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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80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完)
작성일 : 17-07-28 15:11     조회 : 368     추천 : 0     분량 : 12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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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80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 현석과 희연

 

 

 

 현석은 그 날 이후로 며칠 동안, 곧장 병원으로 가지 않고 희연과 아침을 먹었다.

 

 “오늘도 일찍 올 겁니다.”

 

 “정말요?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밥을 입으로 가져가려던 현석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뚝 멈췄다.

 

 희연이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웃으며 저렇게 좋아하는 것은 처음 봤다.

 

 문득, 희연의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예쁘다는 말을 담아본 적 없는 현석은 자신이 지금 희연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하는 것도 모른 채로 수술 스케줄을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정리했다.

 

 좋아서 한 결혼이 아니니 부부 사이 같은 거,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가기 바빴고, 희연이 어떤 얼굴로 어떻게 지내는 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 있을 때는 항상 눈치 보며 긴장하던 그녀가 웃는 모습은 촉촉한 이슬비 같았다.

 

 티 없이 맑아서, 아침마다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고민하던 현석의 눈이 저도 모르는 사이 희연의 입술로 향했다.

 

 오늘은 저 입술에서 무슨 맛이 날지, 편식하는 건 없었지만 먹고 싶은 것은 있었다.

 

 희연의 입술에 시선이 닿자 입술을 통해 열기가 번져 나가며 현석의 귀가 달아올랐다.

 

 그는 입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빠르게 걸어가 문을 열고 홱 나가버렸다.

 

 “아,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

 

 

 

 

 

 “후우.......”

 

 현석은 옥상으로 올라와 털썩 주저앉은 뒤 맥주 캔을 땄다.

 

 키스를 처음 해 본 것도 아닌데, 희연의 입술만 보면 자꾸 이상 반응을 보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런 자신이 너무 낯설다.

 

 맥주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옥상 문이 벌컥 열렸다.

 

 “현석 씨, 뭐해?”

 

 그는 옥상 문을 잠근 뒤 제 곁으로 와 앉는 유 선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붉은색 립스틱이 발려있는 유 선생의 입술을.

 

 같은 여자 입술인데. 여태껏 그녀와 수없이 많은 키스를 나눴지만 희연의 입술을 생각할 때처럼 두근거리지 않는다.

 

 “......”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탁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현석의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모를 리 없는 유 선생은 김칫국을 한 사발 마신 뒤 묘한 웃음을 지으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유 선생.......”

 

 “응?”

 

 오늘따라 유독, 입술에 달라붙는 시선이 집요하다.

 

 “나랑, 키스 한 번만 하자.”

 

 “갑자기 ㅇ.......읍!”

 

 현석의 얼굴이 점점 기울더니 유 선생의 입술을 제 입술로 덮었다.

 

 “하아....... 현석 씨.”

 

 희연에게 키스했던 것처럼 상냥하게, 천천히 쓸며 입술을 가지고 놀자 미란이 비음 섞인 소리를 내며 매달려온다.

 

 

 

 현석은 짧은 키스를 끝으로 미란을 떼어냈다. 그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복잡해졌다.

 

 뜨거운 열기가 피어나기 시작한 순간 밀려나버린 미란은 현석을 유혹하기 위해 다시 매달리며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현석은 미란의 손길에 꿈쩍도 안하며 그녀를 내려놓았다.

 

 “미안. 조금 뒤에 예약 환자 봐야 해서 가야 돼.”

 

 달랑 이 말 하나만 남기고서는 옥상에서 나가버렸다.

 

 처음으로 현석에게 거부당한 미란은 어이가 없었다. 항상 제 손길에 응해오던 그가 거부를 하니 짜증 밖에 나질 않는다. 남의 집에 불 질러놓고 발 뺀 격이다.

 

 “짜증나.”

 

 그녀는 현석이 남기고간 맥주를 다 마신 뒤, 캔의 형체가 으스러질 정도로 손에서 무참히 구겨버렸다.

 

 

 

 

 

 ***

 

 

 

 

 

 현석이 차트를 내려다본지 몇 분 채 지나지도 않아, 먼 산을 한 번 바라보고 차트를 한 번. 또 산을 한 번. 같은 행동을 벌써 여러 번 반복하는 중이었다.

