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79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작성일 : 17-07-28 15:09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890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79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 현석과 희연

 

 

 

 “박 선생님, 하....... 아읏............!”

 

 현석의 거친 손길이 하얀 설원 위를 미끄러지듯, 드러난 살결을 매만지며 자극하자 뜨거운 신음소리가 터졌나왔다.

 

 

 

 .

 .

 .

 .

 .

 

 

 희연은 강 회장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결혼 상대를 만나러 왔다. 보통은 카페에서 가볍게 만나기 시작한다던데. 상대가 바쁜 직업이다 보니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가 어디 있는지 몰라, 중간에 만난 간호사에게 박 현석이라는 이름을 대고 그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간호사가 지금쯤이면 수술이 끝나고 교수 연구실에 있을 거라 했다.

 

 건물 구조를 모르니 간호사의 말이 전부인 것처럼, 길잡이 삼아 천천히 걸었다.

 

 고요한 의국을 지나 그 끝에 연결된 5개의 낮은 계단을 오르며 교수 연구실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희연은 귀를 기울이며 걸어 나갔다.

 

 신기하게도, 소리를 따라 오다보니 자신이 찾던 박 현석 교수의 연구실 앞이었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문은 열려 있었다.

 

 들어오라는 뜻인가? 상대도 자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살짝 열려진 틈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 희연이 마주한 것은.

 

 간이침대 위에서 가운도 벗지 않은 채로 뒤엉켜 있는 남녀였다. 현석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뱉는 여자의 목소리는 색스러웠다.

 

 10시간 넘는 대수술을 하느라 욕구가 많이 쌓인 현석은 간호사가 입고 있는 옷들을 벗겨내기 바빴다.

 

 분위기가 좀 더 농밀해지려는 찰나, 희연과 간호사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남아있는 옷가지마저 벗겨내려는 현석의 손을 제지했다.

 

 “저, 선생님. 누구 오셨는데.......”

 

 그런 게 현석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문을 잠갔는데 누가 올 리가 없잖아.”

 

 간호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제대로 안 잠겨 있었나 봐요.”

 

 간호사의 말에 현석의 손이 뚝하고 멈췄다. 등 뒤로 힐긋 시선을 돌리자,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현석은 인상을 팍 썼다.

 

 간호사가 그런 현석의 눈치를 살피며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옷매무새를 정리하자.

 

 “나가.”

 

 아니나 다를까, 현석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웬만해서 화를 내지 않는 현석이 화났을 때는 무조건 자리를 피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찍힌다.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막는 현석이었다. 의사남편을 만들고 싶어 그를 유혹했던 김 간호사는 멍청하게 서있기만 하는 외부인 희연을 쏘아보고 홱 나가버렸다.

 

 

 

 현석의 옷매무새는 흐트러짐 없이 아주 깔끔했기 때문에 정말 뻔뻔스럽게, 바로 몸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현석의 차가운 얼굴이 냉수라도 되는 것처럼, 희연은 그제야 정신을 퍼뜩 차렸다.

 

 “저, 박 원장님이 여기로 가보라고 하셔셔.......”

 

 우물쭈물하며 이미 기가 죽어버린 희연을 올려다보던 현석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 여자군.

 

 그는 희연을 위아래로 쓰윽 훑어보더니.

 

 “서로 좋아서 하는 결혼 아닌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생활에 터치하지 맙시다.”

 

 차가운 바람을 휘날리며 교수 연구실을 나가버렸다.

 

 희연에게, 현석과의 첫 만남은 너무 충격적인 기억이었다.

 

 

 

 

 

 ***

 

 

 

 

 

 “오늘은 실컷 마시고 죽자!”

 

 누군가의 우렁찬 외침을 뒤로 하고, 현석은 맥주잔에 양주를 들이부은 뒤 한 번에 다 마셨다.

