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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내가 나를 죽였다
작가 : 휘닛
작품등록일 : 2017.7.9

 
19.아류작
작성일 : 17-07-29 08:27     조회 : 348     추천 : 0     분량 : 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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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은아는 다혜의 폐부를 찌르는 말에 등골이 오싹해지며 전율이 돌았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은아는 당장이라도 찢어죽일 듯 냉혹한 눈매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다혜는 전혀 주눅 듦 없이 호호 웃었다.

 

  “뭘 그렇게 정색해요? 무섭게. 설마 내가 진짜로 언니보고 죽으라고 한 말이겠어요? 난 그저 언니 노는데 장단맞춰주려고요. 사기극도 엄연한 연극이잖아요? 장르는 좀 다르지만 배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풍성해질 거니까. 후훗”

 

  다혜는 기분 나쁘게도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왜 내 파이를 먹으려고 덤벼들지? 이제 좀 뜨는 것 같으니까 나한테 비빌 수 있을 것 같니? 천만에 너와 난 종자가 틀려. 근본 없는 천한 것이 어디서 겸상하려들어!”

 

  은아는 분노하여 악을 질렀지만 다혜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후훗 언니. 지금 엄청 추한 것 알아요? 그렇게 열 내고 성 내니까 누가 열성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언니. 볼썽사나운 꼴 보이지 말고 이제 후배한테 길 터줘요.

  혹시 알아요? 내가 언니 자리에 올라서서 연말 시상식에 참가하게 될지?

  그러면 내가 눈물 펑펑 쏟으며 감사할지도 모르잖아요. ‘흑흑 감사합니다. 이 수상의 영광을 하늘에 계신 우리 한은아 언니에게 바칩니다.’ 후후훗”

 

  다혜는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취했다.

 

  그런 다혜의 깐족거림에 좀처럼 은아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네가 아직 어려서 이 바닥을 잘 모르나본데...”

 

  “글쎄요... 나이는 한 살밖에 안 나는 것 같은데”

 

  “데뷔 차이는 8년이나 나거든!... 아무튼 내가 비켜주면 네가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아?!”

 

  은아의 호통에도 다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대답했다.

 

  “그럼요. 아주 잘 메울 수 있죠. 방송가에서 내게 붙은 꼬리말이 뭔지 알아요? 리틀 한은아야! 데뷔 이후로 줄곧 나는 뭘 해도 한은아 딱지를 뗄 수 없었다고! 더 짜증나는 건 네가 데뷔는 빨라도 나랑 고작 한 살밖에는 차이 안 난다는 사실이야! 언젠간 너도 지겠지. 그래 그때까지 악착같이 버텨낼 수 있어. 근데 네가 왕좌에서 꽃가마 타고 뿌려주는 꽃가루 맞으며 꽃길 걸으며 내려올 때!

 

  나는... 나는 여전히 활짝 피어있을 수 있을까? 끽 해야 일이년 마지막 잎새 마냥 가지를 붙잡고 늘어질 수는 있겠지. 그것도 아주 추하게... 그리곤 시들어 사그라지겠지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꽃망울 못 터트린 채로...”

 

  다혜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동정심 유발하지 마! 원래 이 바닥이 그런 거야.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흘러온 기회를 쟁취하려드는 거라고! 근데 넌 출발선부터가 잘못됐어. 네가 지금 욕하는 제2의 한은아 딱지를 누가 하라고 시켰어? 네가 하겠다고 했잖아.

  너 들어오고 첫 회식 때, 대표님이 술 한 잔 따라주며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던 너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밝혀보랬지. 너는 그 자리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며 조만간에 나를 뛰어 넘는 배우가 되겠다고 그랬지. 그리곤 건방지게도 다음날부터 넌 내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하기 시작했지. 내가 잡지사에서 어떤 원피스를 입으면 그 다음날 넌 그 원피스를 구해서 입었어. 내가 어떤 신발 광고를 찍으면 넌 어김없이 그 신발을 구해서 신었어. 정작 네가 따라해야할 것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도 넌 그저 내 외관상 겉모습만을 열심히 쫒았지.

