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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3-1화. 다만, 다음, 다시.
작성일 : 17-07-28 19:26     조회 : 329     추천 : 0     분량 : 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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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그렇게 'OH'는 공론의 결말대로 사라졌다. 에디의 발언은 기사 1면을 장식했으며, 에디와 관련된 자기개발서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표단은 재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공론에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는 측면이 가장 컸으며, 발표자보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아이가 훨씬 더 나았다는 평가도 비꼬듯이 돌았다. 진행을 주도했던 무명 핀란드인은 반짝스타가 되었고, '쓰레기통' 발언을 한 김낙희 아이는 간간이 B급 TV쇼에 나왔다. 다만, 아이는 방송에서 방송작가가 웃길 것이라고 적은 대본만 따라 할 뿐이었다.

 아, 바다처럼 담긴 정수는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OH 폐지 찬성' 패널에 있었던 청년을 기억하는가? 인간과 로봇의 공동운명체를 말하며 곁들인 제안, '휴머노이드 보호법'. 이것으로 인해 나와 아라는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사람은 죽기 전에 눈을 깜빡이는 찰나만큼 자신의 과거를 빠르게 볼 수 있다. 흔히 이것을 주마등이라고 일컫는데,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라는 이미 자신의 과거를 전부 보았는지 혼이 나간 상태다. 나야 뭐, 다 보기에 너무 생이 길어 몇십 초는 더 걸리겠고, 다음 생이 있으니... 그래도 '지금'이의 몸에서 떠나기 전까지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어느덧 인공대기로 지상에 쏘아지는 햇볕을 조절하는 계절이다. 온 세상이 맑은 산소를 배출하기 위해 초록빛으로 물들었고, 청명한 하늘에 두툼한 분홍구름이 보였다. 지상으로 곧장 떨어지는 자외선을 차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분홍구름은 흰 구름에 섞여 하늘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 계절의 하늘을 바라보며 '여름은 하늘의 봄', '천춘의 계절'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사족을 더하자면 우연의 일치인지 '분홍구름'을 만드는 인공 대기 시설이 강원도 '춘천' 소양강댐 인근에 있다. 여름만 되면 다들 분홍구름을 가까이 보려고 이곳으로 모인다.

 학교도 여름방학이다. 비록 지구온난화 시절에 비하면 기온이 점차 안정적으로 떨어졌지만, 더운 건 더운 거다. 나는 이 더위 속에서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 같은' 방학을 견뎌야 한다. 이럴 때는 군말 없이 피서다. 더위가 나를 찾지 못할 곳으로 떠나야 한다.

 

 "아니, 그래요. 더위를 피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왜 제 방에서 피하시는 겁니까!"

 아라는 의자에 앉아 오른손에 커피 아이스크림을 든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말을 마치더니 '끄어어' 거리며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왜? 냉방 시설 잘 갖췄지, 지하에 있어서 햇빛도 안 들어오지, 북에 있지. 이 정도면 거의 삼위일체잖아? 방에서 우리 몰래 보려는 거라도 있어?"

 아라는 내 말에 고개를 똑바로 들더니 볼이 빨개졌다.

 "여, 옆에 나루 양도 있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나루는 아라가 키우는 미랭이, '클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미'하고 울었다. 나루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미, 미!"라고 말하자 클루도 덩달아 '미~미~'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나루의 얼굴은 초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손댄 것처럼 고양이 분장이 남아 있었다.

 "나루가 왜? 디스크 안에 보기 아까운 뭐라도 있어?"

 "없어요!"

 "그래? 재밌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라도 있는 줄 알았지."

 내가 장난기를 담아 갸우뚱한 표정을 짓자, 아라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미미야, 미, 미!"

 "미안한데, 나루 양. 걔 이름은 미미가 아니라 클루야, 클루."

 "글루?"

 "아니 접착제가 아니라 클루."

 "크툴루?"

 나루는 순식간에 귀여운 미랭이를 괴상한 문어 신으로 바꿔 버렸다. 나루의 바보 같은 청력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라는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쩍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아라의 손에 들고 있던 커피 아이스크림이 정신을 깨워주기 위해 손등으로 떨어졌다.

