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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일곱 번째 기사
작가 : 프로즌
작품등록일 : 201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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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시작된 연극(7)
작성일 : 16-04-24 20:35     조회 : 625     추천 : 0     분량 : 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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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썩!

 “저기, 이게 뭡니까?”

 “보고도 모르시오? 뭐긴, 비르니(주 : Byrnie, 쇠사슬갑옷의 한 종류)지. 그 꼬레안지 하는 나라의 기사들은 갑옷 안 입소?”

 “어 그게 그러니까……. 왜 이걸 제게?”

 “허어? 체력단련 해야 하지 않소? 체력단련 하려면 당연히 체인메일(주 : Chain mail, 쇠사슬을 엮어 만든 사슬갑옷)을 입어야지. 근데 상하의를 모두 착용하는 건 너무 무거울 거 같으니 내 특별히 비르니만 입히기로 결정했소.”

 “…….”

 헬포드가 지운에게 건 낸 것은 사슬갑옷의 한 종류인 비르니였다.

 비르니는 작은 쇠사슬을 엮어 만든 셔츠형태의 갑옷으로서, 중세에는 보통 일반 병사들이 착용하곤 했다.

 일반병사에게까지 체인메일이나 플레이트메일(주 : Plate mail, 금속판으로 만들어져 전신을 보호하는 판금갑옷)을 지급 한다는 것은 현대의 빌 게이츠 같이 돈이 땅에서 솟아나는 부자가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 비르니, 혹은 밑단이 좀 더 긴 호버크(Hauberk)를 착용했다.

 문제는 비록 플레이트아머만큼은 아니지만, 비르니도 꽤나 무거운 놈이라는 거다.

 ‘아 미치겠네.’

 지운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체력단련이라 길래 단순히 성 뒤뜰에 마련된 연병장을 돌거나 여러 가지 기구를 이용해 단순한 근력 기르기를 할 줄 알았다. 좀 더 심할 경우 유격을 받을 때처럼 목봉체조나 하지 않겠나 하고 예상했다.

 ‘그런데 비르니라니……. 하, 하하.’

 지운은 과연 이것을 진짜 입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 뭐가 허전하시오? 그럼 커이프(주 : Coif, 쇠사슬을 엮어 만든 두건)도 드릴까?”

 “아, 아닙니다! 그냥 비르니만 입죠! 하, 하하핫!”

 “뭐 아쉬우면 언제든지 말씀하시오.”

 스페인의 한 박물관에서 운 좋게 커이프를 얻어 써 본 지운은 바로 목이 뻣뻣해지는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것을 쓰고 체력단련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씩 웃는 헬포드의 얼굴이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으허허. 난 죽었구나…….’

 죽지는 않을 것이다.

 헬포드는 어디까지나 ‘체력단련’을 가르치는 교관이었으니까.

 

 ******

 

 지운은 아주 잘 걷고 뛴다.

 지구력에 있어서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지운이다.

 그래서 내심 중세 병사들과 비교해서도 자신이 꿀릴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어쨌든 그는 군대에서도 행군과 오래달리기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최고 상위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자부심은 30분도 되지 않아 뜨거운 유월의 햇살아래 산산이 조각났다.

 “헤엑! 흐에엑!”

 한 발짝씩 뗄 때 마다 비르니가 쉴 새 없이 쩔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겁고 통풍이 잘 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뜨거운 햇볕 아래 잘 달구어진 사슬이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어 맨살이 들어난 양 팔을 쓸어대는 고통까지 느껴진다.

 인세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빨리빨리 뛰지 못해? 모래시계가 다 떨어지려면 아직이닷!”

 ‘악마다, 악마야!’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성벽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두 발을 쭉 펴서 테이블 위에 걸친 채로 부채질을 하는 헬포드의 모습은, 뭐 악마라고 부를 것 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가 이 뜨거운 햇살 아래 쉴 새 없이 뜀박질을 하고 있는 신세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악마가 따로 없었다.