 

 이상한 잡념들. 옥상에서 다 털어내고 올 생각이었던 현석은 머리가 가벼워지기는커녕, 더 무거워졌다.

 

 그래서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를 못했다.

 

 희연에게서 맛보았던 느낌은 그 순간의 착각이었음을. 다른 사람에게서도 느낄 수 있는 거라 생각하고 자꾸만 그녀의 입술에 목말라가는 자신에게 반항하듯 미란과 키스했다.

 

 하지만.

 

 미란에게서는 솜 털 같은 포근한 떨림도, 달콤한 향기도 느끼지 못했다.

 

 미쳤나보다.

 

 아니면 감각이 마비 됐거나.

 

 

 

 

 

 ***

 

 

 

 

 

 일주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과 저녁을 같이 먹어준 현석 덕분에 희연은 기분이 좋았다.

 

 남편에게 사랑 받고 사는 평범한 여자들은 얼마나 더 행복할까 싶었으나 그녀는 현석이 일찍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가 있을 동안은 혼자가 아니니까.

 

 그런데, 현석이 오질 않는다. 곧 열릴 거라 생각하며 한참을 기다려도, 철제로 된 현관문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전화를 해봐도 받지 않고, 병원에 전화해 보니 수술이 길어진다고만 했다.

 

 임자를 기다리다 식어버린 현석 몫의 밥과 국에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은 뒤, 희연은 또 다시 혼자 밥을 먹으며 현석을 기다렸다.

 

 

 

 밤 12시를 훌쩍 넘긴 새벽.

 

 띠리릭-.

 

 현석이 왔다.

 

 수술이 끝난 후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다녀온 그의 걸음이 휘청거린다. 마신다는 말보다는 퍼부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쉼 없이 들이켰던 탓이다.

 

 희연의 입술에 흔들리는 제 마음이 뭔지, 갈피를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누가 시원하게 제 증상에 대해 답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술기운에 흐려진 시야임에도 불구하고 희연이 그런 자신을 부축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가 제게 왜 잘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손 떼.”

 

 매몰차게 뿌리치자 희연이 멈칫하며 놀란다.

 

 쓴웃음만 나온다. 왜 나는 이 여자한테 겁만 주는 걸까.

 

 웃는 모습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녀가 자주 웃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르겠다.

 

 그는 희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거칠게 탐했다. 그가 못 느꼈던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희연은 처음 느꼈던 그대로. 너무 달콤했다.

 

 현석은 빳빳하게 굳어가는 희연을 아랑곳 않고 꿀에 달려드는 벌처럼 욕심껏 그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 새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을 때도 희연은 저항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착한 연기하는 마네킹으로 있을 수 있는지 볼 생각이었다. 자신의 아내라는 이유로 내조하는 것도, 더 잘해주고 싶어 하는 것도 다 연기 같았다. 희연이 이런 저가 좋아서 그럴 리 없으니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지. 희연의 시선은 제게 있었으나 온전히 와 있지 않았다.

 

 봐주었으면 좋겠는데.

 

 “왜 저항 않는 거지?”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희연의 시선은 힘들게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제 모든 걸 내어줄 생각이었지만 사랑 없는 관계는 너무 시릴 것 같다.

 

 희연은 무너지지 않으려 주먹을 꽉 쥐었다.

 

 “...저는 당신의 아내니까요. 당신이 원한다면 아내로서의 의무는 다해야하니까.......”

 

 이건 아니야.

 

 이상하게 희연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저렇게 미련한 걸까?

 

 여자에게는 능숙하지만, 정말 필요할 때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소리친다.

 

 “그게 아니잖아! 날 봐! 날 보라고!!”

 

 “저한테 방금 그러신 이유가 그게 아니면 뭔가요?”

 

 현석은 두 손으로 희연의 어깨를 붙들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가 당신 몸을 가지려는데. 그게 말이 돼?”

 

 “아뇨. 저는 현석 씨 사랑해요. 당신은 내 남편이니까.”

 

 “하....... 사랑?”

 

 그래, 그 빌어먹을 사랑.

 

 해준 것도 없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다.

 

 사랑이라 정의 내려도 저로 인해 아픈 마음이 사라지는 게 아닌 걸, 현석도 잘 안다.

 

 현석은 희연과 키스 할 동안 아주 잠시.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이기적인 마음을 품었던 제게 욕을 날리며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쾅!

