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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19.악연의 사슬
작성일 : 17-07-29 00:02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1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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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未生)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음. 또는 그런 상태.

 

 

 

 “..........”

 

 늦은 오후에, 국사를 논하면서 마 승상과 혁기(奕棋:바둑)를 한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숙비(淑妃).

 

 금실로 수놓은 비단보료 위로, 금야에 시침을 들 수 있는 후궁들의 명패가 죽 나열된 가운데 왕이 한 명패를 집어 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연혜궁에 갈 것이다. 가서 5왕자의 안위도 살펴보고 싶구나.”

 

 “분부 받잡겠나이다.”

 

 경사방(*왕의 방사 및 시침 관련을 책임지는 부서)의 내관이 곧 하명을 받들며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연혜궁, 온서전.

 

 

 “............”

 

 왕의 행차할 거란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숙비의 처소인 온서전엔 기쁨과 설렘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장장 3개월 만에 지아비가 방문한다는 데도 숙비 또한 한없이 초라한 몰골로 아랫것들을 외면하고 있었고. 사실 그녀는 지금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경황도 없는 상태였다.

 

 “마마....”

 

 새벽녘에 고열로 쓰러진 5왕자가 또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선천적으로 기형아로 태어나 현재 는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왕자가 또 간질 증상을 보인 것이다. 소위 지랄병이라 불리며 전염병처럼 취급받는 그 증상이.

 

 오랜 세월 자신과 함께 해온 자신의 본방나인은 울먹이며 절망해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치료 불가능한 병을 앓고 있는 5왕자를 안락사 시켜야한다는 여론이 궁내에 돌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왕자에게 간질 증상까지 있다는 게 알려지면 여론은 더더욱 악화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조차 숙비는 덤덤했다. 아들의 간병에 초라해진 얼굴에는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폐하가 행차하여 5왕자의 안위를 묻거든 단지 고뿔에 걸렸다고만 답해라. 왕자의 얼굴을 보고 싶다 하시면, 잠에 들어서 보여줄 수 없다고 핑계대고.”

 

 “네, 마마.”

 

 “피곤하구나, 가서 녹차를 데워오렴. 화장을 준비하고.... 아무리 그래도 폐하께 이런 몰골을 보여줄 순 없구나.”

 

 “.........”

 

 “그래, 녹차가 다 떨어지고 없다했지.”

 

 “정말 송구하옵니다, 마마. 얼른 다른 차라도 준비해오겠습니다.”

 

 “되었다. 그건 폐하께 대접해줘야지. 재인이 다시 후원해줄 때까지 남은 거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느냐. 음.... 뜨거운 물을 내오너라. 그거라도 마시고 싶구나.”

 

 친정은 오래 전에 세력을 잃고 파산한 상태였다. 그래서 집안으로부터 그 어떤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내명부 품계가 비였기 때문에, 왕실에서 내려주는 녹봉만으로도 그녀는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는 있었지만 그 녹봉마저도 아들의 치료비로 쓰이는 바람에 그녀는 요즘 들어 서재인의 후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처녀 시절 때 저축했던 비상금까지 전부 다 써버려서 몸종의 봉급도 서재인의 보탬으로 지불하고 있는 형국이라 그녀는 외부에서 간병인을 고용할 여력조차 없었다.

 

 아들이 태어나고 4년을, 그녀는 오로지 아들의 간호에만 헌신하는 나날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고에도 뇌성마비인 아들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발달상태도 좋지 않아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던 왕자는 3살이 되자 갑자기 간질 증세까지 보였다.

 

 

 .....최소한 간질만이라도 비밀리에 치료하고 싶어서, 모자란 자금을 내명부 재정에서 빼돌리려다 혜비에게 발각당해 왕후의 신임까지 잃은 터였다. 그 바람에 자신에 대한 중궁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얼마 전 있던 다과회에서 이를 확인 할 수 있었고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그녀에게 있어 이보다 더 최악인 상황은 없었다.

 

 이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었고.

 

 그래서 숙비가 매사 침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저어... 그리고 그 갈마 미인은 어떻게 변명할까요?”