 지루한지 가끔 하품을 하는 모습은 그야 말로 훈련이고 뭐고 달려가서 귀싸대기를 한 방 날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교관이고 지운은 훈련병이다. 까라면 까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허억! 허억! 조금만 힘 내십쇼, 지운 나리!”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지운은 애써 웃어 보였다. 지운과 함께 연병장을 돌던 십여 명의 사내 중 한 명이다. 이름이 아마…….

 “헤엑! 헤엑, 자네도 히, 힘내게. 헤에엑! 르알프 군.”

 랄프라는 청년이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몇 발작 앞서 갔다.

 중세의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키도 작고 체격도 형편없는 데다 수명까지 짧았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하지만 무엇에나 예외는 있는 법.

 원래 유명한 용병대의 대장이었던 헬포드가 용병대를 해체하고 프레드릭 남작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데려온 부하들이 주축이 된 돌격대는 상식적인 중세인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근육질의 탄탄한 몸에 큼직한 체구.

 이 뜨거운 햇빛 아래서도 대열을 맞추어 달리는 군기까지.

 게다가 지운이 비르니만을 걸치고 뛰면서 다 죽어 가는데 비해 그들은 호버크를 걸치고 투구를 쓴데다 팔다리엔 강철토시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어림짐작으로도 20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무게를 온몸에 두르고 30분 째 뛰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완전무장을 한 탓에 메일 안에서 꿈틀대던 근육을 볼 수가 없었다.

 단지 키가 자신보다 작다는 이유로 그들을 우습게 봤던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지운과 함께 연병장을 뛰는 이 병사들은 영지의 병사 중 최정예라는 돌격대였기에 지운이 봤던 수비대원들과 비교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었다.

 하지만 매사에 기사도를 중요시 하는 수비대장 기사 에인세의 언행을 봤을 때는 그들도 별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이러하니 수색중대 제일의 지구력을 가졌던 지운의 자부심이 깨어지지 않으면 더 이상할 것이다.

 ‘사, 살려줘어어어!’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지운은 뛰고 또 뛰었다.

 

 “휴식이다!”

 철퍼덕!

 “허억! 허억!”

 휴식이란 말에 지운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팔을 들어 닦을 힘도 없었다.

 “돌격대에! 해쳐 모엿!”

 한 병사의 구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병사들이 한 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들이 몰려 간 곳은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난 헬포드의 앞이었다.

 “돌격대, 휴식준비 끄읕!”

 “오오냐, 쉬어라!”

 “돌격대, 휴식 실시이!”

 풀썩풀썩, 병사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칼 같이 움직이던 병사들이 휴식시간이 되자 완전히 빠진 말년병장 같은 모습으로 두런두런 떠들며 휴식을 취했다.

 “크아! 오늘은 제법 더운 걸.”

 “그러게 말이야, 이번 여름은 장난이 아니겠어.”

 “으하하! 그렇다면 성 아래에 사는 계집들도 홀랑홀랑 벗어 대려나? 이거 생각만 해도 물건이 불끈거리는구나!”

 “파스통 이 친구 이거, 당체 마누라 엉덩이로는 만족이 안 되나 보지? 그럼 내 엉덩이는 어때?”

 “사양하겠네, 피레. 버짐이 잔뜩 핀 그런 엉덩이 따위!”

 와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고 떠드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지운은 잠시 전까지 연병장을 돌던 그들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정예병사라고 해도 그렇지 방금 전까지 중무장을 하고 연병장을 돈 자들이 저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웃고 떠들 수 있단 말인가?

 지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축 처진 몸을 이끌고 가까운 나무그늘 아래로 향하는 지운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병사들의 즐거운 휴식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그때 버짐이 잔뜩 핀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는 피레라는 병사가 지운 쪽으로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나저나 말이야, 저 지운이라는 귀족나리, 약골인 줄 알았는데 꽤 버티는 걸?”