 

 총각딱지는 진즉에 뗐으나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되어버린 가여운 새신랑을 놀리기 위해, 현석의 곁에 하이에나들이 포진해 앉았다.

 

 현석의 화려한 사생활을 빤히 꿰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의대 동기가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장난을 걸었다.

 

 “이야, 네가 장가를 간다니. 천지가 개벽하고 볼 일이네? 간호사들 알면 난리 나겠다.”

 

 현석이 짜증이 난다는 기색을 가득 드러내며 그의 팔을 떼어낸다.

 

 “시끄러. 아버지 경영에 끼워 팔기 하듯 팔려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더러운데.”

 

 

 

 동기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배부른 새끼.

 

 아무리 암 센터 걸립할 자금이 부족하다지만, K 그룹이면 대한민국 최고였다. 게다가 두 딸 역시 외모가 여신 급이다. 결혼하고 싶다며 줄을 서는 남자가 한 트럭일 만큼이라던데.

 

 그런 여자가 자신과 결혼해준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극진히 모실 것이다.

 

 현석의 동기는 현석이 앉아 있는 쪽으로 상체를 비스듬히 돌려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예쁘냐?”

 

 “뭐가.”

 

 왜 이러실까. 서로 알 거 다 아는 사이끼리.

 

 “새끼. 눈치 없게 그러지 말고. 얼굴 예쁘냐고.”

 

 이제 평생 같이 살 여자인데, 현석은 너무 심드렁했다. 결혼 자체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어, 뭐. 그럭저럭.”

 

 “네가 그 말 할 정도면 예쁜 건데? 언제 소개 시켜줄 거냐?”

 

 현석은 결혼 얘기나 오가는 대화에 흥미가 없었다. 술 마시자며 불러낸 놈들이 술은 뒷전이다. 그렇게나 자신의 결혼이 큰 사건이라도 되는 건지. 양주잔에 술을 붓고서 얼음도 없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럴 일 없을 거다.”

 

 “뭐?”

 

 “어차피 아무 감정 없는 사인데 건드려서 뭐해.”

 

 “그래서, 또 네 버릇대로 난잡하게 놀 거다?”

 

 “어.”

 

 “아우, 이 미친 새끼. 미친개는 약을 줘도 효과 없다더니. 이거 완전 또라이네. 또라이.”

 

 같은 과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가 소리가 점점 올라가는 동기의 목소리를 멀리서 듣고 있다 분위기를 보고 끼어들었다.

 

 이들 중에서 현석처럼 막장으로 즐기는 놈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눈에도 현석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현석의 선배에게 여자와 아내는, 평생 한 분만 모시고 살아야 하는 신이었다.

 

 “야, 마누라한테 잘해야 돼. 애 나아줘, 그렇게 고생해서 애 나았는데 애까지 키워주잖아? 이거 어떻게 보면 노동력 착취다, 너? 나중에 그러다 땅을 치고 후회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현석이 콧방귀를 끼며 들은 척도 안했다.

 

 “임마, 내가 하는 말 들어. 너 못 들었어? 흉부외과 양 교수님, 며칠 전에 젊은 애 하나랑 어떻게 해보려다 사모님한테 들켰대. 이혼은 물론이고 해임까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넌 네 아버지 믿고 그러냐.”

 

 현석은 또 한 잔을 꺾은 뒤 자신의 연구실에서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얼어있던 희연을 떠올렸다. 현석의 입 꼬리가 비스듬하게 올라간다.

 

 

 

 “그 여자는, 그렇게 못 해.”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그의 단정적인 발언에, 선배는 은근히 무시하는 투로 물었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 현석이 언제까지 저럴 수 있나 지켜보고 싶다.

 

 “그래? 그럼, 그 여자 사랑하게 되기라도 하면?”

 

 현석은 그건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며 의자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사랑? 내가 그런 거에 목 맬 거였으면 이렇게 살지도 않았어.”