 "아, 뜨거! 아니 아, 차가!"

 갑작스러운 촉감에 놀란 아라는 깜짝 놀라더니 삼류 코미디에 나올법한 바보 같은 몸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그런 아라를 보고 신나게 비웃었다. 심지어 클루도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처럼 웃는 것 같았다. 아라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모두 입에 넣더니 골이 띵한지 신음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었다. 연달아 터지는 바보스러움에 나는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지하실에 있는 기계 소음이 묻힐 정도였다.

 "으아아악, 다 나가요! 나가! 클루 빼고 다 나가!"

 나는 너무 웃다 기침을 콜록대며 아라에게 진정하라고 손짓했다. 나루는 바닥에 누워 다리를 흔들며 "바보 같아!"라고 소리치며 계속 웃었다.

 "진정해, 아라.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어. 벌써 갈 수 없다고."

 나루는 스위치처럼 웃음을 뚝 그치더니 갑자기 앉은 채로 내 어깨를 옆에서 안아 볼을 맞닿았다. 마시멜로 같은 촉감이었다.

 "이야기? 무슨 이야기? 관계 이야기? 맞아, 저런 바보랑 위장 연애는 그만두고 나와 사귀자, 지금아. 부모님도 허락해주실 거야."

 "아, 저도 그거 동감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를 북에 있는 애인이라고 했어요? 제가 얼마나 난처한지 알아요?"

 "아, 그래, 그래! 나도 머저리다! 머저리!"

 나루는 내 외침에 나를 더욱 꽉 안았다. 눌린 볼이 터져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지금이가 머저리일지라도 사랑해, 어쩌면 나도 머저리일지도 몰라. 지금이밖에 모르는..."

 "으아악! 떨어져! 더워!"

 "우우~ 커플지옥, 여름 볕에 타 죽어라."

 도대체 나는 어쩌다가 이 녀석들이랑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 이번 생은 글렀어. 클루는 흥미로운 괴생명체를 보듯이 우리를 빤히 보더니 내 무릎 위에 폴짝 뛰어 앉았다. 온 신경이 고슴도치처럼 삐쭉 솟아올랐다.

 "떨어져, 이것아."

 "그래, 크루. 지금이는 나만 붙을 수 있어."

 "크루가 아니라, 클루..."

 "너도 떨어져, 이것아."

 나루는 안은 손을 놓더니 "'이것'이라니!"하며 앉은 채 좌절했다. 클루가 내 무릎에 내려와 나루의 팔을 혀로 핥았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뭐예요?"

 아라는 책상에 놓인 티슈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답했다.

 "우리의 협력에 관한 거야. 네가 말했던 '폴에이트(Fall Eight)', 영생 계획이 실존해도 내 첫 기억 2002년부터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2355년, 그 353년의 기억을 설명할 수 없어. 게다가 나는 정확히 육체적 영생이 아니야. 다음 생애 다른 태아의 기억에 들어가 이전의 기억을 복구하는 거지.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어."

 아라는 갑작스러운 재협상에 인상을 찌푸리더니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런 말 꺼내서 미안해. 하지만 저번 일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 나 모두 위험했었으니까."

 "아니에요, 미안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아라는 말을 멈추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리고 말없이 1층으로 올라갔다. 얌전한 그의 발소리가 바닥을 두드렸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나루가 '아!'하며 감탄사를 냈다.

 "사실 지금이는 휴머노이드가 아닐까?"

 나는 황당한 추리에 '1+1=11'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보듯이 쳐다봤다.

 "나루야, 그런 건 삼류 영화에서도 먹히지 않아. 그리고 2002년에 휴머노이드는 존재하지도 않았어."

 "그치만 기억만 옮겨지는 거잖아? 영혼도 같이 따라가?"

 "여...영혼?"

 나루는 말똥말똥한 눈을 부릅 뜨더니 황소처럼 코의 평수를 넓혔다. 영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정말 나는 기억만 옮겨진다. 불확실한 첫 생의 기억만 망가진 채 계속 데이터처럼 기억을 쌓아간다. 정말 백업이 된 로봇과 다를 게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너는 내가 로봇이어도 좋아?"

