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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거울의 도시
작가 : 홀로가는길
작품등록일 : 2017.7.27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함으로써 반역자로 간주되어 실각하였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하지만 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에만 자꾸 휘말리는데…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 것인가?

 
#6
작성일 : 17-07-28 02:53     조회 : 259     추천 : 3     분량 : 8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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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카야는 무안하면서도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무 성과 없이 돌아갔을 때 앞에서는 괜찮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며 보이는 어머니 프레야 왕비의 서글픈 표정과 아버지 파벨 왕의 실망 가득한 얼굴(감추고 싶지만 감춰지지 않는)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갈등들(귀족들의 압박, 네르센의 눈치와 보이지 않는 압박)로 싸우는 왕과 왕비의 목소리가 쉘베이덴 궁에 울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감은 그녀를 갉아먹어 재를 만들 것이다.

 

 왕과 왕비가 다투면서 항상 왕비가 했던 말은

 ‘나도 이럴 줄 몰랐어! 여기가 이렇게 삭막하고 숨 막히는 곳 일 줄은!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어! 나를 다시 돌려보내줘! 다 지겨워, 지쳤어.’

 그럼 왕은 또 욱 하면서 참지 못해 말하겠지.

 ‘그럼 왕자라도 낳지 그랬어! 그럼 이렇게 나도 고생하지 않았을 거 아냐!’

 

 그들의 싸움 100번 중에 100번 다 나오는 말이었다. 언니 엘레나는 종종 동생의 귀를 막아주고는 했다. 하지만 후에 언니가 극비 유학길에 오르면서 이 궁에는 저 혼자밖에 남지 않게 되자 저 소리는 곧장 카야의 귀에서 맴돌았다.

 

 왕비와 같이 차를 마시다 맞은편에 그녀를 가끔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왕이 그녀에게 와서 무엇을 배우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평범한 부녀의 대화, 정원에서 우연히 왕과 귀족들 무리와 마주쳐 인사할 때 보이는 미소.

 

 겉으로 봤을 때는 가족들 간에 있는 평범한 행동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차를 마시다가 문득 자신의 딸이 많이 컸구나 느껴서 어머니가 딸을 쳐다보는 것일 수도 있고, 아버지가 자라는 딸의 생각을 읽고 싶어 대화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정원에서 우연히 딸을 만나 반가워서 미소를 지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야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귀에 심어버린 소리들에 의해 생각하게 되었다.

 차를 마시다가 쳐다보는 왕비의 시선은 답답함과 어머니 자신이 잘못 선택한 대가이자 결과물이 자신 앞에 있었던 것이었고, 왕과의 대화중에 보이는 그의 행동들은 그녀가 왕자가 아니라는 안타까움 이었고, 정원에서 이뤄진 우연한 만남에서 보여준 비뚜름한 미소는 자신의 존재가 왕의 현재 상태(귀족들의 압박을 견뎌내며 조울질 해야 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를 알려주는 일일 뿐일 것이다.

 

 저도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왕과 왕비의 행동에 저런 친절한 행동은 다 거짓이야. 속으로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위하는 척 위선자들. 내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었으면서!’ 단정지어 버렸다. 다시 돌아가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알고 있다고 해도 또 상처받는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언니 엘레나가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한 몇 계단 중의 하나 였을 텐데(그녀가 왕태자와 결혼하는 것이) 왜 자신은 누군가를 위해 게임 판 위의 말 따위처럼 쓰여야 하며 그것은 왜 자매라는 이름으로 내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일까.

 

 왜 엘레나는 이곳에 나만 남겨두고 떠났는가. 왜 나는 엘레나처럼 아름답지 않은 것인가. 왜 엘레나에겐 모든 것이 주어졌는데(외모도, 능력도) 나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는가. 왜 나는 내 스스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왜 나는 왕좌에 앉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이 삶을 도망치기엔 카야는 현실을 너무 잘 알았다.

 수중에 여유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고 해도 자신의 씀씀이를 아는 그녀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고, 왕족이기 때문에 배당된 돈과 연금 등의 그녀의 몫은 사라질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물며 뛰어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텔라도 아니다. 섣부른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낸다는 것은 이미 부모를 보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간다면 쉘베이덴 궁에서 혼자 곪아 썩어 들어가는 것뿐일 것이다. 그녀의 혼처가 정해져 그 궁을 떠나기 전에는.