 

 

 

 현석이 나가 버리자, 집 안은 다시 적막감이 감돌며 싸늘해졌다. 희연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숨죽여 울었다.

 

 사랑 받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

 

 

 

 현석은 집을 나와 미란에게로 갔다.

 

 “현석 씨?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미란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현석은 말도 없이 그녀를 밀어붙이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입안을 거칠게 헤집으며 슬립을 걷어 올렸다. 하얗게 드러난 살결을 매만지자 그녀가 현석에게 팔을 두르며 매달려왔고, 그는 미란이 제 옷을 벗길 수 있게 협조하며 침대로 가 그녀의 위로 올라왔다.

 

 저를 올려다보며 기다리는 미란의 눈빛.

 

 그 순간.

 

 그녀의 얼굴 위로 희연이 겹쳐 보였다.

 

 “현석 씨, 빨리.......”

 

 겹쳐 보인 희연의 얼굴에, 뜨겁게 오른 체온이 찬물을 맞은 것처럼 빠르게 식어갔다.

 

 

 

 왜 그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건지. 양심이라는 게 되살아났다. 여태껏 희연을 두고 저지른 일들이 눈 덩이처럼 크게 쌓여 가슴에 얹혔다.

 

 열기에 젖어 애가 탄다는 듯 저를 꼭 붙들고 있는 미란의 모습은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희연을 강제로 안는 것만 같아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이 더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들 때문에, 이렇게 죄스럽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유지해왔던 제 세상은 무너져 내렸으며, 고통스러운 균열과 함께 가슴이 갈라졌다. 그 자리에 생긴 뜨거운 균열 위로 눈물진 용암이 흘러내린다.

 

 지원은 제 목에 둘러진 미란의 팔을 떼어냈다. 미련 없이.

 

 “안 되겠다.”

 

 “뭐?”

 

 “이제 여기 못 올 거 같다.”

 

 “갑자기 뭐야. 현석 씨 결혼 전까지 이렇지는 않았잖아. 설마, 그 여자 때문이야?”

 

 “......”

 

 미란이 드러난 몸을 가리고서 일어나 앉았다.

 

 “하....... 내가 어이가 없어서. 이제 와서 사랑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사랑? 난 그딴 거 몰라.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그 여자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는 거. 이거 하나.”

 

 “.......”

 

 “어차피 서로 즐기다 언젠가 끝낼 관계였어. 그건 당신이 원했던 거잖아?”

 

 아니야.

 

 자신이 그에게 그런 제안을 걸었던 것은, 그게 아니면 현석의 곁에 못 있으니까. 어떠한 관계의 정의로든 그와 있고 싶었다.

 

 “그걸 내가 끝내는 거뿐이야. 미련이 남아 날 잡으려거든 관두는 게 좋아.”

 

 현석은 정말 미련도 없이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사랑이라니.

 

 현석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며 마주한 현실을 애써 부정했다.

 

 

 

 

 

 ***

 

 

 

 

 

 현석은 희연의 전화도 받지 않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희연만 생각하면 칼로 여러 번 난도질한 것처럼, 벌어진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그 위로 덫 대어지는 것만 같다. 낫지 않을 것만 같은 지독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으며 그를 괴롭힌다.

 

 더 죄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희연을 안고 싶어 하는 제 욕심이었다.

 

 자기가 봐도 지금 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짓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욕망만 쏴 죽이는 총이 있다면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길 벌써 며칠 째.

 

 

 

 전에도 많이 마시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거의 매일을 술과 친구하며 지낸다.

 

 현석의 전화를 받고 나온 선배는 자다가 나왔는지, 부스스한 차림에 삼선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안 나오면 그만인데, 본인이 나와 놓고서는 투덜거리며 그의 옆에 털썩 앉는다.

 

 “뭐야 임마.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내는 게 어디 있냐. 나 어제 밤에 당직 서서 피곤해. 우리 애들도 못 봤는데 내가 네 얼굴을 먼저 봐야겠냐.”

 

 “.......형, 나 좀 도와줘.”

 

 자존심 센 현석이 뜬금없이 도와달라는 말을 하자 잘못 들었나 싶었다.

 

 “무슨 말이야?”

 

 현석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 다 설명했다.