 "응, 좋아. 나는 지금이가 지금이어서 좋으니까."

 나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안았다.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 따뜻함이 형태 없는 불안감을 지웠다.

 "더더욱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았어. 왜 나루가 날 안았는지..."

 나는 나루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을 이었다.

 "여기로 알 수 있으니까. 내가 로봇이라면..."

 가슴에 얹은 손을 내 머리로 옮겼다.

 "여기로 알았을 거야."

 나루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혀가 얼었는지 입술만 살짝 떨었다. 나는 그 입술이 너무 귀여워 손으로 콱 잡았다. 속이 꽉 찬 팔방 같다. 나루는 내 손짓에 당황했는지 두 팔을 펄럭였다.

 "아차, 미안."이라는 말과 함께 입술을 놔줬다.

 나루는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미안해, 너무 귀여워서."

 내 말을 듣더니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등으로 가리며 "괜찮아."라고 답했다.

 "두 사람 뭐해요? 집에 안 가요?"

 아라는 컵라면을 조심스레 든 채 내려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 그러네. 가야겠다. 나루야, 모모 데리고 어서 가자."

 "모모 위에 있어요. 그 여자랑 앉아서 뭐하던데."

 그 여자는 아라의 어머니다. 또다시 아라에게 말실수를 할까 봐 그냥 "그래?"라고 답했다.

 

 우리는 아라에게 인사하고 1층으로 올라갔다. 모모는 의자에 앉아 그녀와 같이 무언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막바지에 이른 체스가 진행 중이었다. 모모는 룩을 'G1'으로 옮기더니 "체크메이트" 라고 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패배를 인정하는 와중에도 얼굴에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역시, 휴머노이드를 이기기란 너무 어렵네요."

 "좋은 경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모모의 말에 체스판을 보았다. 모모도 대부분 중요 말들을 그녀에게 잃었다. 남아있던 킹 하나, 나이트 하나, 룩 하나 그리고 폰 2개로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는 혼자 노는 걸 좋아해서... 집에서 혼자 체스를 많이 뒀어요. 이 정도면 모모도 이길까 생각했는데, 아직 무리네요."

 "모모 대단해! 역시 모모가 최고야!"

 철없는 나루의 큰 목소리에 그녀는 입을 가린 채 작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모모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루 손을 잡고 그녀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음에 또 와요. 꼭 휴머노이드를 이긴 플레이어가 될 거예요."

 그녀의 밝은 웃음 뒤에 홀로 체스를 두는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그리 기쁘지 않았다.

 

 밖에 나오니 분홍구름은 사라지고 바다보다 진한 하늘이 남아있었다. 나루는 나와 모모를 양손으로 잡은 채 타박타박 걸었다. 해가 점점 길어져서 초저녁이 되었음에도 조명을 켜지 않은 집이 곳곳에 보였다. 골목길을 메우는 구수한 찌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나루는 배에 찔렸는지 곧바로 꼬르륵 소리를 냈다.

 "같이 UTX를 탄다면 우리 집에서 저녁 먹을 텐데. 너무 아쉽네."

 나루는 내 말을 듣더니 모모에게 고개를 돌렸다.

 "모모, 우리도 언더트리에서 살자, 응? 그럼 지금이랑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잖아."

 모모는 그런 나루에게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걷기만 했다.

 "칫, 안 되는 거 나도 알아. ULT는 비싸니까. 그리고 우린 수급받은 시간으로 버텨야 하잖.. 아야!"

 나루는 앞을 안 보고 걷다가 모퉁이로 들어서는 사람의 팔에 부딪혔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더니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눈깔을 똑바로 뜨고 다니는 거야! 뭐야!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대로에서 확성기처럼 울렸다. 귀가하는 사람들은 길에 멈춰 서서 싸우는 연인을 구경하듯이 우리를 힐끗 보며 지나갔다. 그의 입 주변에 있던 자글자글한 주름이 힘을 받아 더 깊어졌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화산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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