 

 

 

 

 

 ***

 

 

 

 

 

 현석과 희연의 결혼식은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얼마 전 보았던 현석의 모습은 자유분방하게 살다보니 그랬던 거겠지.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 할 남편 될 사람이니 이해하려 했다. 결혼 후에는 가정적인 남자로서 남편의 역할을 다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은 뜬구름 같은 꿈이었지만 말이다.

 

 현석은 결혼 후에도 보란 듯이 여자 찾아다니는 철새처럼 결코 해서는 안 될 관계를 여럿 만들고 다녔다.

 

 그가 선배에게 했던 말대로, 첫 날밤에 아내를 소박 맞혔으니 말 다했다.

 

 남편에게 사랑 받으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결혼 생활을 기대했는데.

 

 

 

 눈앞에 놓인 현실은 너무 잔혹했다.

 

 주위에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도 자신과 남편은 한창 깨 볶고 있어야 할 시기였다. 적어도 남들은 그렇게 볼 것이다.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다. 강 회장의 권유로 떠밀려온 자리인데 남편 하나 제대로 못 다룬다며 능력을 의심하실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동생들. 혜빈과 지원이 자신처럼 강 회장에게 희생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제 발로 여기 왔는데 힘들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동생들은 저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 아니 끝까지 그랬으면 좋겠다. 어떻게 털어놔야 일이 잘 풀릴 지도 모르겠고.

 

 

 

 침대가 있는 안방에서 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희연은 아침 일찍 일어나 현석의 출근을 위해 정성껏 다려놓은 슈트를 꺼내 소파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뒤 아침밥을 준비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자 현석이 서재에서 편한 옷차림으로 나왔다.

 

 “잘 주무셨어요?”

 

 쾅-.

 

 말 한번 걸어볼 틈도 안 주고 바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미련 없이 닫혀버린 문이 현석과 희연의 거리 같았다. 동생들 목소리가 듣고 싶어 하루에도 여러 번 전화기를 붙들었으나, 그리웠던 목소리에 가슴에 한 겹 씩 싸여 가는 것들이 녹아내려 눈물이 터질까. 가끔 하는 문자로 대신하고 있는 희연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줄 말동무가 필요했다. 이 집에서, 이제 그녀의 세상에서 의지하고 걸음을 같이해야 할 사람은 현석 밖에 없는데.

 

 없는 사람을 취급하니 너무 서러웠다.

 

 

 

 밥상을 다 차려놓고 기다리자, 말끔해진 차림의 현석이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통하는 복도로 걸어간다.

 

 “저, 식사는요?”

 

 “밥 생각 없습니다.”

 

 쾅-.

 

 두꺼운 철제 현관문이 다시, 매정하게 닫혀버렸다.

 

 희연의 가슴에 박혀가는 못도 늘어만 갔다.

 

 

 

 

 

 ***

 

 

 

 

 

 “유 선생, 오늘 괜찮아?”

 

 수술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향하는 길에 현석이 물었다. 마취과 유 미란 선생은 한 사람과 오래 못 가는 현석치고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만나고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어머, 그거 데이트 신청? 박 선생 유부남이잖아.”

 

 유부남이라며 거절하는 척해도 현석의 유혹에 화답하듯 몸을 밀착 시킨다.

 

 “내가 상관없다고 그랬지.”

 

 싱긋 웃으며 현석의 몸을 쓸고서는 뒤로 돌아 손을 흔들며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좋아. 그럼 끝나고 늘 묶던 객실로 와.”

 

 

 

 

 

 ***

 

 

 

 

 

 현석과 희연은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동반 참석하게 되었다.

 

 연회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구에 한 발을 내밀었을 때.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는 희연의 미약한 힘을 느꼈다.

 

 “뭡니까.”