 

 돌을 맞을 각오까지 하고서 하나도 빠짐없이.

 

 눈앞에 엉켜있는 실타래만 풀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불같은 화가 끓어 오른 선배가 현석을 사람 취급도 안하며 따지고 들었다.

 

 “넌 정말 미쳤어. 아내로서 노력하는 사람에게, 넌 남편으로서 뭘 해줬는데?”

 

 “.......”

 

 “그 사람 입장은 생각해봤어?”

 

 사랑하는 여자를 안고 싶은 마음은 남자라면 다 가질 수 있는 거지만 현석은 그럴 자격조차 없는 놈이었다.

 

 현석이 희연을 소개 시켜준 적이 없기에 그녀를 본 적은 없지만,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이런 놈의 곁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감정 이입이 되었다.

 

 “못할 짓은 다해놓고. 안고 싶다는 게 말이 돼? 넌 그게 사랑이야?”

 

 “......”

 

 “게다가, 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놈이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어? 대화도 안 해보고 어쩌겠다는 건데?”

 

 돌아온 대답은 현석을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해.”

 

 “그럴 거면 왜 그 따위로 살았어? 하....... 이 정도만 아니었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네가 저지른 일이니까 방법도 네가 찾아서 해결 해!”

 

 안타깝게도 현석이 그 해결법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틀어진 관계가 방치된 지 5개월이 지나버렸다.

 

 희연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고, 현석은 죄책감으로 얼룩진 시간을 밟으며 고통 속에서 몸부림 쳐야 했다.

 

 

 

 

 

 ***

 

 

 

 

 

 강 회장이 쓰러졌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박 원장은 보고를 받자마자 응급실이 아닌 현석의 연구실로 달려왔다.

 

 “강 회장님, 쓰러지셨단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네가 가는 게 맞는 것 같구나. 다녀와.”

 

 “아....... 저, 지금 바로 수술 들어 가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리를 뜨는 현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박 원장은 문득. ‘저 녀석, 오늘 수술 일정 없는 걸로 아는데?’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 회장이 안정된 후, 현석은 지원과 만나고 오는 길에 강 회장의 병실로 가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살짝 열었다.

 

 멀리서나마 희연의 얼굴을 보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희연이 강 회장의 곁에 앉아 엎드려 있느라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은 희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에게 달려가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매달리며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겨주었고. 현석은 그 절박함에 끌리듯 저도 모르게 그녀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상해버린 희연의 얼굴.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고장 나 버린 가슴은 희연에게 반응하며 두근거린다.

 

 

 

 한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상할 대로 상한 아내의 얼굴을 쓸어본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눈물로 물들어버린 가슴은 울고 있지만, 그는 눈물 흘릴 자격조차 없다.

 

 현석은 희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자, 흠칫하며 그녀가 혹시라도 저를 볼까.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

 

 

 

 

 

 희연은 떨리는 가슴을 안고서 집으로 들어와 샤워를 마쳤다.

 

 ‘그동안 아프게 해서 미안하구나. 말로는 도저히 못 갚는다는 거, 나도 안다. 네 고통을 한번쯤이라도 이해하려 했다면 이렇게 네가 눈물 흘릴 일이 없었을 텐데....... 힘들면 이혼하도록 해라. 말리지 않으마.’

 

 

 

 희연은 펜을 들었다. 강 회장의 말대로 이혼을 해야 한다면 할 것이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때, 그때.

 

 

 

 다음 날, 현석은 자기를 만나러 왔다는 희연의 문자를 받자마자 급하게 내려왔다.

 

 틀어진 관계의 회복을 원하는 당사자 중 누가 됐든, 먼저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것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되고 변화의 시작이 된다.

 

 

 

 뛰어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희연이 그를 발견하고서 천천히 일어섰다.

 

 현석이 어렵게 걸음을 떼며 다가가자, 그들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졌다.

 

 “잘....... 지냈어요?”

 

 “앉읍시다.”

 

 곱게 웃는 희연을 바라보던 현석은 자리에 앉아 하나씩 풀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뇨. 이거만 전해주고 갈게요.”

 

 희연은 현석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제 손으로 부드럽게 잡은 뒤 그 위에 노란색 편지 봉투 하나를 올려주었다.

 

 “얘기는 천천히 해요.”

 

 “......”