 

 카야는 처음에 왕태자와 약혼이 거론되었을 때, 언니가 유학하는 스텔라들의 도시 국가 아르덴으로 간다는 핑계로 궁을 나와 왕태자가 있는 브리티아의 카이르벳으로 향했다.

 그 때만 해도 왕태자가 자신을 이 구렁텅이에서 적어도 빼 줄 인물이라는 것과 동시에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본인도 모르게 왕태자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과 함께)

 

 카이르벳의 땅으로 들어왔을 때 그 곳의 사람들은 굉장히 낯빛이 좋았고 표정들이 밝아보였다. 입은 옷들은 그녀처럼 엄청 좋은 재질은 아니더라도 매끈한 소재로 만든 옷을(거친 실들을 얽기 설기 이은 옷이 아닌) 입고 있었고 깨끗했다.

 성채 안은 활기가 넘쳐흘러 자유로워 보였고, 잘 정비되고 깔끔한 도로가 눈에 띄었다. 예술가와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건물과 벽들에서는 기품이 느껴졌다.

 

 특히 왕태자의 성에서 그를 기다리기 위해 있었던 실내 정원은 그녀에게 그 나이 대 소녀가 꿈꾸는 낭만을 가득 차게 했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 정원은 하늘 도시에 있다는 공중 정원을 본 떠 만든 것 같았다. 5계단 높이로 만든 층계식 수로에서 떨어지는 물을 양분으로 자라는 초록빛 식물들이(그 수로의 층마다 있다) 웅장한 광경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색감이 짙은 꽃들이 장식을 이루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일로이드의 쉘베이덴 궁의 식물원이 대륙에서 제일 훌륭하다고 소문이 자자 하지만 카야는 여기는 그 크기가 좀 작을 뿐이지 그에 못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로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정원을 구경하고 있을 때 저 문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훌쩍 큰 키에 남빛을 띄는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햇빛을 손으로 가리고 들어와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평소에 보아왔던 또래 귀족 남자애들보다 크고 체격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야는 저도 모르게 두근거려 심장부근을 눌러 진정시켜 보려했었다.

 

 남빛 머리를 가진 남자는 그녀에게 다가와 한쪽 손은 가슴에 얹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는 다가와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드레스 자락을 올려 인사해야 하는데 그것도 잊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는 그녀의 손이 잡히자마자 당기며 손등 위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숙여진 고개가 들리며 그의 청색이 도는 잿빛 눈과 마주쳤다. 카야는 저도 모르게 눈이 마주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부끄러워 어절 줄 몰라 있는데 그의 장밋빛 입술이 열렸다.

 

 - 카야 에델리아 일로이드 공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브리티아의 왕태자 에드워드 페레드비안 브리티아입니다.

 

 카야는 상상 속의 인물을 드디어 만났다는 것에 기뻤다. 그리고 그 인물이 자신의 약혼자이며 이렇게 훤칠하고 잘생긴 인물임에 감사했다.(일로이드 내 영애들이 심하게는 20살 이상 차이 나는 남편을 맞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그녀는 이 행운에 감사했다)

 에드워드가 인사를 끝낸 후 자유로워진 손으로 카야는 드레스 자락을 살포시 들며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왕태자.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제 약혼자 되실 분이 어떤 분이신지 뵙고 싶었어요.

 

 에드워드는 카야의 말에 눈썹을 살짝 미묘하게 움직여 올라갔다 내려왔다.

 (아마 공주의 솔직한 말에 조금은 당황한 듯했다. 그는 자신을 보고 싶어 했어도 지나가다 들렸다는 둥 아니면 이번에 약혼이 성사된다면 어떤 조건을 걸고 싶다 이런 말을 예상했다)

 

 - 공주께서는 꽤나 솔직한 사람이시군요. 실제로 보니 어떠신지요?

 

 카야는 볼을 붉히고 가슴부근을 누르며 답했다.

 -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훤칠하시고 잘생기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잿빛에 푸르른 빛을 띠는 눈은 흐린 하늘을 나는 청룡 같았습니다.

 

 에드워드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감사합니다, 공주. 공주께서도 어여쁘시고 사랑스럽습니다.

 

 카야는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니 엘레나가 모든 것을 다 가져갔으니까. 외모도 능력도 왕좌도. 하지만 겉치레일 게 분명한 말이지만 카야는 너무 기뻤다.

 엘레나가 갖지 못한 남편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나는 그 궁을 떠날 수 있을 테니까! 그것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왕비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정중하고 깔끔한 예법을 보아 그는 날 존중해줄 것이고 난 사랑을 할 수 있으니까!