 

 덤덤하게 상황을 정리해가는 웃전을 두며 몸종이 주저하며 입을 열고 있었다. 숙비가 잠시 야낙에 대한 존재를 하루정도 잊고 있었는지 미간을 찌푸린다.

 

 “갈마 미인?”

 

 “야인족 출신의 오랑캐 여자 말입니다. 마마! 오늘 미인 첩지를 받고 연혜궁에 들어왔으나 궁주가 되시는 마마께서 인사를 받지 않았잖습니까.....”

 

 “아아 그랬지.”

 

 곧바로 알아차렸는지 숙비가 피식 조소를 짓는다. 그러다가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녀가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본궁이 왕자의 병간호를 하느라 아랫것의 인사를 못 받을 수도 있지. 그게 문제 될 게 없지 않느냐. 뭣보다, 그 계집은 본궁이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 그 잔챙이는 ‘한 달’ 이내로 제거 될 테니까. 아니지.... 1주일도 못 버틸 거다. 바람처럼 사라질 상대의 인사를 받는 것도 웃기지 않느냐. 시간낭비이고.”

 

 덤으로 배정된 처소부터, 배치한 궁녀들까지 공을 들여 잘 골라놓은 그녀였다. 특히 야만인의 수발 궁녀들로 붙여준 아랫것들은 숙비 자신이 특별히 선별한 실력자들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숙비가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본방나인도 안심어린 미소를 지으며 주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소인이 이래서 마마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마마께서는 강하세요, 정말로.....”

 

 심적으로 크게 지쳤으면서도, 맡은 일에는 여전히 철저한 웃전을 존경스럽게 올려다보는 몸종이었다.

 

 “그 야만인이 제거되면, 중궁 마마께서도 마마를 다시 봐주시겠죠?”

 

 “............”

 

 그 야만인을 연혜궁에 보내준 것도 왕후의 뜻이었다. 숙비가 몸종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며 침묵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감에 찬 태도였다.

 

 

 ************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서로한테 말을 걸지 말 것.

 

 궁녀들에 대한 그 어떤 관심도 보이지 말 것.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에 대한 반응과 행동을 보이지 말 것, 그것이 설령 자신이 공격받고 있을 때라도.

 

 

 “..........”

 

 이것이 처소에 도착하던 첫날, 야낙이 두 시녀에게 내린 첫 명령이었다. 고단수를 상대로 신경전을 벌일 땐, 나름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의지와 전략에 따른 것으로, 그 때문인지 늘 같이 다니던 세 사람도 지금 당장은 서로 거리를 두며 떨어져 지내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이틀 째.

 

 오랜 몸종으로서, 그 말 많던 마나도 입궁 이래로 처음으로 침묵하며 일과를 보내는 중이었다. 란초이 또한 이번엔 아예 거의 있는 듯 없는 듯이 멀찍이서 야낙을 경호하고 있었고.

 

 거기다, 수발 나인들도 제각기 할 일을 할 뿐 처음 때처럼 야낙에게 무례를 범하며 섣불리 다가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현재, 여주인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였다.

 

 그녀가 왜 저런 고독을 자처하는 지..... 도대체 무슨 점 때문에, 그녀가 저 수발궁녀들을 경계하는 지 란초이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졌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그랬듯 단지 상황만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쨌든 여주인을 믿었다. 자신이 여주인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점이라면, 그녀는 생존을 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 무렵, 야낙은.

 

 “미인 낭랑! 어서 드셔 봐요. 저희들이 새벽부터 열심히 지은 밥상이랍니다. 초원 사람 출신이라해도 분명 입맛에 맞을 거야.”

 

 

 갈마 미인이란 신분으로 수발 나인들로부터 두 번째 아침상을 받아드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야낙은 정말로 혼자 남아 이 상황을 감내하는 중이었다. 하다못해 음식의 기미를 보겠다는 마나마저 내쫓아버렸기 때문이다.

 

 “........”

