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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오늘만 우리, 부부로 살자.
작성일 : 17-07-28 00:39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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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부탁이다. 새벽까지만 나랑 있어.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거든.”

 

 

 대답을 기다리는 흑안이 응시해왔다. 그의 등 뒤로 슬픔이 서린 석양이 짙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아카드는 세라를 옛카라스 성의 숨겨진 비밀 공간으로 데리고 갔다.

 

 지하로 내려가 수십 개의 감옥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 벽돌하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벽돌이 쑥 들어간 공간에 그는 주먹을 밀어 넣고 새끼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어딘가에 끼워 맞췄다.

 

 손목을 비틀었다. 벽에서 덜컹 소리를 내고 작은 문 크기만큼 벽이 뒤로 물러났다.

 

 모든 성들에는 이런 비밀공간이 존재하기 마련이라 그녀는 놀라지 않고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서자, 벽은 원래대로 입구를 감추었고 동굴처럼 보이는 통로가 나왔다. 둘이 나란히 걸어도 넉넉한 넓이였다.

 

 스무 걸음정도 앞에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아카드는 다시 반지를 열쇠구멍에 대고 눌러 비틀었다. 문을 여는 순간, 환한 빛이 그들 앞으로 쏟아졌다.

 

 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굴 속에 지어진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수천 개의 촛불을 밝힌 것처럼 환했다.

 

 

 “아라늄 가루를 벽에 바른 건가요?”

 

 “그래.”

 

 

 빛을 흡수하는 아라늄을 이용해, 밖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작은 창들을 내고 그리로 들어오는 약간의 빛에도 온 공간의 어둠을 거둬내는 간단한 원리였지만 황궁에서도 본적 없는 독특한 사용 방식이 놀라웠다.

 

 음침할 수 있는 비밀공간이 이토록 화사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꾸몄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며 그녀는 둘러보기 시작했다.

 

 적의 침입 시 군주의 가족이 숨기 위해 마련되었던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파괴 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 된 상태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에 자주 왔었나요?”

 

 “몇 번.”

 

 “어떻게 찾아냈어요?”

 

 

 아카드가 끼고 있던 반지를 들어 보였다. 자신이 이래봬도 영주라는 듯.

 

 세라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았다. 당연히 영주이기에 영토에 관한 비서들을 가지고 있을 테고, 이곳에 평소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신경 써서 정보를 찾아봤겠지.

 

 작은 침실 두 개와 응접실, 욕실, 부엌이 잘 갖춰진 아담한 별장수준으로 가구와 필요한 용품들이 정돈 된 상태 그대로였다.

 

 작은 방 중에 하나는 나무를 깎아 만든 기사와 말, 마차 등 장난감들도 몇 개 있었다.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새것이었다.

 

 응접실로 나온 그녀는 순식간에 드리워지기 시작한 어둠에 조금 놀라, 등잔에 불을 밝혔다.

 

 벽들이 주홍빛으로 아롱거렸다. 이 공간의 특별함에 세라는 가슴속에서도 반짝이는 광자들의 파동이 느껴졌다.

 

 아카드는 피곤했던지 푹신한 흰색 가죽 소파에 길게 누워있었다. 야쿠가 가져온 옷을 갈아입은 그는 다시 말끔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맞은편에 앉아 아름다운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장소에 올 때마다 아카드는 옛 부인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세라를?

 

 

 이곳을 만든 군주는 부인과 아들을 형언 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아꼈던 것이 분명했다.

 

 스며든 섬세한 배려와 관심을 발견 해 내는 것은 여자의 눈으로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이 공간은 온통 배우자에 대한 염려와 사랑의 결과였다.

 

 아카드가 보여 주고 싶다는 것이 이 공간이겠지.

 

 공간 자체가 보석이었다. 사랑을 품고 영롱한 색으로 발산하는 거대한 보석.

 

 팔걸이에 몸을 기울이고, 그의 수려한 선들을 따라 한참 눈동자를 움직이다 보니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졸음이 몰려왔다.

 

 저대로 그는 오늘 밤 괜찮을까? 더 이상 고통 없이 계속 잠들 수 있기를.

 

 그간의 긴장과 피로로 무거운 세라의 눈꺼풀도 완전히 내려왔다.