 

 - 오면서 왕태자의 성과 영토의 국민들을 보았습니다. 다들 행복해보이고 활기가 넘치더군요. 거리도 깨끗하고 돌아다니는 기사들도 절도 있고 다 건장하지 않은 자가 없더군요.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꾸며놓은 것들도 굉장히 세련된 양식이고, 저는 무엇보다도 이 정원이 너무 예쁜 거 같아요.

 

 에드워드는 카야의 말에 잠시 얼굴이 굳어진 듯 했으나 다시 싹 바꿔 웃으며 말했다.

 - 감사합니다, 공주. 제 영지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보시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제가 고생한 보람이 있나 봅니다.

 

 - 아, 아, 아닙니다, 왕태자. 저는 그저 보이는 데로 얘기했을 뿐입니다.

 

 - 그럼 이 정원을 좀 소개시켜 드릴게요. 공주께서 이 정원을 제일 마음에 드셨다고 하시니 기쁩니다. 새로운 수로를 끌어 들여 만든 거라 손이 좀 많이 갔는데 그 가치를 알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보실까요, 공주?

 

 에드워드는 카야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카야는 기분 좋은 접촉에 두근거림을 느끼며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에드워드는 카야를 이끌며 정원 곳곳을 소개시켜 주었다.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화단에 어떤 꽃을 심고 무엇을 심었는지, 꽃의 의미와 유래 때문에 심은 꽃들도 있고, 누군가의 추억을 위해 심은 꽃은 무엇인지, 스투키아(스투키아는 대륙 국가가 아닌 바다에 떠 있는 섬 형태의 대륙이다)에서 수입해 온 꽃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카야가 지루해 하지 않게 감정을 물으며 배려해주었다.

 

 일로이드의 쉘베이덴 식물원은 어떠한지, 헤스데아 2왕비께서 받으신 그 장미를 본 적은 있는지 정말 소문이 맞는 것인지, 일로이드의 쉘베이덴 궁전은 어떠한지, 일로이드의 수도 네브룬사는 어떠한지, 브리티아 수도는 들렀다 왔는지, 브리티아의 사람들은 어땠는지 등, 에드워드가 질문에 꼬리를 꼬리에 물며 묻기도 했고 카야는 그에 솔직하게 답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얘기하다 보니 어느 새 창을 통해 주홍빛이 들어옴으로써 카야는 시간이 꽤 많이 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앞으로 이런 분과 함께 라니.’ 카야는 자신이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엘레나에게 빼앗겼던 모든 것을 이렇게 보상받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 때 나란히 걷고 있던 에드워드가 멈췄다.

 멈춰선 그의 옆에는 얇은 줄기 위에 좁은 잎이 3개씩 돌려나 있었다. 그 위로는 분홍색의 꽃이 드레스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꽃잎 형태로 있어 꽤나 화려해 보였다.

 

 에드워드는 그 꽃에 다가가 한 송이를 꺾어 카야에게 내밀었다. 카야는 짙게 웃으며 그 꽃을 받아들고 코에 갖다 댔다. 꽃은 화려한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달큼하고 향기로운 향을 내뿜었다.

 

 - 공주, 그 꽃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카야는 코에서 꽃을 떼고 다시 보며 말했다.

 - 화려함? 매혹? 아름다운 매력? 이런 게 아닐까요?

 

 - 공주, 틀렸습니다. 그건 ‘위험’입니다. 그 꽃에는 독이 있습니다. 그 독은 독살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화살에 묻혀 독화살로 쓰기도 합니다.

 

 카야는 에드워드의 말에 놀라 손에 힘이 빠지며 꽃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까는 그렇게 배려하고 친절하며 따뜻했던 사람이 이렇게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카야는 이게 무슨 일인지 하는 불안함에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에드워드는 다가오면서 그녀가 떨어뜨린 꽃을 주워 그의 코에 가져다 댔다. 향기를 맡는 것인지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인지 곧 꽃을 코에서 떨어뜨리고 카야를 보며 말했다.

 

 - 공주, 공주께서 솔직하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주는 이 꽃 같은 사람입니다.

 

 - 네?

 카야는 저도 모르게 말이 나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었고 없던 쇳소리가 묻어나왔다.

 

 - 공주께서는 이 꽃 같은 분이십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사물을 보는데 꽤 정확한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린 나이에 그런 눈을 가지긴 쉽지 않은데 대단하십니다.