 

 웃으며 아양을 떨고 있지만 상전과 아랫것의 차이를 초월한 나인들에선 살의가 느껴졌다. 후궁인 자신이 식사를 드는 중인데도, 지척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어야할 수발 상궁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나인들이 뭐라 떠들어도 반응 한 번 없던 야낙이 밥상을 쓱 노려보며 낮게 조소를 짓는다. 겉보기엔 멀쩡한 평범한 밥상이었지만, 거기에 이미 많은 수작을 부렸다는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낭랑, 왜 안 드세요? 어제 하루 종일 굶었잖아요.”

 

 “정말 너무하네. 계속 우리 성의를 무시하기에요? 상전이면 다인 줄 아나보네.”

 

 “설마 우리가 독이라도 탔을까봐 걱정되는 거에요?”

 

 “친하게 지내자고 했잖아요.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주인님....’

 

 처소 밖으로 이 상황을 목격하는 이는 란초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인들이 웃전을 상대로 이런 무례한 짓을 벌이고 있다는 걸 증언해줄 객관적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인지 그가 이를 바드득 갈고 있었다.

 

 저 무례한 나인들은 아예 제 무대를 만난 듯했다, 밥을 먹지 않는다는 꼬투리를 잡는 대로 그녀들은 웃전을 포위한 상태로 신랄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드세요, 드시라고요. 뭘 계속 멀뚱하게 밥상만 보는 건대.”

 

 “..........”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야낙에게는 흔들림이라는 게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굳은 표정을 짓던 그녀가 마치 성화를 이기지 못한 척 수저를 들어 한 술 뜬다.

 

 ‘주인님......’

 

 보기 괴로운 광경 앞에, 마나를 대신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란초이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바로 달려가 나인들 모두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설령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다하더라도 절대 관여치 말라는 주인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

 

 딱.

 

 야낙의 입 안에서 무언가가 강하게 씹히는 소리가 났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 결과였다. 이미 쌀밥의 반절이 모래와 돌이었으니 말이다.

 

 “맛있죠?”

 

 “...........”

 

 나인들 중에서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나인이 잔뜩 비꼬는 어조로 물어오고 있었다. 일부로 못 먹을 식사를 준비해놓은 주제에 나인이 뻔뻔스런 질문을 하자, 그녀가 곧 대답대신.

 

 오도독.

 

  입안에 들어간 이물질을 너무도 태연하게 이빨로 씹어버리기 시작했다. 모래를 씹어 넘기면서, 야낙은 처음 모습 그대로 여전히 웃지도 화조차 내지도 않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즉각 복수할 생각도 없어보였고.

 

 “!”

 

 아드득.

 

 두 술. 세 술.

 

 가드득, 가드득.

 

 네 술, 다섯 술.

 

 “..........”

 

 고봉으로 쌓아올린 모래 밥은 그 새 사라지고 없었다. 잡초 섞인 채소무침, 간을 치지 않는 고기 산적. 벌레와 머리카락이 섞인 국까지.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전부 먹어버린 야낙이 곧 경악으로 아무 말도 못하는 나인들에게 수저를 놓으며 처음으로 입을 연다.

 

 “너희들의 성의는 아주 잘 알았다.”

 

 “아, 그러세요?”

 

 나인 한 명이 바로 말대답을 하며 미인을 강하게 노려본다. 그러다 곧.....

 

 “!”

 

 아까만 해도 만만해보이던 야낙에게서 결국 무언가를 봐 버린 모양이었다. 일단 기 싸움에서부터 대번에 져버린 듯, 도전적으로 나오던 나인이 질겁하며 고개를 숙이자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란초이가 결국 자리를 뜨고 있었다. 주인이 이유도 없는 괴롭힘을 받는 꼴을 보자니 화가 나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인의 의도 또한 알지 못한 상태였던 타라.

 

 “마나!!!!”

 

 기어코 기미마저 거절당하고 쫓겨난 마나를 찾아가고 만 그였다. 서로 거리를 두고 지내야한다는 걸 어기면서 까지.

 

 “............”

 

 그러나, 평소처럼 야멸차게 란초이를 거부하지 않는 마나였다.