 “그러게 말이야. 키만 크고 얼굴은 허여멀건 것이 갑옷이나 제대로 걸칠까 생각했는데. 힘들어 하긴 해도 잘 뛰네. 혹시 가짜 귀족 아냐?”

 병사들이 지운을 흘끔거리며 중얼 거렸다.

 키가 크고 얼굴은 하얀 것이 갑옷을 걸치는 법이나 제대로 알까했던 귀족나리는 생각 보다 훨씬 잘 버텼다.

 비록 비르니만 착용하고 있었지만 귀하게 자랐을 게 뻔한 귀족나리가 자신들과 같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 병사들에게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들이 아는 귀족들은 잘난 척에 거드름만 피울 줄 알았지 하나 같이 비실비실한 약골이었다.

 물론 그들의 주군 프레드릭 남작과 영지 기사들만 빼고 말이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쇼. 저 분이 그래도 저기 먼 바다 건너 문물이 뛰어난 나라에서 온 백작가문의 장자라는 거 아닙니까? 그 뭐래더라? 꼬레안가?”

 다 죽어가던 지운을 위로했었던 랄프라는 청년의 말이었다.

 랄프의 말에 병사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그를 향했다.

 랄프는 돌격대답게 몸도 탄탄하고 평민치고 얼굴이 반반한 편이라 성의 메이드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게다가 말솜씨까지 제법 훌륭해서 유혹한 메이드들을 통해 이것저것 성내에 떠도는 소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백작가문? 햐, 대단한데. 그렇담 미래의 백작각하 아냐?”

 “미래의 각하는 무슨. 저 귀족나리의 나라는 여기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제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못 돌아간대요.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거참 복도 지지리도 없는 귀족나리시네. 거기 있었으면 떵떵거리고 잘 살았을 거 아냐. 뭐 하려고 여기까지 왔대냐?”

 돌격대에서 가장 어린 병사 랄프의 눈빛이 조심스럽게 변했다.

 “그게…… 저도 얼핏 들었는데 말이죠. 저 양반은 외국인이긴 하지만 저기 하늘 위에 계시는 그분을 뫼시는 나라에서 오셨댑니다. 주교님 같은 사제 분들이 매주 해주시는 말씀인가 뭔가를 전하러 배 타고 우리나라에 왔다내요. 근데.”

 “근데?”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랄프의 얼굴이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글쎄…… 그게 드래곤 산맥을 넘어서 왔대요.”

 “뭐어?”

 병사들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하지만 그렇게 떠진 눈들은 하나 같이 같잖다는 듯 금세 찡그려졌다.

 “이 새끼, 사기치고 있네. 말도 안 되는 소리하구 자빠졌어.”

 “낄낄! 내 살다 살다 그런 허풍은 또 처음 듣는다. 드래곤 산맥을 넘어? 에끼 이놈아! 아 그래, 혹시 크롬웰의 숲은 안 지났대냐?”

 한 병사의 말에 나머지가 또 큰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들 랄프를 향해 허풍 치지 말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웃느라 여념이 없었다.

 개중에는 그의 머리통을 두드리는 짓궂은 병사도 있었다. 피레라고 불렸던 쾌활한 병사였다.

 “……데요.”

 “푸헤헤헤! 뭐?”

 “진짜라고요.”

 랄프의 머리를 두드리던 피레의 손이 멈췄다.

 그와 함께 용병들의 웃음소리도 잦아 들어갔다.

 잘 못 들었다는 듯 피레가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냐, 방금?”

 울상이 된 얼굴로 랄프가 대답했다.

 “아 진짜라고요! 저기 마을 자경대 롭슨이 그랬어요. 저 귀족나리를 처음 발견한 곳이 크롬웰의 숲 입구였다구요. 크롬웰의 숲에서 튀어 나왔다고 그랬어요. 자기가 에인세 기사님 바로 뒤에 있어서 분명히 봤다고 했어요.”