 

 현석은 멍한 얼굴로 희연을 쳐다보았다.

 

 희연이 제 손을 잡은 순간, 따뜻했다. 놓지 말라고, 다시 잡고 싶을 만큼.

 

 그녀의 행동을 제 멋대로 해석하려 들며, 지금이라면 용서해 줄 것만 같았다. 바보 같이.

 

 희연의 손이 닿은 순간, 가슴 떨릴 만큼 좋았다.

 

 “답장, 받아볼 수 있을까요?”

 

 “어?”

 

 제 손에 들린 편지 봉투를 내려다보다 얼빠진 목소리로 반문하며 희연을 올려다보자, 제 대답을 기다리는 듯 그 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꼭 드리겠습니다.”

 

 

 

 현석은 연구실로 들어오자마자 희연이 건네준 편지 봉투를 뜯어보았다.

 

 그 속에 적혀있는 정갈한 글씨. 마치 자신을 기다리며 끝까지 견뎌내던 희연처럼, 곱고 수려했다.

 

 자신을 원망하는 말들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 태어나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켜봤어요. 제가 배운 지식들로는 부족한 거 같아서 요리 프로그램을 스승 삼아 배워보고 있어요. 요즘은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방법들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굳이 식당가서 먹지 않아도 비슷한 맛을 낼 수도 있구요.

 

 

 편지를 다 읽은 현석은 잠시, 그대로 멍하게 앉아 있다 주머니에 꼽아둔 펜들 중 하나를 꺼내 새하얀 종이 한 장에 필체를 써내려갔다.

 

 

 

 띵동-.

 

 그날 저녁.

 

 현석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지 않고,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제 존재를 알리려는 듯.

 

 철컥.

 

 “오셨어요?”

 

 오랜만에 온 집이었지만 희연은 변함없는 얼굴로 곱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그들의 거리만큼이나 대화 주제를 골라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현석은 쭈뼛거리며 구겨지지 않게 가방 속에 빳빳하게 넣어둔 A4 용지 한 장을 꺼냈다. 여자인 희연처럼 곱지는 못해도 정성껏 접어둔 편지였다.

 

 “나중에 읽어봐요. 지금 말고.”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 희연이 편지를 받아들자 후다닥 서재로 도망가는 현석을 본 그녀는.

 

 “풋!”

 

 웃었다. 첫 만남부터 순탄치 못해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좋은 사람은 아닐 거 같다며 지레 겁먹었었다. 결혼 후에도 저를 돌아보지 않는 그로 인해,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가슴이 차가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서. 현석도 저와 같은 사람이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희연은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현석이 내민 편지를 펼쳤다.

 

 

 - 어제는 정말 수술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너무 피곤했습니다. 제가 무슨 생각하며 견뎌냈는지 아십니까?

 

 제가 먹고 싶은 음식들 생각하며 힘든 거 다 참았습니다. 염치없지만....... 희연 씨가 만들어준 찌개와 반찬들이 먹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현석은 희연이 배웅 나와 주자 속으로 고마워하며 현관을 나섰다.

 

 “현석 씨.”

 

 “?”

 

 “이거, 가져가셔야죠.”

 

 어제로 끝인 줄 알았는데 희연이 제 편지에 답장을 주자 놀랐다.

 

 마치 첫사랑을 하는 듯, 가슴이 간질거리며 설렌다.

 

 그는 전체 회진을 돌기 전 생긴 틈을 이용하여 재빨리 희연의 답장을 읽었다. 기쁜 마음으로.

 

 

 - 어제 배운 요리가 정말 맛있어 보이던데, 오늘 저녁에 집에 오실 거면 제가 한번 만들어 볼게요. 맛은 장담 못해요.

 

 

 자신이 잘못한 것에 사과할 생각으로 펜을 들었을 때는, 좀처럼 글이 써지질 않았는데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주려니 쉬웠다.

 

 그래서 그녀와 편지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잠시 내려놨다.

 

 

 - 오늘은 우리 과 전공의 하나랑 다른 과 수련의가 비품실 안에서 몰래 데이트 하다가 걸렸답니다. 그 전공의가 한 곳에 빠지면 다른 건 신경도 안 쓰는 애라서 계속 일만 시켰거든요. 언제 둘이 그렇게 진도가 나갔는지, 전공의가 외박 쓴 지 꽤 되다보니 수련의가 폭발한 것 같습니다.