  물론 몇몇 방송 관계자들은 그런 너의 모습을 귀엽게 봐주며 방송에 몇 번 불러주기도 했지. 너는 그게 좋았겠지... 어떤 무명생활도 없이 바로 전파를 탈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넌 네가 궁극적으로 바라던 주연배우나 광고모델로 발탁될 수는 없었지.

  왜냐고? 오리지널인 나 한은아가 있으니까. 네 주제에 어째서 예능이라도 나가 얼굴을 비출 수 있었는지 알아?

  대중이 원하는 건 나야. 그러나 이미지 소모 때문에 소속사에서 너를 보낸 거라고. 원본 대신 사본으로 돌려막기 한 거지. 그걸 깨닫지 못하고는 넌 영원히 내 아류작에서 벗어날 수 없는 3류 작이야 알겠어?!”

 

  은아는 열변을 토해내었다.

 

  다혜는 입을 앙 다물고 은아의 말을 잠자코 듣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아하하 맞아요. 맞아. 언니 말이 맞아요. 근데 서울만 가면 되는 게임 아니었나? 연기 좀 못하면 어때. 어차피 인기만 있으면 주연도 다 꽂아주는데...”

 

  “넌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평생 내 엉덩이만 처다 보며 살라고!”

 

  “아하하 그래요. 언니가 날 도플갱어로만 여겨도 좋아요. 그리고 내가 아닌 한은아가 방송가에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해요. 근데 그 한은아가 세간에서는 죽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한은아를 잊지 못했지. 그래서 나한테도 드디어 기회가 왔어요. 그거 알아요? 언니가 모델이던 광고가 무려 세 개나 들어왔어요. 내가 대체재니까. 내가 이제 한은아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굳이 언니가 아니더라도 한은아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헛소리 집어치워. 나 내일 당장 복귀할거야.”

 

  “아뇨. 그건 안 되겠는 데요. 나도 꽃봉오리는 피워봐야 하니까. 서로를 위해서 이제 그만 떠나주세요. 사회적으로 죽어달란 말이야!”

 

  다혜가 소리를 질렀다.

 

  은아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꿈 깨. 넌 평생 풀떼기일 뿐이니까.”

 

  은아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좋아. 언니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내 밥그릇을 그냥 내줄 순 없어. 내가 막을 거야.”

 

  “네가?”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택할 수 있게 나는 기회를 줬어. 하지만 언니가 관뚜껑을 차버린다면 내가 매장시켜 버릴 거야”

 

  은아는 다시 뒤돌아 다혜를 쳐다보았다.

 

  다혜는 히죽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뒤에서 소문 완전 구린 거 알아? 너 뒤로 엄청 해먹었더라. 탈세 추정 금액만 몇 억 이더라...? 이 집도 그 돈으로 산거지? 이정도 건물을 아직 정산도 다 안 끝난 네가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너 아파트 계약한지 얼마나 됐다고... 참 스포츠카 할부도 남았을 텐데. 능력 참 좋아?”

 

  은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야. 너 약 한다며? 네가 죽던 날 클럽에서 약하는 거 봤다는 찌라시가 돌던데... 뭐 이 정도는 돼야 네 자살이 타당하지 않겠어? 시신 없는 투신에 동기도 없어. 우리가 가서 퍼즐을 끼워 맞춰줘야 하지 않겠어? 팬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 히히.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봐.”

 

  은아는 살기어린 눈빛으로 다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아냐... 아니라고”

 

  “그래? 그럼 보여줘 봐. 팔에는 안 맞았을 테고... 어깨? 어깨에 주사바늘이 있으려나?”

 

  다혜가 달려들어 은아의 옷을 잡아 당겼다.

 

  은아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다혜를 막았다.

 

  그러나 다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다혜의 밀치는 힘에 나가떨어졌다.

 

  은아는 식탁 테이블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며 정신을 잃었다.

 

  “후훗 그렇게 얌전히 자고 있어봐 언니.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뀔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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