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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이벤트 당첨으로 일등석에 탑승한 담월. 그곳에서 한 남자와 크게 다투고 만다.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그가 속삭인다.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아니,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황궁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도망치려는 그녀와 잡으려는 그. 마침내 사로잡힌 그녀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터져나왔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기특한 일을 했구나
작성일 : 17-07-27 00:07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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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음으로 그들이 향한 곳은 야구장이었다.

 

 경기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양 팀의 열띤 응원으로 경기장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휘와 미소가 입장하자 때마침 경기장의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았다.

 그러자 곧장 대형 스크린에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와아!"

 

 두 사람을 발견한 사람들이 크게 환호했다.

 미소가 재빨리 팔짱을 끼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자 환호성이 더욱 거세졌다.

 

 휘가 불편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슬쩍 뿌리쳤다.

 그녀가 얄밉게 눈을 흘기자 휘가 태연한 얼굴로 자리에 다가섰다.

 

 스카이 박스라고 일반석과 분리된 공간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부러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선택한 그녀였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곧장 테이블에 맥주와 치킨이 차려졌다.

 미소의 기획사 사람들이었다.

 

 "자아, 전하. 우리 일단 한잔해요."

 

 "됐다. 난 괜찮으니 너나 먹거라."

 

 "아잉, 그러지 말고 한잔하세요. 야구장에 와서 치맥 안 하면 배신이에요, 전하."

 

 그녀의 앙탈에 마지 못해 휘가 잔을 들었다.

 미소가 잔뜩 들뜬 얼굴로 외쳤다.

 

 "우리 두 사람의 행복한 인연을 위해, 건배!"

 

 힘껏 잔을 부딪친 그녀가 마치 CF의 한 장면처럼 맛깔스럽게 맥주를 삼켰다.

 반면 휘는 가볍게 입만 대고 잔을 내려놓았다.

 미소가 얼른 치킨을 집어 들더니 휘를 바라보았다.

 

 "전하, 아 하시어요."

 

 그녀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휘가 재빨리 몸을 뒤로 젖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다! 난 되었다! 너나 먹……."

 

 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에 다짜고짜 치킨이 들어왔다.

 졸지에 치킨을 입에 물게 된 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미소가 손뼉을 치며 까르륵댔다.

 

 때마침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나타났다.

 누가 봐도 한없이 다정한 연인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휘가 얼른 치킨을 꺼내 들었다.

 계속 애를 쓰고 있지만, 표정관리가 점점 힘들어지는 걸 느꼈다.

 

 '저놈의 카메라를 당장에!'

 

 자꾸만 자신의 모습을 찍어대는 카메라를 휘가 사정없이 노려봤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카메라가 어김없이 그 모습을 담아냈다.

 마치 이런 순간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혹시, 이것도 모두 연출된 것이냐!'

 

 휘의 사나운 시선이 미소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맥주와 치킨을 먹으며 한참 경기에 푹 빠져있었다.

 그렇게 시치미를 뚝 뗀 채 태연한 얼굴로 즐기고 있는 그녀를 보자 더욱 속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게 자신이 자초해서 벌인 일인 것을.

 

 휘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갑자기 경기장 안으로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스크린에 미소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와아!"

 

 사람들의 큰소리로 환호했다.

 미소의 데뷔곡이 흘러나온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휘가 미소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입가로 묘한 웃음이 스쳤다.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미소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치어리더들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에서 안무를 받쳐주었다.

 마치 미리 맞춰보기라도 한 듯 능숙한 모습이었다.

 그녀들 덕분에 미소의 춤이 더욱 돋보였다.

 

 이 순간, 누가 보더라도 주인공은 그녀였다.

 

 그렇게 춤을 추던 그녀가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더니 묘한 눈빛을 한 채 점점 휘에게로 다가왔다.

 곧장 음악이 끈적끈적한 리듬으로 바뀌었다.

 짜 맞춘 듯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휘가 몸을 움츠렸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 된다! 절대 하지 말거라!'

 

 휘가 속으로 애타게 외쳤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곧 그의 앞에 멈춰 선 미소가 섹시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휘의 안색이 금세 어색하게 굳어졌다.

 그런 휘의 몸을 손으로 가볍게 훑으며 그녀가 더욱 섹시한 몸짓을 보였다.

 

 잠시 후, 그녀의 엉덩이가 휘의 허벅지 안쪽을 파고들었다.

 휘가 강하게 거부하며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녀가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더니 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계속 그렇게 버티시면 더 강한 걸 선보일 겁니다, 전하."

 

 그녀의 말에 휘의 몸이 움찔했다.

 이보다 더 무서운 협박은 없을 것이다.