 

 카야는 그의 높고 낮음이 없는 평이한 목소리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용은 칭찬인 것 같은데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서는 왜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지 카야는 어려웠다.

 

 - 냉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주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눈을 가진 브리티아 인을 원하지 외국인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직 약혼한 상태가 아니고 거론될 뿐이니 공주께서 돌아가셔서 분명하게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공주 취향이 아니라고 하시든 곰보에 키가 공주와 똑같다고 하시든 멍청하다고 하시든 무례하다고 하시든 마음대로 말씀하십시오. 어떻게든 약혼 얘기가 더 이상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카야는 이게 현실인가 싶어 눈을 끔뻑끔뻑 거렸다. 눈을 꼭 감았다가 떠 보기도 했지만 굳은 조각상 같은 왕태자는 변함이 없었다.

 

 - 혹시 연인이 계신가요? 그 정도는 저도 이해해 드릴 수 있어요. 왕태자와 같이 빛나시는 분은 늘 주위에서 반짝거림을 쳐다보고만 있지 않죠. 모두 그 반짝거리는 걸 확인하고 만지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하니까요. 그 분을 나중에 후처로 들이신다 하셔도 저는 다 이해할 수…

 

 에드워드는 계속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자신을 깎아먹는 공주가 보기 안쓰러워 냉정하지만 다시 정확하게 말해 주어야 겠다 생각하고 그녀의 말을 끊고 말했다.

 

 - 공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마음 속에 누가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대가 브리티아 인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부터 제 옆에 설 조건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공주께서 그렇다고 브리티아 인이 되는 건 다시 태어나시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겐 공주님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카야는 에드워드의 중저음 목소리로 너는 이번 생에는 안 된다. 너 자체가 다시 태어나야 된다. 라는 그 말이 송곳이 되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 공주, 공주는 정말 아름답고 진실 된 사람입니다. 저보다는 더 좋은 남편을 만나 공주가 항상 웃으시길 바랍니다. 공주는 웃으실 때 제일 아름답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이 있어 가보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손을 가슴에 얹고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한 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정원 출구로 나아갔다. 카야는 그가 나갈 때까지 그 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카야는 잠깐 동안 달콤한 꿈을 꾸며 설렜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공주의 자존심도 버리고 붙잡아 보려 했던 것도 떠올릴수록 수치스러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아, 언제 내가 진짜로 가진 게 있었던가. 난 늘 만질 수 없었고 가질 수 없었지. 좋은 건 엘레나가 다 가져가고 난 늘 남은 걸 가지고 감내하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지.

 그럼 난 죽을 때까지 이러고 살아야해? 엘레나의 뒤에 있으며 엘레나가 설 수 있게 내 감정은 죽여 버린 채?

 

 카야는 이렇게 평생 자신이 아무 것도 못 하고 무기력하게 죽은 눈을 하고. 순간 카야는 아버지의 방에 박제 되어 있는 커다란 검은 새가 떠올랐다. 한 때에는 저 높은 하늘을 날아 모든 것을 제 눈 아래 두었던 새가 그 작은 곳에 갇혀 그대로 죽어버린 그 커다란 검은 새가.

 

 카야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죽어서도 엘레나를 위해 쓰일 것 같은 저 자신이 떠올라 끔찍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내 것을 가져 보겠다고. 내가 왕좌에 오르지 못한다면 내가 왕좌에 내가 선택한 인물을 올리겠다고. 그리고 엘레나 네가 만든 성을 내가 무너뜨릴 거라고.

 

 그것이 카야가 기억하는 에드워드의 첫 만남이었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차갑고 춥고 시립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카야는 돌아가 약혼을 성사시켰고, 그 만남 이후부터 에드워드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겉으로는 공주가 자존심도 다 버린 채 쫓아다닌다고 수군거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카야는 남이 뭐라 하던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만나는지, 어디를 가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군지, 그를 통해 이익을 보는 자가 누군지, 누가 왜 그에게 반대하고 탐탁치 않아하는지, 다른 왕족들과 사이는 어떤지 알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래야 자신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꿈을 이룰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카야는 감정 소모가 크고 늘 곤두서 있던(지금보다 더- 지금도 없는 건 아니지만) 과거를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져 살짝 얼굴에 찡그림이 생겼지만 이내 기억에서 지웠다.

 다시 얼굴을 피고 앤에게 말했다.

 

 “렉스 대공을 만나야겠다.”

 

 카야의 말에 앤은 그녀를 힐끔 보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예,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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