 

 살짝 내려다보자, 희연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가 따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현석은 그 자리에 멈추어서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혼 전에는 사람들의 이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주변을 신경 쓸 필요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었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K 그룹의 딸을 제 아내로 곁에 둔 이상 자신도 그에 걸맞게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했다. 그것이 설령 가식적일지라도.

 

 

 

 가면을 쓰고 남의 사생활을 걱정해주는 척하며 아기는 언제 가질 거니, 부부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두 집안을 저울질하며 안주처럼, 한동안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현석은 희연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녀가 제 팔에 팔짱낄 수 있게 한쪽 팔을 내밀었다.

 

 연회장으로 들어가자 희연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아는 척하며 다가왔다.

 

 “어머, 희연아. 결혼하더니 더 예뻐졌네? 살도 빠지고.”

 

 “얘, 결혼하고 나서 화장품 바꿨어? 피부 좀 봐. 되게 촉촉하다. 무슨 브랜드 써?”

 

 얼굴만 적당히 비추고 갈 작정으로 왔는데 호들갑을 떨며 들러붙는 여자들이 현석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결혼 식 때 잠깐 보고 오늘이 처음이죠?”

 

 현석이 사근거리는 중저음으로 눈 꼬리를 곱게 접자, 여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럼 저희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가녀린 허리에 손을 두르고 제 쪽으로 당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리들 사이로 걸어가서는 가볍게 인사 나눈 뒤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제야 희연이 처음으로 제 몸에 닿았던 남자의 단단한 손으로 인해 긴장했던 몸을 이완 시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이랑 얘기 나누고 올게요.”

 

 탁-.

 

 “그럴 시간 없습니다. 가면을 쓰고 분위기를 맞추는 것은 잠깐이라고 얘기했을 텐데요.”

 

 현석이 그녀의 팔을 잡아 세우며 허락해주지 않자, 희연의 눈앞이 뿌옇게 번져나갔다. 그와 등을 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음도 없는 상대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서 뭐하나. 처지만 더 비참해질 뿐이다.

 

 자기는 항상 제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오랜만에 만난, 속마음 털어놓을 친구는 아니더라도 밖에서 숨 돌리고 가면 안 되는 걸까.

 

 희연은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잡혀있는 팔을 비틀었다. 하지만 현석의 힘을 이겨내기에는 희연의 팔이 너무 가늘어서 무리였고, 무엇보다 그녀는 여자였다.

 

 자신들을 둘러싼 오해의 불씨가 피어나는 것은 희연과의 관계가 어떠하든 반갑지 않을 것 같다.

 

 

 

 현석은 조금 더 힘을 주어 희연을 끌어당겼다.

 

 “말을 못 알아듣는군.”

 

 힘의 반동으로 제 품에 안겨오는 희연의 턱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린 뒤 비스듬히 고개를 틀었다. 그러고서는 순식간에 그녀의 입술을 제 입술로 덮어 맞닿은 살결을 부드럽게 쓸었다.

 

 희연은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입술을 내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했고, 현석이 또 다시 멋대로 굴고 있다는 사실이 하얗게 타버린 머릿속에 있을 리도 없었다.

 

 여자 경험이 많아서 여자 입술은 다 같은 촉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현석이었다. 희연과의 키스 또한 잠깐 보여주기 식의 쇼처럼 그녀에게 겁만 주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마시멜로우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촉감에 저도 모르는 사이, 놀라서 입이 살짝 벌어진 그 틈을 가르고 미끄러져 들어갔다. 습관적으로 손을 올려 드레스 위로 드러난 어깨를 쓰다듬으며 더 다가갔다.

 

 현석이 다가오면 올수록, 희연의 호흡은 가빠졌다.

 

 “하아........ 하아. ........그만해요.”