 휘가 어쩔 줄 몰라하자 그녀가 금세 쿡쿡거리며 웃었다.

 섹시함에 이어 한없이 귀여운 모습이었다.

 남자 관중들의 사나운 시선이 느껴지자 휘가 그녀를 자리에 주저앉혔다.

 

 "이제 그만하고 경기나 보거라."

 

 차가운 휘의 말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당황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 보였다.

 

 '점점 더 갖고 싶어지네, 이 남자.'

 

 그녀가 야릇한 시선으로 휘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시선을 느낀 것인지 휘가 그녀에게서 슬쩍 떨어졌다.

 

 그렇게 경기 내내 휘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마침내 경기가 끝나고 휘와 미소가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탄 두 사람의 표정이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어두워진 도로를 그들이 탄 차가 시원스럽게 달렸다.

 곧이어 차가 멈춰 선 곳은 인근의 대형 수족관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미 일반 관람객들은 모두 빠져나간 때였다.

 지금은 예약된 손님만 출입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미소가 모조리 표를 사들였는지 두 사람 외에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미소가 수족관에 들어서며 환하게 웃었다.

 

 "와, 정말 멋지다. 그렇죠, 전하?"

 

 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놀이동산이나 야구장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었다.

 사람도 없고 주변이 조용하자 휘가 비로소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미소가 들뜬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휘보다 수족관 속 물고기들에게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 같군.'

 

 새삼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휘가 말없이 지켜보았다.

 

 잠시 뒤, 대형 수조 앞에 도착했다.

 한쪽 벽을 모두 차지한 수조 속에서 다양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장관을 연출했다.

 그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다.

 

 "전하, 이쪽으로 앉으세요."

 

 미소가 잔뜩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

 휘가 의자에 앉자 곧 와인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미소가 와인 병을 들었다.

 

 "전하, 제가 한 잔 따라드려도 될까요?"

 

 이번엔 휘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잔을 들자 그녀가 공손하게 와인을 따랐다.

 곧 병을 건네받은 휘가 그녀의 잔을 채웠다.

 

 "오늘 하루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전하 덕분에 전 아주 많이 행복했답니다."

 

 "즐거웠다니 다행이구나."

 

 행복한 얼굴의 미소를 향해 휘가 가볍게 대답했다.

 미소가 잔을 내밀자 휘가 잔을 부딪쳤다.

 가만히 와인을 음미하던 미소가 어느새 대형 수조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답지 않게 차분한 모습이었다.

 

 휘가 그런 미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수조 속 물고기를 쫓는 그녀의 눈빛에 아련한 그늘이 비쳤다.

 

 "전하, 제가 재미없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갑자기 미소가 입을 열었다.

 휘가 묵묵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곧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실 전 아쿠아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녀가 시선은 수조에 둔 채 가만가만 자신의 얘기를 했다.

 

 "어렸을 때 우연히 수족관에 갔었는데 어린 마음에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정말 근사해 보였나 봐요. 아마 그대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게."

 

 그녀가 와인을 마셨다.

 어두운 휘의 눈동자가 그 모습을 가만히 담았다.

 

 "그런 제 인생이 어머니의 권유로 우연히 참가하게 된 오디션에 덜컥 합격하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순식간에 데뷔하고 감당하기 벅찬 사랑을 받고. 그렇게 점점 제 꿈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죠."

 

 그녀가 가만히 수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련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어느 날 밤, 행사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이었어요. 신호에 멈춰 선 차 밖으로 대형 TV가 보였어요. 마침 새로 문을 연 수족관 모습이 나오고 있었죠. 그걸 본 순간 뭔가가 제 가슴을 세차게 내리치는 걸 느꼈어요."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휘를 바라보았다.

 휘가 말없이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 휘를 향해 그녀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그녀가 보여준 것 중 가장 슬퍼 보이는 미소였다.

 

 "차 안에 앉아 생각했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가 어쩌다가 여기에 와 있는 거지?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순간 저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 보였어요."

 

 그녀가 말없이 잔을 들자 휘가 와인을 채웠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그녀가 다시 밝게 웃었다.

 

 "저요, 그날 이후 몰래 다이빙 자격증도 땄어요. 보실래요?"

 

 미소가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밝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들어간 전문 자격증이었다.

 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한 일을 했구나."

 

 그의 칭찬에 미소의 볼이 금세 발그레해졌다.

 그녀가 다시 수조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하루하루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사는 걸요. 그냥, 어린 시절의 저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것뿐이에요."

 

 그녀의 시선이 작은 물고기 떼를 쫓았다.

 커다란 수조 속을 자연스럽게 유영하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입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발그레해진 그녀의 볼 위로 어느새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봤다.

 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짙은 눈동자에 그녀가 오롯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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