 병사들 사이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특히 크롬웰의 숲이 어떤 장소인지 잘 아는 나이 많은 선임 병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랄프와 지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병사들, 아니 이 시대의 인간에게 있어 드래곤 산맥은 ‘같은 땅에 존재하지만 다른 하늘이 떠 있는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른 세상을 의미하는 곳이었다.

 드래곤 산맥을 지날 수 있는 인간은 극소수다.

 배운 것 없는 평민들이었기에 어떤 대단한 분들이 그곳을 다닐 수 있는지는 잘 몰라도 단 하나의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성스러운 레예스께 인정받은 고귀한 자들만이 드래곤 산맥의 흙을 밟고 다닐 수 있는 자격이 있다!

 

 1천년도 더 지난 옛날, 최초의 대천사 훼리암에게 직접 축복을 받은 세 군주의 후손들이라는 말도 있었고, 프락세리우 산 정상의 대성당에 기거하시는 교황과과 믿음이 깊은 대주교들이야말로 그 고귀한 자들이라는 말도 있었다.

 또한 가장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이 땅에서 더 이상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전설의 ‘엘프’야 말로 허락받은 자들이라는 말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평민들, 어지간한 귀족들이라도 죽을 때까지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높으신 나리들이란 것은 똑 같았다.

 그럼 크롬웰의 숲은 어떤가?

 프레드릭 영지 병사들 입장에서 보자면, 전설이나 다름없는 드래곤산맥보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영지 옆에 바싹 붙어 있는 크롬웰의 숲이 더 피부에 와 닿는 현실감이 있었다.

 4백 여 년 전, 위대한 건국왕이 이끈 쉰이 넘는 기사들이 숲에 들어간 후 그 수가 절반으로 줄어 들은 채 도망 나왔다. 그것도 보름 만에.

 멋 부리는 귀족들이 재미삼아 만든 기사단이 아니라, 오랜 전쟁을 겪은 ‘진짜 기사’ 쉰 명이 보름 만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았고 한창 젊은 시절의 건국왕의 호기로 계획된 무모한 모험이었지만, 기사단의 반수가 궤멸됐다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그때 생긴 숲의 별명이 바로 ‘기사의 검을 씹어 먹는 악마가 사는 숲’이었다. 그 별명이 너무 길어 다시 만든 이름이 바로 ‘크롬웰의 숲’이고.

 크롬웰은 1천 년 전 사악한 마술로 용감한 기사 수백 명을 불구덩이 속으로 디밀어 넣었다는 전설 속의 마법사의 이름이었다.

 그야말로 그 숲에 살고 있다는 악마의 종자들의 군주가 딱 일듯 한 자가 바로 마법사 크롬웰이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어느 지방에서나 있을 법한 그냥 ‘불길한 숲’ 정도로 치부해도 될 법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건국왕의 기사단이 궤멸 됐다는 말은 당시 국왕의 반대파가 지어낸 헛소문이라는 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꿈같은 옛 전설은 그 빛이 금방 바래도 어제 흘린 핏자국은 쉽게 마르지 않다던가?

 50여 년 전, 웨이크필드 후작과 그의 봉신가문들의 기사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토벌대가 크롬웰의 숲으로 떠난 적이 있었다.

 서른 명의 기사와 3백여 명의 병사들, 그리고 노련한 용병이 또 1백. 기사들의 종자와 토벌대를 돕는 비 전투인력까지 합치면 물경 5백 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된, 그야말로 역사상 몇 차례 결성되지 않은 대규모의 토벌대였다.

 왕에게 보고한 내용은 후작영지의 상당부분을 잡아먹는 숲의 개간과 숲의 깊숙한 곳에서 간혹 기어 나와 민생을 어지럽히는 오크무리의 본거지 격퇴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포화상태나 다름없는 후작가문과 봉신가문의 전투력 발산이 주된 이유였다.