 

 결국, 희연이 현석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밀어내며 드레스 자락을 잡고 연회장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희연의 입술과 맞물려 있던 제 입술이 불에 덴 뜻 뜨거웠다. 키스가 처음이 아닌데 이런 입술의 느낌은 낯설어서 사실, 뜨거운 게 입술인지 귀인지 분간도 못할 만큼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는 가만히 손을 들어 제 입술을 쓸어본 뒤 희연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

 

 

 

 

 

 현석의 증상은 그날 밤 연회에 다녀온 이후부터 줄곧 지속되었다.

 

 조절을 확실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본능에 약하지는 않았는데. 입술에 닿았던 순간에 느꼈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첫사랑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풋내기처럼. 가슴이 간질거렸다.

 

 한 순간의 키스에 집착하는 자신이 낯설다.

 

 “의사 양반? 왜 이렇게 귀가 빨가우? 아하! 젊어서 피를 주체 못하는가 보네! 야한 생각 했구먼?!”

 

 치료를 위해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서 정신이 나가있는 현석의 눈앞에 손을 좌우로 왔다갔다 흔드시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네?!”

 

 필요 이상으로 놀라는 현석의 반응에, 나도 젊은 양반 사정 다 안다며 거짓말 마라신다.

 

 “아유~ 뭘 그렇게 놀라나. 찔리는감? 그래도 적당히 해. 변태 의사라고 소문날라.”

 

 눈앞에 있는 의사는 이미 변태 의사라서 거짓말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현석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자신과 얽혔던 여자가 많았어도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흔들린 적 없었던 그라서 더 그랬다. 그렇다고 지금의 이 감정을 사랑으로 정의 내리기도 힘들었다.

 

 

 

 그 날, 현석은 결혼 후 처음으로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갔다.

 

 띠리릭-.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보글보글.

 

 듣기 좋은 거품 끓는 소리와 따뜻한 사람 냄새가 풍겨와 끌리듯 걸어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어, 오셨어요?”

 

 앞치마를 두른 희연이 이제 막 끓은 김치찌개를 식탁 한 가운데에 올려놓고 있었다. 상차림은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언제 간다는 연락 한번 주지 않은 제 몫까지.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걸음이 무겁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가슴에 집어넣은 것도 없는데 뭔가 걸린 것 같다.

 

 

 

 현석이 우두커니 서서 앉을 생각을 하지 않자, 희연은 앞치마를 벗어 옆자리에 놓은 뒤 그에게 다가왔다.

 

 “주세요. 양복 받아드릴게요. 가방도.”

 

 희연은 현석이 손을 씻으러 갔을 동안, 그에게서 마지못해 내민 가방과 양복 재킷을 들고 그가 지내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순순히 건네주며 자신이 그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도 별말 없는 걸 보니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희연은 현석의 방으로 들어와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현석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의 몫까지 차려놓는 것은 혹시라도 그가 왔을 때 굶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가려다가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현석이 왔을 때 제법 놀랐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키스 한 번으로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생긴 건가 싶어 기대가 되는 것은, 자신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멋대로 행동하는 그는 제게 상처였지만, 그에게 강제로 입술을 뺏겼을 때. 설렜다. 그 사소한 행동에 설레는 자신이 우스웠으나 그랬다. 현석은 아니겠지만 그가 자신의 남편으로 제게 왔을 때부터 혼자 지고 가야할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람은, 제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면 할수록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제 마음.

 

 시리디 시린 얼음 같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단 하루라도 그와 마주 앉아 식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견뎌보자며 다독인다.

 

 

 

 현석이 먼저 식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아직 수저를 들고 있지도 않은 모습은 의외였다.

 

 “안 드세요?”

 

 희연이 맞은편에 앉는 것을 본 현석은 그제야 수저를 들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기에 얻어먹는 입장에서,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저질러 놓고 먼저 먹는 짓은 이기주의적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현석의 수저가 뚝배기에 담겨있는 김치찌개에 닿으려던 찰나.

 

 “아! 현석 씨 저랑 같은 그릇 쓰시는 거 싫으시죠? 기다려주세요. 제가 먹을 만큼만 덜고 드릴게요.”