 

 

 퇴근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서는 현석의 얼굴은 집에 가는 것이 기대되는 눈치였다.

 

 “당분간 내 스케줄, 5시 이후로는 다 비워요.”

 

 

 

 

 

 ***

 

 

 

 

 

 며칠 뒤, 현석이 외식하러 나가자는 말에 당황한 희연은 세희에게 SOS를 요청했다.

 

 늘 집에서 식사하며 대화했던 터라 밖에서 그와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게 그와의 첫 데이트지 않은가.

 

 “현석 씨가 밖에 나가서 식사 하자는데. 어쩌지?”

 

 여자는 세심하길 원하지만 남자라 그런가.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 아직은 조금 부담스러우세요?” 」

 

 “으응.......”

 

 「 그럼 차만 마시고 오자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그런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무슨 말을 해야 분위기가 좋게 흘러 갈 지. 것도 모르겠어.”

 

 전화기 너머로 다독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언니 남편 분도 지금 관계가 어떤지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걱정 마시고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다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

 

 

 

 .

 .

 .

 .

 .

 

 

 

 서울 근교로 놀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현석은 조심스러웠으나, 희연은 남녀 관계에 서툴기만 해서 모든 게 다 무서웠다.

 

 “뭐 좋아하는지, 취미가 뭔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다 물어보세요. 다들 그렇게 만나며 사랑해요. 오빠랑 저도 그랬구요.”

 

 세희는 희연과의 통화를 종료 시켰다. 자신이 아는 방법이 과연 통할까 싶어 반신반의하기도 하고,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지원의 누나 일에 괜히 나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괜찮을 거야.

 

 당사자들이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의지도 있고.

 

 우리 부모님도 싸우신 날에는 편지로 화해하시고, 놀러 다니시며 기분 푸시니까.

 

 

 

 

 

 ***

 

 

 

 

 

 경기도에 위치한 놀이공원.

 

 현석은 희연과 관람 차에 올라탔다.

 

 그는 희연의 맞은편에 앉아 탁 트인 시야를 통해 보이는 놀이공원의 야경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관찰했다.

 

 편지.

 

 정확히는 ‘글’이라는 게 뭔지, 희연과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편지로 만났다. 대화가 없었던 그들이라, 오히려 글이 더 편했다. 덕분에 얼굴을 보고 할 수 없던 얘기들, 하고는 싶은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삼켜야 했던 말들.

 

 다 써서 글로 주고받았다.

 

 희연은 정말 미련했다. 현석은 희연의 글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희연이 바라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걸 해주지 못했던 자신이 이상한 거였지.

 

 편지를 주고받으며 좋았던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대화를 주고받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덕분에 그녀와 외식을 다니면서 조금씩, 대화가 늘어가기 시작했고.

 

 오늘은 정말, 여태껏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 중 분위기가 좋았다.

 

 

 

 현석은 그녀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러자 희연이 긴장하는 게 얼굴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 만큼, 다른 관계도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이거 하나는 꽤 아쉬웠다.

 

 현석은 제 옆에 놓인 희연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그녀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형식적으로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빼내고, 정성껏 준비한 진짜를 끼워줬다.

 

 “우리 결혼, 다시 해요.”

 

 “.......이미 했잖아요.”

 

 “그거 말고. 진짜 결혼. 그때는 어른들한테 떠밀리다시피 해서 한 거였잖아요.”

 

 “아.......”

 

 “싫어요?”

 

 희연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젓자, 현석이 웃는다.

 

 “우리 둘이서만 해요.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해둘게요.”

 

 희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게 웃는다.

 

 둘 사이에 솜털처럼 간질거리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현석은 천천히. 희연의 입술로 고개를 내리며 보드라운 입술에 입술을 가져갔다.

 

 “현석 씨, 이런 건 아직.......”

 

 희연이 몸을 뒤로 빼며 거부한 덕분에 미수에 그쳤지만 말이다.

 

 

 

 

 

 ***

 

 

 

 

 

 2주 뒤.

 

 희연이 혜빈과 세희를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언니, 왜?]

 

 [나 어떡해.......]

