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엄마는 몇 저분 먹더니 벌써 한 접시를 뚝딱 했는지 곧바로 면을 그릇에 더 덜었다.

 "그러고 보니 '휴머노이드 보호법' 지금 이야기 나오고 있다면서?"

 아빠는 입안에 있는 음식을 급히 삼키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맞아, 정말 시급한 법이야. 이마에 낙인이나 찍는 악법 같은 건 폐지해야 해."

 둘의 대화를 듣자 문득 오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노인이 모모에게 했던 못된 짓은 정말 용서할 수 없었다. 그 건방진 노인의 왼발도 밟았어야 했는데. 그러다가 그 전에 나루와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나는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는 둘을 가만히 보았다.

 "엄마, 아빠.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엄마는 후루룩 면을 삼키다 내 질문에 놀라 기침했고, 아빠는 황급히 컵에 물을 따라 엄마에게 건넸다. 그리고 테이블에 튄 짜장을 휴지로 닦으며 나를 보았다.

 "우리 딸, 그게, 그게 갑자기 왜 나오는 거니?"

 엄마도 급하게 물을 삼키더니 컵을 '탁' 내려놓으며 재질문했다.

 "지금 우리 놀리는 거지? 엄마, 아빠 당황하게 하려고?"

 나는 잠시 내 나이를 잊고 질문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아니, 나도 학교에서 성교육은 받아서 알아. 내 말은 육체적, 생물학적 과정 말고. 그냥 내가 어떻게 태어나서 아기 때 어땠는지 묻는 거야."

 둘은 내 질문에 당혹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빠는 헛기침하더니 컵에 물을 연달아 따라 마셨다. 엄마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보더니 그릇에 담긴 면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흠, 그러니까 지금이가 아기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는 거야?"

 내가 원하는 답을 다 듣지 못하는 내용이었지만, 우선 그거라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 입에 짜장면을 넣었다. 엄마는 반달 단무지를 하나 집더니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시선을 먼 곳으로 옮겼다. 마치 그곳에 내 탯줄이 잘린 순간이 담긴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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