 

 “너냐.”

 

 동료가 약속을 어기고 자신을 찾아오자, 등을 돌리고 서서 한참을 뭔가 생각하던 그녀가 그녀답지 않게 한없이 어두운 얼굴로 란초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두 시녀의 시선이 맞아 떨어진다.

 

 “마나 선배님, 주인님이 계속 당하고만 계십니다. 정말 이대로 내버려 둘 작정입니까?”

 

 “..........”

 

 “선배님!”

 

 “저런 장난질 따위로 어떻게 되실 분이 아니야. 나는 걱정도 들지 않는 걸. 우린 야낙 님을 걱정하고 동정할 군번이 아니야. 우리에겐 그 이상으로 중요한 임무가 있어, 그러니 란초이....”

 

 주변을 살펴보며, 아무도 없다는 걸 재확인한 마나가 숨을 들이쉬며 각오한 듯 입은 연다.

 

 “난 너한테 이 말을 해야만 해. 우선 미안하다. 너에게 그동안 텃세를 부리며 이방인이라 욕하고 험히 대할 걸 진심으로 사과할게. 이방인이면서 본토인인 나보다 더 빨리 야낙 님의 신뢰를 얻었다는 게 배알이 골렸었거든. 이런 날 용서해주든 안 해주든 그건 네 자유지만 적어도 사과하려는 내 마음은 진심이야, 그냥 이것만은 알아줘.”

 

 “!!!!!!”

 

 평소 알던 마나가 아니었다. 주인님의 달라진 태도도 그렇고, 저 오만방자한 마나까지 돌변한 모습을 보이자 적응하지 못했는지 란초이가 표정을 굳히며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마저도 이해한다는 듯 씁쓸하게 미소 짓는 마나였다.

 

 “야낙 님이 어째서 너를 혼수 시녀로 택해서 이 궁에 데려왔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어. 이런 일은 나 혼자선 해결할 수 없어. 지금으로선 네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란초이.... 부탁이야 나를 도와 줘. 야낙 님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 서로 협조해야해.”

 

 “무슨 말이지?”

 

 “......나는 저 나인들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이미 잘 알고 있어.”

 

 “!”

 

 이번엔 란초이가 주위의 사람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관심이 야낙에게로 향해져 있는 지 이 주변으로 신경을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자 그가 곧 마른침을 삼키며 마나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마치 감정을 추스르는 듯 눈을 감으며 숨을 고르던 마나가 더없이 음울한 어조로 쓸쓸히 말을 이었다.

 

 “빠른 시간 안으로 ‘유서’를 찾아야 해.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나인들 중 한 명이 자살할 거야.”

 

 “!!!!!!!!!!!!”

 

 “왜 내가 이런 확신을 하는 지 놀랍다는 표정이로군. 너로선 너무 뜬금없는 얘기려나? 하긴 몽혜당에 있었을 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너는 쭉 모르고 있었지. 설명해줄 게, 이리와.”

 

 따라오라는 듯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발걸음을 하는 마나였다. 란초이가 곧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저 아무것도 모를 신참 머저리에게 뭐부터 설명해야할까? 이 상황을 보다 본질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녀는 란초이에게 싫은 고백을 해야 했다.

 

 “....하하.”

 

  본론에 앞서, 마나가 옛 일을 떠올린 듯 헛웃음을 내뱉는다.

 

 “그러고 보니, 이젠 이런 얘기도 해줄 때가 되었지. 어쨌든, 너.... 나와 운명을 같이 하는 동료잖아?”

 

 “..........”

 

 “지금 말고는 서로 이리 길게 대화할 기회가 거의 드물 거야. 그러니 설령 지금 얘기가 현 사건과 그다지 관련없을지 몰라도 일단 닥치고 좀 들어줬음 해.”

 

 이미 뒤를 따라온 시점에서, 모든 진지하게 들어줄 의향이 있던 그였다. 란초이의 침묵 아래, 마나가 말을 잇는다.