 

 현석에게 뜨거운 국물을 양보한 후 덜어간 국물을 한 숟갈 뜨는 희연의 행동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배려해주는 걸까.

 

 현석은 희연에게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항상 혼자 식사합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희연의 대답이 더 바보 같았다. 희연이 곱게 웃는다.

 

 “항상은 아니죠. 오늘은 현석 씨랑 같이 먹고 있는데.”

 

 희연의 웃음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심장을 관통한다.

 

 순식간에 날카롭게 파고드는 가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현석은 남아 있는 밥을 마저 마무리하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 서재로 도망치다시피 했다.

 

 그는 문을 잠근 뒤 스르륵, 무너지듯 기대어 앉았다.

 

 아프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문질러도 그 통증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반전을 사랑한 남자 완결 안내 2017 / 7 / 28 583 0 -
81 제 80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完) 2017 / 7 / 28 369 0 12984   
80 제 79 화. 외전(2) - 그대를 바라다 2017 / 7 / 28 311 0 8901   
79 제 78 화. 외전(1) - Love in France 2017 / 7 / 28 289 0 7659   
78 제 77 화.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2017 / 7 / 28 310 0 10895   
77 제 76 화. 해후(邂逅). 사랑합니다 2017 / 7 / 26 288 0 12784   
76 제 75 화. 서로 아끼며 사랑해 나가겠습니다 2017 / 7 / 26 304 0 9029   
75 제 74 화. 사랑해서 그런가 보다 2017 / 7 / 26 326 0 12591   
74 제 73 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017 / 7 / 26 294 0 8661   
73 제 72 화. 날아간 총알의 끝에는 2017 / 7 / 26 310 0 7440   
72 제 71 화. 구슬픈 진동소리 2017 / 7 / 26 305 0 10599   
71 제 70 화. 폭풍전야 2017 / 7 / 24 306 0 9231   
70 제 69 화. 이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 2017 / 7 / 24 315 0 12421   
69 제 68 화. 사랑은 성숙하게 만든다 2017 / 7 / 24 293 0 10196   
68 제 67 화. 성숙함을 위한 기다림 2017 / 7 / 24 296 0 8136   
67 제 66 화. 방아쇠를 당기다 2017 / 7 / 24 280 0 7235   
66 제 65 화. 오늘 밤은 안 재울거니까 각오해 2017 / 7 / 24 295 0 10142   
65 제 64 화. 딸 주기 싫은 아버지의 밀당 2017 / 7 / 21 299 0 7785   
64 제 63 화. 무섭다고 겁먹지 말고. 망설이지도 … 2017 / 7 / 21 311 0 8261   
63 제 62 화. 아련한 불빛이 흩어진 밤, 넘어가다 2017 / 7 / 21 315 0 9973   
62 제 61 화. 본능과 끊임없이 싸우며 노력하는 … 2017 / 7 / 21 290 0 6519   
61 제 60 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2017 / 7 / 20 303 0 6300   
60 제 59 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 2017 / 7 / 20 306 0 7420   
59 제 58 화. 그러니까, 못 놔 줘 2017 / 7 / 20 288 0 8692   
58 제 57 화. 텅 빈 속을,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 2017 / 7 / 20 298 0 8089   
57 제 56 화. 사랑 때문에 무릎 꿇은 남자 2017 / 7 / 20 293 0 8720   
56 제 55 화. 그래, 사랑이 뭐 별 거 있나 2017 / 7 / 20 291 0 8629   
55 제 54 화.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간절한 이름 2017 / 7 / 20 309 0 6552   
54 제 53 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싸우려는 남… 2017 / 7 / 19 294 0 7397   
53 제 52 화. 어림도 없지 2017 / 7 / 19 287 0 6555   
52 제 51 화. 덮쳐, 말아? 2017 / 7 / 19 276 0 7095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콩깍지라는 마법
샤뚜르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