 

 

 

 *

 

 

 

 꿈.

 

 신랑이 된 아카드가 검은 벨벳에 은색 술 장식이 된 정복 차림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신부 행진으로 몇 걸음 다가가는 찰라, 흰색 정복을 입은 아론이 신랑의 자리에 서 있었다. 또 다시 몇 걸음 차이로 아론에서 아카드로, 아카드에서 아론으로 계속 신랑의 모습이 바뀌었다.

 

 낯익은 사제 앞에서 혼인서약을 맺는 동안에도 신랑은 계속 교차 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마주 보았다.

 

 분명 그녀는 아카드에 검은 눈에 이끌려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감각은 아론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눈을 떠 보면 아카드였다.

 

 아카드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며,

 

 

 “세. 라. 아. 가. 씨.”

 

 

 세라는 아카드를 굳은 채로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를 세라 아가씨라고 부를 이유가 없잖은가. 그런데도 그의 입에서 연속적으로 그 말이 흘러나왔다.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세라아가씨.

 

 결국, 그 소리에 결혼식장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아악~ 그녀는 아카드의 손도 아론의 손도 붙잡지 못한 채 망설이다가 소용돌이 중심으로 휩쓸려 들어 가버렸다.

 

 

 

 *

 

 

 

 세라는 눈을 번쩍 떴다.

 

 세라아가씨……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맴돌았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감각이 고스란히 현실처럼 느껴져 심장이 요동쳤다.

 

 아론, 너는 내가 어쩌길 바라니?

 

 너와 네 아버지를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니?

 

 나도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

 

 둘 다 사랑하면 안 되잖아.

 

 아카드의 품에서 아론 너를 느끼는 나, 너를 담고 있으면서 그에게 욕망을 느끼는 나.

 

 미친 게 분명해. 미치지 않고서야…….

 

 어수선한 꿈 때문에 이런저런 상념이 계속 이어져갔다. 세라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현실의 아카드를 보고서야 그것들을 멈출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흠뻑 젖은 채 잔뜩 웅크리고 미간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세라는 서둘러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불덩이였다.

 

 그를 깨울까?

 

 발작이라도 시작이 될까 순간 불안해졌다.

 

 열로 인한 떨림은 점점 커져갔다. 금세라도 그의 몸에 불이 붙어 활활 타버릴 것처럼 작열감이 손에 전해졌다.

 

 그가 갑자기 눈을 부릅뜬 채,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세, 세라, 읍.”

 

 

  불이라도 삼킨 듯 목을 움켜쥐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카드 괜찮아요. 내가 여기 있어요. 꿈이에요, 깨어나세요!”

 

 

 이름을 계속 불렀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숨을 토해 내지도 마시지도 못해 괴로워하는 소리를 내다가, 소파에서 떨어지며 몸부림이 격렬해졌다.

 

 이 경우에는 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곧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걸음을 옮긴 세라는 그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곧바로 그의 코를 막고 숨을 불어 넣었다.

 

 허우적대던 팔이 허공에 멈췄다. 세라는 몇 차례 더 숨을 넣어줬다.

 

 허공에서 주먹이 쥐어졌다. 순간, 파하! 그가 고개를 젖혀 숨을 토해내며 가슴을 들어올렸다.

 

 가슴을 들썩이며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는 모습을 세라는 애타게 내려 보고 있었다.

 

 그의 한 손을 꽉 붙잡고 땀에 젖은 검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카드의 한 손이 올라와 그녀의 얼굴을 더듬었다.

 

 

 “세……라, 당신이죠?”

 

 

 그녀를 보지 못하는 듯, 검은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세라는 자신의 뺨을 만지는 그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불 좀 꺼줘요.”

 

 “아카드…….”

 

 “너무 뜨거워……숨을 쉴 수가 없어.”

 

 

 큰 화재사고가 있었다더니 그 기억이 그를 괴롭히는 듯싶었다.

 

 

 “리, 리딕이……황제가!”

 

 

 리딕과 황제는 또 무슨 연관일까?

 

 

 “뜨거워, 너무 뜨거워!”

 

 

 파갈 영지에서 그녀를 데리고 올 때도 강이 나타나자, 시갈을 갑작스레 멈추고 물로 뛰어드는 모습이 마치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보였었다.