 

 “너는 외지인이니, 우리 일족에 대해선 무지 할 거야. 뭐 길게 말하지 않겠어. 딱 잘라 말할게. 우리 일족 사람들에겐 생부라는 개념이 없어. 친자가 확실해야하는 우두머리 가계를 제외하면 나도 그렇고 내 또래 애들도 그렇고 모두가 아비가 없지.”

 

 “!”

 

 “......자식의 양육은 전적으로 여자들 몫이야.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린 엄만 일찍 죽어버려서 나는 형제들과 같이 매일 매일을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어. 주위의 도움조차 청할 수 없었지. 우리 일족은 나이 6살이 넘으면 성별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거든. 동생은 한 달도 못 버티고 죽었어. 나도 오라버니도 동생 꼴이 되기 싫어서 어떻게든 발버둥치고 있었는데....그 즈음에...... 한 아이가 내 눈에 띄었어.”

 

 설핏, 그 마나에게로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류가 읽혀졌다.

 

 “그 아이는 나도 다른 애들에게도 없었던 걸 저 혼자서만 가지고 있었어. 피가 이어진 확실한 친아버지에, 유능하고 높으신 삼촌들. 말끔한 차림새에 맛있는 간식, 못 보던 장난감들 하며.... 그 애 되게 유복하더라고, 나와는 같은 일족 사람인 데도. 그래서 난 굶주리는 와중에도 궁금했어. 도대체 저 애는 뭔 데 어른들조차 함부로 못하고 저리 당당하게 잘 살고 있을까 하고.... 그랬더니 그 앤 우두머리 혈족, 수장님의 친조카라 하네?”

 

 “...........”

 

 “......뭐, 오해는 하지 마. 내가 야낙 님에게 본격적으로 접근한 건, 5년 전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쯤해서 들은 너도 눈치 챘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야낙 님의 편이 아니었어. 오히려 우리는 정말 친하게 지냈지.”

 

 “.........친하게 지냈다?”

 

 잠자코 마나의 말을 들어주던 란초이가 드디어 반응을 보이며 눈초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답하는 마나의 어조는 무서울 정도로 태연했다.

 

 “서로의 인생을 걸고 싸웠으니 이만하면 친하게 지낸 것 맞잖아? 나는 야낙 님께 뜻 깊은 1년을 선물해주었어. 야낙 님은 그 답례로 우리 오라버니를 내 인생에서 제거해주셨지.”

 

 “!!!!!!!!!!!!”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하고픈 말은 이거야. 야낙 님과 절친하게 지냈던 당시 .... 내가 야낙 님께 하고 있었던 그 눈빛을 저 궁녀들이 하고 있다는 것. 특히 이곳의 수발상궁이 그래. 첫 대면부터 무례를 범했을 때부터, 그 년에게서 내 어린 시절의 그림자가 느껴졌어.”

 

 “잠깐, 마나. 아까 뭐라고 했지? 나는 지금 내 귀가 의심스럽다! 뭐라고 했지?”

 

 마나가 설령 하루 종일 엉뚱한 말만 늘어놓는다 해도, 대꾸 없이 그냥 그대로 들어주기만 하려했던 란초이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입을 열고 있었다. 자신이 알기에 야낙과 마나는 단지 서로 오래지낸 사이며, 주인과 몸종이라는 평범한 주종관계에 불과했었다.

 

  둘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지만, 이건 자신이 무시하고 지나가기엔 심각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뒤를 잇는 마나의 말은 더더욱 경악스러웠다.

 

 “나도 내 소중한 친구의 목숨을 희생시켜서 야낙 님을 궁지로 몬 적이 있었어. 그리고 나는 내 모략을 성공시켰지. 야낙 님은 나 때문에 본인 백부에게 사형까지 선고받았다고.... 낙 님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그녀의 숙부까지 내가 가로챘기 때문에 당시 그 사형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

 

 “.............”