 

 [왜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며칠 전에 놀러갔을 때 현석 씨가, 손을 잡길래 같이 손잡고 다녔거든. 근데 그 이후에, 그....... 그거 있잖아. 내가 거절했어. 아직 무서워.]

 

 혜빈과 세희는 눈만 깜빡거렸다.

 

 늑대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는 그녀들은 현석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흑.......’

 

 올 것이 온 것이다.

 

 희연 언니는 아직 소녀 감성이시구나. 남편 분 좋으시겠다.

 

 ‘내가 다 부끄러.’

 

 [아, 그........ 죄송한데 여기서부터는 제 권한 밖인 거 같아요.]

 

 [언니, 미안해ㅠㅠㅠ 우리도 더 이상은 무리야. 자연의 섭리에 맡겨봐. 형부가 알아서 잘 해줄 거야.]

 

 잘 해줘? 뭘 잘 해준다는 소리지?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 그녀들의 말을 이해하게 된 날은 실전에서였다.

 

 

 

 

 

 ***

 

 

 

 

 

 어두웠던 침실이 작은 양초 무리가 제 한 몸을 불태우며 내는 은은한 불빛들로 밝아졌다.

 

 현석과 희연은 샤워를 마친 후, 새하얀 가운을 입은 상태로 침대 앞에 섰다.

 

 한명은 고운 신부로 시작해 한 남자의 여자가 된다는 사실이 무서우면서도 행복했고, 또 다른 한명은 첫날밤을 치루는 새신랑처럼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저는 희연 씨를 신부로 맞음에,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희연 씨와 함께 하겠습니다. 제 심장을 희연 씨께 바칩니다.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날이 또 다시 생긴다면, 당신의 손으로 이 가슴을 단죄하십시오.”

 

 현석이 희연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맞춘다.

 

 “저도... 현석 씨를 남편으로 맞아 항상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쪽.

 

 현석이 희연의 말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가볍게 뽀뽀했다.

 

 “제 심장은, 우리가 부부였던 그 순간부터 당신 아내로 살고 있어요.”

 

 쪽.

 

 

 

 “사ㄹ.......”

 

 현석은 희연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녀의 입술에 길게 여운을 남긴 후에야 떨어졌다.

 

 “여자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연이은 현석의 입맞춤에 희연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현석이 그런 희연의 반응이 귀여워 옅게 웃자 입술 위로 잔잔한 숨이 흩어진다. 현석이 제게 입맞춤 할 때마다 심장이 간지러우면서도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서기 시작해 현석의 행동에 집중하게 되었고, 입술 위로 닿은 현석의 숨결은 달콤한 마약처럼. 닿으면 닿을수록 더 오래 머물러주기를 원하게 되었다.

 

 현석이 그녀의 몸을 쓸며 감각을 일깨우자 뜨거운 불길이 번져나간다. 낯선 감각에 생소하면서도 어서 이 열기를 식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의 가운을 잡고 매달리자 현석이 희연의 떨리는 손을 잡으며 안아 올렸다.

 

 

 

 교차하는 숨을 가르고 깊이 들어오는 농밀한 침입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침대와 그를 사이에 두고 누운 상태였다.

 

 입고 있던 두 벌의 가운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였다. 어깨에 와 닿는 공기가 제법 차갑다.

 

 현석은 희연의 드러난 어깨에 자잘한 키스를 퍼부으며 손을 그의 등 뒤로 둘렀다.

 

 희연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걱정으로 물들어, 더 이상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현석 씨? 왜 그래요?”

 

 자극적인 그녀의 모습에 흔들려하면서도 탁한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신했다.

 

 “.......처음이라서, 아플지도 몰라요. 미안해요.”

 

 희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어차피 그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결심했던 거였다.

 

 “사랑해요.”

 

 현석이 희연의 입술에 자잘한 키스를 퍼부으며 부드럽게 밀려왔다.

 

 고요하게 달아오른 공기를 가르며 뜨겁게 터지는 목소리를 시작으로.

 

 길고 긴 그들의 밤이 시작되었다.

 

 

 

 몇 주 후.

 

 관계 회복에 정성을 다한 이들의 노력이 갸륵하게 보이셨는지. 삼신할미께서 찾아와, 소중한 아기를 점지해주시고 가셨다.

 

 

 

 

 

 낮은 곳에 살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 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낮은 곳으로 - 이정하 >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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