 그 넘치는 전투력을 그대로 두기엔 혈기왕성한 젊은 기사들의 피가 들끓어 올라 터지기 직전인데다 병사들의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가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반란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묘안을 짜내던 중 크롬웰 숲의 토벌 이야기가 나와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가문의 충직한 기사였던 봉신들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영주들이 반대할 리가 없었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악마의 종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우리 용감한 기사와 병사들이 단죄의 검을 들 것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명분인가?

 게다가 점령한 숲은 각 가문에게 개간권리를 맡긴다니 실리적이기도 했다.

 두 달간 준비기간을 거쳐 다시 한 달의 전투교육을 철저히 받고 보무도 당당하게 토벌대는 출발했다.

 그 누구도 토벌대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사들은 당당했고 이미 승리를 챙긴 듯 여유가 넘쳤으며 그들이 높게 든 검은 그 무엇도 가를 수 있게 보였다.

 그러나 토벌대는 석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듯 후퇴했다.

 절반도 돌아오지 못한 처참한 패퇴였다.

 열이 넘는 기사가 전사했다. 생존자 중에서도 상처 없이 멀쩡하게 돌아온 기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병사들 쪽은 좀 더 심했다.

 3백여 명의 병사들 중, 돌아 온 병사들은 고작 예순 명이었고, 그 중에서 사지가 멀쩡히 붙은 채로 돌아온 자는 서른에 지나지 않았다.

 비 전투인원과 용병들은 전멸했다.

 그렇게 살아 돌아온 자들의 보고는 웨이크필드 후작의 뒷목을 움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석 달의 토벌기간 중 전진한 거리는 50마일(약 80km)이었으며 두 마리의 트롤과 쉰일곱 마리의 오크를 궤멸 시켰음.

 

 물경 5백에 달하는 인원을 투입하고 얻은 성과 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이후로 크롬웰의 숲은 ‘피가 마르지 않고 흐르는 땅’으로 이 지방 사람들뿐만 아니라 프림 왕국 전체에 그 악명을 깊숙이 각인시켰다.

 

 “지, 진짜 크롬웰 숲을 지나왔단 말이야?”

 피레의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갔다.

 50년 전, 크롬웰의 숲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 중에는 자신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크롬웰 숲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았던 할아버지를 보고 자랐던 그가 가장 놀라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예, 그렇대요.”

 조용해진 병사들 사이에서 며칠은 굶은 사람이나 낼법한 침 넘기는 소리가 하나 둘씩 들려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떠들고 웃던 병사들이 일순간 조용해지자 슬그머니 지운의 시선이 병사들 쪽으로 옮겨갔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조용해지네? 응?’

 병사들을 바라보던 지운과 한 병사의 눈이 마주쳤다.

 아까부터 제일 큰 목소리로 떠들던 그 병사는 지운과 눈이 마주치자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뭐야 대체?’

 그의 모습에 의아해진 지운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설마 저 귀족나리가 주교님 같은 대단한 사제님은 아니겠지?”

 “에이, 사제가 뭐가 아쉬워서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과 뒹굴고 땀 흘리나?”

 “그렇지. 주교님 같은 사제라면 외국인이라도 당장 수도로 가지 말이야.”

 “그럼 정체가 뭘까? 몇 바퀴 돌았다고 저렇게 퍼질 정도면 절대 기사님은 아닌데 말이야.”

 “그러게…….”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계속 됐다.

 급기야 나중에는 드래곤 산맥에서 온 드래곤이라느니, 자기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엘프의 눈동자가 저 귀족나리처럼 검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며 티격태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시끄럽다 이놈들아! 이 조랑말 똥구멍이나 처 핥아먹을 자식들이! 냄새나는 입으로 뭘 그렇게 떠드느냐!”

 이렇게 무지막지하고 걸걸한 입담을 아무런 여과 없이 서슴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딱 한명 밖에 없었다.

 “에구머니나!”

 “간 떨어지겠습니다요, 대장님.”