 

 “주변인을 희생시켜 상대방을 말살시키려면, 그 주변인을 다룰 줄 알아야하는 건 기본이고 무엇보다 주변을 에워싼 환경이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해야해. 이런 기초적인 말살법은 나 같은 못 배운 야만인이나 쓰는 건 줄 알았더니.... 문명사회인 이 왕성에서 또 쓰일 줄은 몰랐네. 하, 어쨌든 원조는 나야. 그런 모략에 야낙 님을 또 말리게 할 순 없어.”

 

 선뜻, 마나를 따라 도와야 할지 말아야할지 판단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혼란스런 표정을 지으며 란초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그녀가 다시 한 번 더 매섭게 인기척을 살피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런 과거 얘기를 꺼낸 건, 어디까지나 이 상황을 본질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거였어. 지나간 일이야 아무렴 어때! 중요한 건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알고 있다는 거고.”

 

 “...........”

 

 이미 누차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마나는 더욱더 소리를 낮추며 속삭이고 있었다.

 

 “또 하나 다른 음모를 감지하고 있다는 거야. 누군가가 야낙 님의 속옷을 빼돌리고 있었어. 첫날 밤 전부터 계속 해서 말이야. 야낙 님은 진즉에 눈치 챈 것 같지만.... 처녀성 검사부터 해서, 지금의 수작질까지 이건 우리가 보기엔 단순한 연막이야.”

 

 “연막?”

 

 “시선 끌기용. 주변에 갖은 함정을 파놓아 목표물이 눈앞의 거대한 덫을 피하지 못하는 거야. 함정은 빠지면 다치기야 하겠지, 하지만 덫은 걸리면 그걸로 끝이야. 일의 흑막은 그걸 노리는 거겠지.”

 

 “그, 그럼 그 덫은 뭐지?”

 

 “너도 여자잖아? 신부의 속옷을 설마 궁녀들이 맡으려고 가져간 건 아닐 거 아냐.”

 

 진심으로 놀라 묻는 란초이에게 그것까지 설명해야 하냐는 듯 눈을 가늘게 뜨는 그녀였다. 하지만 동료가 정말 몰라 하며 자신의 답을 기다리자 마나가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와.... 진짜 좋게 좋게 같이 일하고 싶어도 대가리가 그 정도로 안 돌아가서야.. 야 이 멍청아, 속옷은 왜 가져가겠어? 월경주기를 파악하려고 가져간 거 아니냐. 같은 여자끼리 그 정도도 파악이 안 되선.... 쯧.”

 

 월경이란 단어에 란초이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자, 정말 동료가 방각시의 그 순간을 눈치 채지 못한 거라 판단했는지 마나의 눈빛이 다시 경멸로 물들어 지고 있었다.

 

 “.........”

 

 “어쨌든, 분명히 이것들 한 달 이내로 임신 문제가지고 소란을 일으킬 심산이야. 저 개년들이 자살 소동을 일으키면서 주의를 산만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뭐라도 대책을 세울 텐데.... 일단, 란초이. 너도 이제 알았으니까, 이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네 특기대로 저 개년들 뒤를 잘 밟고 있어. 나는 야낙 님의 음식과 간식에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할 테니까.”

 

 “알겠다.....”

 

 “자살을 택한다면 높은 확률로 목을 매다는 걸 거야. 너는 목매달기 쉬운 장소를 물색해서 나한테 보고해. 나는 오늘 작업에 쓰일 연장 좀 준비해야겠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어디론가 연기처럼 자리를 빠져나가는 그였다. 물러가는 동료의 뒤편을 보며 본인도 행동에 나설 요량이었는 지 황급히 걸음을 재촉하려던 마나가....

 

 ‘..........?’

 

 잠시 뭔가 이상한 점을 자각했는지, 다시금 란초이가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동안 야낙이나 야낙을 위협하는 주변에 신경 쓰느라 의외로 눈치 채지 못한 게 있었다는 걸 문득 이 자리에서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잠깐만, 란초이는 우리와 행동을 같이한 이래로부터 단 한 번도... 그걸....’

 

 가슴 속을 강타하는 또다른 위기가 섬광처럼 자신의 직감을 때리고 있었다.

 

 “.......잠깐만....”

 

 마나의 안색이 귀신을 본 것처럼 파랗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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