 

 세라는 얼른 욕실로 가서 차가운 물을 틀어 욕조에 받았다.

 

 

 

 *

 

 

 

 늘 검은 가죽옷을 입던 그에게 흰색 옷은……마치 변신 같은 것이었다.

 

 지옥의 사자에서 천사로 변신.

 

 세라가 침실에서 찾아 욕실에 넣어준, 하얀 셔츠와 흰 바지를 입고 나온 아카드의 모습은 무척이나 새로워 보였다.

 

 

 “흰색도 무척 잘 어울리네요.”

 

 

 욕실에서 정갈한 모습이 되어 나온 그는 씁쓸한 미소를 던지며 맞은편에 앉았다.

 

 마지막까지 세라에게 고통스런 모습을 보이는 게 미안했다.

 

 

 “당신 덕에 증상이 가볍게 지나갔어. 고마워.”

 

 “그 정도가 가볍게 지나가는 거라니…….”

 

 “그래, 당신은 상상도 못할 만큼.”

 

 

 이렇게 곁에 있어준다면 어쩌면 약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 정도로.

 

 늘 그렇듯 세라라는 존재는 그에게 어둠 속에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런 당신을 지켜줘야 하는 게 내 운명이고.

 

 당신을 구해내기 위에 파갈성에서 데려왔듯, 당신을 구하기 위해 이제 내 곁에서 멀어지게 해야 하지.

 

 카라스 영주의 부인으로 있는 한 그녀는 끊임없이 이번과 같은 위험을 달고 살게 뻔했다.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그랬듯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선 카라스 영토에서 최대한 멀리 보낼 수밖에. 그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옅은 미소를 띠고, 쓸쓸함이 느껴지는 흑안이 세라를 응시했다.

 

 

 “그 사제……입 막아 줄까?”

 

 

 느닷없는 말에 세라는 잠시 뜻을 추측했다. 결혼을 무효시키기 위해 둘의 혼인을 공표한 사제한테 무슨 해코지라도 하겠다는 뜻처럼 들렸다.

 

 

 “어쩌려고요, 죽이려고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런 걸 원할 리가 있겠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목숨을 죽이겠다고 쉽게 말을 꺼내는 것이 못마땅한 세라는 퉁명스레 되물었다.

 

 

 “그럼……오늘만……오늘만 우리, 부부로 살자.”

 

 

 사제를 죽여줄까 라는 말보다 더 할 말을 잃게 했다.

 

 점점 기묘해지는 검푸른 일렁임이 천천히 검은 눈동자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른한 눈매는 유혹하듯 그녀의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내부를 달구고 열감이 구석구석으로 전이되었다.

 

 그녀 안으로 정념을 불어넣은 검은 눈은 흔들림이 없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손을 뻗었다.

 

 세라는 홀리듯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뜨거워진 그의 손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엄지로 그녀의 손등 위에 원을 그리듯 쓸어내고는 다른 손으로 포개어 덮었다.

 

 수많은 말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는 한 순간도 떼지 않고 그녀를 요구하고 있었다.

 

 

 “우리 결혼했잖아.”

 

 

 마법사의 주문에 걸려들고 말았다. 검은 눈에 일렁이는 검푸른 기운이 최면에 빠져 들게 만들었다.

 

 아론 말고 이렇게 그녀를 송두리째 흔드는 자가 있었던가?

 

 그녀의 영혼까지도 온전히 그를 허락하려는 듯이 얼마 전까지 가졌던 거부감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점점 맑아지는 정신은 그의 유혹이 진정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순수한 구애라는 사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론에게서 느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지고지순한 사랑.

 

 이미 아내가 있었는데, 최근에 그녀의 초상화를 그 옆에 그려넣을 정도로 애틋해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나 하나뿐인 듯 바라보는 눈이 진심이 될 수 있는 거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그의 순수함이 그녀의 온 감각으로 확신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의 유혹이 마법사의 검은 주술처럼 위험하게 느껴졌지만 검은 커튼을 거둬내고 드러난 것은 그의 사랑에 온 몸을 던져 녹아들고 싶은 세라의 욕망이었다.