 헬포드의 호통에 병사들이 몸을 움츠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지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영주님인 프레드릭 남작이 아닌 바로 기사 헬포드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이 헬포드와 함께 용병대에서 함께 생활했던 용병출신이었기에 그들은 헬포드를 무서워하면서도 아직까지도 ‘대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를 잘 따랐다.

 “이놈의 새끼들, 내가 대장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경이나 기사님이라고 부르라고!”

 “아, 그게 아직 적응이 안 돼서요.”

 파스통이라는 병사의 변명에 헬포드가 눈을 부라렸다.

 “파스통 너 소대가리 새끼! 그럼 내가, 니놈 마누라를 암말 도로시라고 계속 부르면 좋겠냐? 너는 암말이랑 눈 맞은 자식이라고 불러주리?”

 “헉! 그, 그건 아닙니다만.”

 파스통의 아내인 도로시는 그 펑퍼짐한 엉덩이 덕분에 처녀 시절, 사내들에게 항상 ‘암말의 엉덩이를 가진 도로시’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런 도로시와 눈이 맞아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시켜 그녀를 책임지게 된 파스통은 당연히 ‘암말이랑 눈 맞은 자식’이 되어 버렸다.

 물론 성격이 걸걸한데다 병사 중에서 특히 힘이 좋은 파스통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괴물, 헬포드 외에는 없었다.

 “쓸모도 없으면서 시끄럽기만 한 놈들아! 그 꽉 막힌 귓구멍 씻고 잘 들어라. 지운 경은 그 저주 받을 숲에서 악마의 종자들에 대항해 싸우다 동료들이 싸그리 뒈지…… 커흠! 죽었다. 그러나 주교님도 인정한 멋들어지고 어…… 그 뭐냐, 암튼! 성스러움이 무지하게 담긴 물건을 지니고 있었기에 크롬웰의 숲에 사는 악마의 종자들이 함부로 굴지 못한 것이다. 알았느냐!”

 “아하!”

 “그랬구나! 어쩐지……. 그래도 운이 굉장히 좋은 나리시네요.”

 “그러게. 그런 대단한 성구를 지니고 계신데다 운까지 무진장 좋으시니 크롬웰의 숲에서 무사히 살아오실 만도 했네.”

 병사들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수군 거렸다.

 너무나 쉽게 태도가 바뀌는 것이 얼핏 수긍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50년 전 크롬웰의 숲에서 살아 돌아온 기사와 병사들은 하나 같이 몸에 십자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적적인 사실이 대외로 공표된 후 수많은 기사들과 용병들이 성당에서 제작한, 특별히 성수까지 뿌려진 십자가를 몸에 지니게 된 것은 물론이다. 지금 지운을 경외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병사들도 모두 십자가를 소지하고 있거나 몸 한구석에 문신을 새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원초적인 공포에 기인한 한 가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이 십자가가 크롬웰의 숲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중앙교구와 사제들은 그분의 증표를 의심하지 말라고 했지만, 순진하게도 그 말을 완전히 믿고 십자가만 지난 채 맨몸으로 크롬웰의 숲으로 들어갈 ‘절대적인 믿음‘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보다는 지금 당장 자신의 손에 들린 창칼을 좀 더 신봉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병사들에게 있어 지운은, 감히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신의 성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운까지 지지리 좋은 귀족나리로 각인되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거참…….’

 나무그늘 아래서 헬포드의 호통을 얼핏 들은 지운은 왜 그가 저런 말을 하는지 짐작 할 수가 없었기에 멍하게 그를 바라만 보았다.

 “휴식 끝이다! 다들 집합!”

 헬포드의 외침에 병사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에휴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지운은 다시금 질서정연하게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병사들 쪽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힘찬 구령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까까지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는 구령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기억에서 멀리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그 모습을 살짝 내 비친, 지금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진실의 그림자 역시, 어느새 하늘의 정중앙의 위치한 태양이 지시하는 대로 점점 그 모습을 작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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