 

 아카드가 세라의 의지를 읽는 순간, 검은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등을 소파에 기대며 세라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자신의 유혹에 늘 저리 쉽게 틈을 보이고 마는 세라. 이번에도 선택은 그의 몫이 돼버렸다.

 

 자신이 아론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은 채 그녀를 안을 수 없었다. 아론의 아버지 행세를 하며 그녀를 안는다는 것은 그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약에 취한 그는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백해 버리면 그녀는 떠나지 않으려 들 것이다. 또 다시 그녀는 자신 때문에 위험해지고, 그는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구하기 위해 빠지고 말겠지.

 

 이번처럼 운이 좋아 둘 다 살 수 있는 기회가 과연 몇 번이나 될까?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했다.

 

 너는 내 아내야. 영원히.

 

 너와 완전히 하나가 되기를 매순간 갈망했는데,

 

 내 아내가 된 너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만,

 

 널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는 결론만 남을 뿐이지.

 

 세라는 방금 전 까지만도 정념에 가득 차 그녀를 원하던 그의 태도……에 깃들기 시작한 절제를 읽고 잠시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저 표정. 눈을 감고 호흡을 통해 욕망을 조용히 끊어내는 그만의 싸움.

 

 낯익은 그 싸움을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아론…….”

 

 

 그 소리에 놀란 아카드는 눈을 떴다. 얼떨결에 세어 나온 말에 그녀 스스로도 놀라 고개를 숙였다.

 

 자기 앞에서 딴 남자 생각한다고, 화를 낼까봐 초조해지는데, 그가 일어서 그녀 옆으로 와 앉았다.

 

 

 “결혼했으니 반지를 줘야겠지.”

 

 

 정념을 끊은 평온한 음성으로 돌아와 있었다.

 

 세라는 그의 평온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섭섭하게 느껴졌다.

 

 그는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그녀의 검지에 끼워줬다.

 

 

 “특별한 반지를 주고 싶었지. 찾느라 꽤 고생 했어.”

 

 “이 반지는…….”

 

 

 이 비밀방을 들어오기 위한 열쇠가 아닌가?

 

 사각 틀 중앙에 음각으로 옛 카라스의 문장인 노려보는 늑대의 얼굴과 불꽃 문양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측면에 핑크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빼곡이 장식되어 여성의 반지임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아무나 낄 수 없는 높은 신분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걸 주고 나면, 당신은 여기 어떻게 들어오려고요?”

 

 “안 올 거야, 이제.”

 

 

 *

 

 

 아카드가 창 쪽으로 가서 나무덧문을 열어보더니 하늘을 이리저리 살폈다.

 

 

 “지금 출발해야겠군.”

 

 

 그 말에 세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벌써 새벽인가? 이곳을 떠날 시간이란 말이야? 아직 이 사람 옆에 좀 더 있고 싶은데.

 

 그는 일어나 벽에 걸린 갈색 모피외투를 펼쳐 들고는 그녀에게 입으라는 눈짓을 보였다.

 

 

 “밖은 무척 추울 거야.”

 

 

 오히려 다소 들뜬 그의 모습이 의아스러웠다. 그가 어깨에 걸쳐주는 코트 속에 서운함을 파묻어 버렸다.

 

 단추를 신중하게 채워주는 그의 모습이 다정했다.

 

 이 남자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다면.

 

 다 잊고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곳으로 가서 밭을 일구고 집을 짓고 아이들을 기르며 살 수 있다면.

 

 지금의 당신은 그래달라면 들어줄지도 모르겠지만 약으로 냉정을 찾는 당신은 절대 들어 줄리 만무한 요구였다.

 

 단추를 아래까지 꼼꼼히 채운 그가 이번엔 뒤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눈만 빼꼼히 나오도록 버클을 마저 잠갔다.

 

 다음으로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털부츠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

 

 세라는 그의 어깨를 짚었다, 무릎을 꿇고 부츠를 신겨주는 그는 행복한 미소를 만면에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그녀의 심장 속으로 파고 들어와 아려오는 줄도 모르고.

 

 두툼한 털로 채워진 장갑까지 장착한 후,

 

 

 “나가 볼까?”

 

 

 훨씬 가벼운 외투차림인 그는 털복숭이 설인이 된 여자를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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